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미션 (2)
“하, 하지만 그건···.”
“싫으면 할 수 없지. 우리의 파티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르본은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주변의 분위기가 있으니, 강제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단순히 멱살을 쥐고 흔드는 것만이 강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이렇듯 가볍게 거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박을 넣을 수 있었다.
여기서 자신들의 파티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사망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르본은 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죄, 죄송하지만 그것은 안 됩니다. 이 아이만은···.”
“···크흠.”
예상외였다. 르본은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뒤로 물러섰다.
속으로는 어차피 죽을 텐데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비웃으면서.
그리고 다른 이들이 스테이터스 검사를 받는 동안, 두 부녀는 부둥켜안은 채 주변으로 두려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편, 수혁은 이러한 편 가르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두 부녀에 대한 해프닝이 약간 흥미롭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일 뿐이었다.
만약 저쪽이 르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수혁으로서도 기분은 조금 더러웠겠지. 하지만 그뿐이었다. 수혁에게 있어 그들에 대한 일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일 뿐이었다.
아무튼, 눈앞에서 더러운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 수혁은 이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찾아 하기로 했다.
흰 셔츠의 거추장스러운 양팔 소매를 힘을 줘 쫙쫙 잡아 뜯어버린다.
방해할 만한 소매도 찢어버렸으니, 이제는 힘차게 수영을 할 차례였다.
수혁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저 멀리 완전히 부서져 버린 거대한 난파선을 향해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어라, 저 녀석은 뭐지?”
블리스 길드원 중 한 명이 의문을 표시하자, 이윽고 길드장 르본도 그쪽에 시선을 향했다.
이 미션에서 바다 쪽은 온통 치명적인 괴수들로 가득 차 있다. 먼바다에 나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위험하고, 가까운 바다라고 해도 결코 방심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바다 쪽으로 헤엄치는 것이 르본의 눈에는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너희들, 저 녀석이 돌아오는 걸 잘 지켜보도록. 아마도 무언가를 가져오려는 모양이야.”
“넵, 흐흐흐.”
척하면 척이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평소에도 이런 것이면 모르겠는데, 나쁜 짓을 할 때만 이랬다.
한편, 바다를 헤엄쳐간 수혁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상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원래는 현재 해변에 떠내려온 승객들과 같이 난파선 안에 실려 있었지만, 배가 부서지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나왔다는 설정의 화물들이었다.
히든 피스라면 히든 피스이지만, 한 번 사용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어딘가에서는 비밀스럽게 전해져 오는 정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널리 퍼져 있는 정보까지는 아니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보급 상자에 대한 경쟁은 치열해질 테니 말이다.
수혁의 경우, 나연에게 이 미션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받을 때 함께 전해 받은 정보였다.
‘일단 이 부분은 그 여자가 말한 대로군. 과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그 여자가 말한 대로일 것인지···.’
참고로 그 외에도 수혁은 나연으로부터 이 무인도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더 전해 받았다. 아마도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을 테지만,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저 블리스 길드의 경우, 이런 정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던 모양.
제대로 된 길드라면 정보 길드에서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이런 부분을 꼼꼼하게 신경 쓸 테니, 수혁은 이 길드가 그다지 제대로 된 길드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덕분에 수혁이 누구보다 먼저 이러한 보급 상자를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나이프지. 서바이벌에서는 필수적인 아이템이니까.’
수혁이 떠 있는 바다 위 주변에는 몇 개의 보급 상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크기는, 수혁의 한 아름 정도.
수혁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보급 상자들의 내용물을 확인하였다.
대부분이 닫혀 있었지만, 수혁의 완력을 버틸 수는 없었다.
“나이프···. 나이프···. 흠. 이 술은 꽤 맛있어 보이는데.”
상자에 담긴 것들은 다양했다.
담배, 술, 말린 고기나 과일 등을 비롯하여 코튼이나 털가죽, 도자기 같은 것이 실려 있는 보급 상자들이 있었다.
수혁은 그중 하나의 상자에서 누군가가 사용하던 흔적이 있는 나이프를 찾아내고는 따로 챙겼다.
나머지는 이 중에서 하나의 상자를 택해 근거지의 보급품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술병이 든 상자와 말린 고기가 든 상자 사이에서 격하게 고민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술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기 상자의 빈자리에 몇 병인가의 술을 집어넣을 수 있었기에, 일단은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수혁은 주변에서 수량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몇 가지를 더 집어넣고, 상자를 해변 쪽으로 몰아 헤엄치기 시작했다.
뚜껑이 이미 열린 채였으므로, 바닷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중요했다.
해변 쪽에는 길드에게 선택받지 못한 파티가 숲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조금 전 해프닝을 일으켰던 부녀가 그 뒤를 죄지은 것처럼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블리스 길드의 몇 명이 수혁을 맞이해주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건 나눠 써야지. 안 그런가?”
나눠 쓰기는 개뿔. 도망갈 수 없도록 넓게 펼쳐진 것을 볼 때, 이미 수혁이 가져온 보급 상자를 빼앗을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다.
물론 수혁 역시 이 정도쯤은 예상한 바였다.
보급 상자를 뒤에 두고, 담아 온 나이프를 든 채 말없이 그들과 대치하였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선원의 나이프’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프에 발현을 걸어 등급을 일순 C등급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라인플레임은 없지만, 어찌 됐든 무기가 있으므로 상대보다는 훨씬 우위에 있다. 수혁에게 그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길드원 쪽이었다. 머뭇거리며 길드장인 르본 쪽을 쳐다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물론 르본이 보기에 아무리 상대가 나이프를 들고 있다 해도 이 쪽수를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르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척하면 척.
길드원들은 르본의 뜻을 알아챘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상자를 이리로 내놓으시지.”
수혁은 무심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상대방의 반응이 너무나도 전형적인 졸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수혁은 손안의 나이프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그에 대답했다.
“바보 같은 선택을 했군!”
길드원 중 한 명이 방금 자신들의 파티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에게 수혁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어중이떠중이들의 실력을 확인하기도 할 겸, 혹시라도 수혁을 공격하다가 죽여버리게 될 경우 살기 스텟을 얻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한편으로는 수혁이 생각 이상으로 강할 경우에 자신들이 손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파티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머뭇거린다. 아무리 자신들의 수가 많다지만, 상대는 나이프를 들고 있다. 다치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
“자, 어서 주먹을 들어! 저 녀석을 때려주란 말이다! 이렇게!”
길드원이 플레이어 한 명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자, 그제야 플레이어들은 수혁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선다.
수혁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과 싸워 봐야, 어차피 진짜 적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
몰살시키는 것은, 일단 각하. 아무리 수혁이라도 나이프 하나 들고 이들 모두와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살기 스텟을 대체할 미션 포인트가 아까웠다.
정당방위 효과가 나타난다면 간단하겠지만, 정당방위 효과는 일단 상대방과 어느 정도 전투를 치러야만 적용된다. 상대의 랭크가 높으면 한 합만 붙어도 나타나고, 랭크가 낮으면 오랫동안 버텨야만 한다.
저들의 랭크는 수혁보다 낮았으니, 정당 방위 효과를 얻으려면 저들의 공격을 꽤 오랫동안 버텨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수혁이 보기에는, 적당히 맨 앞의 한 놈을 본보기로 처리하고 섬 안쪽으로 향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야아아앗!”
수혁은 맨 앞에 달려오는 녀석에게 맞서 빛살같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나이프는 너무나도 간단히 맨 앞 녀석의 주먹에 일자로 붉은 선을 만들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녀석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이, 허무하게 모래사장에 떨어져 내렸다.
“흐갸아아악!”
기세를 타고 수혁에게 달려들던 플레이어들이 주춤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인원수라면 어느 정도는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여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가 않았다.
상대방은 혼자였지만, 이미 기세에서부터 밀리고 말았다.
“뭐 하는 거냐! 고작 한 놈한테 저리도 쩔쩔매다니! 미션 포인트를 분배받고 싶지 않은 게냐!”
길드장이 호통을 쳤지만, 수혁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한 이들은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하긴, 이미 예전 고블린에게 쩔쩔매던 수혁이 아니었다.
몇 번인가의 위기를 거치고, 결정적으로 다리온이라는 괴물과도 일대일 대결을 펼쳤던 수혁에게, 이들은 발톱을 세운 새끼 고양이만큼이나 귀여운 존재일 따름이었다.
‘큭, 아직은 장악력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군.’
이들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어차피 저 녀석도 자신들에게 덤벼드는 것은 불가능하니, 일단은 파티의 장악력을 높인 뒤에 다시 분수를 알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저 녀석이 이 험한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말이지만.
“흥, 이번에는 운이 좋았군. 가라!”
수혁은 뭐 저 딴 놈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르본을 쳐다보았다.
안 보내줘도 억지로 뚫고 가려고 했는데, 자신이 일부러 보내준 것처럼 포장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하여튼, 수혁은 자신이 가져온 보급 상자를 들고 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참, 너희들 웬만하면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다.”
“뭐, 뭐라고?”
“난 분명히 경고했다.”
수혁은 그대로 자리를 떴다.
도중, 아직 숲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자신들을 지켜보던 두 부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수혁은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방향을 통해 숲으로 들어갔다.
한편, 르본은 수혁이 그곳에서 사라지자마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저 보급 상자들을 가지고 와!”
블리스 길드의 길드원들이 허겁지겁 바다로 뛰어들어 보급 상자를 향해 헤엄친다.
수혁이 하나를 가져갔지만, 아직도 꽤 여러 개의 보급 상자가 둥둥 떠있었다.
저것들을 모두 챙긴다면, 앞으로의 근거지 건설 등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리라.
길드원들은 수면을 가르며 보급 상자들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바로 그때, 바다의 수면 위에 보여서는 안 될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괴, 괴물이다! 사, 상어 괴물이 나타났다아아!”
“젠장! 어, 어째서!”
분명 조금 전 녀석이 보급 상자를 가지러 갈 때는 나오지 않았는데, 블리스 길드원들이 들어가자마자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실, 이들은 물속에 생물체가 있음을 감지하여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는 바다 괴수들로, 수혁이 물 속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활동을 개시한 상태였다.
그리고 블리스 길드원들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이들은 멀리서부터 찾아온 이 괴물들과 마주하게 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수혁이 바닷속에 들어간 순간 함께 들어가지 않았다면 보급 상자는 얻을 수 없었다는 것.
“아아아악!!!”
“크윽, 그 망할 새끼!”
르본은 자신의 소중한 길드원이 상어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쳐다보며 복수심을 활활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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