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미션 (3)
이 미션에서는 첫날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수혁처럼 보급 상자 같은 것을 따로 구했다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이 미션은 시작하자마자 빈손으로 모든 것을 이뤄 나가야만 했다.
당장에 추위를 피할 보금자리를 만들고 불을 피워야 하며, 식수를 구하고 식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일반적인 무인도 서바이벌의 상황과는 달리, 이 섬은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서도 상대하기 힘든 온갖 괴수들로 넘쳐났다. 첫날이라고 방심하다가는 언제 습격당해 죽을지 알 수 없었다.
“정글이라 그런지 묘하게 땀이 흐르는데.”
습기가 많아서인지 그리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금방 땀이 맺혔다.
현재, 수혁은 여러 개의 노란 화살표 중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방향에 있는 것을 골라 숲 속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곳의 무인도는, 중앙의 거대한 화산을 중심으로 해서 숲과 계곡 등의 지형으로 이루어진 꽤 넓은 섬이었다.
무인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식인종인 원주민이 존재하여 플레이어들을 위협하곤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섬에서 한 곳에 보금자리를 정해,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섬 안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거나, 미션 스톤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 이 경우, 보통은 해안 근처의 동굴이나 절벽 근처의 바람을 막을 만한 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수혁에게도 마찬가지로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어디 보자, 저쯤이려나.”
수혁이 향한 곳은 동굴이나 절벽 근처와도 같이 고대 원주민이나 살 법한 초라한 장소가 아니었다.
수혁이 향한 곳은, 무려 이런 무인도에서는 호화로운 저택이라 칭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하나의 럭셔리한 오두막이었다.
“손 봐야 할 부분이 조금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쓸 만은 하겠는걸.”
수혁은 온갖 풀들과 덩굴 식물이 자라나 휘감고 있는 오두막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은 무인도이지만 옛날에는 이곳에도 문명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현재에도 무인도의 곳곳에 마법 문명과 관련된 장치나 유물들이 남아 있다는 모양이었다.
눈앞의 이 오두막은 그 시절의 마녀가 살던 것으로, 겉보기에는 수수하지만 숱한 세월을 견디고서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정도로 튼튼한 집이었다.
이 부분 역시 나연이 사전에 자신에게 전해준 정보 중 하나였다.
수혁은 바로 이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이 무인도를 탐험해 나갈 계획이었다.
‘일단은 몬스터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 탐색을 해야겠지.’
수혁은 로코를 소환했다.
불려온 까마귀 사역마 로코가 불만스러운 듯 눈썹을 세운 채 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이 정도의 태도는 많이 나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왜 부르나, 주인.”
“저 오두막을 탐색해라.”
“마정석은?”
수혁은 로코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무채색의 반지가 없어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말았다.
그것을 본 로코가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큭큭큭, 무능력한 주인 같으니.”
“엎드려뻗쳐.”
까마귀가 기합을 받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중요했지만, 건방진 사역마에게 참교육을 시전하는 것도 중요했다.
10분 정도 까마귀의 땀을 뺀 뒤, 수혁은 다시 로코에게 오두막의 탐색을 지시했다.
로코는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오두막 안을 향했다.
얼마 뒤, 오두막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쿵쾅! 쨍그랑! 까악! 까악!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 로코만으로는 조금 부족한가.’
사역마이기는 하지만, 감각을 공유할 정도로 강한 계약으로 맺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로코를 이용해 안에 있는 몬스터를 유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로코! 안에 있는 그 녀석을 데리고 나와!”
갑자기 주위가 정적에 휩싸였다.
수혁은 재빨리 마력의 소모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상 없음.
그러나 조금 뒤, 수혁의 마력이 뭉텅이로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머리를 해머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수혁을 덮쳤다.
-사역마가 역소환되었습니다. 역소환의 충격으로 인해 10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사역마의 재소환이 불가능해집니다.
‘큭, 강제로 역소환된 건가. 제길,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스스로 소환을 해제할 경우는 15분만 있으면 재소환이 가능하지만, 강제로 소환이 해제된 경우는 재소환에 24시간이라는 쿨타임이 필요했다.
영체인 로코에게 타격을 입힐 수단이 있었던 것이겠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방심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예상대로, 오두막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수혁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크르르르….”
웨어 울프였다.
회색의 털 밑으로 터져 나올 듯한 근육이 보였고, 손톱은 방금 간 것처럼 날카롭게 날이 섰다.
손톱에 미약한 마력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으로 보아, 저것을 이용하여 로코에게 타격을 입힌 것으로 보였다.
영체라 해도 약점 정도는 존재하는데, 로코의 경우 불꽃 속성의 마법 공격에 대미지를 입었다.
수혁은 웨어 울프가 오두막에서 나오는 순간 녀석에게 몸을 날렸다.
무릎을 굽혀, 입구를 통해 나오는 웨어 울프의 머리통에 정확히 꽂아 넣는다.
빠악!
“크아아아!”
웨어 울프에게서 고통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사실, 웨어 울프가 결코 약한 몬스터인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일대일로 싸우기 위해서는 B급의 스텟을 갖출 필요가 있었으며, 장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허들은 더욱 올라간다.
하지만 이때를 대비하여 격투술 마스터리의 위력을 한껏 높인 수혁의 공격은, 단순히 맨몸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것이었다.
<마스터리 스킬: 격투>
등급 – B
위력 – 412
효과 – 1. 철권: 맨손이나 발로 타격 시 적의 크기와 공격의 강도에 따른 밀어내기 효과.
2. 붕권: 타격 지점으로부터 일정 지점이 떨어진 곳에 대미지를 입힌다. 내부 침투 가능.
설명 – 맨몸으로 격투를 할 때 적용되는 마스터리 스킬. 단련 여하에 따라 장비를 착용한 것을 능가하는 위력을 보여준다.
오두막 안에는 두 마리의 웨어 울프가 더 있었다.
한 마리까지는 어찌어찌 상대한다 해도, 그 이상의 웨어 울프를 상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식스 오브 듀나한을 발동시켜 맨 앞의 녀석에게 4타를 적중시킨 수혁은, 체력과 마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은 상태로 66%의 몸놀림 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수혁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웨어 울프들의 사이를 오가며 발과 주먹, 때때로 나이프를 날렸다.
빠바바박! 빠악!
“후우, 하여튼 로코 녀석은 도움이 안 되는군.”
마침내 웨어 울프들을 모두 무찌른 수혁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웨어 울프로부터의 드랍 아이템은 B급의 마정석과 웨어 울프의 손톱.
무두질 스킬이 존재한다면 가죽을 벗겨 요긴하게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수혁에게는 무두질 스킬이 없었다.
나이프가 있으므로 어찌어찌 벗겨낼 수는 있겠지만, 퀄리티는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도 수혁이 가지고 온 보급 상자에 얼마간 사용할 만한 털가죽을 넣어 왔으므로, 가죽을 구하는 것이 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이제 남은 것은 오두막을 잔뜩 감싸고 있는 덩굴들을 정리하고, 오두막 주변에 잠들어 있는 마법 트랩을 작동시키는 것.
일단은 마녀의 집이었던 이상, 주변에도 집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의 장치가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수혁은 노란 화살표와 탐사 마스터리의 도움을 통해 이들 장치를 찾아내고 작동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모든 작업을 끝내고 나자, 그래도 어떻게든 봐줄 만한 오두막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휴우, 설마 오두막 내부를 청소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이 될 줄이야. 근처에서 볼 때 꽤 눈에 띄긴 하겠지만, 주변 몬스터의 인식을 흐리는 마법 트랩이 설치되어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이 무인도에서 가장 호화로운 보금자리가 마련되었다.
수혁은 여기까지 옮겨 온 보급 상자를 들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거실(겸 부엌)과 침실의 2개의 공간이 하나로 붙어 있는 심플한 공간이었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 동안 부식되어 낡은 데도 많고 녹슨 것도 많았지만, 어쨌든 집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침대는 너무 낡아 뼈대만이 남았으니, 적당히 가죽을 깔고서 자면 좋을 듯했다.
“그러면 다음에 중요한 것이 식수원이라고 했던가. 좋아. 이 근처에 샘이 있는지 찾아보자.”
수혁은 가지고 온 보급 상자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들고서 바깥으로 향했다.
나연으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받아오기는 했지만, 식수원의 위치 같은 자잘한 정보까지는 알지 못했다.
설마 샘 같은 것마저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을 리는 없으니, 직접 발로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아야만 했다.
술병은, 가지고 가면서 마실 겸 비운 통에 물을 담는 용도였다.
인벤토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렇듯 도구를 일일이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 불편했다.
‘마법 트랩은 이쪽에 반응하지 않도록 설정해 뒀으니 상관없고. 다른 녀석들이 이곳에 오게 되면 패서 쫓아버리면 되고. 좋아, 이제 가볼까.’
설마 누군가가 쫓아왔을까 싶어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렇다 할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지금은 보금자리와 물, 식량을 구해야 하니 자신 하나 때문에 인원을 쓰는 것은 비효율적일 것이다.
수혁은 술병을 입에 꽂은 채 냇가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한편, 그 시각 블리스 길드의 파티에서 쫓겨난 부녀는 D등급의 플레이어들이 모인 파티 뒤에 껴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을 돕고 있었다.
특별히 도구라고 할 만한 것은 많지 않다. 간혹 우연히 발견한 보물 상자로부터 망치나 밧줄 같은 잡동사니가 나오는 정도.
이들 D등급의 파티는, 이 정도의 빈약한 잡동사니를 이용해서 앞으로 이 무인도에서 지낼 보금자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정태 씨, 잠깐 여기 돌 좀 나세요. 유진이 너는 나 좀 따라오고.”
“자, 잠깐! 제 딸을 어디로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오정태와 오유진. 그것이 바로 부녀의 이름이었다.
D등급 파티의 파티장이자 아까 전 스텟창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난 C등급의 김지호는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뭡니까, 정태 씨. 당신은 하라는 거나 똑바로 하세요.”
“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제대로 하고 있으니, 제 딸을 건드리는 것만은 부디….”
“건드린다고요? 제가요? 하, 그런 거 아니니까 당신은 어서 할 일이나 제대로 하세요. 날이 지기 전에 빨리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한단 말입니다!”
“아!”
김지호가 딸 유진의 손목을 낚아채 어디론가 끌고 가려 한다.
오정태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어딜 가나 이런 쓰레기들 천지였다.
지금까지 딸을 지켜온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용할 정도였다.
오정태는 끌려가는 딸의 손목을 붙들었다.
김지호의 눈썹이 날카롭게 구부려진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파티에서 쫓겨나고 싶은 겁니까?”
“그, 그래! 차라리 이 파티에서 나가고 말지, 내 딸은 못 준다, 이 나쁜 놈아!”
주변의 시선이 일순 쏠렸지만, 모두들 못 본 척하며 다시 자신이 하던 일로 시선을 돌린다.
김지호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블리스 길드가 아까는 모두의 앞에서 갑이었듯, 이곳에서는 제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이들의 갑이었다.
여타 미션들과는 달리, 파티를 맺지 않으면 생존에 불리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 나가세요.”
“.......”
오정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좀 더 위험에 처하더라도 이곳에서 나가는 편이 나았다.
오정태는 불안한 표정을 한 딸의 손목을 붙잡은 채 그 자리를 뒤로했다.
김지호가 그 뒷모습을 팔짱을 낀 채 히죽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