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49화 (49/78)

살인자 잭 (1)

서바이벌 월드의 미션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각종 탐험이나 전투, 보물 찾기 등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상황을 견딜 수 있어야만 했으며, 그것에 불만을 표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먼 길을 걸어야 하기도 했고, 때로는 손이 부르트도록 암벽의 튀어나온 돌을 붙잡고 올라야만 하기도 했다.

그것은 서바이벌 월드에서 살아가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그리고 특히나 이 서바이벌 월드에 끌려온지 얼마 되지 않은 기반 없는 초보자들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아, 진짜 나는 무슨 인생이 이따위냐. 군대 갔다 온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까지 끌려와서 또 이래야 돼.”

“불평하지 마, 인마. 나는 군대 안 갔다온줄 아냐. 입 다물고 그거나 제대로 빨아.”

“하 씨 진짜, 빨리 강해져서 실력을 보여주든지 해야지 진짜.”

스물 중반의 평범한 남자였던 동혁과 세원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일이었다.

이곳 서바이벌 월드에 오기 전에 군대를 마친 그들은, 맨 처음의 미션을 포함하여 이 미션 66이 4번째의 미션에 불과했다.

이미 3번의 미션을 돌파했지만, 열심히 스텟을 올렸음에도 간신히 종합 등급 D에 턱걸이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그 정도의 강함으로는 메인 미션을 이끌어나가는 이 게릴라 부대에서는 걸레를 빠는 정도의 위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 빨리 강해지고 싶다.”

“그러게. 우리가 좀만 더 강했으면 그 레우스라는 녀석도 우리를 이렇게 걸레나 빨게 놔두지는 않았을 테지.”

레우스는 미션 초반에 패잔병들을 모아 게릴라 부대를 조직한 대장 NPC 이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레우스 밑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생성되는 미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제국의 점령지를 습격하거나, 중요한 시설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현재도 이들은 레우스의 밑에서 마도광자포라고 하는, 상당한 군사적 가치를 지니는 시설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임무라고는 해도 항상 전투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만약 게임이었다면 전투 장면만 잘라서 미션이 진행되었겠지만, 실제 전쟁의 경우 전투가 이루어지는 때 외에는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밥 짓기, 그릇 씻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점호하기 등.

실제 군대가 그런 것처럼, 전투하는 시간보다 부대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시간이 더 길었다.

“게다가 자기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저런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더 짜증나지.”

동혁은 열심히 걸레를 빠는 자신들과 달리 설렁설렁 일하는 다른 녀석들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서바이벌 월드에 오게 된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동혁과 세원 역시 하나의 파티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여러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스스로 노력하여 조금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자도 있지만, 반면에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징징거리는 녀석이나 강한 자에게 빌붙어 편하게 미션을 수행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미션이 점점 어려워져 감에 따라 남을 짜증나게 하는 녀석들은 대부분이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아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강해져서 파티 플레이가 필요 없을 정도가 된다면, 더 이상 저런 녀석들을 참아가며 미션을 수행할 필요도 없을 터였다.

“어딘가 히든 피스 같은 거 없으려나.”

“야, 웃긴 소리 하지 마라. 히든 피스는 아무나 찾는 건줄 아냐.”

동혁이 무협에서 나오는 기연과도 같은 상황을 상상하며 꿈을 꾸었지만, 세원은 가볍게 면박을 주었다.

동혁은 걸레를 빨던 주먹으로 세원의 옆구리를 세게 쳤지만, 사실 세원의 말이 맞는 이야기였다.

이 서바이벌 월드에 히든 피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였다. 아바레카에서도 이러한 히든 피스들에 대한 이야기가 암암리가 오가고 있었으며, 아직 아바레카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 지하계의 플레이어들에게도 히든 피스라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물론 모일 만한 장소가 없는 지하계의 플레이어들에게 정보 교환이라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미션을 수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이나 거점의 통신 기능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정보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다만 이렇듯 사람들이 히든 피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히든 피스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히든 피스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숨기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이미 발견된 히든 피스마저 사람들이 차지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존재했다.

히든 피스는 끊임없이 사라지는 한편,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내 눈앞에 새로운 히든 피스가 나타나면 좋으련만!’

플레이어들이 999개의 미션들 중 하나를 반복해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미션이라는 것이 언제나 정해진 모습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미션이라는 것도 플레이어들이 미션을 플레이할 때마다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특히, 누군가가 그 미션 안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를 차지하였을 때 모습을 바꾼다.

누군가가 미션을 수행하며 서바이벌 월드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의 히든 피스를 획득하였을 때, 그 히든 피스는 모습이 바뀌어 더 이상 히든 피스가 아닌 것으로 변하곤 한다. 만약 그것이 아이템이라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아이템이 없을 것이고, 인연과 같은 것이라면 더 이상 인연이 생길 여지가 없도록 캐릭터의 인간관계가 변화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히든 피스를 획득하고 나면, 다시 그 미션을 수행해도 앞서 획득했던 히든 피스는 획득할 수 없다.

대신, 변화한 미션에 따라 어딘가에 히든 피스가 생겨나게 된다.

그 수는 하나일 수도 둘일 수도 있으며, 그 수가 더 많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생겨나지 않기도 한다.

아무튼, 이 때문에 고블린 상점과도 같은 비소모성 히든 피스 외에는 모두가 히든 피스에 관련된 정보를 숨기려 하고, 또 독점하려 하는 것이다.

“하아, 걸레나 빨고 있으면서 이런 얘기 해서 뭐하겠냐. 어차피 정보력 좋은 길드나 이런 데서 다 차지해 가겠지.”

“어빌리티 중에 히든 피스가 보이는 눈이나 뭐 이런 거 없으려나.”

“없어, 새끼야. 그런 게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벌써 지존 됐겠….”

그때였다.

요란한 뿔피리 소리와 함께 병사들을 소집하는 외침이 여기저기에 울려 퍼졌다.

동혁과 세원은 당황한 채 빨던 걸레조차 내버려두고 간이 연병장으로 향했다.

“비상! 현재 마도광자포 2호가 니펠 제국의 병사들에게 습격받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병사들은 모두 검을 들라! 그리고 저 사악한 니펠 제국의 늑대들을 무찌르라!”

그와 동시에 이곳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하나의 미션이 떠올랐다.

<미션 66-E: 마도광자포 방어전>

등급 – D

설명 – 현재 니펠 제국의 병사들이 마도광자포 시설을 습격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당신은 그라델 왕국의 충성스러운 병사로서 그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서두르십시오!

성공 조건 – 마도광자포를 적어도 1기 이상 지키기(남아 있는 마도광자포 3/3)

실패 조건 – 마도광자포가 전부 소실

보상 – 9000루페, 미션 포인트 2, 체력 및 마력 포션 3

레우스가 이끄는 부대는 재빨리 출동하였다.

레우스 부대에 속한 동혁과 세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뭐 하필 이럴 때 전투가 터지고 그러냐!”

“저번처럼 병사들 몰고 이쪽으로 도망치거나 하지 마라.”

“안 그래, 인마!”

농담처럼 말하지만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션 수행 중에 등장하는 병사들의 강함이야 자신들보다 크게 강할 것도 약할 것도 없는 정도이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병사들 사이에 고립되어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반 병사보다 훨씬 강한 편인 기사들을 마주치게 될 수도 있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몰랐으니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부대는 습격받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온 마도광자포 2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미 전투 도중인 듯 사방이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했다.

동혁과 세원은 긴장한 채 전투가 일어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한 명의 남자가 전장을 누비고 다니며 주문을 외우듯 스킬을 남발하고 있었다.

“세 번 휘두르기, 세 번 휘두르기, 세 번 휘두르기.”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가 붉은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니펠 제국의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져 나갔다.

세 번 휘두르기라는, 이 서바이벌 월드에 다시 없을 희대의 쓰레기 스킬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였다.

마도광자포를 적군의 습격으로부터 구해내려던 레우스 부대의 모두는 벙 찐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자는 아무렇게나 검을 휘둘러, 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말을 탄 기사나 대장 급의 군사들마저 모조리 쓸어버린다.

동혁과 세원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야, 너 내가 히든 피스 있는 곳 알려줄까?”

“아니.”

둘은 이제부터 전력으로 세 번 휘두르기만을 연마하기로 결심했다.

***

한 차례 무용을 뽐낸 수혁은 부대 근처에 위치한 하나의 마을에 서 있었다. 노란 화살표가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을 상대하며 평균 D등급의 스페셜 마정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스페셜 마정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미션 하나 당 10번까지라는 모양.

이와 같이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 미션이 여기저기에 있었으니 이 정도의 패널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전 다리온을 해치운 것으로 엄청난 양을 얻었으므로,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해지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 역시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저 녀석에게 무언가 히든 피스가 숨어 있는 모양인데.”

수혁은 거리 구석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주변을 훔쳐보는 한 사내에게 주목했다.

수혁이 먼저 다가서려 했지만, 고개를 돌리다가 수혁과 눈이 마주친 사내 쪽에서 오히려 수혁에게 접근한다.

수혁은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자네에게서 피의 냄새가 풍기는군. 흐흐흐. 자네는 분명 최근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거야. 그렇지 않나?”

수혁이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남자는 수혁을 쳐다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세상에나! 그뿐만이 아니로군. 어쩐지 동류의 느낌이 든다 싶더니만…. 동족상잔. 설마 그 금단의 어빌리티를 들고 있는 게 맞나?”

남자의 얼굴이 가까웠다.

수혁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붉은 눈빛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광기와 같은 것이 엿보였다.

“큭큭큭. 반갑군, 동지. 나는 사람들로부터 살인자 잭이라고 불리는 몸이라네. 자네와도 같이 사람을 죽이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지.”

수혁은 그다지 이 살인자 잭이라는 남자와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잭은 맘에 드는 물건이라도 보는 것처럼 수혁을 끈적끈적하게 쳐다보았다.

“그건 그렇고 자네도 이쪽 업계에서 일하면서 참으로 힘들었을 테지. 그깟 사람 하나 죽였다고 사람을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하고 말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어차피 인간이란 전부 거기서 거기인 쓰레기들뿐이지. 그런 인간 하나둘쯤 죽였다고 해서 인간을 벌레 취급 해? 아니, 아니지. 쓰레기를 치웠으니 청소부라 불려야 오히려 마땅한 것이겠지. 안 그런가?”

수혁은 그렇게까지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니펠 제국의 병사들을 죽인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적인데다가 결국은 NPC이기 때문에 죄책감이 덜했을 뿐.

그러나 여기서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수혁은 알고 있었다.

살인자 잭이 찢어진 미소를 지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그런 의미에서 말이지만, 자네도 그런 것들 때문에 상당히 골치를 앓고 있는 중일 거야. 그런 자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도록 하지. 웬만해서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려 했지만, 동족의 냄새가 나는 자네는 특별해.”

-‘살인자 잭’으로부터 ‘살인 면허’ 어빌리티를 받았습니다.

<살인 면허>

등급 – A+

설명 – 살인의 면죄부. 누군가를 살해할 경우 미션 포인트 1을 소모하여 살기 스텟이 오르지 않도록 해준다.

수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션 포인트가 결코 하찮은 수치인 것은 아니지만, 만약 수혁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게 된다고 했을 때 오르게 될 살기 스텟을 미션 포인트로 대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살기 스텟과 미션 포인트를 1:1로 교환한다?

살기 스텟은 13까지만 채워도 바로 괴물이 되는 반면, 미션 포인트는 얻기는 힘들어도 훨씬 많은 수치를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어빌리티!

‘만약 이 살인 면허와 동족 상잔 어빌리티를 함께 착용한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수혁마저도 일순 끌렸을 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둘의 조합이 발현을 대체할 정도의 가치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 면허는 어찌 됐건 다른 것으로는 살 수 없는 미션 포인트를 소모하는 반면, 발현이 소모하는 마력은 거의 공짜 수준이었기 때문.

‘어빌리티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군.’

한편, 살인자 잭으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은 수혁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분명 잭으로부터 어빌리티를 선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란 화살표가 잭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배를 관통하여 화살표의 머리 부분이 반대편으로 뚫고 나와 있었다.

‘이건….’

“어떤가, 지금 당장이라도 써먹어보고 싶지 않은가?”

살인자 잭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권유하자 수혁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살인 면허’ 어빌리티를 착용하시겠습니까? 몇 번 어빌리티와 교체하시겠습니까?

수혁은 이 미션에서는 이미 거의 쓸모 없게 된 동족 상잔 어빌리티와 살인 면허 어빌리티를 교환했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라인플레임을 꺼내 살인자 잭의 배에 찔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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