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52화 (52/78)

아바레카로 가는 길 (1)

미션에 진입한 수혁은 자신이 여러 명의 플레이어들과 함께인 새로운 공간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 처음 들어와 튜토리얼을 수행했을 때와 같았다.

수혁은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하는 플레이어들과, 공중에 떠 있는 텔레비전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은 튜토리얼에서 봤을 때처럼 4방향으로 나 있지는 않았지만, 대신 작은 몸과 팔, 다리가 붙어 있었다. 마치 텔레비전 자체가 머리라도 되는 것처럼.

텔레비전의 스크린에 이모티콘으로 하나의 표정이 떠오른다.

플레이어들을 환영해주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쓰레기들.”

약간 높은 톤의 기계음이 들렸다.

수혁은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저런 웃는 얼굴을 한 채 다짜고짜 쓰레기라는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튜토리얼 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화내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모두들 긴장하는 표정만을 지을 뿐 화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 놀라고 말았다.

하긴, 자신 역시 튜토리얼 때 저런 걸 건드렸다가 죽은 남자를 보았으니 굳이 나서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이제부터 하나의 게임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현재 이곳에 존재하는 인원은 총 30명. 10위 안에 드는 자만이 아바레카로의 티켓을 얻게 될 것이며, 나머지는 탈락하여 미션 포인트를 잃게 될 것입니다.”

미션 포인트 10. 거점에서의 5일에 해당하며, 그 외에도 승급이나 어빌리티 합성, 스킬 구매 등에 사용되는, 교환이 불가능한 수치.

200번대까지의 미션의 경우 메인 미션만으로 얻게 되는 미션 포인트의 평균은 10~15 정도. 히든 미션까지 포함하면 약간 더 늘어나지만, 일반적으로 히든 미션을 발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미션 하나 분의 미션 포인트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

수혁처럼 빠르게 강해진 덕에 만만한 미션들이 많이 남아 있으면 모를까, 메인 미션을 따라 완만하게 강해진 탓에 만만한 미션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

단순히 미션 포인트 10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미션에서 2/3는 탈락.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미션 포인트만을 잃게 된다.

모두는 긴장한 채 텔레비전의 요정에게 집중했다.

“게임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나타나게 될 랜덤 박스 안에서 하나의 탈 것을 고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탈 것을 탄 채 꽁지가 빠져라 열심히 달려서, 남들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달하면 됩니다. 이른바 레이싱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텔레비전 요정은 표정을 바꾸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첫째, 여러분은 레이스 도중 다른 이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대미지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공격을 통해 상대를 밀어내거나 방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상대방을 방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러분의 꼴사나운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지는군요. 후후.”

텔레비전 요정은 한 차례 플레이어들을 비웃고는 말을 이었다.

“둘째, 사실은 이게 제일 중요한 점인데, 다른 플레이어를 밀어내고 그 플레이어가 탄 탈 것에 옮겨 타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여러분이 탈 것에서 떨어져 땅에 닿는 순간 여러분의 탈락이 확정된다는 점입니다.”

텔레비전 요정이 플레이어들을 쓱 훑어보는 도중, 수혁은 텔레비전 요정이 한 말을 곱씹었다.

레이싱이라….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라면 수혁도 이제 어느 정도는 자신 있었지만, 레이싱의 경우 그게 아니었다.

몸을 쓰는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수혁의 주특기는 어디까지나 근접 공격.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스펙을 떠나서 다른 이들을 제대로 방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탈 것 옮겨타기가 가능하다면 조금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에 다른 탈 것에 접근할 수 있을지 역시도 의문인 부분.

게다가 장애물이나 기타 방해 요소들도 계속해서 등장할 테니,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한편, 이들 중에도 파티를 맺고서 미션에 함께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한수와 하진, 기철은 몰려 다니며 남들을 속이거나 유인해 살해하는 것을 특기로 하는 패거리였다.

물론 살기 스텟이 오르기 때문에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이미 몇 번 정도는 직접 죽인 경험도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들의 눈은 현재도 상당히 붉은 상태.

튜토리얼에서 서로 죽이게 되는 경우 때문에 눈이 붉은 자들 자체는 꽤 있었지만, 이들의 눈은 그들보다도 더 붉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에 어쩐지 긴장감이 없어 보이는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야, 저 녀석 뭔가 조금 이상하지 않냐.”

한수가 말을 꺼내자 하진과 기철 역시 그쪽을 쳐다본다.

외모 자체는 평범했지만 미션을 앞둔 이런 상황인데도 그다지 긴장된 표정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두 가지였다.

엄청난 고수라서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이거나, 긴장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지 못하는 것이거나.

그리고 남자의 복장을 볼 때, 후자의 가능성이 좀 더 커 보였다.

“뭐야, 여기까지 왔으면서 장비가 왜 저래. 설마 장비 값 아끼려고 저러는 건가?”

남자는 조금 낡아 보이는 짙은 보랏빛의 망토에, F등급 때나 착용할 법한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무기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다른 장비들로 판단할 때 그리 대단할 것은 없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좋은 장비를 숨기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이곳 서바이벌 월드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자는 많지 않다. 좋은 장비라고 해서 아끼다가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

자신의 능력에 비해 너무 성능이 좋은 나머지 남들에게 노려질 정도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장비는 아끼지 않고 착용하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애초에 아바레카 행 미션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까지 고수는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아바레카에서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들과 길드의 지원이 아니라면 중수에서 고수로 올라가는 것은 굉장히 힘들기 때문.

“어떻게 100이나 되는 미션 포인트를 모았는지 모르겠군.”

“생긴 것보다는 얼빵한 녀석인지도 모르지. 적당한 파티에 껴서 미션 포인트만 받아 먹었나?”

“운이 좋았나 보군. 미션 중에는 파티원을 희생시키는 편이 더 나은 미션도 존재했을 텐데 말이야.”

일반적으로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말처럼 파티를 이루는 것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나 그것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션 중에는 플레이어 중 누군가를 제물로 삼아 상황을 모면하거나 구성원의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경우 능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는 파티에 참여하느니만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잠깐, 이쪽 본다.”

“눈치가 꽤 좋은걸.”

남자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자, 한수와 나머지는 웃는 얼굴을 돌려주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한 명을 탈락시키고 시작하는 장면이 선했다.

한편, 수혁은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찜찜한 기분에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딘지 콕콕 찌르는 듯한 불쾌한 감각.

그 감각의 근원을 따라가니, 세 명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히죽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로 좋은 시선은 아닌 듯한데. 육감 스텟이 올라서인가, 어째선지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걸.’

한편, 그런 가운데 텔레비전 요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주변에 랜덤 박스들을 숨겨 놓을 테니 그걸 찾아서, 저쪽의 출발선에 풀어놓으면 탈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럼 그걸 타고 열심히 기어가면 되겠죠. 그럼 열심히 해보세요, 쓰레기들!”

텔레비전의 요정이 팟하고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의 지형이 바뀌어 숲과 계곡으로 변했다.

지형 드문드문 상자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동색과 은색, 금색의 상자들이었다.

아마도 제일 좋은 것이 금색의 상자. 어서 달려가서 상자를 차지해야만 했다.

수혁 역시 하나의 상자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금색의 상자이니 적어도 꽝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야, 저기 봐라. 저 녀석도 금색 상자를 노리고 달리는데?”

“내가 막아주지.”

기철은 수혁이 노리는 금색 상자를 향해 달렸다.

기철이 더 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끝냈으면 모르겠지만, 굳이 상자를 붙잡고 약올리듯 수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디 빼앗을 수 있으면 빼앗아 보라는 무언의 조롱.

상대방의 복장을 볼 때 결코 고수일 리 없다는 판단으로부터 도출된 행동이었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기철이 미션 수행에 득을 보는 것은 없었지만, 몇 분 정도는 이런 식으로 상대를 놀려주어도 큰 지장은 없을 터였다.

감히 레벨도 안 되면서 금색 상자를 건드려?

대충 그런 속셈이었다.

한편, 수혁은 금색 상자를 집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선으로 달려가지 않는 기철을 보고 의문을 떠올렸다.

‘뭐지, 저 녀석? 상자 빼앗기고 싶어서 작정했나? 왜 안 도망가는 거지?’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원래라면 쫓아가서라도 빼앗으려 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수혁은 그대로 기철에게 돌진했다.

기철은 멋도 모르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혁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수혁과 부딪쳐 수십 미터나 날아가고 말았다.

“커헉?!”

바닥에 떨어진 기철은 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에서 깨어났지만,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미션 특성상 대미지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마치 달리는 자동차에라도 부딪친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마침내 기철이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금색과 은색 상자는 다른 이들이 전부 채가고 동색의 상자만이 남았을 때였다.

한편, 다른 미션을 수행하며 얻은 스킬 ‘태클’로 기철을 날려버린 수혁은 금색 상자를 들고 출발선으로 달려갔다.

설마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나 싶어 약간 당황했지만, 역시나 별 거 없었다.

하긴, 수혁의 현재 등급인 B등급 정도라면 아바레카에서도 그렇게 꿀리는 등급은 아니었다.

아바레카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자면, 어른과 아이 수준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보다도 의문이 드는 것은, 저 녀석이 어째서 자신을 그리도 만만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냐는 점이었다.

‘뭐지? 내 옷에 뭐가 묻었나?’

수혁은 자신의 복장을 돌아보았다.

초보자의 장비이긴 하지만 발현으로 강화되었으니 성능에는 문제가 없고, 어딘가 특별히 해진 자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한편, 그런 가운데 수혁은 출발선에 도착했다.

1등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상위권이었다.

금색 상자를 출발선 앞에 던져 넣으며 목적지를 쳐다보았다.

높은 탑이 세워진 거대한 도시, 아바레카가 주변의 모든 것을 굽어보며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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