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미션 (1)
나연으로부터 차단막에 대한 어떤 정보를 들은 뒤부터, 수혁은 특정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재로써는 너무 부족한 미션 포인트를 채우기 위해 하위의 미션을 수행하여 미션 포인트를 채워, 그것으로 어빌리티 합성을 시도하였다.
어빌리티 합성은 기본적으로 둘 이상의 어빌리티를 합성하여 상위의 어빌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아무렇게나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물리 대미지 25% 감소의 효과를 가진 어빌리티와 마법 대미지 25% 감소의 효과를 가진 어빌리티를 합성시킨다면, 물리 및 마법 대미지 15% 감소의 효과가 나타나는 식으로 두 효과가 절충되는 방식이었다.
다만 세 개 이상의 어빌리티를 합성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베이스가 되는 어빌리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빌리티가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변수가 꽤 많았다.
따라서 아바레카의 어빌리티 조합소에서 조합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였는데, 이 경우 예측하려는 베이스의 어빌리티 랭크가 높을수록, 예측 정확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하였다.
‘다행히 이 경우에도 노란 화살표가 작용하는군.’
어빌리티 조합소에서 새로운 종류의 어빌리티가 나오는 조합을 노란 화살표에 의해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C등급 밑의 기본적인 어빌리티들의 조합으로서, 체력 회복과 명상 어빌리티를 합쳐 기 폭발 어빌리티가 생겨나는 식이었다.
이들을 조합하고 또 조합하여 어떠한 어빌리티가 생겨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웠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미션 포인트가 남아돌지는 않았다.
우선은 제일 유용할 것 같은 살인 면허와 동족 상잔, 그리고 집중이라고 하는 C등급의 어빌리티를 합쳐 전장의 지배자 어빌리티를 획득하였다.
<어빌리티: 전장의 지배자>
등급 – S
설명 – 전장을 휩쓸고 다니는 지배자로서의 능력. 살기 스텟이 오르는 것을 미션 포인트로 대체할 수 있으며, 동족을 처치할 시 해당 등급의 스페셜 마정석을 3개 얻고, 어떤 대상이든 처치할 경우 모든 스텟이 0.5%씩 증가한다.(최대 25%, 전투가 끝나면 서서히 감소)
자신이 봐도 아주 흡족했다.
발현 어빌리티는 고정이었으므로, 나머지 하나의 어빌리티로서 이보다 더 적합한 어빌리티는 없을 터였다.
물론 자신에게는 암계의 귀나 격랑의 검격을 비롯한 다른 S등급 어빌리티들이 존재했다. 어쩌면 유틸성이나 위력 자체만을 따지자면 이쪽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언제 어떤 플레이어와 마찰을 빚을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살기 스텟을 미션 포인트로 대체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수혁이 현재 목표로 하는 미션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다음은 대검 의존도를 줄이는 훈련을 해야겠지.’
수혁이 지금 목표로 하는 미션에서는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혁 자신의 신체와 스킬, 어빌리티 등을 제외한 소지 아이템이나 장비 등을 가지고 갈 수가 없었다.
아이템이 없이 맨몸으로부터 시작하는 미션이었던 것이다.
일부러 인스턴스 던전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맨몸 격투술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마스터리 스킬 ‘격투’를 획득하였습니다.
수혁의 주먹이 거구의 트롤 몸체를 직격한다.
워낙 맷집이 좋아 잘 버티는 트롤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죽이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몇 미터씩이나 뒤로 물러난다.
펑! 펑펑! 퍽!
“쿠아앗!”
계속되는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트롤을 향해, 멀리서부터 뛰어온 수혁이 크게 뛰어 트롤에게 주먹을 내리꽂는다.
콰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크레이터 속에 파묻힌 트롤이 뻐끔뻐끔 입을 움직였다.
단단하고 재생력도 좋은 트롤의 몸체이지만, 수혁의 연이은 공격 끝에 완전히 걸레 짝이 되어 있었다.
수혁은 아직도 숨이 남아 헐떡거리는 트롤을 향해 눈을 빛내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수련한 끝에, 수혁은 목표로 한 미션으로 들어갈 준비를 끝마쳤다.
이 세계에 대해, 차단막이라는 존재에 대한 단서를 얻을 준비를.
“레밀리아, 그러면 떠나기 전에 나에게 해줘야 할 게 있겠지?”
레밀리아는 수줍은 듯 뺨을 붉히며 수혁에게 다가왔다.
수혁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깊숙이 허리를 숙여 수혁을 배웅한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수혁은 레밀리아의 뺨을 가볍게 꼬집고는 미션 수행 버튼을 눌렀다.
저항할 수 없는 잠기운이 수혁을 덮치고, 수혁은 어디론가 워프 되어 사라졌다.
***
수혁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수혁은 지나칠 정도로 환한 태양 빛이 자신의 망막을 건드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들이 우는 소리.
저 멀리 펼쳐진 바다 위에, 격랑이라도 만난 듯 여기저기가 부서진 거대한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수혁이 깨어난 곳은 바로 그러한 바다를 앞에 둔 모래사장이었다.
‘미션에 대한 정보는 맞는 것 같군. 무인도 탐험이라.’
수혁의 앞에 하나의 미션 창이 떠올랐다. 내용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내용을 품고 있었다.
<미션 345: 무인도에서의 조난>
등급 – C
설명 – 세인트 메리 호의 승객으로서 리온 섬으로 항해를 하던 당신은, 거대한 폭풍과 만나 가까스로 이 무인도에 떠내려왔습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전부 죽었고, 본국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당신은 이 무인도에서 생존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무엇이든 이용할 수 있고, 먼바다가 아니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살아남으십시오.
추가 1 – 무인도 곳곳에는 미션 스톤이라고 하는 푸른 돌이 숨겨져 있습니다. 미션이 끝날 때까지 이 미션 스톤을 소지할 경우, 미션 스톤 당 1의 미션 포인트를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추가 2 – 너무 먼 바다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바다 아래의 위험한 괴물들이 호시탐탐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넘어 대륙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공 조건 – 본국과 연락하여 구출대의 파견을 요청. 혹은 그 외에 무인도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내기.
실패 조건 – 특별한 방법을 갖추지 않은 채 먼 바다로 나가기.
보상 – 3만 루페, 미션 스톤 1당 1의 미션 포인트, 섬에서 획득한 아이템 중 택 3
지금까지처럼 미션 번호 뒤에 알파벳이 붙어 미션을 따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자유롭게 행동하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자유 미션에 해당하는 미션이었다.
플레이어들은 힘을 합쳐 보금자리를 만들고 공통의 목적을 향해 서로 협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역량으로 섬 안을 모험할 수도 있을 터였다.
일단 미션이 생긴 것을 확인한 수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래사장에는 수혁을 비롯해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누워 있었다.
미션 특성상 인벤토리 및 장비 같은 것은 없으며, 모두가 기본적인 천 옷을 입은 상태였다.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의 플레이어들도 있었지만,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것처럼 침착한 표정의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그중 어딘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 플레이어 한 명이 주변의 모두를 향해 외쳤다.
“모두들 들어라! 나는 블리스 길드의 길드장 르본이라 한다! 미션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니 모두가 알겠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미션이다! 능력과 뜻이 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헤쳐나 가야만 겨우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능력이 있고 우리와 함께할 뜻을 가진 자들을 선별하여 블리스 길드의 탐험대에 합류할 자격을 주도록 하겠다!”
르본이라는 이름이 분명 한국식의 이름은 아니었다.
사실, 수혁이 아바레카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수혁이 미션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아바레카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마찬가지.
이것은 플레이어들에게 리전(Region)이라는 것이 지정되어 있어서, 미션이나 아바레카에서 대체로 같은 국적의 플레이어들끼리 마주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미션은 같은 국적의 플레이어끼리 매칭되며, 아바레카에서는 국적에 따른 구역이 설정된 것과 같은 식으로.
물론, 다른 국적이라 해도 말은 통하고, 미션이나 아바레카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주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을 뿐.
그러나 수혁이 지상계로의 승급을 이루고 플레이어의 수가 줄어들면서, 이렇듯 같은 미션에서 다른 국적의 플레이어를 만나는 일도 종종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그런 르본과 함께 미션에 참가한 듯한 플레이어가 큰 소리로 르본의 발언을 뒷받침한다.
“르본님의 말씀을 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분의 종합 등급은 무려 A등급이나 되시니까!”
A등급이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의 가운데 술렁이는 기운이 감돈다.
수치상으로는 단순히 1000을 넘는 스텟이 두 가지 존재하는 것뿐이지만, 실제로 그 수치에 도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잡아야 하지만,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 강한 몬스터를 잡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올리려는 스텟과 마정석이 2등급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 스텟 상승에 있어서 패널티를 갖기 때문.
그러나 몬스터의 랭크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체감되는 몬스터의 강함은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몇 가지의 스텟에 몰아주는 일반적인 플레이어와는 달리, 몬스터의 경우 랭크에 맞춰 밸런스가 잡힌 스텟을 갖기 때문이었다.
랭크가 높을수록 몬스터의 지능이나 연계 플레이가 교활해지는 것 역시 하나의 이유.
아무튼, 이 때문에 A등급이라는 것은 단순히 스텟 이상으로 경험이나 다양한 측면에서 이 서바이벌 월드의 베테랑이라고 공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A등급이라는 말에 홀린 플레이어 몇 명이 르본과, 그 주위에 몰려 있는 블리스 길드의 플레이어들에게 걸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파티에 합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파티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등급 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최소한 C등급이 되지 못하는 자는 파티에 받아주지 않을 것이니, C등급을 만족하는 자만 신청하도록!”
길드원의 선포에 안도의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표정이 어두워지는 자들도 있었다.
미션 번호가 300을 넘는다는 것은 이들이 전부 지하계에서 승급한 지상계 플레이어라는 것을 뜻했지만, 지상계 중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여전히 D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C등급을 넘어 파티를 신청할 자격이 되는 자들은 블리스 길드를 향해 달려가고, 나머지는 나머지대로 자신들끼리 뭉쳐 파티를 맺기 시작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우르르 몰려다니는 미션이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도 파티 없이 혼자서 독고다이로 다니다가는 우연히 냄새를 맡은 몬스터에게 습격 당해 변사체로 발견되기에 십상이었다.
없는 자들은 없는 자대로 파티를 맺고 함께 행동하는 편이 훨씬 더 유리했다.
한편, 블리스 길드의 파티에 합류하려고 하는 자들은 블리스 길드원들의 스테이터스 창에 몸을 통과시켜, 자신의 스테이터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타인의 스테이터스 창에 몸을 통과시킴으로써 제공되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이름과 종합 등급뿐이지만, 설정을 통하여 전체 스텟과 주요 스킬, 착용 중인 어빌리티까지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는, 상대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도록 종합 등급까지만을 공개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길드의 횡포라고 할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녀석! 겨우 그 정도의 정보 공개만을 가지고 어떻게 판단하라는 거냐! 스킬도 모르고, 어빌리티도 모르는데!”
“하, 하지만….”
“됐다. 어차피 네 녀석 말고도 지원할 사람은 많아! 자, 다음!”
“자, 잠깐만 제 말을 좀!”
제일 먼저 쪼르르 달려가 파티를 신청하려 했던 자는, 매몰차게 발로 차여 백사장을 떼구르르 구르고 말았다.
나머지는 재빨리 정보 공개 설정을 바꿔, 스텟은 물론 주요 스킬과 착용 어빌리티에 대한 정보까지 공개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흐음, C등급에 주요 스킬은 매직 볼. 어빌리티는 마력 상승…. 뭐, 쓸 만은 하겠군. 통과! 그리고 다음은….”
어쩐지 주눅이 든 표정의 아저씨와, 아저씨의 손에 꼭 붙들린 찌푸린 표정의 소녀가 뒤를 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소녀의 나이는 중학생 정도로 어려 보였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잔뜩 떨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두려워하며 길드원의 검사를 받는다.
몇 초간 남자의 몸에 스테이터스를 통과시킨 길드원이 코웃음을 내뱉었다.
“뭐야, 겨우 D등급에 스킬도 어빌리티도 쓰레기잖아. 당장 꺼져!”
“하,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십시오! 딸과 함께 지금까지 이런저런 미션을 수행하느라 여러모로 지친 상태입니다! 미션 스톤이라든지 이런 건 하나도 안 주셔도 괜찮으니 단지 파티에 끼워주시기만….”
“당장 안 꺼져!”
“잠깐.”
길드원이 남자를 차버리려 하는 순간, 길드장이 그것을 멈췄다.
길드장 르본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남자와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쪽 딸의 나이가 어떻게 되지?”
소녀는 잔뜩 움츠러든 채 몸을 살짝 뒤로 빼며 대답했다.
“여, 열네 살이에요.”
“흐음, 여러 의미로 좋은 나이로군.”
르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는 키가 큰 르본 앞에서 딸을 보호하듯 뒤로 숨겼다.
“이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자네의 딸을 내게 맡긴다면 파티에 들여보내는 것을 고려해주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혁은 먹던 과자에서 벌레라도 튀어나온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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