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57화 (57/78)

필멸의 도시, 아바레카 (4)

수혁은 나연에게 지금까지 알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어 알아내지 못한 정보들에 대해 질문했다.

우선은 이 아바레카라는 곳의 세력 구도라든지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

“이곳 아바레카에는 3개의 대길드가 존재하여 그들이 이 도시를 통치하고 있지. 라그나 길드, 리덴 길드, 그리고 베리아스 길드. 그들이야말로 이 아바레카를 지배하는 세력이고, 다시 말해 서바이벌 월드 전체를 지배하는 세력이라는 뜻이기도 해. 이곳 아바레카에서 잘 살아간다는 의미는, 그들에게 잘 보인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야.”

8년 전, 이 서바이벌 월드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소환되고 나서 많은 이들이 헤매었다.

이 세상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고, 자신들이 어째서 이런 곳에 떨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처럼 앞서 간 자들의 뒤를 밟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은 말 그대로 맨몸으로 미션과 부딪쳐 하나하나를 이뤄 가야만 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탈락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그들에게는 좀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

“초창기에 이곳에 소환된 자들에게는 히든 피스를 접할 기회가 많았어. 뭐랄까, 히든 피스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쉬웠다는 모양이야. 시작 지점의 풀숲 근처를 뒤지거나, 책에 나온 단서를 찾아가든가 하는 것들. 그리고 그러한 히든 피스를 얻음으로써, 그들은 빠르게 강해졌지.”

그들은 많은 히든 피스를 얻어 나갔고, 종래에는 판데라 대륙에 잠들어 있는 마신의 힘을 얻게 된 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라그나 길드의 길드장 라그나 룬 블레이드는, 첫 번째의 마신 아가레스의 힘을.

리덴 길드의 길드장 슈리아는, 3번째의 마신 수라카의 힘을.

베리아스 길드의 길드장 하용은, 11번째의 마신 리블리아의 힘을.

현재 아바레카를 통치하는 3대 길드의 길드장들은, 전부 이런 식으로 마신의 힘을 이어받거나, 적어도 그 힘의 파편을 얻어낸 자들이었다.

“마신의 힘이라…. 정말로 꿈만 같은 일이지. 그 힘의 끝자락만 잡아도 이 아바레카에서는 떵떵거리며 살 수 있어. 뭐, 대신 대길드에게 쫓길 테니 상당히 일이 귀찮아지겠지만.”

나연은 그러면서 수혁의 표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감지할 수 없었다.

나연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웬만하면 그들의 신경을 거스를 만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뭐, 이미 한 건 저지른 것 같지만.”

수혁이 변질자를 멋대로 해치운 사실을 까발릴 수도 있다는 은근한 협박의 의미도 들어 있었다.

물론 수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번에는 미션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했다.

“미션을 끝냈는데도 서브 미션이 사라지지 않는 다라…. 히든 미션인가 보네?”

나연이 짓궂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연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대답했다.

“글쎄, 아무래도 그렇다는 건 그 히든 미션이 미션을 얻은 해당 메인 미션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 만약 그 미션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미션이 끝나는 대로 히든 미션도 사라지는 거 아니겠어?”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해당 미션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인데 굳이 미션이 끝나고 나서까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리온으로부터 연계된 이 히든 미션은, 아무래도 다른 미션과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어떠한 노란 화살표가 그것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아무튼, 수혁은 이번에는 이 아바레카에 오면서부터 약간 신경 쓰이는 점에 대해서 질문했다.

텔레비전 요정이 아바레카가 필멸의 도시라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긴, 나도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상당히 당황스러웠지.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해줄 수가 없어. 다만, 대략적으로 추측하는 건 있지.”

거기에서 나연은 흥미로운 것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그쪽도 결국에는 미션 포인트가 언제 떨어져서 죽을지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나가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을 거야. 그렇지?”

수혁은 그렇다고 대답하려다가,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멈칫하고 말았다.

어라, 어째서?

수혁은 무심코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흥분한 나연은 그런 수혁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쪽도 여러 미션을 수행해 왔으니 알 거야. 이 서바이벌 월드에는 어딜 가나 차단막이라는 것이 처져 있어서, 일정 범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어. 거점이든 미션이든 이곳 아바레카든, 차단막으로 지정된 범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지.”

차단막의 존재에 대해서는 수혁 역시 알고 있었다. 거점에 있는 것도 보았고, 이곳 아바레카에 들어오면서 성벽에 차단막이 처져 있는 것도 확인하였다. 다만, 미션에까지 차단막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한번 봐. 아바레카의 성벽 위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광활한 자연만이 펼쳐져 있고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단 말이지. 마치 거점에서 주위를 바라볼 때 그런 것처럼 말이야. 자, 여기서 뭔가 생각나는 게 없어?”

수혁은 지상계로 올라온 거점에서 문득 멀리에 건축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설마…. 설마….

아바레카가 위치한 이곳은 차단막으로 막혀 있을 뿐, 거점이 있는 곳과는 같은 공간이기라도 한 것일까.

“아마도. 뭐, 확실한 건 아냐. 하지만 꽤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자가 멀리에서 거점 같은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고, 뭐 그래. 어쨌든 그렇다는 전제하에, 이 아바레카가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자 이거야.”

아바레카의 멸망.

그것은 아마도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혹은, 우회적으로 사람들이 도시 안에서 전부 사라질 수 있게 되는 상황. 즉, 아바레카를 둘러싼 차단막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가 이 서바이벌 월드 안에 존재하는 한, 차단막의 존재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어. 하지만 이 차단막을 벗겨낼 방법이 존재한다면, 어쩌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바레카의 멸망이라는 것은, 그 차단막을 벗겨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이 차단막을 벗겨낼 방법을 알아내야만 한다. 라는 이야기지.”

수혁은 할 말을 잃은 채 생각에 빠졌다.

차단막이라….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중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차단막이라는 걸 건드릴 방법이 없는 현재로써는 그다지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군. 좋은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 뭐, 사례를 원한다면 사례 정도는 충분히 해주지. 가격은, 정보 길드보다는 조금 더 싸게?”

이 정도의 이야기는 정보 길드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은근한 돌려 말하기였다.

나연은 눈앞의 남자가 역시 그다지 쉬운 남자는 아닌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하면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혁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수혁의 실력을 확실히 시험 할 기회도 되니, 어쩌면 이것이 맞는 선택일지도 몰랐다.

“혹시 말야, 그 차단막이라는 거에 대해 더 관심 있지는 않아?”

나연이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수혁의 얼굴도 저절로 심각해졌다.

수혁은 진지하게 나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침내 나연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수혁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직까지 나연을 완전하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의 이야기대로라면, 이것은 무척이나 중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몰랐다.

수혁은 그녀의 이야기를 검증하기 위해 하나의 미션을 수행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

‘이 세계의 구조라.’

수혁은 거점의 욕탕에 몸을 담근 채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수혁이 떨어진 이 세계는 도대체 무슨 세계인 걸까.

그다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당장에 살아남고 강해지는 것이 급했으니 이전까지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리온과의 힘겨운 사투 끝에 승리하고 난 뒤, 수혁은 자신이 강해진 것을 실감했다. 자신감도 이제는 꽤 붙었고, 웬만한 적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이전과 같이 허둥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되니 이제는 이 세계의 정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떠한 세계인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인가.

인류는 어째서 이 정체 모를 세계 속으로 끌려오게 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이전에 마신과 만났을 때 우리가 신을 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했었지.’

신과 마신이라.

차단막 역시도 중요한 요소이긴 하겠지만, 신과 마신의 관계 또한 이 세계에 대해 중대한 비밀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신과 마신이 판데라 대륙에 남긴 힘은, 플레이어들이 무척이나 탐을 내고 있다는 모양이고.

“후우, 제대로 알 수가 없군. 단서가 너무 적어.”

그때, 수혁이 몸을 담근 욕탕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점이나 생산 시설 등에서 일하는 시스템 NPC가 자신을 찾을 리는 없었으므로, 노크의 주인공은 레밀리아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레밀리아에게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레밀리아는 평소의 메이드복과는 달리 타올 한 장으로 곡선이 드러나는 몸을 감싼 채, 손에 거품 타올을 들고 있었다.

미션이 이루어지는 판데라 대륙의 경우 일반적으로 현대식의 물건이나 설비 같은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거점이나 아바레카의 경우 현대식의 물건이나 설비도 꽤 구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주인님, 등을 닦으실 준비는 되셨는지요.”

욕탕에 몸을 담근 수혁의 모습은 알몸이었지만, 그럼에도 레밀리아는 그런 수혁으로부터 눈을 피하지 않는다.

수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욕탕에서 나와, 레밀리아가 등을 닦을 수 있도록 욕실 의자에 가 앉았다.

수혁의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것을 본 레밀리아의 뺨이 살짝 붉어진다.

“그럼 등 좀 맡길게. 항상 고마워, 레밀리아.”

“아닙니다, 주인님.”

레밀리아가 타올에 거품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수혁의 등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수혁은 또 다른 상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레밀리아는 도대체 어떤 메이드인 걸까.

‘아니, 그전에 이곳의 NPC라는 존재는 도대체 뭐인 거지.’

미션을 반복할 때마다 새로이 등장하는 판데라 대륙의 주민들도 그렇지만, 상점이나 생산 시설에서 무보수로 24시간 동안 노동하면서도 불평 하나 없는 NPC들도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레밀리아의 경우, 잠도 자고 먹을 것도 먹는 등 다른 NPC에 비해서는 상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같았다.

문득, 수혁은 레밀리아에게 물어보았다.

“레밀리아, 너는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없어?”

레밀리아는 잠시 손을 멈췄지만, 이윽고 다시 수혁의 등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저의 행복은 곧 주인님의 행복. 주인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수혁은 약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녀의 헌신이 약간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수혁도 슬슬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 가고 있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 세계에서, 항상 한결같이 자신을 보좌해주는 그녀의 존재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다.

수혁은 가슴 속이 따뜻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레밀리아가 옆에 있으니 마음이 편해.’

수혁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레밀리아, 그러면 내가 레밀리아한테서 제일 기뻐하는 게 뭔지도 알고 있겠지?”

레밀리아는 잠깐 동안 몸을 멈칫했지만, 이윽고 수혁의 등을 닦던 손을 내리며 대답했다.

“네, 주인님.”

레밀리아의 뺨이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었다.

이윽고 레밀리아의 흰 손가락이 자신이 걸친 한 장의 목욕 타올을 끌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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