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51화 (51/78)

살인자 잭 (3)

수혁은 레밀리아가 거점 내에 설치한 다양한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레밀리아가 거점을 확장하면서, 거점 역시 하나의 구조를 가지고 발전하였다.

하나의 홀을 중심으로 양측에 복도가 달린 저택 형식에(물론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없지만), 구역을 나누어 구역마다 생산 시설이나 주요 시설, 유흥 시설 등의 시설이 자리잡은 구조였다.

여기서 생산 시설이란 말 그대로 생산을 담당하는 시설로서, 논밭이나 어장, 벌목장, 광산 등이 이에 해당하며, 원래는 복잡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수혁의 경우에는 레밀리아가 모든 것을 관리하였으므로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주요 시설의 경우는 미션의 진행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시설로서, 보물 창고나 마켓, 스킬이나 무기, 장비 등의 제작소 및 연구소 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스킬이나 장비 연구소의 경우 설치하기 위해서는 관련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NPC를 영입해야 하는데, 이는 아바레카에서 고용하든지 미션을 진행하는 동안 적당한 NPC를 설득하는 것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수혁의 거점에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가 바로 각종 상점 등 편의 시설과 유흥 시설. 수혁이 미션을 끝내자마자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위치한 방 바로 앞 복도에 설치하였다.

“현재는 보유 자금에 비해 생산 시설의 업그레이드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인스턴스 던전을 돌파하여야 하는데, 제 능력이 부족하여 상위 단계의 미션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현재, 레밀리아는 아직 등급이 낮아 당근, 감자 등 기본적인 식재료밖에 기르지 못하는 밭을 가리키며 수혁에게 거점의 발전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조금 전 샤워를 했기 때문인지, 그녀의 풀어내린 긴 머리카락이 촉촉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뺨도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차분한 그녀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묘했다.

수혁은 그녀가 이런 상태가 된 것에 대해 약간의 책임을 느끼며, 애써 다음의 화제로 넘어갔다.

“괜찮아. 그보다도 그런 거라면, 일단은 거점 정비를 하는 게 좋겠군.”

수혁은 마가의 서를 든 채 레밀리아에게 발현을 걸어주며 중얼거렸다.

거점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훑어보았으니, 현재의 전력을 재확인하고 다듬기도 할 겸, 거점에서 자신이 해둬야 하는 하는 일들을 해두기로 했다.

우선은 각 생산 시설의 새로운 단계를 해금하기 위한 인던을 공략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리하여 수혁이 처음으로 선택한 던전은 펌킨 헤드의 던전. C등급의 밭을 해금하기 위한 인스턴스 던전으로서, 밭을 망치는 사악한 펌킨 헤드들이 출몰하였다.

한동안 푹 쉬면서 몸이 둔해졌을 테니, 준비 운동으로는 적당한 던전이 되리라.

“그럼 잠깐 다녀올게.”

“부디 조심하시길···.”

레밀리아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던전 포탈 안으로 진입하였다.

포탈에 진입하자마자 자신을 노려보는 많은 수의 펌킨 헤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할로윈 호박처럼, 사악한 눈과 입을 가진 호박 머리에, 세모꼴의 천이 매달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야, 나와.”

수혁은 로코를 자신의 사역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소환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수혁의 앞에 불길한 마법진이 생겨나는 동시에, 반투명한 색을 가진 뿔 달린 까마귀. 로코의 모습이 드러났다.

로코는 나타나자마자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부르나, 주인.”

“나한테 묻지 말고 앞이나 봐. 내가 널 왜 불렀을 것 같냐.”

로코는 앞을 보더니 팍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강제로 자신과 계약을 맺은 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휴우, 갈 길이 멀군.”

수혁은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 로코의 몸에 5초간 통과시켰다.

그러자 로코의 스테이터스가 나타났다.

<스테이터스>

이름 – 로코 데발리아

종족 – 데빌 혼크로우

계급 – 사역마

근력 – 76 민첩성 – 218 체력 – 109 물리저항 – 32

법력 – 151 지력 – 91 마력 – 122 마법저항 – 48

종합 등급 – C

주요 스킬 – 다크 토네이도/B, 혼돈의 눈/C

어빌리티 – 1. 살인자의 눈빛/A

2. 악마의 계약/N

수혁 자신보다는 스텟이 낮았지만, 생각보다는 상당히 준수했다. 하긴, 준수하지 않더라도 수혁의 발현 덕분에 준수하게 될 테지만.

다크 토네이도라는 스킬은 말 그대로 뿔에 에너지를 충전하여 검은 폭풍을 불러오는 마법이었으며, 혼돈의 눈은 상대방과 눈을 마주쳐 혼란 상태를 유발하는 마법이었다.

수혁은 다음으로 어빌리티를 확인하였다.

<어빌리티: 살인자의 눈빛>

등급 – A

설명 –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 고립되어 동료와 떨어져 있는 대상에 대해 모든 능력치를 10% 낮추고, 혼란 상태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어빌리티: 악마의 계약>

등급 – N

종류 – 사역

계약 대상 – 최수혁

계약 기간 – 무기한

계약 조건 – 없음

설명 – 악마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계약.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약 대상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며, 거스를 수 없다. 계약 조건을 만족시킬 때까지 계약을 파기시킬 수 없다. 계약 대상과 능력의 일부를 공유한다.

살인자의 눈빛이라는 능력은 전 연쇄 살인마인 로코의 과거 때문인 것으로 보였고, 악마의 계약이라는 어빌리티는 악마로서 가지는 기본 어빌리티인 듯했다.

원래라면 악마와의 계약은 계약자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면, 악마가 그 조건을 수락하는 것으로 성립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악마와 계약자가 협력하여 그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계약이 끝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수혁은 어떠한 조건도 없이 무조건으로 로코와의 사역 계약을 맺어버렸다.

사실, 수혁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불공정거래!

서로가 동등한 조건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혁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거래를 이룬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에게 5루페짜리 휴지를 500루페에 판다거나.

다 죽어가는 자에게 100루페짜리 포션을 1만루페에 판다거나.

이번에도 그런 것이었다.

절대로 계약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로코를, 자신의 무력적 우위를 이용하여 억지로 사역 계약을 맺었다.

만약 계약을 맺지 않는다면 소멸시켜 버리겠다는 협박에, 로코는 눈물을 머금고 마법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누가 악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사악한 행위!

로코가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자라는 점이 그나마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그에 대해서 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물론 그 벌을 주는 주체가 어째서 수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로코를 길들일 좋은 기회였다.

“로코, 저 펌킨 헤드들을 공격해.”

“싫다.”

수혁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설마 이런 데서 반항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악마의 계약 어빌리티에는 분명 명령에 반드시 따른다고 나와 있는데? 설마 뭔가 잘못된 건가?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는 주제에, 실제 행동은 착실히 마력을 집중하여 펌킨 헤드를 노린다.

퍼엉!

로코의 뿔에 뭉친 검은 바람 에너지가 날아가 펌킨 헤드의 중앙을 노린다.

가장자리의 일부는 호박이 약간 손상된 정도에 그쳤지만, 중앙의 펌킨 헤드들은 갈가리 찢겨 너덜너덜해졌다. 아무래도 중앙 부분에 대미지가 집중되는 모양.

수혁은 말없이 로코를 내려다보았다. 로코의 표정은 여전히 부루퉁했다.

“···저 녀석들에게 돌진해라.”

“내가 주인 따위의 말을 들을 것 같으냐!”

민첩 218에 달하는 현란한 움직임으로 적 사이에 파고들어, 여기저기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긴다.

마침내 로코가 공격을 끝마치고 돌아오자, 수혁은 의심스럽다는 듯 로코를 쳐다보며 턱을 쓸었다.

“···너, 설마 츤데레냐?”

“츤데레? 츤데레가 뭐지?”

“아니, 뭐 됐다.”

농담이긴 했지만, 입으로는 싫다 말하면서도 수혁의 명령을 착실히 수행하는 로코의 모습이 꼭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싫어하는 척하는 츤데레와 닮아 보였다.

머리에 뿔 달린 까마귀 악마가 츤데레라니,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의 목소리는 남자였으니···.

아무튼 수혁은 로코에게 사역마로서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며 여러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로코를 소환하고 있는 동안에 소모되는 마력만 해도 상당하다.

단지 소환해두고 있는 것만이라면 1시간이 조금 넘는 동안 데리고 있을 수 있지만, 전투 중이라면 다른 쪽으로도 마력이 나갈 테니 약간은 부담되는 수치였다.

게다가 로코가 마법을 사용하거나 격렬하게 움직일 때마다 수혁의 마력을 사용하니, 실제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짧았다.

그러나 장점인 면도 있었다.

‘영체라서 그런지 공격을 전부 회피해버리는군.’

영체는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물리공격과 마법공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대신 물리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실체에게 큰 대미지를 입히려면 마력을 소모하는 마법을 이용하여야만 한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으니 정찰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을 터였다.

마침 민첩 역시 상당히 높았으니, 그러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리라.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아까부터 눈빛이 상당히 반항적인걸.’

수혁이 하는 명령을 착실하게 따르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태도는 좋지 않았다.

수혁은 그 점이 상당히 거슬렸다.

단지 기분이 나쁜 것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전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지금이야 수혁의 간단한 명령에 반응하고 따른다지만, 전투가 격해질 경우 수혁이 일일이 명령을 내리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단지 수혁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여야 사역마의 성능을 100%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혁은 로코를 훈련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로코, 저 맨 왼쪽에 있는 펌킨 헤드를 공격하고 와라.”

“싫다. 나는 결코 주인에게 득이 될 만한 행동은···.”

퍽! 퍽! 퍽!

로코는 몸으로는 수혁의 명령을 따르려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수혁의 주먹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로코가 명령대로 펌킨 헤드를 공격하고 돌아오면, 수혁은 하나의 작은 마정석을 내밀었다.

“잘 했다, 로코.”

“······.”

로코는 수혁이 잘해주자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눈치를 보며 마치 게눈 감추듯 마정석을 가져갔다.

영체에게 있어 식량은 마력이고, 그 마력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마정석이므로, 로코에게 있어 마정석은 마치 개에게 있어서의 뼈다귀와도 같았던 것.

어차피 로코에게 준 마정석은 로코에게 흡수되어 스텟의 상승으로 이어지므로 수혁에게 있어서도 손해가 아니었다.

수혁은 이런 식으로 로코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상과 벌을 내리기 시작했다. 당근과 채찍을 통해 로코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교해 나갔다.

“주인, 어째 마정석의 크기가 이전보다 조금 줄어들지 않았나?”

퍽! 퍽! 퍽!

건방진 녀석은 매가 약이었다.

***

그렇게 로코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교하며, 수혁은 거점을 정비하고 업그레이드 한계를 늘려 나갔다.

수혁이 업그레이드 한계를 늘렸기 때문에 이제 생산 시설과 주요 시설에 투자하기 위한 돈이 더 필요하였다. 레밀리아가 많은 돈을 벌어 놓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늘어난 업그레이드를 맞추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했다. 물론, 레밀리아가 있는 한 어디까지나 시간 문제에 불과하기는 했다.

한편, 수혁은 승급에 필요한 100의 미션 포인트를 벌기 위해 3개의 낮은 번호 미션을 더 수행하였다.

노란 화살표의 크기도 작았으며, 번호도 낮았으므로 대단한 히든 피스가 잠들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별 어려움 없이 필요한 만큼의 미션 포인트를 버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혁은 지상계로의 승급을 신청하였다.

-지상계로의 승급이 완료되었습니다. 거점의 근거지가 지상으로 변경됩니다.

쿠구구구구···.

땅속에 파묻혀 있던 수혁의 거점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거점을 감싸고 있던 정체불명의 차단막을 중심으로, 지하의 흙을 통째로 들어올리며 지상으로 올라선다.

마치 아틀란티스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과 같은 장엄한 광경.

그리고 마침내, 수혁의 거점이 지상으로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흐음, 빛이 들어오니 이제야 조금 사람 사는 곳 같이 생겼는걸.”

지상계로의 승급이 완료되자, 수혁의 거점도 조금씩 모습을 바꾸었다.

통과할 수 없는 막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포탈을 통해서 이동해야만 했던 논과 밭, 어장 등이 수혁의 거점에 완전히 통합되었다.

땅굴 형식으로 연결되었던 방과 복도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저택 안에 담겨 하늘 아래 드러나게 되었으며, 일부 방과 복도에 창문이 생겨나고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달리게 되었다.

거점 저택과 그 주변의 마당, 그리고 일대의 생산 시설을 아우르는 지역이 수혁의 거점에 포함되었다.

저택의 모습이 보기 흉하지만, 이 부분은 따로 돈을 투자하여 업그레이드를 하면 되는 일이리라.

“주변의 모습은···. 저 멀리에 건축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차단막 바깥은 대부분이 숲과 들, 산과 같은 지형으로 감싸여 있었지만, 저 멀리에 자연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건축물이 보였다.

호기심이 떠올랐지만, 차단막을 뚫고 나갈 방법이 없어 어쩔 수가 없었다.

수혁은 눈을 좁힌 채 그 건축물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어쨌든 지상계로의 승급까지 끝마쳤으니, 이제는 아바레카라고 하는 곳에 가볼 차례였다.

아바레카라고 하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지상계로 승급한 뒤에도 하나의 미션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모되는 미션 포인트는 10.

지상계로 승급한 뒤 17의 미션 포인트가 남았을 뿐이므로, 꽤나 빠듯한 수치였다.

‘그래도 일단은 가본다.’

수혁은 마음을 굳혔다.

다른 플레이어들로부터 들은 정보에 따르면 미션의 종류는 대체로 랜덤인 듯하지만, 어쨌든 최대한 대비하여 준비도 마쳤다.

“그럼 다녀올게.”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레밀리아의 인사를 받으며, 수혁은 아바레카로의 미션을 선택하였다.

약간의 어지럼증을 동반한 뒤, 수혁은 새로운 미션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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