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의 심처 (4)
목표는 간단했다.
저돌적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글라도스를 유인하여,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나이프를 휘둘러 몸에 하나씩 상처를 남긴다.
현재 글라도스는 눈이 멀어 있으므로, 자신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만 알 뿐 일부러 노려서 공격하지는 못한다.
그것을 이용하여 나무와 나무를 건너 타며, 녀석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유효타를 먹이려고 하는 것이다.
‘좋아, 우선 1타!’
수혁이 가까이 다가온 글라도스의 머리를 노려 나이프를 날린다.
거대한 포효와 함께 글라도스가 분노하지만, 눈이 먼 이상 수혁의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이에 수혁은 나무를 타고 뒤로 물러서서, 다음의 공격을 노린다.
지면이 흔들리기에 도망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바위 역시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오로지 집중과 등으로부터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만을 통해 모든 것을 피해낸다.
수혁의 감각이 한층 더 날카롭게 벼려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나이프라서 다행이로군. 라인플레임이었다면 움직이는 게 힘들었을 테니까.’
나이프이기에 리치가 짧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렇게 나무 위에서 움직인다고 한다면 대검 같은 무거운 무기보다는 차라리 나이프처럼 가벼운 무기가 나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 대라도 빗맞힐 경우, 식스 오브 듀나한의 효과가 끊겨 이번 기회에 녀석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살아서 도망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녀석을 잡기 위해 쿨타임을 기다리며 이 주변에서 또다시 벌레들의 습격을 견딜 수는 없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낙하하는 바위들을 주시한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글라도스의 거동을 주시하며, 녀석이 다가올 때마다 정확한 유효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글라도스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손가락을 노리고,
“크와아아아아!”
떨어지는 바위를 피하며 아슬아슬하게 글라도스의 허벅지를 스친다.
그런 식으로 다섯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고, 이제는 여섯 번째의 공격만이 남았을 때였다.
‘좋아. 마지막으로 머리를 공격하기만 하면 녀석을 잡을 수 있겠지.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
“크와아아아아아아앙!”
지면이 격하게 흔들렸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패턴에 수혁으로서도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시선이 흔들려서, 점멸을 시전해야 할 정확한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1격만을 남겨두고 낭패였다.
‘젠장, 그렇다면···.’
수혁은 위아래로 요동치는 나뭇가지를 붙잡고서 리듬을 탔다.
출렁거리는 나뭇가지의 반동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허공에는, 지금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바위덩어리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수혁은 그 바위덩어리들 중 하나를 박차, 다른 바위 덩어리로 뛰어넘고, 그 다음에는 글라도스의 머리로 옮겨 뛰었다.
글라도스가 순간적으로 입을 벌려 그런 수혁을 반갑게 맞이한다.
“크아아아악!!”
“그래, 알아. 나도 반가워.”
퍼엉!
거대한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글라도스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지진이 멈추고, 절벽으로부터 바위가 떨어지는 것도 결국에는 멈췄다.
마침내 수혁은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었다.
떨어진 마정석은, 당연하다는 듯 스페셜의 A급.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육감 스텟에 투자했다.
이로써 이 미션에 오기 전에 투자한 것을 포함하여, 육감 스텟의 수치는 무려 287에 달하였다.
다른 피지컬 계열 스텟이 400에 도달하고 매지컬 계열 스텟은 300에 도달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
자신에게 닥치는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스텟이기에, 이 정도의 투자도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방금도 사방에서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눈으로 보지도 않고서 피한 것은 힘겹게 올려놓은 이 육감 스텟의 덕이 매우 컸다고 수혁은 생각했다.
“후우, 이제는 정말로 A등급은 별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 같아. 더 강한 녀석을 찾아봐야겠어.”
이제 남은 것은 이 거대한 녀석의 몸체 중 일부를 필요한 만큼 떼어내서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 녀석의 비늘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걸칠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하는데, 비늘이 가죽에 붙어 있는 상태여야만 했던 것이다.
이 커다란 몸체 전체를 다 가져갈 필요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 해체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고깃덩어리를 끌고 갈 만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
‘이전에 공략했을 때는 무두질 관련 스킬을 가진 장인이 있었다던가. 칫, 비전투 계열 스킬이라곤 탐사 마스터리나 낚시, 채광 마스터리 같은 것밖에 없는데.’
아무튼 그레이트 웜이라고 하는 탈 것이 있으니, 어찌어찌 싣기만 하면 돌아갈 수는 있을 터였다.
직접 발로 걸어 오두막까지 되돌아간 뒤, 묶어두었던 주머니를 풀어 그레이트 웜을 유인하려는 것이다.
이 정글을 헤쳐나간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지만, 또다시 그레이트 웜의 등에 고깃덩어리를 묶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 골치가 아팠다.
‘자잘한 건 일단 놔두고, 저쪽에 보물들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어.’
수혁은 저 멀리 글라도스의 보금자리 뒤쪽에 있던 보물 더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부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쓸만한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금붙이나 무언가 비싸 보이는 것 외에도 로프나 깨진 나무 상자 등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존재하였다.
‘그래도 고깃덩어리를 고정할 만한 도구는 존재하니 다행이군.’
수혁은 다양한 금붙이들의 사이를 뒤적이며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물건을 찾아다녔다.
참고로 이곳에 위치한 보물들의 종류는 이 무인도 미션이 시작할 때마다 달라지는데, 어떠한 종류의 보물들이 나오는지는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나연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엿차, 이건가.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었다는 게···.”
수혁이 집어 든 것은 작은 크리스탈로 만든 하나의 병이었다.
생긴 것이 꼭 현실 세계에서의 향수병처럼 생겼다. 맨 위의 캡을 눌러서 분사할 수 있다는 것까지도 똑같았다.
수혁은 아이템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크리스탈 병>
등급 – E
희귀도 – 희귀
옵션 – 마력수화: 병에 담긴 액체에 마력을 담는 것이 가능해진다.
설명 –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작은 병. 병 안에 담은 액체에는 며칠의 시간에 걸쳐 사용자의 마력이 흘러들어 가며, 이 마력이 담긴 액체를 분사할 경우 닿은 대상을 마력의 불길로 불태우는 것이 가능하다.
히든 피스로서 나온 아이템치고는 그리 와 닿는 성능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템 설명을 보자마자 수혁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 향수병에 그 피부를 녹이는 샘의 물을 담아 마력을 부여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피부를 녹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마력의 불길 같은 성질을 부여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
“뭐···. 호신용 정도라면 상당히 괜찮은 게 아닐까? 일단은 챙겨두도록 하자.”
이렇게 해서 일단 수혁의 제1 목적은 이미 끝이 난 것이었다.
이제는 돌아가서 글라도스의 비늘로 걸칠 만한 것을 만들고, 수혁의 처음 목표를 위해 섬 안을 탐험하는 것뿐이었다.
***
“쿠오오오오오오!!!”
거칠게 달려온 그레이트 웜이 등에 글라도스의 시체 일부분을 매달고서 등장했다.
수혁이 연 제니스 씨앗의 냄새를 맡고서 단숨에 달려온 것이었다.
물론 여기까지 길을 되돌아오느라 수혁도 반나절 가까이를 수많은 덤불을 헤치고 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그 또한 경험이라면 경험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상당량의 마정석을 얻고 이곳에 사는 몬스터들의 공격 패턴 등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미션 스톤을 길잡이로 하는 건 역시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군.’
나침반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도 나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 미션에서는 보물 상자를 뒤지면 종종 나침반 같은 것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나침반이 없는 이상은 하나의 이정표가 필요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노란 화살표의 목표가 되는 미션 스톤은 상당한 도움이 되어주었다.
적어도 방향을 잃지 않고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것을 유지하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면 이 녀석이 제니스 씨앗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글라도스의 시체를 내려놓···. 응?’
수혁은 느닷없는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두막 주변이었고, 심처와는 달리 약한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므로 언제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서 각종 연장이나 조잡한 활, 나이프 따위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미리 기척을 눈치챈 수혁이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그레이트 웜의 등에 실린 고깃덩어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수혁과 눈을 마주친 플레이어들이 순간 당황한다.
“뭐, 뭐야? 저 녀석 설마 예전에 대장에게 거슬렀던 바로 그···.”
“설마 아직까지도 살아 있었을 줄이야···.”
“대, 대장! 어떡하죠?”
“어, 어떡하긴 뭘 어떡해!”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긴장한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이들은 블리스 길드의 수하로 들어와 일하고 있는 파티 일부로서, 어느 정도 본거지가 안정되고 나서 주변을 탐험하러 나온 탐험대 중 하나였다.
수는, 약 10명 정도. 조금 전 그레이트 웜이 괴성을 지르는 것을 듣고서 이쪽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대장을 맡고 있는 드미트리는, 수혁의 실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았다. 단지, A등급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고, 이 거친 정글에서 혼자임에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고, 저 앞의 거대한 털 난 벌레를 가까이에 두고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을 정도로 겁이 없다는 것 정도.
수혁의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도 드미트리의 신경을 건드렸다.
‘길드장이 저 녀석을 마주치게 되면 반드시 피해를 입히라고 했는데.’
자신들도 활이라든지 마법 같은 공격 수단이 있었지만, 저런 녀석을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그레이트 웜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며 땅과 나무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
수혁이 저 거대한 벌레를 길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동안 들었기 때문에, 드미트리로서도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휴우, 어, 어쨌든 저 녀석도 같은 인간이니 우리를 죽여서 득 볼 것은 없겠지.’
살기 스텟의 존재가 어느 정도 드미트리에게 안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 수혁 씨! 큰 소리가 나서 와봤는데 대체 무슨···. 어, 엇!”
오정태의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미트리는 소리가 난 쪽에서 초반에 말썽을 일으켰던 부녀 중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
딸 쪽이라면 몰라도, 아버지 쪽은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누구든지 사살한 쪽은 살기 스텟이 오를 테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의 보상이 약속된 상태.
다만 당장 눈앞에 위험해 보이는 녀석이 있었으므로, 드미트리는 탐험대에게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릴 생각이었다.
“모두들 일단 무기 집어넣고 서서히 뒤로 되돌아 가···.”
쌔애액— 퍽!
“헉···.”
드미트리는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하고 말았다.
누군가, 자신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오정태에게 화살을 날리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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