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65화 (65/78)

부녀의 정 (1)

오정태는 식겁했다.

사실, 화살 하나가 눈앞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스쳐 뒤에 있는 나무에 박힌다면, 오정태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반응할 터였다.

“허, 허억…!”

수혁의 인상이 날카롭게 변했다.

비록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대놓고 화살을 날린다는 건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만둬라!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 누가 감히 멋대로 허락도 없이 화살을 날리는….”

쌔애액— 퍽!

드미트리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자신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리도 제멋대로 구는 것인가 싶었다.

뒤돌아보니, 원래부터 블리스 길드원이 아니었던 파티원 한 명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활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부터 미션 포인트가 턱없이 부족하니 어쩌니 하더니, 결국 이번 미션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모양.

그나마 다행이랄까, 화살이 적중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드미트리의 등에는 땀이 흥건했다.

‘젠장, 머저리 새끼! 아무리 미션 포인트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수혁은 이미 전투태세에 들어간 듯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낭패를 느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싸우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기는 게 목적인 게 아니라, 상대방의 실력을 확인하고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인 것이다.

어차피 모험대에서 블리스 길드원은 자신과 또 한 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이 미션에서의 소모품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참에 저쪽의 실력이란 것을 확인해두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한편, 수혁 역시도 감히 자신의 존재를 앞에 두고서 저런 식으로 뻔뻔하게 나오는 녀석들을 가만히 봐주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오정태를 자신의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

드미트리는 약간의 고민 후, 수신호를 통해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물론 자신은 슬쩍 뒤로 빠지면서.

“파이어 볼!”

“더블 샷!”

근접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나서서 원거리 공격을 하는 마법 유저와 궁수 계열 플레이어로 향하는 경로를 차단하고, 그 뒤에서 마법과 화살 공격이 이루어졌다.

몇 개인가의 마법과 스킬들이 수혁을 향해 쏟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실상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다. 오정태의 사살에 눈이 먼 플레이어들이 우선적으로 오정태에게 마법과 화살을 날렸던 것이다.

“허, 헉!”

당황한 오정태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미트리는 머리를 싸쥐었다.

아직 미션이 시작한 지 이틀 정도밖에 안 되긴 했지만, 여전히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굳이 이 녀석을 도와줘야 하나.’

사실, 굳이 도와야 할 필요도 의리도 수혁에게는 없었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이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굳이 말하자면 자신 역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자신이 옆에 있는데 다짜고짜 공격을 날린다는 것 자체가 수혁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수혁은 단숨에 오정태의 앞으로 몸을 날려, 화살은 쳐내고 마법은 몸으로 막아냈다.

퍼엉!

파이어볼이 터지며 커다란 굉음을 퍼뜨렸다.

아무리 마법저항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연기가 그치고 나온 수혁의 몸에는 거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수혁의 마법 저항은 거의 250에 육박하는 정도. B등급의 스텟을 가진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B등급 중급까지의 마법이라도 무난하게 버텨내는 수준이니, C등급의 법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버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무, 뭣…! 어, 어떻게 저런…!”

드미트리는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사실, 싸우기 전에만 해도 허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약간은 있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마법 공격을 어떠한 방어구도 아닌 몸으로 받아내 버리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같은 등급의 물리공격과 마법이 있으면 마법이 더 센 건 당연한 이치지. 그러니 다들 마법저항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 사실. 그런데 암만 그래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B등급 상급이라도 웬만해서는 상처를 입지. 적어도, 저 정도로 말끔하게 끝나는 경우는 없다.’

드미트리의 목울대가 저절로 움직였다.

‘도대체 저 녀석은 얼마나 괴물인 거냐.’

드미트리는 일단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쪽이 10명이나 되기는 해도, 저런 녀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저쪽 역시 자신들을 죽이거나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살기 스텟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자신들의 팔다리를 모조리 잘라 놓기만 해도 난처해지는 쪽은 자신들 쪽이다.

애초에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 자신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미션을 수행하면 되니, 지금은 얌전히 돌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다.

드미트리는 조용히 수신호를 통해 퇴각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아빠아!”

오정태의 딸, 오유진이었다.

오정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제일 나와서는 안 되는 타이밍에 나온 것이니까.

“오, 오면 안 돼!”

사실, 오유진에게는 특별히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니 오유진이 나타나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드미트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전 멋대로 오정태에게 화살을 날렸던 궁수의 손에서 화살이 튀어 나갔다.

스스로 쏘고서도 믿기지 않는 듯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씨이익— 퍽!

“꺄아악!”

소녀의 허벅지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드미트리는 당황해서 ‘잠깐!’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수혁이 자신들 틈새에 파고 들어와 있었다.

푸슉!

“커, 커헉…!”

드미트리는 자신의 등 뒤, 새빨갛게 솟구쳐 오르는 선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녀에게 화살을 날린 궁수의 목에 박힌 나이프의 틈 사이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어린 소녀한테 다짜고짜 화살부터 날리는 건 조금 아니지. 응?”

수혁이 나이프를 비틀었다. 그러자 뿜어져 나오는 피의 세기가 더욱 강해졌다.

모두가 수혁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뒤집어쓴 채 눈을 빛내는 수혁의 모습은 정말이지 악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드미트리는 무심코 조금 전에 일어난 것이 ‘살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렇게 망설임 없이 살인을 저지르다니…. 저 녀석은 살기 스텟이 늘어나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

드미트리는 떨리는 눈빛으로 수혁의 눈을 쳐다보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 누, 눈빛이… 붉어지지 않았어?’

쏟아지는 붉은 피 때문에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봐도 수혁의 눈은 붉지 않다.

드미트리는 멍하니 그런 수혁을 쳐다볼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모두들 수혁으로부터 뿔뿔이 흩어지는 중이었다.

수혁이 나이프를 꽂은 녀석은 어느새 쓰러져 있었지만, 수혁은 굳이 그들을 쫓지는 않았다.

그들을 죽였을 경우 소모될 미션 포인트가 아까웠기 때문.

그러나 드미트리는, 그런 수혁이 움직이지 않는 것마저 강자의 여유로서 받아들였다.

수혁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간다.

멍하니 서 있다 눈빛이 마주친 드미트리가 화들짝 놀란다.

“야, 가서 너네 대장한테 전해라.”

“네, 네? 뭐, 뭐라고….”

“나대지 말고 각자 할 일이나 하자고. 너희는 너희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뭐, 싫으면 말라고 해. 나는 걸어오는 싸움은 안 피하는 타입이니까, 싸우고 싶으면 너희들 마음대로 해줄게. 근데 그렇게 되면 아마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어빌리티는 전부 내가 가지게 될 거야.”

“…….”

피를 뒤집어쓴 수혁은 정말이지 악귀 같았다.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일 용기조차 없어 주춤거리다, 그대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한편, 오정태는 자신의 딸의 허벅지에 화살이 꽂히자마자 그녀에게 달려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유, 유진아! 아이고, 이를 어째….”

“으으….”

유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녀석들을 쫓아 보낸 수혁이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수혁으로서도 딱히 별다른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힐링 스킬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포션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수, 수혁 씨, 이, 이거. 이, 이이, 이거.”

오정태가, 차마 염치는 있는지 도와달라는 말은 못 하고서 딸을 가리키며 어버버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혁은 들으라는 듯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가 죽어가는데 놔두는 것도 좀 그렇고. 이 주변에 약초 같은 게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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