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71화 (71/78)

세계의 진실 (1)

다른 왜소한 원주민들과는 달리 수혁이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할 정도의 거대한 키.

목에 두른 동물 뼈의 목걸이와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 같은 거대한 몽둥이.

원주민 전사 아쿰이 수혁과 마주한 채 적의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이쪽을 노린 건 아니었다지만,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줄은 몰랐는데. 분명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거야.’

수혁이 블리스 길드 파티원들을 몰살시키는 동안, 아쿰 역시도 그쪽의 플레이어들을 정리하고 내려온 것이 분명했다.

수혁은 일이 귀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원하던 것을 구했고, 방해하는 녀석들도 전부 사라졌는데, 막판에 제일 골치 아파 보이는 녀석이 나타나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일단 붙어나 보는 편이 좋으려나. 이대로 계속 쫓아오게 놔두는 것도 성가시고.’

자신감은 충분했다.

이미 A급 정도라면 몇 번이고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녀석은 맨몸에다가 갑옷조차 입고 있지 않은 상태다.

식스 오브 듀나한으로 간단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식스 오브 듀나한!’

휙—

“아쿠움!”

‘무, 무슨….’

닿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차이이긴 해도, 아쿰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빨랐고, 수혁의 나이프는 아슬아슬하게 아쿰을 맞추지 못하고 말았다.

‘젠장, 너무 방심했나!’

아쿰의 몽둥이가 내리꽂힌다.

수혁은 간신히 반응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두말할 것 없이 수혁의 실책이었다.

단 한 대도 빗나가서는 안 되는 공격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다니!

‘이렇게 된 이상은….’

“아쿰!”

수혁은 아쿰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글라도스의 겉옷을 숨겨둔 지점까지 후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허리띠의 가죽 주머니의 끈을 열었다.

제니스의 씨앗이 흘러나왔다.

쿠오오오오오!

“아…. 아쿰?”

수혁이 후퇴해서 글라도스의 겉옷을 집어 들 무렵에는, 멀리에서부터 냄새를 맡고 온 그레이트 웜이 도착해 있었다.

수혁은 재빨리 그레이트 웜의 등에 올라탔다.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전보다 훨씬 나은 솜씨였다.

“아…. 아쿰! 아쿰!”

뒤에서, 아쿰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레이트 웜은 분명 아쿰보다 훨씬 약할 테니 그냥 잡으면 그만이겠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볼 때 무언가 다른 사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그레이트 웜은 이 섬에서 신성시되는 대상 중 하나인지라 아쿰으로서도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아—쿰! 아—쿠움!”

“하하, 잘 있어라 멍청아!”

“쿠와아아아아!”

그레이트 웜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쿰은 멀어져 가는 그레이트 웜과 수혁을 쳐다보며 하릴없이 “아쿰!” 하고만 울부짖을 뿐이었다.

***

광란의 질주!

수혁은 그레이트 웜의 등에 탄 채 앞으로 나아갔다.

손에는, 중간에 주운 나뭇가지에 제니스 씨앗이 든 주머니를 매달아 낚싯대처럼 만든 것을 들었다.

이것을 그레이트 웜의 앞에 매달아서 그레이트 웜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마지막이로군.’

현재 남아 있는 노란 화살표 중에 제일 커다란 화살표.

수혁은 바로 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자신의 종착점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 와 가는 건가.’

화산의 밑부분을, 한 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그곳의 중턱에, 오래전에 잠든 비밀의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좋아, 너는 이제 가라.”

“쿠와오오오오!”

수혁이 제니스 씨앗이 든 주머니를 멀리 던지자, 그레이트 웜이 제니스 씨앗을 쫓아 사라져 갔다.

수혁은 에르 스톤을 손에 든 채 눈앞의 문을 쳐다보았다.

문의 가운데에 무언가를 꽂는 홈이 나 있었다.

수혁은 에르 스톤을 그곳에 박아 넣었다.

환한 빛과 함께 문이 열렸다.

“뭐랄까, 간단해서 좋군.”

수혁은 저번에 6개의 열쇠를 모아야 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수혁은 유적 안으로부터 후끈한 열기가 전해지는 것과, 어딘가 붉은색이 감도는 불빛이 유적 안을 비추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에 몬스터들이 있다는 것 같기는 한데…. 뭐, 잘 처리하면서 나아가면 되겠지.’

수혁은 중간중간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안으로, 안으로 나아갔다.

환하게 타오르는 불씨의 생김새를 가진 몬스터나 정령 같은 것들이 출몰하곤 했다.

다행히도 수혁이 처리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화산 속으로 계속해서 파고 내려가고 있어. 설마 이런 유적이 존재할 줄이야.’

수혁이 둘러본 바로는, 이 유적은 화산의 분화구를 둘러싸고 형성된 하나의 거대한 동굴이었다.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지하까지 뻗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저기에 보물상자들이 숨겨져 있고, 수혁은 이 보물상자들로부터 다양한 아이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수혁보다 먼저 온 이들은 이 보물상자들을 목적으로 이 유적에 찾아왔을 것이다.

‘다른 지역보다 아이템의 수준은 높군.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건 보이지가 않아.’

수혁은 계속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혁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발견했다.

‘어, 엄청난데.’

현실로 치자면 강화유리, 그중에서도 매우 강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효과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수혁이 모르는 대단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을 터였다.

투명한 벽 너머로, 이글이글 주황색의 빛을 발하는 용암이 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뭘 위해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스펙터클한 것은 사실이군. 분화구를 따라 이런 식으로 투명한 벽을 만들어놓다니….’

물론, 용암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안쪽의 모습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암 안에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덥군. 글라도스의 겉옷을 입고 있어도 땀이 날 정도니….’

재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지금 이 순간도 너무 높은 온도로 인해 외투의 방어막이 적용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수혁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나이프로 해치웠다.

“캬아아아!”

“키이이익!”

“칫, 끈질기군.”

스삿!

파이어 리자드와 라바 하운드, 플레임 골렘 같은 녀석들을 쓰러뜨렸다.

마침내 보스방의 불사조처럼 생긴 녀석까지 쓰러뜨리자, 수혁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별로 덥지 않군. 분명 연구실이라고 했던가.’

수혁의 주변에 여러 가지의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이 유적에 대한 사연과 정체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었다.

수혁은 그중 하나의 자료를 집어 들었다.

-용암룡 ‘슬레이프닐’에 대해

용암룡 슬레이프닐은 작렬하는 용암 속에서 살아가는 매우 희귀한 종류의 용이다.

날개는 달려 있지 않고, 발은 없으며, 뱀과도 같이 구불구불한 몸체를 가지고서 화산의 분화구 속에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

어떻게 용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와 같은 것은 불명.

이따금 몸을 흔드는 모습을 보이며, 그때마다 분화구 전체가 요동치는 일이 있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그것을 신의 분노라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용암 속에서 살아가는 신비한 존재이니만큼 엄청난 힘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 예상되며, 이 힘을 연구하는 것은 왕국의 국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연구 자료들을 살펴본 뒤에, 수혁의 시선은 방 안쪽에 늘어서 있는 마법 장치로 향했다.

장치는 18세기의 증기기관처럼 복잡한 파이프와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신비로운 빛을 띤 수정구가 이 장치 안에 들어가 있었다.

수혁은 망설임 없이 그 앞에 위치한 레버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녹슨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장치가 작동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되었군.’

쿠구구구구구—

땅이 떨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 이곳의 공기가 더욱 더워진다.

수혁은 재빨리 중앙의 분화구를 둘러싼 유리벽으로 달려갔다.

빠직! 빠지직!

분화구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요동에 견디지 못한 유리벽이 조금씩 금이 가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수혁은 긴장한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제 드디어 수혁이 목표했던 것을 얻기 일보 직전이었다.

***

쿠구구구구….

무인도의 중앙, 화산으로부터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숲에 사는 몬스터들은 저마다 놀라서 날뛰기 바빴고, 그것은 아직 본거지에 남아 있던 플레이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땅이 진동하고 있어.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수상함을 느낀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쉬던 것, 하던 일을 멈추고 광장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들로서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나름대로 이 미션에 대해 정보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클리어한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도망치는 게 좋지 않을까?”

“어, 어디로?”

“으음, 그건….”

“자, 잠깐만! 저기를 봐!”

한 명의 외침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옮겨졌다.

무인도의 중앙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이제서야 발견한 것이었다.

“화, 화산 폭발?!”

“젠장, 이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모두 도망쳐!”

지금까지 꾸며온 근거지를 버리고서 해안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뒤이어 거대한 굉음을 동반하여 터진 화산 폭발에 파묻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으악! 사, 살려줘!”

“뜨, 뜨거워! 아아악! 엄마!”

구름처럼 퍼져 나가는 화산재와 떨어져 내리는 화산탄에 하나씩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화산의 분화구로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주황색의 용의 머리가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크와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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