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54화 (54/78)

필멸의 도시, 아바레카 (1)

아바레카의 외곽에 있는 하나의 바.

구석진 곳에 존재하기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모두 안다.

아늑한 분위기에 클래식한 인테리어.

타협하지 않는 품질의 술과, 차분함이 매력인 콧수염의 중년 바텐더.

처음부터 찾아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찾아온 이상 다른 술집을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 그리모어.

미션을 수행하느라 지친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훈훈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침, 미션을 마치고 돌아온 플레이어가 하나, 이곳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저씨, 여기 보드카 마티니 한 잔. 젓지 말고 흔들어서.”

지쳤다는 듯 바 앞의 자리에 털썩 앉아, 머리에 쓴 카우보이모자를 한 손가락으로 돌리다가 휙, 날린다.

모자는 정확히 바 한쪽에 있는 옷걸이에 안착하고, 단발머리의 여성은 그것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지었다.

가게의 주인인 해리슨은 그런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미성년자에게는 술을 판매하지 않습니다만.”

올해 18세가 되는 미성년자인 이나연은 불만스럽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사실, 해리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누구라도 그런 상식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과 질서가 온전히 작동하던 현실 세계에서의 이야기.

이곳은 현실이 아닌 서바이벌 월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길드에 의한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는 인류 최후의 도시, 아바레카였다.

그리고 길드들은,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우든 자신들의 권력에 대항하지만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기준이 무너져버린 이 세계에서, 여자 한 명이 나이도 차지 않았는데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신경 쓰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나연은 다시 한 번 바텐더에게 말했다.

“그냥 줘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줘놓고서 갑자기 또 왜 그래요.”

바텐더는 웃으며 보드카와 베르무트를 꺼내, 보드카 마티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텐더가 보드카티니를 만드는 동안, 나연은 땀에 젖은 얼굴에 손부채를 부치며 신세 한탄을 했다.

“하아, 조금 전에 미션 하나를 수행하고 오는 길이에요. 길드원 중 한 명이 히든 피스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박박 우겨서…. 이미 한 번 깼는데도 또다시 갔는데, 역시나 별건 없더라고요. 저 포함해서 5명이 갔는데, 미션이 끝날 때까지 그 녀석만 구박하다 왔죠 뭐.”

“그것참 힘들었겠군요. 그런데 땀은 왜 흘리는 겁니까?”

“뛰어 왔으니까요.”

바텐더가 완성된 보드카티니를 내밀자, 나연은 그것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마치 소주라도 들이킨 듯 “캬아!”하는 소리를 냈다.

“하여튼 우리 길드 녀석들은 전부 다 무 쓸모라니까!”

나연이 속한 중소 길드는 나래 길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바레카의 통치 권력을 가지고 플레이어들을 좌지우지하는 대형 길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되었다.

친목이나 정보 교류는 물론, 거점에 설치하기 부담되는 각종 시설을 길드에서 빌려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예를 들어 보물 창고의 경우 거점에 설치하려면 5만 루페나 들지만, 길드에 공용 보물 창고를 설치할 경우 조금 더 많은 금액을 여럿이서 부담함으로써 보물 창고의 아이템 전송 관련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마켓이나 유흥 시설 같은 것 역시 길드에 설치할 경우 길드원 전체가 그러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길드 전용의 시설을 설치하여 발전시켜 나갈 경우 길드원 전체에 능력치 증가, 길드 전용 스킬 및 어빌리티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바레카에는, 이런 식으로 시설만을 공유하기 위한 중소 길드가 꽤 많은 편이었다.

나래 길드는 거기에서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 길드원끼리의 친목을 다지고, 좋은 정보가 있다면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중소 길드 치고는 역사도 길고, 나름 내실이 튼튼한 편.

이 서바이벌 월드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나연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길드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 아닙니까. 창립 멤버 중 하나이기도 하고, 지금도 도움이 될 만한 멤버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도움이 될 만한 멤버 말이죠. 핏, 지금 깨고 온 미션에 히든 피스가 있다는 제보를 한 녀석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죠.”

나연은 또 다른 술을 주문하여 홀짝이며 한탄했다.

쓸만한 인재는 누구나가 원했지만, 정작 쓸만한 인재는 드물었다.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웬만해서는 대형 길드에서 눈여겨보다가 스카우트해 데려가기 마련이다.

나연이 속한 길드 정도에서 쓸만한 인재를 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물론 나연 그 자신은 자신이 대길드에 속하지 않더라도 무척이나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뭐, 인재 쪽은 계속 알아봐야겠죠. 그보다 지금은 좀 쉬어야겠어요. 아까운 미션 포인트를 날려버린 것 때문에 영 기운이 나지를 않네요.”

나연은 바 위에 엎드린 채 몽롱한 눈빛으로 투명한 칵테일 글래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아바레카 역시도 그리 평화로운 도시는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그렇듯 갈등이 존재하며, 살기 스텟의 존재에도 불과하고 극단적인 선택과 그 결과가 나타나곤 했다.

물론 이곳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때로는 누군가에게 있어 기회이기도 하다.

살기 스텟이 13이 되어 변질자가 될 경우, 이를 처치하는 이는 살기 스텟을 쌓지 않고도 어빌리티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니 말이다.

다만 지금의 나연은 그런 일말의 행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이 바 그리모어에 온 것도, 이 부근이 아바레카에서 가장 조용하기로 이름난 곳이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때, 나연의 왼쪽 손목 부근에서 시스템 창이 초록색으로 점멸하며 메시지가 온 것을 알렸다. 길드원끼리만 대화가 가능한 원격 통신 기능이었다.

나연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시스템 창을 열었다.

-누나! 지금 혹시 맨날 가던 그 바에요?

“그래. 나 지금 바빠. 끊는다.”

-아, 잠깐! 끊지 말아봐요. 지금 소식이 들어왔는데 누나가 있는 그 근처에 변질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런데 그 변질자가 꽤 등급이 높은 모양이라….

“아이씨, 진짜.”

나연은 통화를 끊고 한동안 바에 엎드린 채 이 짜증 나는 사태에 고뇌했다.

움직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

그리고 조금 뒤….

그녀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카우보이모자를 가지러 걸어갔다.

“아저씨, 저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자리 좀 지켜줘요.”

바텐더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수혁이 본 아바레카의 모습은 일반 판타지 세계의 도시에, 그것이 조금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탑이 사방에 광채를 흩뿌리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으며, 단순히 중앙탑이라 이름 붙여진 이 탑은 대길드의 인원들과 아바레카를 관리하는 소수의 NPC가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 주변으로는, 언덕을 따라 여러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굽이치는 대로와 중앙탑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하천이 존재하고 있었다.

매우 커다란 도시였다.

인류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도시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라면 하나밖에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하고 무심코 생각해버릴 정도였다.

“일단은 상황 확인부터. 포탈이 연결되었으니 이제 번거롭게 미션을 깨거나 할 필요는 없을 거고, 언제든 원하는 때에 아바레카와 거점을 오갈 수 있다 이거지.”

포탈이 연결되었으니 이제 거점과 아바레카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다. 다만 거점과 마찬가지로 아바레카에 있는 동안에도 미션 포인트는 지속적으로 소모되니, 너무 여유를 갖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했다.

한편, 아바레카에서는 어빌리티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살인 면허에 동족 상잔을 조합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었지만, 아무리 수혁이라도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습격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역으로 어빌리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수혁 자신조차 모르는 어빌리티에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오히려 이편이 마음은 더 편했다.

이윽고 상황을 확인한 수혁이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선 정보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정보 길드로 향했는데, 정보는 돈을 내야만 열람할 수 있었고, 게다가 자신과 같이 아바레카에 처음 오는 플레이어들을 모집하는 길드 공고가 더 눈에 띄었다.

지금 당장은 찾고 싶은 정보가 딱히 있는 것이 아니었고, 길드 역시 관심이 없었으므로 가볍게 지나쳤다.

상점 같은 경우 특이하게도 미션 포인트를 이용하여 거래가 가능한 상점들이 있었다.

이런 상점들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입이 불가능한 스킬북이나 D등급 이하의 기본적인 어빌리티, 마정석 등을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비싸다고 생각될 정도의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정말로 급하다면 모를까, 굳이 귀한 미션 포인트를 저런 곳에 투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다만, 인벤토리를 확장시켜 주는 서비스가 있어서 그것은 조금 눈길이 갔다.

물론 미션 포인트가 없어서 지금은 구경만 해야 했지만.

그렇게 수혁은 도시 구경도 할 겸 어빌리티 조합소를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도중, 광장에서 우연히도 이전 만났던 리덴 길드의 3인방과 마주쳤다.

수혁은 괜히 찔리는 마음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그들은 수혁 따윈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갔다.

하긴, 그들과 마주쳤을 때 수혁은 펭긴으로 변한 상태였으니 수혁을 알아볼 리가 없었다.

한편, 지나가면서 잠깐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신 수라카인지 뭔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곤란하군. 마신 수라카의 흔적이라. 그것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만 하는 것인지. 안 그래도 저번에 마신의 유적을 누군가에게 빼앗겨서 길드에서의 우리의 입지가 많이 줄었는데 말이야.”

“열쇠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설마 그대로 유적을 돌파할 줄은 몰랐죠. 도대체 누구일까요. 솔로 플레이어 중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가.”

“그러게 말야. 분명 미션 초반에 우리가 아는 얼굴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아, 역용술이 가능한 리체르만이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 시간에 다른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있고.”

“누구든 상관없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은 재앙을 부르기 마련이지. 만약 그자가 세상에 드러나기만 한다면, 그자는 결코 리덴 길드의 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수혁으로서는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의 이야기였다.

어차피 저들로서도 수혁이 얻은 것들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지만, 이왕이면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거리를 구경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어빌리티 조합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대로에서는 조금 떨어진 인적이 드문 골목이었다.

얼마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아바레카에 거주하는 NPC들의 모습마저 보이지가 않았다.

뭔가 분위기가 묘했다.

그리고 조금 뒤, 수혁의 육감이 무언가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뭔가가 온다!’

“크워어어어어!”

수혁이 서 있는 땅에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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