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의 도시, 아바레카 (2)
그리고 그 시각, 수혁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변질자 때문에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어서들 공격해!”
“고, 공격이 안 먹힙니다! 피부가 너무 단단하다구요!”
아바레카에는 경찰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대길드 연합에서 길드원의 일부를 차출하여 경비대를 만들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치안을 담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 공명정대한 방식은 아니어서, 이왕이면 얽히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은 자들이다.
아무튼, 이러한 경비대의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이따금 도시에서 출몰하곤 하는 변질자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사실, 변질자를 처치할 경우 얻는 것이 많으므로 보통은 플레이어들의 손에 쓰러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일반 플레이어들로서도 상대하기가 곤란한 경우는, 경비대에서 변질자의 처리를 담당한다.
등급은 전원이 C등급 중급 이상으로서, 아바레카 내에서도 평균 이상의 무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일반 플레이어들로서도 해치우지 못하는 강력한 변질자를 해치움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기에, 이들은 꽤 인기가 많은 보직에 속하였다.
하지만 그런 경비대로서도 이번의 변질자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크오오오…!”
“뭐, 뭐가 이렇게 껍질이 단단해!”
기본적인 골격은 인간의 그것이지만, 검게 탄화되어 눌어붙은 피부는 창과 검, 마법으로도 쉽게 뚫리지 않는다.
변질자는 진득진득 흘러내리는 탄 피부 사이로 울부짖는다.
“도대체 누가 변질자로 됐길래 이렇게 단단한 피부가…!”
보통 플레이어가 변질자로 변할 경우는, 생전보다 좀 더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며, 플레이어의 생전 행적 혹은 가지고 있던 스킬이나 어빌리티에 따라 변하는 괴물의 형태가 결정되곤 한다.
단순히 피부가 푸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목질화, 경화되는 경우도 있으며, 심하게는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 식물이나 동물 같은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번에는 인간의 모습까지는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보기 힘든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질자가 한 번 팔을 휘두르자, 주위에서 변질자를 견제하던 경비대 한 명이 근처의 건물에 날아가 부딪친다.
단지 한 방임에도 완전히 피떡이 되어 으스러진 상태다.
대기 중이던 힐러가 열심히 힐을 걸지만, 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일반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경비대마저 경각심이 극에 달하였다.
“꺄아아아아!”
“지, 지원을! 지원을 불러라! 상대는 적어도 A등급 이상의 강함을 보유하고 있다!”
경비대장이 자신들만으로는 상대하기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경비대를 뒤로 물렸다.
아무리 보물덩어리인 변질자라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저런 것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이렇듯 경비대조차 상대하기 힘든 변질자가 나타나는 경우에, 대길드의 중진들이나 유망주가 나서서 변질자를 처치하곤 했다.
그들이야말로 이곳 아바레카의 진정한 실세였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들부터였다.
이제부터 경비대의 임무는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저 변질자를 묶어두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경비대장이 경비대를 뒤로 물린 그때, 변질자에게서 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구오오오오….”
변질자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며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무언가 강력한 공격이 시작될 거라는 걸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경비대장이 다급히 손을 올려, 도망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변질자의 주변을 거대한 폭발이 휩쓸고 지나간다.
쿠아아아아!
폭발로부터 비롯된 후폭풍이 주위를 휩쓸었다.
거리의 타일이 벗겨져 사방으로 날아가고, 그중 일부가 도망가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건물들 일부가 흉하게 그 속살을 드러내고, 진동이 사방으로 커다랗게 퍼져 나간다.
다친 사람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에 넘쳐난다.
경비대장은 도저히 저 괴물을 통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저 괴물을 붙잡아 둔다면 분명 엄청난 포상이 내려지겠지.’
변질자가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뜻.
어빌리티는 물론이고 때로는 생전 대상이 가지고 있던 스킬을 얻는 경우도 있기에, 이 정도로 강대한 변질자를 잡아둔다면 분명 자신에게도 좋은 포상이 내려지리라.
그러나 바로 그때, 변질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 뭐야!”
커다랗게 점프하여 몇 개인가의 건물들을 넘어간 변질자는, 이윽고 인적이 드문 한 골목길에 도착하였다.
변질자의 모습을 알아본 일반 주민 NPC나 일반 플레이어는 그것을 상대하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조금 전 근처에서 커다란 소리가 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저 변질자가 위험한 녀석이라는 것은 당연히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
그리고 뭔가를 찾는 듯이 인적 없는 골목길을 배회하던 변질자가, 한 명의 플레이어와 마주쳤다.
수혁이었다.
***
수혁은 이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변질자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저런 괴물이 이 아바레카에 존재하는지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조강태가 변질자가 된 것에 대해 떠올렸다.
사람을 죽이면 살기 스텟이 쌓이고, 쌓인 살기 스텟이 13에 다다르면 사람은 괴물이 된다.
저것도 아마 그런 원리에 의해 생겨난 괴물이라고 수혁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양할 것 없지!’
마침 주변에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변질자의 처치에 대한 권리를 내세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재빨리 해치우고 입을 닦는다면 수혁이 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를 터였다.
수혁은 재빨리 라인플레임을 꺼내 변질자를 베었다.
텅—!
‘뭐, 뭐야?’
새까만 피부인데, 생각보다 방어력이 단단했다.
변질자의 빈 동공이 수혁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오오오오…!”
“그래, 생각보다 단단하다 이거지!”
변질자가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에 맞서 수혁은 식스 오브 듀나한을 발동시켰다.
현재, 다른 적은 없고, 상대방은 장비 하나 걸치지 않은 괴물의 상태.
방어력이 단단하긴 하지만, 움직임은 조금 느리다. 즉, 식스 오브 듀나한이 최대로 유효한 상대였다.
수혁의 검이 살짝 검은 빛을 머금는 것과 동시에 수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변질자가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내지만, 장비가 아니므로 막아도 맞히기만 한다면 공격은 유효하다.
수혁의 대검이 빠른 속도로 변질자를 공격해 나간다.
1타, 2타, 3타, 4타, 5타!
그리고 마지막 6타가 변질자의 몸에 적중되는 순간,
쩌억—!
단단한 변질자의 몸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끄어어어…!”
그것이 변질자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경비대의 창과 검, 마법에도 뚫리지 않던 변질자의 피부가, 모래성처럼 너무나도 간단히 무너지고 있었다.
“상성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거겠지.”
아무리 단단한 피부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식스 오브 듀나한의 6타가 가진 저항 무시 효과 앞에는 무의미했다.
2100에 달하는 추가 공격력 덕에, 단순히 대검의 공격 범위를 넘어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리기까지 했다.
기실 등급 자체만으로 본다면 다리온과 비슷한 정도의 괴물이었지만, 상성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은 이토록 엄청난 것이었다.
-변질자 ‘릭 벤더’를 처치하였습니다. 어빌리티 ‘폭렬 지옥’, ‘치유의 샘’, ‘피부 경화’, …등 17개의 어빌리티를 획득하였습니다.
-변질자가 소유하고 있던 주요 스킬 중 하나를 획득합니다. 스킬 ‘광염폭’을 획득하였습니다.
다른 녀석들이 올지도 몰랐으므로 수혁은 간단하게만 얻은 것들을 살폈다.
어빌리티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폭렬 지옥. A-의 등급을 가지고 있었지만, 폭발 계열 마법의 효과와 범위를 50% 증가시켜주는 획기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광염폭이라는 스킬은 시전자의 반경 10m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으로서, 폭발 계열의 마법이므로 폭렬 지옥 어빌리티와 상성이 좋을 듯했다.
마침 광역기가 라인플레임 하나인지라 불편함이 컸는데, 새로운 범위 기술이 생긴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다음으로 아이템을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재빨리 빠져나가야 하므로 선별 작업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전부를 자신의 인벤토리에 욱여넣었다.
거점의 보물 창고에 필요 없는 것들을 집어넣어 인벤토리가 가벼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응? 이건 왠지 비싸 보이는데. 보석이 이렇게 탐스럽게 생겼을 줄이야.’
하트 모양을 지닌 붉은 보석이 수혁의 시선을 끌었다.
홍염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보석이었다.
바빴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보지 못하고 인벤토리에 넣었다.
아무튼, 얻을 만한 것을 모두 얻은 수혁은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수혁이 골목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의 사이에 섞여드는 것과 동시에 경비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경비대는 갈가리 찢긴 변질자의 모습을 보고 믿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 말도 안 돼! 그토록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던 변질자가 어째서….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난처했다.
이토록 강한 변질자이니, 분명 가지고 있는 것도 많았을 터인데.
다급하게 인벤토리를 뒤져 보았지만, 이미 가져갈 만한 아이템은 전부 털린 상태.
10루페짜리 싸구려 포션만이 남아 경비대장을 반기고 있었다.
“난 망했다!”
***
경비대의 눈길을 피해 사람들 사이로 섞여든 수혁은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불렀다.
릭 벤더라는 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었으니 좋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수혁은 특별히 그를 위해 3초간 명복을 빌어주었다.
‘좋아. 들키지 않았을 테니 변질자를 처리했다고 시비가 걸릴 리도 없을 거고. 이제 남은 건 늘어난 어빌리티를 조합해서 더 강력한 어빌리티로 만드는 것뿐!’
수혁은 앞으로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상상하며 은근히 미소 지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어빌리티 조합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수혁의 뒤를 몰래 쫓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길드원으로부터 이 부근에 변질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나연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수혁의 뒤통수만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이상해. 조금 전 변질자를 해치운 걸 보면 상당한 실력자인 듯한데, 당장에 머릿속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도대체 누굴까.’
그녀도 이 서바이벌 월드에서 5년간을 지내며 상당한 인맥을 쌓고 또 강자들에 대한 소문을 들어 왔지만, 그런 그녀로서도 짐작 가는 자가 없었다.
겉모습은 평범하고, 특징이라고는 붉은 대검을 사용한다는 것 정도.
뒤늦게 달려왔기에 싸우는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남겨진 변질자의 모습으로 판단할 때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방어력이 강한 타입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괴물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아바레카에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라고 하면 자신이 모르는 것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입이 이 정도로 강할 리는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어. 뒤를 쫓아서 정체를 알아내야 해. 이 내가 모르는 새로운 실력자라니.’
한편, 수혁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묘한 감각을 느꼈다.
사실,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것이지만, 수혁이 이 감각에 반응하지 않은 것은 그 감각이 너무나도 미묘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가끔씩 느끼곤 하는 정도의 아주 미묘한 뒤통수의 따가움.
육감 스텟이 작동은 하는데 상대방의 랭크가 너무 높고, 또 적의를 발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육감 스텟은 랭크가 낮으며 적의를 발산하는 대상에 대해서 잘 발동하는 특성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미묘한 감각이라도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면 수혁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마련이었다.
‘설마 들킨 건가.’
주변에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 꽤 실력자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수혁은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 즉시 거점으로 향하는 포탈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빌리티 조합에 대한 조사는 일단 종료. 우선은 미행을 뿌리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인파가 많으니, 설마 이런 곳에서 자신을 납치하거나 공격하지는 못할 터였다.
한편, 수혁의 움직임이 달라진 것을 눈치챈 나연 역시 다급해지고 말았다.
수혁이 향하는 방향이 포탈이 있는 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더욱 그랬다.
‘칫, 감도 좋네. 더더욱 정체를 밝혀주고 싶어지잖아!’
나연은 살짝 숨을 들이마시고는, 조금 강한 수를 두기로 했다.
수혁을 쫓는 나연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수혁의 뒤를 따라잡은 나연이, 수혁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달려서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수혁의 귀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혹시 시간 나시면 저랑 데이트 좀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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