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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독식자-63화 (63/78)

무인도의 심처 (3)

바닥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자박거리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나무 위에서는 정체를 알지 못하는 동물의 눈이 때때로 번뜩이며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나무 위에서 수혁의 허벅지만 한 몸통을 가진 뱀이나 징그러운 벌레가 떨어져 내려 수혁을 습격했다.

가히 지옥 같은 정글이라 할 만한 끔찍한 상황.

“으이씨, 징그러!”

수혁은 떨어져 내리는 뱀을 나이프로 베어내고, 달라붙으려 하는 벌레들을 털어내며 새삼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속에 빠져들었다.

사실, 섬 외곽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 험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레이트 웜을 타고 섬의 중심부까지 오게 되니, 이건 정말이지 지옥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화산 근처라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 더운 것도 더운 거였지만, 외곽에 있었을 때보다도 더욱 늘어난 벌레들의 습격과 태양을 가리는 나뭇잎이 수혁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미션의 종류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수혁의 실수였다.

정글에서 이런 식으로 징그러운 것들이나, 때로는 목숨을 위협하는 맹수들과 마주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역시나 맹수들은 보이지가 않는군. 근처에 무서운 녀석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몬스터들에게도 영역이라는 게 있어서, 웬만하면 강한 몬스터의 영역은 건드리지 않는 법이었다.

글라도스라는 녀석은 이 무인도의 정글에서는 거의 최강이라는 모양이었으니, 당연히 이 주변에 다른 녀석들이 살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만큼 수혁 역시도 긴장되는 것은 당연했다.

녀석은 A급에 해당하는 괴수라는 모양이었으니까.

‘장비도 없이 A급과 상대하는 건가. 나도 참 정신이 나갔군.’

저번에는 장비도 갖추고 있었고 상황도 도와주었기에 다리온을 이기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비도 없고 상황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식스 오브 듀나한이라는 스킬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맞춰야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니까.

나이프만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안 될 건 없겠지. 다만 이 경우에도 몇 가지 제약이 붙는군. 우선 녀석의 거대한 몸체에 다가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6타는 반드시 몸통이나 머리 부근에 날려야 한다는 것. 만약 다리 같은 곳에 맞춘다면 추가 공격력이 있다고 해도 치명적인 피해는 주지 못할 거야.’

글라도스는 거대한 공룡 형태의 몬스터였다. 아마도 혼자일 테니 식스 오브 듀나한을 쓰고 나서 수혁이 다른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공격 수단이 나이프 하나라는 것은 꽤 빠듯한 조건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갈 뿐이다. 수혁은 바로 앞을 가로막는 덩굴을 잘라내며 앞으로, 앞으로 향해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수혁은 드디어 노란 화살표의 끝, 환한 빛이 퍼지고 있는 공터로 나올 수 있었다.

“크르륵… 크륵….”

수혁은 조심스럽게 덤불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었다.

공터에는 수혁의 예상대로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 글라도스의 모습이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으로는,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처럼 서 있는 공룡이라는 이미지.

다만 머리 부분이 조금 더 둥글둥글하고 두꺼운 앞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연이 전한 정보에서는, B급 중급 이상의 5인 파티가 무인도 내에서 각종 장비를 갖추고서 겨우 이겼다는 녀석이었다.

겁이 없는 수혁의 경우, 최소한의 준비만을 갖추고서 곧바로 찾아왔지만.

게다가 놀랍게도, 수혁이 온 것과 타이밍을 맞추어 낮잠이라도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목에서 가래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수혁이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

‘어쩐지 조금 전부터 조용하더라니. 설마 타이밍 좋게 낮잠을 자고 있을 줄이야.’

그레이트 웜의 서식지로부터 이곳까지 오는데 약 30분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그동안 울음소리가 갑자기 그쳐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

수혁은 조마조마함을 느끼며 주위를 더 돌아보았다.

나무들이 둘러싼 가운데, 이곳만이 나무가 없어 바위로 휑했다.

한쪽 편은, 절벽. 밑부분에 나무 상자들이 부서져 있고, 그 사이로 반짝이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글라도스가 모은 보물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글라도스의 특성상, 가끔 무인도 안이나 가까운 해안을 돌며 이러한 것들을 수집하곤 하는데, 바로 이것들을 쌓아놓은 것이다.

노란 화살표는 바로 저것들을 가리키는 중이었다.

‘보물들! 내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여. 저것들을 모두 가져만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크흑!’

안타깝게도 이번 미션으로부터 가져갈 수 있는 아이템은 최대로 해서 3개까지.

눈앞에 아무리 보물이 많다 해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개수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수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칫, 뭐 어쩔 수 없지. 그보다도 지금은 저 글라도스를 처치해야 해.’

마침 녀석이 잠에 빠져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수혁은 천천히 녀석 근처의 나무로 향해,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덩굴과 이끼 때문에 많이 미끄러웠지만, 그 정도는 악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무껍질에 손가락을 박아 넣어,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얼마나 깊게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무 위의 벌레들이 계속해서 수혁에게 달려들어 물어댔지만, 이빨 꽉 물고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글라도스의 머리 바로 위의 위치까지 올라온 수혁이, 손에 들고 있는 나이프를 확인했다.

뛰어들어서 6번만 공격하면, 녀석은 그대로 사망할 것이다.

그런데 수혁이 막 뛰어들려고 한 순간, 수혁은 멈칫하고 말았다.

‘귀도 없고 머리털도 없고, 뭔가 붙잡을만한 부위가 안 보이는데. 만약에 녀석이 갑자기 깨어나서 머리를 흔들기라도 한다면….’

그레이트 웜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붙잡을 부위가 없다면 수혁이 튕겨 나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피부가 매끈매끈한 비늘로 이루어져 있기에 더욱 그럴 가능성이 컸다.

식스 오브 듀나한은 한 번 실패할 경우의 패널티가 상당하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식스 오브 듀나한은 일단 접어두자. 그다음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게….’

수혁은 지금까지 자신이 습득한 스킬들에 대해 떠올리다가, 문득 허리춤에 차고 있는 병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어젯밤 급하게 만든 허리띠에, 피부를 녹이는 성질이 있는 액체를 담은 술병을 매단 것이었다.

글라도스의 피부에 들이붓는다고 해도 그다지 큰 효과는 보지 못했겠지만, 연약한 부위인 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눈을 공격해서 시각을 상실시키고 나면, 그 이후에는 뭘 해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수혁은 긴장된 침을 삼키며 술병의 마개를 땄다.

그리고 불과 몇 미터 아래에 있을 뿐인 글라도스의 머리통을 향해, 서서히 술병을 기울였다.

콸콸콸.

병 입구로부터 글라도스의 닫힌 눈으로 위험한 액체가 쏟아져 내린다.

한쪽만 처리하는 것은 불공평하므로, 공평하게 양쪽에 번갈아 가며 들이부었다.

글라도스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듯 눈을 살짝 움찔거리는 데 그쳤지만, 이내 눈을 덮고 있는 얇은 막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하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이미 상당량의 액체가 침투한 상태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오히려 눈이 빨리 타들어 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

수혁이 귀를 막아야 할 만큼 거대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리서 들을 때도 크다고는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서 들으니 정말로 온몸이 울리는 것이 뼈로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글라도스가 한 번 땅을 구르자, 거대한 충격파가 글라도스의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무인도의 괴수 글라도스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 하나, 어스퀘이크였다.

쿠오오오…. 쿵! 쿵! 쿵!

‘큭, 절벽 위에서 돌들이…. 시야가 없어서 이쪽을 직접 노리지 못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거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당장에 나무에 매달리는 것만도 위태위태했다.

땅은 흔들리고, 위에서는 돌들이 떨어져 내린다.

녀석에게 제대로 접근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녀석의 눈에 액체를 뿌리기보다 식스 오브 듀나한을 발동시키는 편이 낫지 않았나 하는 후회마저 들 정도였다.

‘아냐, 그래도 이 정도라면 나쁜 결과는 아닌 거지. 녀석은 날 볼 수 없고, 나는 녀석을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이쪽이 훨씬 유리하지.’

글라도스가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수혁이 있는 나무 쪽으로 다가왔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후각을 통해 대략적으로 수혁이 있는 위치를 찾아내어 짓뭉개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글라도스를 쳐다보며, 수혁은 식스 오브 듀나한을 발동시켰다.

불안정한 지면과 떨어져 내리는 바위 속에서, 이제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한 수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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