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정 (2)
다행히도 약초 같은 것을 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주변에 작게 뻗어 있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보물 상자들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이 무인도에서 이것을 찾는 것이 몹시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운이 좋다면 단순히 주변을 스윽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것들을 찾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오랫동안 찾아야 발견할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대부분의 보물 상자의 경우 군데군데 눈에 띌락 말락 한 곳에 있어서 플레이어들에게 착각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주곤 했다.
아무튼, 이러한 보물 상자들에서는 무인도에서 쓸 수 있는 각종 물자나 소모품, 때로는 식량 같은 것이 나오기도 하므로 초반에 플레이어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곤 했다.
조금 전의 탐험대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보물 상자들을 탐색하기 위한 것.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나름대로 힘든 작업이지만, 노란 화살표가 보이는 수혁에게는 간단했다.
커다란 이파리 밑에 반쯤 파묻힌 보물 상자라든지, 보통이라면 쳐다보지 않을 나무 위에 얹혀 있는 보물 상자들을 발견해낸다.
다양한 아이템들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미션이라면 그냥 줘도 안 쓸 갑옷이나 장갑, 망치나 삽 등의 연장, 1인분의 1일 치 보존 식량, 그리고 마침내 처음부터 목표로 하고 있던 상처 치료용 약초까지!
“이렇게 놓고 보니 생각보다 식량이 넘쳐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
그래도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기는 했다.
아무튼, 약초를 들고서 오두막으로 돌아가니, 오정태가 쓰러진 자신의 딸을 보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도, 돌아오셨습니까.”
수혁은 말없이 가쁜 숨을 내쉬는 오유진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펴보았다.
화살은 이미 제거한 상태지만, 아무래도 관통상인만큼 저절로는 낫지 않는다.
이전 다리온에게서 얻었던 것만큼 비싼 포션이 있다면 간단히 낫게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없는 지금은 약초를 붙여 서서히 낫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혁은 구해온 약초를 오정태에게 건네주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이제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수혁은 오두막 앞마당에 놓인 고깃덩어리로 향했다.
나이프로 비늘 달린 가죽 부분을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하아, 이건 또 언제 다 작업하지.’
무두질 스킬과 재봉 스킬이 없는 수혁에게 있어서 이것을 따로 떼어내어 또다시 입을 만한 사이즈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수혁은 고깃덩어리 앞에 서서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고 딸을 간병하며 그것을 지켜보던 오정태가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그 가죽을 벗기시려고…?”
“일단은 그렇다만. 혹시 잘할 수 있나?”
“예, 예. 사실은 이전에 다른 파티 밑에서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아, 그, 그것도 따지고 보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직업과 관련이 있기는 한데….”
이 서바이벌 월드에도 역시나 생산직이라는 건 존재했다.
생산직이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 생산 계열의 어빌리티를 들고서 미션을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므로, 해당 생산직의 일을 계속 한 결과 관련 스킬이 생기면 그것이 생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 됐군. 그러면 일단 맡겨 보지.”
“예. 저, 저기.”
“응?”
수혁은 멈춰 선 채 오정태를 쳐다보았다.
오정태는 약간 머뭇거리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 미션에 걸려서 많이 절망했던 게 사실입니다. 다른 곳의 사람들은 아무도 도와주지를 않아서 이번에야말로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제 딸만은…. 어떻게든 살려야 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수혁 씨는…. 그…. 제 딸을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것 같지도 않고….”
수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수혁에게 가까운 관계의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저런 어린애한테 관심을 보일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수혁에게는, 이들의 존재가 그리 크지 않은 상태였다.
오두막 영역에 거두어준 상태이기는 하나, 이들이 있는 곳은 위치로 따지자면 오두막의 바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 때는 낮은 천막 밑에서 간신히 자는 정도이고, 그나마도 오두막에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은 막아놓은 상태가 된다.
이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이 이들을 거둬들이는 형태이긴 해도, 어떻게 보면 남남이나 다름없는 생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감사를 받는다면, 뭐. 글쎄.
“딸이 그렇게나 소중하다는 건가?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만큼.”
수혁이 나이프를 건네며 묻자, 오정태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네. 자식은 미래니까요. 저는 죽어도 상관이 없지만 제 딸만은 어떻게 해서든….”
“…….”
수혁은 그런 그를 지나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운 침대에 누운 오유진은 열 때문인지 헛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엄마. 안 돼…. 안 돼….”
그러다가 눈을 뜬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수혁과 눈을 마주쳤다.
“아, 아빠는요?”
“밖에서 가죽을 벗기고 있다만.”
“그, 그렇군요.”
오유진은 계속 뭔가 불안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혁은 이 소녀가 어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약간의 경계심 같은 것을 보였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저, 저기. 혹시나 저희 아버지가 수혁 오빠에게 뭔가 폐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았지요? 갑자기 길에서 넘어진다든지.”
“그런 일은 없었어.”
“그, 그러면 다행이지만요.”
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떨구었다.
뭐지.
뭔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 오정태라는 자가 자신을 노렸을 리는 없었다. 만약에 오정태가 자신을 노렸다면, 자신의 육감이 발동해서 미리 알아챘을 테니까.
하지만 부녀 사이의 관계에, 수혁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기에는 충분한 반응이었다.
유진이 다시 고개를 들어 수혁에게 말했다.
“저, 저기.”
“또 뭐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진은 창문 바깥에서 고깃덩어리를 썰고 있는 오정태 쪽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수혁 역시 그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다만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할 뿐이었다.
***
한편, 르본이 묵고 있는 천막으로 돌아간 드미트리는 르본에게 참담한 보고를 올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 하나 입히지도 못하고 뿔뿔이 도망쳐 왔다는 거냐?”
“며, 면목 없습니다. 설마 그 정도로 마력 저항이 높을 것이라고는….”
르본은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손톱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손톱을 손질하는 손의 움직임이 조금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을, 드미트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르본 길드장의 진짜 강함은 어느 정도인 걸까.
길드 내에서도 그의 강함에 대한 이야기는 돌아다녔지만, 그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의 강함이 적어도 A등급 이상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바위를 주먹의 힘만으로 부쉈다든지, B등급의 아바레카 경비대들을 물리치고 도망쳐 나왔다든지, 하여간 엄청난 몬스터들을 쓰러뜨렸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아직 그러한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드미트리가 길드에 합류하고 난 뒤에 수행한 미션은 전부 르본이 나설 필요조차 없는 미션들뿐이었고, 따라서 그가 본 실력을 내비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스테이터스 창을 통과시켜 정보를 알아내면 될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등급이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굉장한 실례인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눈앞의 길드장에 대한 정보라면, 만약 그가 그러한 기척을 눈치챘을 때 도대체 어느 정도의 분노가 쏟아질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흐음…. 그래. 마력저항도 그리 높고, 민첩성도 상당하다.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
똑— 똑— 하는 손톱 깎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드미트리가 거슬린다고까지 생각할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마침내 르본이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이 아마도 그 근처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지. 두 부녀 역시도.”
“네, 네.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왜 그 부녀를 거두어준 걸까.”
“그, 그건….”
손톱을 깎는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르본은 수혁이 자신과 같은 부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서 그 쓸모없는 부녀를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두 부녀를 감시해라. 기회를 봐서 납치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고. 그런다고 해서 인질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패막이 정도는 되겠지.”
“아,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그 주변에 아이들을 심어 놓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뭐지?”
드미트리는 순간 수혁의 눈이 붉어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말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살인을 하고도 눈이 붉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한 능력이었다.
그런 능력이 이 서바이벌 월드에 존재할 리가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드미트리는 깊이 인사하고서 천막을 나섰다.
그렇게 르본이 혼자가 되고 나서도 손톱을 깎는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똑—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손톱 깎는 소리가 끊기고 말았다.
“큭, 젠장!”
르본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손톱깎이의 방향이 심하게 빗나가, 손톱이 까져 피가 철철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
르본은 아무렇게나 손톱깎이를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손과 다리는 떨리는 채였다.
그런 그의 시선이, 일순 한쪽에 모인 미션 스톤들로 가서 멈춰버렸다.
‘그래, 아직은 아니야. 조금 더 지켜보고, 돌아가는 길을 뚫어내고. 모든 건 그다음이야.’
르본은 차분하게 심호흡을 마쳤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멎게 하기 위해 포션을 놔두었던 구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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