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 스톤 (2)
한편, 그때까지 수혁 일행을 감시하고 있던 블리스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수혁이 오두막을 나선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르본에게 보고했다.
이야기를 들은 르본은 오두막에 남아 있었다고 하는 오정태의 시체와 수혁이 향한 방향에 대한 것을 듣고서 역시나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흐흐흐, 아버지를 죽이고 딸만을 데려가다니, 역시 그 녀석도 나처…. 크, 크흠. 아니지. 아무튼, 그 녀석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되면 다시 알리도록.”
수혁이 화산 중턱의 원주민 마을로 향하는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는, 꽤나 놀란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그곳으로 향했다고? 그곳이라면 꽤 강한 원주민들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그리고 단지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에르 스톤이 위치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흐음,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가.”
“예. 저희 파티에 이번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에게서 공통으로 그런 이야기가 나돌더군요.”
“흐음….”
드미트리의 보고를 받은 르본은 잠깐 동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녀석을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껄끄럽지만, 에르 스톤이라는 물건은 매우 탐이 났다.
현재, 르본의 방에 모여 있는 미션 스톤의 수는 모두 해서 200개.
미션 스톤을 얻는 족족 르본이 있는 이곳에 모았기 때문에 나온 숫자이며, 이후 이것을 각자의 공에 맞게 분배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원래라면 500개 정도는 모은 뒤에 행동하려고 했건만.’
어쨌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 에르 스톤이라는 건 절대로 빼앗길 수 없었다.
내심으로는, 그 녀석이 강해 봤자 또 얼마나 강하겠나. 아무리 강하더라도 자신들은 쪽수가 있는데 살기 스텟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좋아. 이곳 근거지를 지킬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겨두고 그 원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그렇게 해서 블리스 길드 파티의 인원 약 40명이 에르 스톤을 얻기 위해 원주민의 구역으로 출발했다.
수혁이 막 원주민들의 마을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
에르 스톤을 얻고 오유진을 미션 바깥으로 돌려보낸 수혁은 유적을 발동시키기 위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온통 벌거벗은 나무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리고 그 밑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 분위기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흐음, 어디선가 이쪽으로 적의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냥 기분 탓이면 좋겠지만….’
예전이라면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넘겼을 만한 미묘한 느낌도, 지금에 와서는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육감 스텟에 의해 날카로워진 감이, 수혁에게 위기를 알려주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수혁은 일단 돌이켜보았다.
지금에 와서 자신에게 적의를 보낼 존재라고 해 봐야, 사실은 하나의 세력밖에는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무인도에 남아 있는 세력이 블리스 길드의 파티와 자신밖에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도 이쪽을 감시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었단 말이지.’
수혁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수혁에게 파악을 당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블리스 길드의 파티가 아닌 다른 쪽의 파티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했었지만, 조금 전 원주민들에게 잡힌 것이 그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금 이 적의는 블리스 길드로부터 오는 것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사실, 그들과 반드시 싸워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몰랐다.
이대로 화산을 내려가 유적을 작동시키고 나면, 자신은 곧바로 어떤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그 계획이 실행되고 나면, 이들을 볼 이유는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이들을 내버려두었다가 발목을 잡히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일단은 숨어서 기다려볼까. 녀석들이 이쪽을 지나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는 걸로 하자.’
수혁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적당히 숨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하나의 거대한 나무가, 말라비틀어지기는 했어도 밑둥치가 파여 수혁이 숨을 만한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수혁은 그 안에 숨기로 했다.
수혁이 육감이 아니라 직접 인기척을 느낀 것은 생각보다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육감이라는 게 꽤 멀리에서도 작용하는 건가 본데….’
수혁은 나무 안에 몸을 숨긴 채 멀리에서 다가오는 인원들을 쳐다보았다.
약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몇 명의 인솔 하에 줄을 맞추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수혁에게도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저번에 길드장에게 대들었던 그 녀석과 싸우러 간다는 모양이던데. 이길 수 있을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쪽은 한 명이고 이쪽은 여럿인데. 살기 스텟 때문에라도 이쪽이 훨씬 유리하지.”
“하긴, 그러네. 그래도 실력 차가 너무 나면 팔다리만 잘리고 살아남을 수도 있다고 하니….”
“그래도 그때와는 다르게 이쪽도 장비를 충분히 갖췄으니, 질 리가 없어.”
역시나. 자신을 노리고서 이곳으로 온 모양이었다. 저들의 감시가 사라진 시점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에르 스톤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쫓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에르 스톤은 수혁의 손안에 들어 있는 상태!
‘탐지 마법 같은 건…. 없겠지. 아니, 없어야 할 텐데.’
어둠 내림 망토의 기척 감지 차단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탐지 마법이라도 걸린다면 수혁은 그것을 피할 수단이 없었다.
물론 걸린다고 해서 살아날 수 없지는 않겠지만, 귀찮아질 것이 분명하니까.
“대장님, 주변에서 B급 이상의 등급을 가진 자의 반응이….”
‘칫.’
아무래도 귀찮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모양이었다.
한편, 탐지 마법사의 보고를 받은 르본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다! 원주민들의 마을로 향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 남아 있는 건지 모르겠군.’
“흐흐흐, 잘 됐다. 우선은 녀석을 기습하는 걸로 하지. 에르 스톤은 천천히 얻는 편이 좋겠어.”
수혁은 이미 에르 스톤을 얻은 상태였지만, 설마 벌써 에르 스톤을 얻고 돌아왔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르본이었다.
원래라면 어린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데 혼자라는 점이 조금 이상했지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죽였을 수도 있고,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한편, 그런 가운데에서 드미트리는 어딘가 모르게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수혁처럼 육감 스텟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건만, 뭔가가 불안한 그런 느낌.
‘뭐지. 느낌이 좋지가 않은데….’
르본 길드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의 파티원을 독려하고 있었다.
“자, 녀석을 잡는 자에게는 미션 스톤 50개를 추가로 분배하도록 하지! 크하하하!”
“미션 스톤 50개? 그거라면 꽤….”
미션 스톤 50개. 즉, 미션 포인트 50에 해당하는 미션 스톤이었다.
일반 미션 2개에서 2개 반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플레이어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미션을 선택하는데도 미션 포인트가 소모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꺼번에 50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효용 가치가 그보다도 더 높았다.
플레이어들에게 의욕이 붙기 시작했다.
‘그, 그래. 아무리 그래도 살기 스텟을 무효화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분명히 별일 없을 거야. 무조건 쪽수가 최고지.’
드미트리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르본이 모두를 이끌고 수혁이 숨어 있는 나무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안에서 수혁이 걸어 나왔다.
“휘유, 이런 식으로 이쪽을 맞아주실 줄이야.”
그의 등장은,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이상한 것이었다.
“헹, 간이 부었군. 이쪽은 그동안 여러 장비를 얻고 강해진 상태다. 그런데 그쪽은….”
르본은 수혁의 장비를 훑어보다가, 기가 찬다는 듯한 헛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여기저기를 탐험하며 각종 무기와 저항력을 올려주는 옷들을 찾아낸 자신들과는 달리, 수혁은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거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르본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큭큭큭, 아직도 그때하고 그대로라니. 이건 뭐, 무슨 장난을 하자는 건지.”
르본이 웃음을 터뜨리자, 부하들 역시 따라서 웃음을 터뜨린다.
굳이 르본의 비웃음이 아니더라도, 수혁의 차림은 비웃음을 받을 만큼 초라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유언은 그걸로 끝인 건가?”
“뭐, 뭣.”
수혁의 비아냥에, 르본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어째서 그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
‘이상하다. 뭔가가 이상해. 왜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여유로울 수가 있는 거지?’
드미트리의 의문을 뒤로하고서, 르본은 수혁을 가리키며 비웃는다.
“그때와 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네 녀석이라도, 이 정도로 무장한 인원을 죽이지 않고 무력화한다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말이야!”
“그래, 그렇군. 그럴지도 모르겠어. 죽이지 않고 해치운다는 건 참으로 어렵지. 귀찮기도 하고 말이야.”
“무, 무슨….”
드미트리가 르본을 막으러 나서려 할 때였다.
수혁의 나이프가, 한 줄기의 질풍처럼 맨 앞 플레이어의 배를 꿰뚫었다.
“어…. 어?”
수혁이 깊숙하게 박아 넣은 나이프를 뽑자, 푸슉, 하고 피가 튀어 올랐다.
분명히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살기 스텟이 오른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저 태도.
그러나 어째서일까.
수혁의 눈이 붉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젠장, 설마…. 설마…. 진짜로 그게….’
드미트리가 최악의 상상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떠는 사이, 수혁은 나이프를 앞으로 내세우며 녀석들에게 말했다.
“죽이는 건, 확실히 살리는 것보다는 쉬운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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