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독식자-77화 (77/78)

최후의 결전 (1)

수혁은 아가레스라는 존재를 쳐다보았다.

13번째의 마신. 지금까지 자신 앞에 메시지를 나타낸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바로 그녀의 목소리였던 모양이었다.

“13번째의 마신…. 지금까지 나한테 이 모든 환상을 보여준 게 바로 그쪽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곳은 이 세계가 만들어질 때 떨어져 나온 그분의 기억 잔재를 모아 놓은 곳. 그것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재생성되는 곳입니다. 당신이 본 것 역시 그러한 것이지요.

“그런 건가….”

수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자신은 상당한 힘을 손에 넣었다.

스텟만 따져도 2000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

굳이 따지자면 거저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수혁은 빠르게 강해졌다. 그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 온 당신은 아마도 그분을 막고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하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위해 당신은 강해졌고, 또한 그것을 피부로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강해져서 다 때려 부수면 되는 거 아냐?”

-강해지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의 신이죠. 그런 분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강함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단순한 강함 이상의 것이라….

수혁은 문득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너는…. 대체 무슨 존재지? 다른 녀석들은 그렇다 치고, 어째서 그 녀석을 없애려는 걸 돕는 거야?”

-저는 13번째의 마신 아가레스라 불리는 존재. 그 이면에 지닌 이름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진실.

진실이라.

수혁은 방금의 영상으로부터 최태현이 신에게 자신의 기억을 지워 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아마도 지금 이 순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어째서 이 세상을 부수려고 하는지에 대해.

-당신에게 지금은 잊혀진 이 기억을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분과 싸울 때 도움이 되겠지요.

아가레스에게서 하나의 빛이 나와 수혁에게 들어왔다.

수혁은 몸 안에서 무언가가 떠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아직도 의문이 많아. 녀석의 스텟이라든지, 녀석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같은 것들. 분명 많이 강해졌지만, 이 정도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는 건가?”

-그건…. 당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뜻이지?”

그 순간, 수혁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복잡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겹겹이 중첩되어 쌓인 세계의 단면들.

그 안에 살아가는 npc들과 플레이어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돌아가게 하는 기계 장치에 대한 것.

-이곳은 당신이 있었던 현실과 닮았지만, 현실과는 달리 현실로부터 파생된 세계 속의 세계. 물질로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파나 정신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설령 신과 같은 게임 실력을 갖췄던 그라고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당신 역시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 그와 같은 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터.

아가레스는 투명한 푸른 호수 같은 눈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혁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곳에서 당신이 얻은 힘을 다루기 위해 수련을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수혁이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헬레나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웅장한 기둥이 세워진 공간에서 하나의 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용은 잠들어 있었다. 거대한 머리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꼬리를 몸쪽으로 웅크린 채.

아무도 그 용의 잠을 깨워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용을 깨운다는 것은, 곧 죽음이란 것과 같으니까.

“이것으로 당신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헬레나는 그런 용을 어쩐지 애틋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스스로 인간에서 벗어나 드래곤의 모습이 되어 버린 그를.

“그가 수련을 끝마치고 나면 이곳에 올 거예요. 당신을 처치하고 나면 이 세계도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는 거겠죠. 그러면 당신과 저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영원히….”

헬레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드래곤의 거대한 입에 손을 가져다 댈 때였다.

순간, 드래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깊은 잠에 빠져든 그가 깨어날 줄 몰랐던 헬레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정한 힘이 느껴진다. 이것은….

드래곤은 커다란 눈으로 헬레나와 마주쳤다.

명색이 여신인 헬레나이지만, 이곳을 창조한 창조신이나 다름없는 그와 헬레나는 신으로서의 격 자체가 달랐다.

두려움에 떠는 헬레나를 쳐다보는 것도 잠시.

드래곤은 헬레나를 쳐다보고 묻는다.

-너는 누구지?

헬레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스스로 드래곤의 모습이 되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헬레나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었었건만.

이제 그는 헬레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흠,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어쨌든, 이 느낌은 불길하군. 원래는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잠들어 있으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지금은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좋겠어.

그 순간, 헬레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수혁이 13번째 마신이 있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분명 일반적인 공간으로부터 유리된 공간이기에 감지되지 않으리라 여겼건만…. 그리고 잠든 상태이기에 더더욱 알아챌 리는 없다고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최태현의 감지 능력은 헬레나가 예상했던 범위를 훌쩍 웃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 잠깐만요! 가면 안 돼….”

드래곤이 되어버린 최태현의 몸이 점점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번쩍거리는 빛을 내뿜던 최태현의 몸이 한순간, 헬레나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헬레나는 다급함을 느꼈다.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어서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수혁은 집중하고 있었다.

이곳,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 공간에서, 수혁은 셀 수 없이 많은 장면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장면과 마주할 때마다, 수혁에게는 새로운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의 세계는 모두 정신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이곳에서 얻는 것이 가능하지요. 집중하세요.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은 시시각각 자신에게 날아오는 환상들과 싸워나갔다.

그리고 싸울 때마다, 수혁은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수혁의 스텟은 5000대에, 라인플레임은 5강. 각종 스킬들이 극한까지 강화되었으며, 스킬들을 언제,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익혀나갈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수혁에게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수혁은 잔상을 남기는 것처럼 이동했다. 그리고 거침없이 라인플레임을 휘둘러 나갔다.

“쿠아아아아!”

“오오오오오—!”

망토를 휘날리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수혁의 모습은, 이제는 완전히 전투 그 자체에 녹아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곳, 검은 공간에 들어오고 나서 약 한 달 정도.

그동안 수혁은 수많은 전투를 거쳐 전투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수혁은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엄청나게 강해졌지만, 그것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 정도나 되는 녀석과 싸우려면 얼마나 강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게다가 게임의 센스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들었다. 전투 역시도 그렇겠지. 그런 녀석을, 자신이 이길 수 있을까?

불안감은 수혁의 마음을 자극하고, 수혁은 끊임없이 노력해 갔다.

그리고 그렇게 수련을 계속하던 어느 날이었다.

-발현 어빌리티가 SS랭크에 도달하였습니다. 어빌리티가 ‘각성’으로 변화합니다.

<어빌리티: 각성>

등급 – SSS

위력 – 1

설명 – 대상을 각성시킨다. 모든 가능성이 최대로 발휘된다.

수혁은 멍하니 그 어빌리티를 쳐다보았다.

각성…? 모든 가능성이 최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단지 어빌리티일 뿐인데도 무언가 엄청난 기운 같은 것이 흘러나온다는 점이었다.

‘뭘까. 분명히 어빌리티일 뿐일 텐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수혁은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각성이라. 이 어빌리티를 자신에게 사용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걸까.

수혁이 어빌리티를 자신에게 사용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수혁의 인벤토리에서, 은나비가 튀어나와 수혁의 어깨에 앉았다.

-제 이야기가 들리시나요? 들리신다면 지금 당장 그곳에서 벗어나세요!

“응? 뭐, 뭐지?”

그 순간, 수혁은 거대한 공간의 파동을 느꼈다.

징징 울리는 파동이 수혁의 피부와 살, 뼈와 내부 장기까지 훑으며 지나가 수혁을 울려 댔다.

수혁은 쓰러지지 않도록 자세를 낮췄다.

근처의 공간이, 마치 잡아 찢는 것처럼 벌어져 나가고 있었다.

수혁은 자신을 밀어낼 듯한 바람을 견디며 그 공간 안에서 나오는 것을 쳐다보았다.

-어리석구나. 인간이여. 감히 신의 힘에 손을 댈 생각 같은 걸 하다니.

수혁은 쓸려나가지 않도록 바닥에 검을 박은 채 그 거대한 존재를 쳐다보았다.

드래곤. 판타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

불같이 타오르는 두 눈이, 수혁을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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