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레카로 가는 길 (2)
수혁이 출발선에 서는 순간부터, 수혁의 눈에는 무수한 노란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란 화살표는 각각이 수혁 외의 플레이어들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수혁은 이 화살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빨리 앞으로 치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수혁은 우선 레이싱을 시작하기로 했다.
수혁이 금색 상자를 출발선 앞에 던져 넣자, 금색 상자로부터 하나의 거대한 황금 수사슴이 튀어나왔다.
덩치가 꽤 커서, 말에 올라타듯 올라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땅에 몸이 닿을 경우 곧바로 탈락이므로, 탈 것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어야만 했다.
위에 올라타며 다른 사람들의 탈 것을 살펴보니, 말이나 황소 같은 비교적 스탠다드한 탈 것에서부터 거대한 등딱지를 가진 거북이, 낮게 나는 거대한 학이나 참새,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 큰 토끼나 치타 같은 것까지 있었다.
어느 쪽이나 결과적으로 크기는 비슷하고, 차이점은 속도에서 드러나는 듯했다.
학이나 참새 같은 경우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형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 대신 다른 탈 것보다는 속도가 조금 느린 듯했다.
수혁이 뽑은 황금 수사슴의 경우 운 좋게도 꽤 빠른 편에 속했다.
1위인 치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기승 스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군.’
지금까지 5개의 미션을 수행하며 수혁 역시 이 세계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고급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스킬이나 아이템에 대한 것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기승 스킬은 말이나 당나귀 등의 탈 것을 탈 때 적용되는 마스터리 스킬로서, 이 서바이벌 월드에서는 꽤 희귀한 편에 속했다.
애초에 말을 타고 달릴 일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가, 우연히 말 같은 것을 길들여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펫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다음 미션에는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용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스킬인 것.
하지만 만약에 펫의 인연을 맺은 대상이 존재하고 특정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기승 스킬도 꽤 쓸 만은 했다.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타고 달릴 때의 그 상쾌함!
‘크으, 바람이 죽이는데!’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질주한다.
아바레카로 향하는 치열한 경주의 도중이기는 하지만, 잠시 동안 모든 것을 잊기에 충분한 즐거움이었다.
단, 그 즐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선두를 질주하는 수혁을 향해, 뒤에서부터 온갖 마법들이 작렬한다!
“라이트닝 볼!”
“에어 임팩트!”
각종 마법이 수혁에게 적중됨에 따라 수혁의 몸이 요동쳤다.
기승 스킬이 있었더라면 이런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수사슴을 컨트롤하며 좀 더 수월하게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육감으로 마법이 날아오는 것 자체야 감지한다고 쳐도, 수사슴에 매달리는 것밖에 가능한 것이 없으니 난처할 뿐이었다.
수혁은 그제야 초반에 빠르게 선두를 잡았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두이니만큼 타겟이 될 확률 역시 높은 것이다.
‘젠장, 내가 가진 원거리 마법이라고 해봐야 라이트닝 빔이나 라인플레임이 전부인데. 라인플레임 쿨타임이 은근히 길단 말이지.’
라인플레임을 비장의 수로 남겨둔다고 치면,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것은 라이트닝 빔 정도.
당장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반격을 가해보지만, 역시나 라이트닝 빔 정도로는 그다지 큰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수혁이 수사슴에 매달리느라 힘을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다른 이들은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 수혁의 순위가 점점 뒤처지고 있었다.
수혁은 대미지를 입지 않지만, 수사슴에게는 대미지가 착실히 누적되어 체력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 2위를 다투던 수혁에게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
‘큭, 이런 거지 같은!’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아까부터 자신에게 묘한 시선을 보내던 두 명이 자신을 제치고 앞쪽 순위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단순히 지나쳐 가는 것만이라면 모르겠는데, 굳이 가만 놔둬도 뒤처질 수혁에게 포션 빈 병을 던진다든지 약한 공격 마법을 가해 와 사람을 열이 받게 만든다.
“하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철을 날려버린 복수다!”
“이번 기회에 아바레카로 가는 건 포기하시지!”
그 순간, 수혁의 정신줄을 잡은 끈이 뚝, 끊어졌다.
수혁은 로코를 소환해 불러냈다.
앞에 가는 두 녀석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저 두 녀석 내 앞으로 데리고 와. 지금 당장!”
“아, 알았다, 주인.”
평소라면 일부러라도 싫은 티를 내겠는데, 지금 수혁의 눈빛을 보니 잘못 했다가는 해가 뜰 때부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처맞기만 하게 생겼다.
로코는 군말 없이 한수와 하진이 각각 타고 있는 돼지와 노루 앞에 나타나,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까악! 까아악!”
“엇, 뭐야! 도대체 이 까마귀는 어디서 나타난 거지?”
뿔로 위협하기도 하고, 물리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면서, 탈 것을 수혁이 있는 곳까지 몰아간다.
“어, 어어!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한수와 하진은 당황했다.
그들이 바보라서 수혁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초보자긴 해도, 기철을 날려버린 것으로 볼 때 뭔가 수가 있다는 것만은 눈치챘다.
다만 조금 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반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원거리에 영향을 주는 수단이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하여 수혁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뿐.
그냥 눈에 띄어도 얌전하게 지나갔으면 그나마 모르는데, 굳이 어떻게든 건드려 보려 나댄 것이 일을 내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자신들은 수혁보다 수가 많았고, 그렇다면 한 명이 수혁을 상대하는 동안 한 명이 수혁을 떨어뜨려 수혁을 탈락시키면 될 터였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인 둘은, 둘의 탈 것이 수혁에게 다가간 순간, 동시에 수혁에게 덮쳐 들었다.
“이거나 받으시지! 헤비 블로우!”
“멍청한 녀석! 우리 둘을 한꺼번에 붙이다니! 샤이닝 소드!”
둘의 공격이 수혁에게 박혀 들어가는 그 순간, 둘의 머리통이 수혁의 양 손에 붙잡혔다.
한수와 하진은 당황했다.
빠지지가 않았다.
마치 바이스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들의 머리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버렸다.
둘은 마치 몸부림을 치듯 수혁을 향해 열심히 검과 몽둥이를 휘둘렀다.
“에잇! 뭐, 뭐야 이거! 아파하는 척이라도 해야 정상인데···.”
한수와 하진의 공격이 수혁에게 적중하지만, 이미 그들이 생각하는 물리 저항을 초월한 수혁은 아파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그대로 묵묵히 둘의 머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수혁의 손에 힘이 팍 들어갔다.
한수와 하진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우, 우와아앗! 놔, 놔아아! 끄아아악!!”
분명, 대미지를 줄 수 없으므로 머리통이 깨질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고통이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죽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니까.
“사, 살려···. 아아아아악!!”
쿵! 쿵! 쿵!
둘의 머리가 몇 번이고 부딪쳐 커다란 소리를 냈다.
감히 수혁을 우습게 본 대가는 컸다.
그들은 한동안 수혁의 차가운 분노를 그 단단한 머리로 전부 받아들여야 했다.
‘주인···. 역시나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코가 오히려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자신 역시 사람깨나 죽여본, 극악무도한 살인자에 악마였지만, 수혁은 그보다도 더했다.
죽지도 못하는 저들에게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정도의 고통을 선사하다니!
수혁에 대한 공포심과 존경심이 저절로 몸에 새겨졌다.
한편, 수혁은 한수와 하진의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 거품이 나올 정도가 되어서야 그들을 놓아주었다.
힘을 잃고 떨어져 땅에 닿은 그들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진다. 미션에 실패하여 미션 밖으로 튕겨져 나가게 된 것.
맘 같아서는 살인 면허에 동족 상잔 어빌리티까지 착용한 뒤에 능지처참을 가하고 싶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빌리티 적용이 안 된다. 게다가 죽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수혁은 그들이 또다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분노를 새겨줄 수 있을 테니까!
‘서둘러야 해서 이 정도밖에 응징하지 못한 것이 아쉽군.’
당한 사람이 착란을 일으킬 정도까지 응징을 가해주었건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튼 수혁은 저 앞에 장애물 때문에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며 턱을 쓸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로코가 있는데 왜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나 싶기도 했다.
“레이싱 게임이라고 해서 꼭 레이싱으로 이겨야만 한다는 법도 있던가?”
수혁이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순간, 레이싱 게임은 더 이상 레이싱 게임이 아닌 레슬링 게임이 되고 말았다.
경기가 이뤄지는 링은 탈 것끼리 서로 붙어서 만들어지고, 승부는 항상 장외 패로 결판난다.
물론 승자는 언제나 수혁 쪽.
탈 것 몰이는 로코가 담당하였고, 수혁은 수많은 탈 것을 옮겨 다니며 다른 레이싱 게임 참가자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어느새 아바레카에 갈 수 있는 제한인 10명까지 참가자가 줄어들었지만, 수혁은 다른 플레이어들을 리타이어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 잠깐! 진정해! 굳이 이러지 않아도 우린 다 함께 아바레카까지 갈 수 있다고!”
“어쩌라고.”
수혁이 낮게 나는 학 위에 타고 있던 플레이어를 내던지며 중얼거렸다.
“으아아아악!”
“아바레카는 나만 갈 거야.”
수혁은 방금 떨어진 이가 들었다면 복장이 터졌을 듯한 소리를 내뱉으며 다음 타겟을 물색했다.
사실, 뒤늦게 생각난 것이기는 하지만, 노란 화살표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가리키고 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레이싱이 이뤄지는 스테이지에 수혁 혼자만이 남았다.
수혁은 등껍질이 넓은 거북이를 타고 천천히 경치를 즐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음, 경치가 참으로 좋군!”
어느새 결승점이 코앞이었다.
결승점에는 미션 시작 전의 텔레비전 요정이, 어쩐지 어이없다는 듯한 이모티콘을 띄운 채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요. 미션 하나 통과하려고 다른 사람은 다 떨어뜨리고 혼자서만 들어오다니 말이죠.”
수혁은 자신에 대한 칭찬이라 생각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텔레비전 요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그런 수혁에게 말했다.
“어쨌든 당신은 숨겨진 요소 중 하나를 발동시켰어요. 어디 가서 이런 얘기 절대로 하면 안 돼요. 뭐, 어차피 이번의 히든 피스는 이번 한 번만으로 종료지만요.”
텔레비전 요정이 손가락을 휘두르자, 빛이 나와 수혁에게 스며들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다른 플레이어를 전부 떨어뜨리는 것이 히든 피스를 발동시키는 조건이었던 모양이었다.
수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스터리 스킬 ‘기승’, 고유 특성 ‘독식’을 획득하였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수혁의 눈이 커졌다.
기승 마스터리 역시 나쁘지 않은, 좋은 스킬이라 할 수 있겠지만, 고유 특성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빌리티와는 달리 따로 떼어내거나 장착할 수 없는, 개인에게 내재하는 특성으로서, 따로 등급 같은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매우 드문 확률로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수혁의 경우에는 히든 피스를 통해 얻는 것이 가능했다.
아무튼 ‘독식’이라 이름 붙은 고유 특성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고유 특성: 독식>
효과 – 독식 중인 대상의 효과 증가(최대 10%)
설명 –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의지의 발현. 설령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대는 독식하려 한다.
수혁의 눈이 빛났다.
독식. 히든 피스를 모조리 독식하려는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특성이었다.
어빌리티처럼 따로 착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상시 적용이라는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효과 자체는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그렇게 높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독식하는 대상이 모인다면 결국에는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는 수혁이었다.
“자, 그러면 아바레카 행 미션을 성공한 당신에게 정식으로 소개 드리겠습니다.”
텔레비전 요정이, 과장된 동작으로 눈앞의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가리켰다.
수혁 혼자 이용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해 보이는 성문이, 오로지 수혁 하나만을 위해 서서히 열리려 하고 있었다.
“여러분 플레이어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최후의 도시. 언젠가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될 필멸의 도시. 아바레카를 당신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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