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 스톤 (1)
수혁은 유진의 손을 이끌고서 섬의 중앙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몬스터들이 습격해 왔지만, 수혁은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수혁은 유진과 한마디의 말조차 나누지 않았다.
유진 역시도 말없이 수혁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도착했다.
‘노란 화살표는…. 저쪽인가.’
화산의 중턱, 여기저기 땅이 갈라지고 깨져 위험하게 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뜨겁게 끓는 용암이 펼쳐진 분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원주민의 마을은 바로 그 용암 절벽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움막이나 다름없는 집 중에서도 그나마 으리으리하게 만들어진 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단숨에 돌파해서 돌을 가져오는 것도 좋겠지만, 그전에 수혁의 눈길을 잡아끄는 광경이 있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
“앗쌀라미야 쿰!”
“으, 으아아아악!”
용암 절벽 위, 절벽으로부터 뻗은 제물대 위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씩 밀어 넣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것은, 한눈에 봐도 원주민이라고 알 수 있도록 벌거벗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밀려 떨어지고 있는 자들은….
‘C등급에 도달하지 못한 플레이어들…. 에르 스톤에 대한 걸 알고 있었던 건가. 무턱대고 이들에게 달려들다가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거군.’
수혁과 함께 근처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유진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돌렸다.
수혁은 그런 그녀를 다른 이들이 찾지 못할 만한 바위틈에 숨겨 놓은 채, 움직이지 말라고 전해두었다.
수혁은 유진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수혁이 지켜보는 사이, 또 한 명의 플레이어가 다이빙대처럼 생긴 제물대 위로 떠밀려 올라간다.
플레이어는 양팔째로 상체가 꽁꽁 묶여 있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서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물대 앞에는 키가 2.5m는 넘어 보이는 원주민 전사가 터질 듯한 가슴 근육을 자랑하며 플레이어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쿰!”
플레이어는 절박한 심정으로 원주민 전사에게 달려든다.
“으아아아아아!!”
“아쿰!”
퍽!
아쿰의 배치기 한 방에, 플레이어 남성은 제물대 위로 굴러 넘어진다.
제물대 자체가 폭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기에, 남성은 간신히 제물대 가장자리에 몸을 걸치는 정도에서 멈춰 있었다.
“아, 안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다른 녀석들 몰래 미션 스톤을 10개나 모았는데…. 아이템도 잘 챙겨뒀는데….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는…!”
“아—쿰!”
원주민 전사 아쿰이 발을 크게 굴렀다.
그러자 제물대가 요란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 위에서 간신히 몸을 얹고 있던 남성은, 그대로 제물대 밑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아아아악!!!”
아쿰과 원주민들이 그런 그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리고 그 뒤로, 아직 2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포박당하고 감시 당하는 가운데 그 모습을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틈에 에르 스톤을 탈취하고서 빠져나가면 되는 거지.’
원주민들이 제물을 바치는 데 열을 올리는 지금이 오히려 침투하는데 적당한 때인지도 몰랐다.
수혁은 용암 절벽 지역에서 벗어나 마을 둘레를 빙 돌아 목표의 움막으로 향했다.
제물을 바치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경비로 보이는 원주민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수혁은 근처 적당한 곳에 글라도스의 외투를 벗어 놓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글라도스의 외투가 상당히 두꺼운 편이기에, 은밀하게 움직이는 데는 꽤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시작해볼까.’
수혁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식인종인 이들이기에, 같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살기 스텟은 오르지 않는다.
수혁은 마을 외곽을 돌아다니는 원주민 중 한 명에게 접근해, 식스 오브 듀나한을 발동시켰다.
“워숍마?!”
“알랄라! 알랄라 차!”
원주민들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게끔 재빨리 멱을 따는 것이 좋았겠지만, 은밀 행동 관련 스킬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다른 원주민들이 찾아오기 전에 이들을 전부 해치우면 그만이니까!
‘1타, 2타, 3타, 그리고 4타까지만 하면 충분하겠지.’
몸놀림이 66% 증가하는 효과.
나이프가 휘둘러질 때마다, 체력과 마력이 쑥쑥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4타를 적중시킴으로써 소모된 체력과 마력을 어느 정도는 채울 수 있었지만, 남아 있는 체력과 마력은 약 50%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그 정도로도 수혁이 이들을 모두 물리치기에는 충분한 수치였다.
“크아악!”
“쌈발디발로마!”
수혁의 움직임이 바람을 가르며 이어진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나이프 한 자루뿐.
평소에 사용하던 대검이라는 무기와는 달리, 무척이나 가벼운 무기.
한 방으로 적을 도륙하는 호쾌함은 찾을 수 없고, 약한 적이라도 몇 번이고 휘둘러야 겨우 죽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프가 그만큼 약한 무기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3연 베기!”
샤샤샥—
그동안 미션을 수행하며 얻어낸 기본 스킬 중의 하나.
좌우로 휘둘러지는 단검의 움직임에 따라, 창을 든 원주민의 몸에 상처 자국이 새겨진다.
다른 방향에서 또 다른 원주민이 달려들지만, 빨라진 수혁은 창으로 찌르는 공격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피해 간단하게 상대방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목 부근부터 시작해 허리까지를 수많은 검격으로 잘게 잘게 난자해 걸레 짝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바로 이것이야말로, 대검과는 다른 나이프만의 특성이었다.
한 방으로 적을 끝내지 못한다면, 끝낼 때까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무너뜨릴 각오로 끊임없이 단검을 휘두른다.
‘시간이 없어. 그 아쿰 아쿰거리는 녀석, 그리 약해 보이는 녀석은 아니던데. 나연이 말하기로도 꽤 강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녀석이 오기 전에 빨리 훔쳐서 가는 게 좋겠어.’
수혁은 앞을 가로막는 경비병들을 지나,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움막으로 향했다.
움막 앞에도 당연히 원주민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수혁은 그들이 따라오기조차 불가능한 현란한 움직임으로 그들을 물리치고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수혁의 코를 찔렀다.
‘에르 스톤은 어디지.’
저 앞, 뭔가 소중한 것을 보관하는 듯한 제단 위에, 푸른색의 돌멩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누구라도 저것이야말로 소중하디소중한 에르 스톤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수혁은 노란 화살표가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저게 에르 스톤?’
구석에 처박혀 있는 투박한 돌덩어리.
급히 달려가 주워들어 정보를 확인하자, 에르 스톤이라는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에르 스톤>
등급 – C
희귀도 – 희귀
사용 횟수 – 5/5
설명 – 일라오 섬에 존재하는 특별한 돌. 사용하면 그 즉시 무인도를 빠져나와 가까운 대륙으로 이동한다. 단, 사용 횟수를 모두 채울 경우 돌은 파괴된다.
역시나 이것이 에르 스톤인 모양이었다.
수혁은 에르 스톤을 챙기자마자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움막 바깥으로 나섰다.
“아쿰!”
쿠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원주민 전사 아쿰이 수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칫, 수혁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이곳에서는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녀석 중 1순위였지만, 이렇게 마주치게 된 이상은 어쩔 수도 없었다.
수혁은 자세를 낮춘 채 나이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도망쳐야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식스 오브 듀나한의 몸놀림 증가 효과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아쿰! 아아쿰!”
뒤에서 거대한 몽둥이를 쳐든 아쿰이 따라왔지만, 수혁을 따라잡기에는 속도가 모자랐다.
애초에 원하던 아이템까지 얻은 수혁이 굳이 녀석과 싸워줄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수혁은 외투를 숨겨놓은 곳에서 외투를 주워 유진이 숨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혁이 유진에게 거의 도착했을 때쯤에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원주민들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서, 아쿰도 더 이상은 수혁을 좇아오지 않았다.
분명, 손은 쓸 수 없어도 마법이나 스킬이 봉인된 것은 아니니 아쿰이 사라진 사이에 포박을 푼 것이리라고 추측되었다.
“자, 받아라.”
“이, 이건 뭐죠?”
“이걸 사용하면 이 미션에서 곧바로 빠져나가는 게 가능하다. 이것으로 너는 이 섬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
유진은 수혁의 눈을 쳐다보았다.
어린애답게 똘망똘망한 눈빛이었다.
소녀는 한동안 수혁을 바라본 뒤, 에르 스톤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에르 스톤을 사용했다.
잠시 뒤, 소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에르 스톤이 땅에 떨어졌다.
수혁은 그 에르 스톤을 집어 들었다.
“하아, 지금 내가 뭐 하자는 건지.”
근처에서 플레이어들과 원주민이 싸우는 함성이 언제까지나 수혁의 귀를 건드리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