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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독식자-62화 (62/78)

무인도의 심처 (2)

그레이트 웜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매우 거대한 애벌레였다.

사실, 성질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닌지라, 굳이 녀석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상대해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에게 다가가야만 한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쿠에엑!”

수혁이 손에 들고 있는 제니스 씨앗을 마주하자, 그레이트 웜은 몸의 앞부분을 들어 올려 깔아뭉갤 것처럼 수혁을 위협한다.

이곳의 생태계에서, 제니스 씨앗은 그레이트 웜이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제니스 씨앗의 냄새만 맡아도 이런 식으로 한걸음에 달려올 정도.

수혁이 굳이 부녀에게 제니스 씨앗을 찾으라고 한 것도, 이것을 이용해 그레이트 웜을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레이트 웜이 나타난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발소리를 들었으니, 지금쯤 부녀는 오두막이 있는 쪽으로 향하는 중일 것이다.

“자, 그러면 저 녀석에게 올라타야 한다는 건데.”

수혁은 일단 미리 챙겨둔 가죽 주머니에 씨앗들을 넣고, 몇 개만 꺼내 녀석의 눈앞에서 흔들며 간을 봤다.

수혁의 손바닥이 움직이는 대로 녀석의 고개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딱히 눈이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어쨌든 시각 기관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후각이든지.

수혁은 우선 가까이 다가가 교섭을 시도해보았다.

씨앗을 내밀어,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확인한다.

다른 손으로는, 나이프를 쥐고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중.

“…….”

그레이트 웜이 흥미를 느끼고서 수혁에게 머리를 갖다 댄다.

강아지에게 하는 것처럼 씨앗을 올려놓은 채 갖다 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못하면 손목째로 먹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혁은 가까이 다가오는 그레이트 웜의 입을 향해 제니스 씨앗을 던져주었다.

그레이트 웜이 엉겁결에 자신에게 날아온 제니스 씨앗을 받아먹는다.

사각사각….

그레이트 웜이 제니스 씨앗을 갉아먹는 소리.

고개를 들어 더 없냐는 듯한 표정으로 수혁을 향하고 있었다.

일이 잘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한 수혁은 그런 식으로 주머니에서 제니스 씨앗을 꺼내 몇 번 더 던져주었다.

마치 집에서 기르던 복슬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레이트 웜은 수혁이 씨앗을 던져주는 대로 좋다고 덥썩덥썩 받아먹는다.

‘좋아, 이 정도면 올라탈 정도로는 친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판단한 수혁은 이제 슬슬 그레이트 웜에 올라타기 위해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했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최대한 녀석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침내 그레이트 웜의 약간은 딱딱한 피부에 손을 대는 순간.

“쿠오오오!!”

그레이트 웜이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수혁을 덮쳤다.

“큭!”

수혁은 반사적으로 나이프를 휘둘렀다.

수혁이 휘두른 나이프에 그레이트 웜의 앞부분이 베여 한 줄기의 상처를 남긴다.

당황한 듯 머리를 빼는 그레이트 웜의 상처로부터 끈적끈적한 진액이 흘러나와 주변에 흩뿌려진다.

수혁은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살짝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젠장, 그냥 해치워버려도 되는 녀석이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은데. 죽이면 곤란하니 상당히 골치가 아픈걸.’

이렇게 된 이상은 이판사판이었다.

방금 수혁이 날린 나이프 때문에 그레이트 웜은 수혁에게 상당한 경계심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수혁은 그대로 그레이트 웜의 등에 몸을 날렸다.

“쿠에에엑!”

그레이트 웜이 미친 듯이 몸을 뒤틀었다.

수혁은 그레이트 웜의 등에 난 털을 붙잡고서 그레이트 웜의 발광으로부터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한껏 버텼다.

좌우로 흔들리고, 위아래로 흔들리는 탓에 시야가 온통 흔들리지만, 그래도 오기로라도 버텼다.

계속되는 발광 때문에 붙잡고 있던 털마저 뽑혀 나갈 정도가 되니, 그때부터는 허벅지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텼다.

마치 로데오 경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결국에는 튕겨 나가고 만다. 무언가 수를 쓰는 게 좋겠는데.’

허벅지의 힘으로도 모자라자, 수혁은 결국 그레이트 웜의 등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그레이트 웜의 발광이 더 거세어지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혁은 바로 그 나이프를 피뢰침으로 하여 그레이트 웜의 체내에 라이트닝 빔을 시전하였다.

지지직—

금속의 나이프가 라이트닝 빔을 흡수하여 그레이트 웜의 체내를 파고든다.

그러자 그레이트 웜의 발광이 다른 양상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처럼 격렬한 발광이 아니라, 좀 더 간헐적인 꿈틀거림으로 바뀌는 것을.

‘대미지는 잘 안 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효과는 나쁘지 않군. 그렇다면 바로 이 틈에!’

수혁은 라이트닝 빔을 유지한 채 점차 그레이트 웜의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주머니에서 제니스 씨앗을 꺼내, 그레이트 웜의 머리 부분을 향해 던진다.

“쿠오오오?!”

체내로부터 전해지는 전기 자극 때문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레이트 웜이지만, 그럼에도 제니스 씨앗에 반응하여 땅으로 입을 향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혁은 제니스 씨앗을 한 번 더 뿌렸다.

동시에 그레이트 웜의 등에 꽂힌 나이프로 보내는 라이트닝 빔의 강도를 서서히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쿠뇨오오…. 쩝쩝쩝.”

자신의 머리 위에 누군가가 매달려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트 웜은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제니스 씨앗에 정신이 팔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수혁은 그런 그레이트 웜의 앞으로 몇 번이고 제니스 씨앗을 뿌려대고 있었다.

마침내 주머니에 담긴 제니스 씨앗이 절반쯤으로 줄어들었을 즈음, 그레이트 웜은 완전히 발광하는 것을 멈췄다.

수혁이 씨앗을 뿌리는 것을 멈추면, 씨앗을 찾는 것처럼 고개를 들고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러면 씨앗도 많이 먹었으니 이제는 일을 해야겠지?”

수혁이 씨앗을 뿌리는 것을 멈추자, 그레이트 웜은 뭔가 아쉬운 것처럼 땅 위를 이리저리 훑었다.

마침내 땅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레이트 웜은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꾸물거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중간중간 수혁을 뿌리치기 위해 발광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그때마다 제니스 씨앗을 뿌려주면 될 노릇이었다.

수혁은 나이프를 뽑아 묻은 체액을 그레이트 웜의 피부에 닦은 뒤 그레이트 웜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레이트 웜이 서서히 속도를 올려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

최고속도에 도달한 그레이트 웜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처음에 나무들을 짓밟고 수혁 앞에 나타난 것처럼, 그레이트 웜의 속도는 원래가 매우 빠른 편이었다.

넓은 정글 안이지만, 그레이트 웜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레이트 웜은 파죽지세로 모든 것을 헤치고 어딘가로 나아간다.

“쿠와아아아아!”

그레이트 웜이 지나갈 때마다 나무가 부러져 길이 생기고, 좁은 냇가가 무너져 샘이 된다.

지금의 그레이트 웜은, 말하자면 철로 없이 달리는 기차와 다를 것이 없었다.

크기나 길이도 딱 그 정도.

그리고 그 위에 탄 수혁은, 시도 때도 없이 뺨을 때리는 나뭇가지나 날리는 흙먼지로 고생 아닌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빠른 것도 좋고 다 좋은데,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 이 녀석.’

수혁이 이 녀석의 위에 올라타고 나서 느낀 점은, 이 섬이 뜻밖에 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연의 조언대로 이 녀석을 불러내 타지 않았더라면, 목적지까지 가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리라.

노란 화살표 중 어떤 것이 목표를 가리키는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오오오오오오!

멀리에서 때때로 들려오던 괴수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져 있었다.

수혁은 눈을 좁혔다. 바로 저 울음소리의 주인공이야말로 수혁이 찾아가려 하는 녀석이었다.

그레이트 웜의 서식지 근처에, 그 녀석이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화산 근처에 서식하고 있는 건가. 불길하게 말이지.’

수혁은 지금도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화산 쪽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레이트 웜이 나아감에 따라, 저 연기 역시도 수혁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혁은 자신이 뭔가 잘못 건드린 탓에 저 화산이 예정 외의 타이밍에 터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나연의 설명을 따라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니, 그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죽일 이유가 없을 테니, 지금은 그녀의 말을 믿고 계속 나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레이트 웜의 속도가 점차로 느려졌다.

수혁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씨앗을 몇 개 뿌려 이후 돌아갈 때를 대비한 보상을 내려놓고는, 가죽 주머니의 입구를 꽉 묶어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세팅했다.

그레이트 웜의 등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그레이트 웜은 수혁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이더니, 스르륵 기어서 자신의 보금자리인 넓은 분지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 수혁은 미리 챙겨둔 미션 스톤 하나를 꺼내 주변의 적당한 곳에 숨겨두었다.

글라도스를 해치우고 돌아올 때는, 이 미션 스톤에 뻗어 있는 노란 화살표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자, 여기인가. 글라도스라는 녀석이 사는 곳은.”

그레이트 웜의 서식지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수혁에게는 노란 화살표가 있었다.

덕분에 수혁은 딱히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이 글라도스가 있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구오오오오오!!

이제는 정말로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수혁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 무인도에서도 가장 강한 마물들이 사는 심처.

수혁은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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