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정 (3)
글라도스의 가죽으로부터 수혁이 걸칠 만한 것을 만드는 작업은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부분은 오정태의 손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그동안 수혁이 오정태의 작업을 중간중간 감시했기 때문에 수혁이 원하는 타입의 겉옷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글라도스의 외투>
등급 – B
희귀도 – 희귀
물리저항 – 145
마법저항 – 126
화염저항 – 750
옵션 – 화염 방어막: 10초당 5의 마력을 소모하여 750의 1.5배에 달하는 화염 저항 효과가 있는 방어막을 형성한다. 패시브 효과.
설명 – 용암에서도 헤엄칠 수 있는 중형 공룡 글라도스의 외피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외투. 웬만한 화염 속성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겉보기에는 바느질도 들쭉날쭉하고 가죽의 질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오정태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해도, 전문가 수준은 아니다. 그러한 수준의 생산직 플레이어는 대형 길드 정도에나 존재할 정도였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만약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재봉사가 이 가죽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A등급 중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갖춘 물건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생각보다는 좋은 물건이 만들어졌어.’
좋은 장비이기는 하지만, 화염 방어막이라는 옵션만으로는 길게 보고 사용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어디까지나 당장에 사용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비라는 평을 내리기에 적합할 듯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 정리하는 게 좋겠지.”
일단 얻어야 하는 아이템은 얻은 상태였다.
수혁이 현재 향하려고 하는 것은, 섬 중앙의 화산 밑에 존재하는 고대 유적.
그러나 이 유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적을 활성화하기 위한 에르 스톤이라는 돌멩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에르 스톤이라는 돌은, 화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의 식인 원주민들이 차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것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물리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 외에도 재미있는 사실이 더 있지.’
에르 스톤은, 이 미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손쉬운 수단 중의 하나였다.
단순히 사용하기만 하면 이 미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마법적인 기능이 넣어져 있다는 설정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을 통해 이 섬을 탈출하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지만, 일정한 기한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거나 하는 조건이 존재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단지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즉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의 존재는, 누구라도 탐을 낼 만했다.
따라서 이러한 에르 스톤을 얻기 위해 다른 플레이어들이 원주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슬슬 장비들을 갖출 시점이 되었지. 던전을 공략하고, 완성된 장비나 소재를 얻고, 이것들을 파티원에게 분배하고. 본격적으로 미션 스톤을 찾아 나서거나 탈출할 방법을 찾아 나설 시점이야.’
지금까지가 미션에서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중반부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수혁 역시도 그동안은 주변을 돌면서 미션 스톤과 보물 상자를 찾아내거나, 발현을 이용하여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올렸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의 계획에 따르면, 더 이상 오두막에 돌아올 일은 없다.
부녀와도 이제는 작별을 나눌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들을 데리고 있었어도 그다지 손해가 아니었으므로 데리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을 반드시 데리고 갈 필요는 없는 셈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수혁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 안전한 오두막의 영역 안에서 지내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답이 될 것이다.
“가, 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뭐, 오두막의 방위 기능은 잘 작동할 테니 지내는 데 문제는 없을 거고.”
“하, 하지만 그래서는 저희가 이곳에서 나갈 방법이….”
수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러나 오정태는 갑자기 다급해진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그러고 보면 수혁 씨도 혼자서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리면 궂은일이라도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테니 이왕이면 저희를 곁에 데려가시는 것도…. 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얌전히 뒤만 잘 따라다닐 테니 부디 한 번만 맡겨주시면…. 헤, 헤헤.”
“필요 없다만.”
그러자 오정태는 난처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흥분한 것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제가 맨손으로 똥도 헤집고 가죽도 썰고 요리도 하고 해드릴 만한 건 다 해드렸는데…. 그, 그런데도 이용만 해먹고 버리겠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수혁은 입가가 슬쩍 올라가고 말았다.
머릿속에서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명언이 재생되고 있었다. 몇 번인가 호의를 베푸니, 그것이 자신의 권리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수혁 역시도 그가 자신에게 해준 것에 대해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분명히 받은 것이 있었고, 수혁은 도움을 받았다. 그 사실 자체를 수혁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가 자신에게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전제가 무엇이던가?
자신이 그를 자신의 오두막에 머물게 해주었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이곳은 서바이벌 월드다. 지금까지는 방해되지 않았기에 데리고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너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반드시 방해가 돼. 그러니 더는 데리고 가는 게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보는 게 좋아.”
“그, 그런….”
순간, 수혁은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육감의 작용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결국, 이렇게 되어서 본색을 드러내려는 건가, 하고 수혁이 생각할 때였다.
“그만두세요, 아빠!”
“……!”
당황한 오정태가 뒤를 쳐다보았다.
오유진이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저한테 엄마까지 죽이게 했으면 됐잖아요! 저 때문이라는 이유로 더는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지 말아요!”
“…….”
오정태의 품에서 작은 향수병이 떨어졌다.
그것을 본 수혁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황급히 허리띠에 걸린 주머니를 뒤졌지만, 자신의 향수병은 있었다. 하긴, 조금 전에 챙길 물건은 제대로 확인했으니 당연했다.
아무래도 다른 곳의 보물 상자에서 자신의 것과는 다른 향수병을 구한 것인지도 몰랐다. 오정태 역시도 이 주변의 보물 상자들을 찾으러 가까운 곳을 돌아다니곤 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피부를 녹이는 용액에 대한 것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몰랐다.
“…이게 대체 뭐지?”
“그, 그것이…. 저….”
오정태는 난처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친다.
하지만 수혁은 이미 그에게서 완전히 마음을 돌린 상태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해를 입혀서 정보를 흥정한다든지 하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피부를 녹이는 용액이 이런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의 눈에 분사된다면 자신을 무력화시킬 수 있겠다는 속셈이었겠지.
‘물론 그랬다고 해도 대응할 시간은 충분했어. 녀석은 모르겠지만, 이쪽에는 육감 스텟이 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지, 지금.’
자신이 위험에 처할 뻔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거둬줬더니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육감이라는 스텟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식으로 등 뒤에서 기습을 당하는 것을 웬만하면 막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 되도록 중립적으로 대응하려 했던 수혁이지만,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해야 할지도 몰랐다. 기껏 도와줬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려고 하다니.
“아빤 언제나 그랬어요. 말로는 제가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그걸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뒤통수치고, 속이고, 엄마까지 제 손으로 죽이게 하고!”
“아, 아냐. 나는 그저 너를 살리기 위해서…. 튜토리얼에서 반드시 하나의 생명체를 죽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너를 살리기 위해….”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이상 변명의 여지는 없을 듯했다.
그리고는 오정태의 숨을 끊기 위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 나를 죽여도 상관없소. 하지만 그쪽이 걸치고 있는 그 옷은…! 그 옷은 내가 만들었지 않소! 제발 내 딸만은 살려주시오. 내 딸만은…!”
수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오정태의 가슴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푸슉!
나이프는 너무나도 가볍게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의 눈이 잠깐 동안 떨리더니, 그대로 감기고 말았다.
표정은, 뜻밖에도 꽤 평온했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나서 수혁은 천천히 오유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네 아버지를 죽여서 미운가?”
유진의 눈가에는 아까부터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말에 긍정을 표한다.
수혁은 잠깐 동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유진의 손을 끌고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약속을 했으니 너만은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자, 따라와라.”
유진은 흐르는 눈물을 한쪽 팔로 닦으며 수혁의 뒤를 따랐다.
뒤에는, 딸을 지나치게 사랑했던 아버지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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