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와의 회담
몇 번의 텔레포트를 해서 물 빠진 스펀지마냥 푸석푸석한 느낌과 온몸의 무력감이 후버를 감쌌지만 화려한 수도의 모습은 왠지 모를 청량감을 후버에게 전해 주었다.
반면 마법으로 정신력이 단련된 후버와는 다르게 로한은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텔레포트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마법사를 당황하게 했다.
“어서 이곳을 나가도록 해주시오. 일정이 밀려 있소.”
혹시라도 로한이 마법진 위에 구토라도 할까봐 로한을 채근하는 마법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로한은 얼른 텔레포트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한바탕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것으로 수도의 첫 입성을 자축하는 감탄사를 대신했다.
“확실히 수도는 다르군. 뭔가 번화한 느낌이야. 그렇지 않나?”
“욱… 그렇네요, 후버 님. 확실히 제가 살던 곳보다는 발전한 것이 느껴지네요.”
아직 속을 게워내던 로한이 겨우 대답을 하고 다시금 자축의 감탄사를 뱉어내는데 열중하는 동안 후버는 일직선으로 왕성을 향해 걸어갔다. 전생의 고층 빌딩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석재와 목제만으로 만든 수도의 건물은 나름대로 후버에겐 좋은 눈요기거리가 되었고 억지로 따라오던 로한 역시 어느 정도 속이 진정되자 주변의 경치에 매료되었는지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단하군. 쓸데없는 공간 낭비이긴 하지만 말이야.’
수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고 알려진 왕성은 과연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모습으로 감탄성을 발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중앙의 가장 높은 건물이 실제로 왕이 기거하는 곳으로 보였으며 단조롭지만 기품 있는 건물들은 기사들이,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장식을 자랑하는 건물은 마법사들의 거처로 보였다.
‘일국의 수도가 이 정도라면 제국 정도가 되면 감도 잡히지 않겠군.’
처음에는 너무나 넓은 크기로 인해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점점 눈에 익다보니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가 후버의 눈에도 짐작되었다.
‘최소한 정면에서는 침입하는 게 불가능이나 마찬가지군. 이렇게 훌륭한 수비 구조를 한 면에만 사용했을 리가 없으니 다른 세 면도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후버가 전체적인 조망을 상상하고 자신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이곳을 공격할지에 대한 작전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눈부신 빛이 후버의 시각을 자극했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과연 왕국을 지키는 기사답게 지금까지 상대한 이름만 기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두꺼운 풀 플레이트 메일과 보통의 브로드 소드 보다 1.5배는 두껍고 널찍해 보이는 검날을 가진 병사가 후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후버가 느낀 빛의 정체는 저 반짝이는 풀 플레이트 메일이 햇빛을 반사한 것처럼 보였다.
“잠시 이쪽으로.”
후버는 품 안에서 처음 자신을 진창으로 이끌었던 편지지의 겉봉을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면 확인 후 결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국왕의 인장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자신을 대하는 기사의 모습을 보자 후버는 단수니 외양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접객의 교육 역시 제대로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버라고 합니다. 그렇게 전해 주시면 국왕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국왕전하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경비기사가 후버를 다시금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훑어보았다. 젊은 귀족을 국왕이 직접적으로 아는 경우는 대부분 수도에 기거하는 대귀족의 자제들뿐이었기에 혹시라도 자신의 기업에 있는 사람인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고맙군.”
처음 후버를 맞이한 경비기사가 후버를 응접실을 겸한 대기실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제가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후버에게 인사를 한 기사가 대기실 밖으로 나갔고 후버와 로한은 대기실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거나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우와~ 그저 들어온 것으로 이 정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도대체 국왕님은 어떤 것을 드시는 걸까요?”
평민으로 지내온 만큼 눈앞에 놓인 음식에 감탄하는 것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로한의 행동에 자꾸만 왕성의 시녀들이 웃음을 참는 듯한 환청에 부끄러움을 느낄 무렵 상황을 알아보겠다면 기사가 돌아와서 후버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곤란하고 내일 다시 알현을 청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시간은?”
“편하신 시간에 방문하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아침 11시 정도에 뵙도록 하지.”
“나가시는 길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를 맡은 기사로서는 과연 이 후버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왕국의 공작 정도가 된다면 약속 없이 방문을 해도 국왕을 바로 알현할 수 있겠지만 별다른 작위조차 없어 보이는 자가 국왕을 알현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데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라는 말과 함께 언제든 편한 시간에 오라고 했다는 것은 사실상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잠깐 기다려 줬으면 좋겠군.”
후버가 손끝으로 가리킨 곳에는 로한이 양 접시 가득 음식을 가져와서는 닥치는 대로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기사가 사라지고 둘만 남은 대기실 안에서 한참의 시간을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로한을 기다린 후버는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음식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로한을 보고는 기사를 불러 왕성 밖을 빠져나왔다.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말이야, 보통은 긴장해서 왕성에서는 물 한 모금 먹기도 힘들 텐데…….’
“오늘은 숙소에서 쉬도록 하지. 나는 씻은 후 점심을 먹을 생각인데 로한 너는 점심은 필요 없겠지?”
“네, 저는 배가 불러요.”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로한을 방으로 올려 보낸 후버는 천천히 내일 왕과의 접견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며 늦은 점심을 들고는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몇 번이나 갈아탄 것은 4서클인 자신에게도 꽤나 피곤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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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빌리온 백작가의 후버와 평민 로한이 접견을 청하였습니다.”
“들어오라 하라.”
시종장의 손에 의해 열린 아스트라 국왕의 집무실 안은 평민인 로한이 보기에는 별천지와 다름이 없었다.
국왕과 후버 일행 사이의 거리는 약 50m 정도. 그리고 그 집무실 중간부터 차려진 각종 음식이 식사 테이블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금 이르지만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미리 식사를 준비하도록 했으니 후버와 그대는 편하게 자리에 앉도록. 이쪽은 나의 아들인 아모르라고 하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전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모르 왕자님.”
깊히 허리를 숙인 후버가 로한을 이끌고 자리에 앉자 아스트라 국왕이 나이프를 이용해 가볍게 잔을 두드리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긴장으로 인해 자신의 손이 닿는 거리에 있는 음식만을 먹는 로한과는 다르게 후버는 이곳저곳의 음식을 시종에게 서빙 받으며 식사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고 아스트라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식사를 하는 후버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쳤을 무렵 아스트라가 후버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사과의 말은 하지 않겠네. 이미 자네의 활약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보고 받고 있었네. 여기 아모르 역시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즐거워했고 말이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그런데 자네가 로한을 데리고 온 것은 조금 의외였네. 아무런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
아스트라의 말에 로한이 멀뚱히 후버와 아스트라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로한을 대동하게 되었습니다.”
“부탁이 무엇인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들어 주도록 하지.”
후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필연적으로 와일리 상단의 파산은 예견이 되어 있는 상태, 그렇다면 누군가는 와일리 상단의 역할을 대신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아스트라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 내용이 보고되어서인지 아스트라 국왕은 조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금방 공감하였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 상계를 혼란스럽게 한다면 결국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니.”
“그 상단의 부책임자로는 로한을 자리에 앉힐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로한은 자신이 한번 본 것을 거의 대부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혼란한 시기에 빠른 일처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임자로는 사만다 상단주를 그 책임자로 하여 저희 가문의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로한은 후버 자네가 거둔 사람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지. 사만다 상단주 역시 왕국에 고용된 사람이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도 상관하지 않겠네.”
긍정적인 아스트라 국왕의 반응에 후버가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청을 하나 더 해도 되겠습니까?”
“앞의 것은 내 허락이 필요하다고 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군,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해 보게나.”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앞으로 레빌리온 백작가에서 발행하는 어음과 수표에 대해서 무제한적인 통용을 왕국의 이름으로 배타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는가?”
“아시다시피 저희 레빌리온 백작가의 경우 상계에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조그마한 가문의 상단이 영지에 필요한 필수품을 구매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것은 나도 몰랐군. 확실히 레빌리온 백작가가 상단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 자네의 말이 틀림이 없겠지. 그런데 그러한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을 마친 아스트라 국왕이 아모르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말을 하자 지금까지는 그저 호기심으로 보던 아모르가 종이와 펜을 꺼내고는 후버의 말을 기다렸다.
“만약 상계에 어떠한 영향력이 없는 저희 가문에서 만든 상단이 와일리 상단을 대신한다고 하면 아무도 저희 가문의 상단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스트라 국왕전하께서 베타적인 권리를 저희 가문에 부여해 준다면 그들 역시 저희 상단이 아니라 국왕전하를 믿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에 적극적인 동참을 하게 될 것입니다.”
후버가 말을 하는 동안 받아 적던 아모르가 모두 받아 적었는지 종이를 아스트라 국왕에게 건넸다.
단순히 말을 받아 적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감상을 받아 적은 것인지 모르지만 메모를 넘기는 모습에 후버는 괜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은 확실히 하고 가야 한다.’
내심 긴장되는 후버는 식탁 밑에서 살짝 주먹을 쥐었다가 피는 것으로 긴장을 풀었다.
“내가 처음 자네에게 일을 맡겼을 때 빌려준 금괴의 탕감과 함께 추가적으로 자네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한 이권을 인정해 주기로 한 것을 기억하는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와일리 상단에서 금괴를 압수하면 그 모든 금괴가 자네의 소유가 됨에도 불구하고 혼란이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아스트라의 이 물음은 후버 역시 고민 한 부분이었다. 어느정도 운송이 되어 사라졌다고 해도 와일리 상단에 남아있는 금괴의 양이나 아티펙트의 양은 수톤 이상이 될 것이었다. 그 모든 소유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50%만 인정해준다고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포기할 생각이 들었지만 모든 소유권을 인정을 해준다고 하니 순간 고민이 되었다.
‘길게 봐야 한다. 화폐의 발행권을 가진 자가 앞으로 왕국, 나아가서 대륙을 지배할 것이다. 앞으로 100년을 바라본다면 금 쪼가리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혼란의 근원지는 기존 상단 혹은 타국에서부터 레빌리온 백작가의 상단을 흔들면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타적인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순수하게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필요인가? 국왕이 보증하는 권리는 함부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네.”
부정적인 아스트라의 말에 후버가 속에서 조급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만약 국왕이 이 요청을 거절한다면 후버로서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요청 드린 두 가지 외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아모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스트라로서는 후버가 다른 모든 이권을 포기하고 와일리 상단을 대신하는 위치 그리고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배타적 권리만을 원한다면 해볼 만한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레빌리온 백작가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견 왕국에는 매우 이익이 되는 거래인 반면 레빌리온 백작가는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와일리 상단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왕국의 3번째 가는 상단이 쌓을 수 있는 부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잘된다면 그렇겠지요. 후버의 제의는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내 생각도 그와 다르지 않다. 레빌리온 백작가로서는 얻는 것은 적고 잃을 것은 많은 거래이지. 그럼 자네의 흉심을 모두 털어놓아 주었으면 좋겠군. 지금까지 보고받은 자네의 모습은 결코 손해를 보는 거래를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과연 이 변명이 납득할 만한 수준일까? 혹여나 아스트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아스트라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대답을 머뭇거리는 후버의 모습에 아스트라는 대답을 채근했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자네를 탓하지 않겠네. 그러니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사실만 말해 주었으면 좋겠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것은 레빌리온 백작가 전체의 의견이 아닌 저 개인의 의견이니 심기를 상하게 하더라도 그 화가 백작가 전체로 번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내가 보증하도록 하지.”
“사실 저희 백작가의 규모로써 수톤 단위의 금괴는 상이라기보다는 독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재화는 오히려 백작가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네의 의견이 틀리지 않네. 그렇다면 적당한 규모로 조정을 하면 되지 않겠나. 필요하다면 그만큼의 세금을 계속해서 감해줄 수도 있네.”
아스트라가 대신 제안한 것은 흥미로운 제안이었지만 단순한 세금의 감소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 세금을 내지 않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면 레빌리온 백작가는 내부부터 나태로 썩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백작가는 계속해서 발전을 해야 하지 퇴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백작가의 발전의 토대는 성공적인 상단의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잠시 주변의 반응을 살피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로한을 제외하고 아스트라와 아모르는 대략적으로 후버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해서 와일리 상단을 레빌리온 백작가가 흡수한다고 해도 이 역시 다른 귀족에게 레빌리온 백작가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사를 요청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 정도는 내가 들어줄 수 있네.”
“아스트라 국왕전하께서는 혹은 아모르 왕세자께서는 레빌리온 백작가를 영원히 신뢰하실 수 있으십니까?”
“무슨 의미인가?”
지금의 말은 다소 불쾌했는지 아스트라의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상단을 통해 재화를 모으고 재화를 바탕으로 가문을 확장하다보면 한두 세대가 지나면 레빌리온 백작가는 재력이나 무력이나 다른 가문을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교만이 아닌가?”
“저와 형님이 기반을 만들고 그 다음, 다다음 영주가 집권할 즈음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만약 그러한 무력을 확보하였을 때 만약 가문의 차차기 영주가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다면, 교만으로 칼끝을 왕국으로 향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그전에 아모르 왕세자께서 국왕이 되셨을 때 약진하는 레빌리온 백작가를 견제하지 않으신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이제 보니 자네는 교만하고 불경하기까지 하군.”
다소 흥분한 아스트라 국왕의 목소리에 후버가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한번 예를 취하고는 아모르 왕세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건방진 언행과 일치하지 않는 후버의 행동에 아스트라와 아모르가 궁금증을 느낄 무렵 후버의 입이 열렸다.
“저로서는 절대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아스트라 국왕전하께서 저희 가문에 배타적인 권리를 내려 주신다면 저의 후대 그리고 그 다음 대에도 영원히 가문의 발전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충성을 할 곳이 어디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왕국의 미래 없이는 레빌리온 백작가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레빌리온 백작가의 누구도 모르지 않게 할 것입니다.”
얼떨결에 무릎을 꿇은 로한이 내는 소음을 제외하고 아스트라의 집무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너무나 갑작스레 충성의 맹세를 하는 후버와 그 대상이 아스트라 국왕이 아닌 아모르를 향했다는 점은 어쩌면 불충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후버 역시 자신이 상황 판단을 잘못한 것인지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겠군. 3남 중 첫째인 아스킹은 국왕파의 후원을, 셋째인 아지즈는 귀족파의 후원을, 아무런 후원도 받지 못하는 아모르가 국왕의 총애를 받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후계 구도의 혼란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던가?’
어쩌면 국왕 역시 총애하는 것과는 별개로 첫째 왕세자인 아스킹을 차기 국왕으로 추대할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버가 괜히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무렵 아스트라 국왕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생각보다 배짱이 있군.”
“제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후버는 아스트라의 웃음소리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알고 배팅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른 채로 본인의 감을 믿는 것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는가 보군, 하긴 그것을 알았다면 왕국이 무사하지는 못했겠지 아모르 잠시 나가 있도록 해라. 후버 공과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아모르가 나가자 눈치를 보던 로한 역시 후버의 눈짓을 받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아스트라와 후버만 있는 집무실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아스트라였다.
“드래곤의 가호를 믿는가?”
뜬금없는 아스트라의 말에 후버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스트라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웠나보군. 우리 왕국이 주변의 강대국들에 둘러싸여서 무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저 강대국들이 침략보다는 약간의 조공으로 만족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그렇게 알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사실과는 다르지만 말이야. 사실 왕국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다네.”
“드래곤의 가호라고 하면…….”
“초대 왕국의 국왕의 신분은 공작가의 차남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지. 그 공작가가 어느 왕국의 어느 공작가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야… 공작가 정도가 되면 원하던 원치 않던 피로 피를 씻는 후계자 다툼이 있다는 것은 자네도 알겠지? 백작가만 해도 흔한 일이니 말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말해주지. 후계자 다툼에서 패배해 도망 길에 오른 초대 국왕은 용병으로 세상을 떠돌게 됐지. 그렇게 용병으로서 이런 저런 일을 하던 중 동료를 만나게 됐고 결국에는 국가를 세우게 되었다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과정이 빠졌지만 후버가 가진 지식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었다.
“한낱 용병이 왕국을 세운다? 어느 정도의 확률로 가능 하다고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이 누구인지 모르지는 않을 거야…….”
“건국사에 따르면 당시 초대 국왕께서 교분을 나눈 용병 마법사의 스승이 초대 국왕을 많이 도우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지 세상을 떠도는 저서클 마법사… 알고 보니 그의 스승이 10서클의 대마도사였다는 이야기… 너무 대충 만든 이야기 같지 않은가?”
“어느 정도의 허구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허구지… 사실을 하나 이야기해주지. 오직 현대 국왕에게만 내려오는 이야기이니 들을 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전 대륙에서 자네와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지.”
잠시 숨을 멈춘 아스트라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후버에게 건국사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았다.
“용병일을 하던 중 초대국왕은 우연히 위기에 빠진 헤츨링을 구하게 되었다네. 10년 후 헤츨링이 성룡이 되어서 초대국왕을 찾아와서 물었지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초대국왕께서는 국가를 세우는 것을 소원으로 내걸으신 겁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네. 초대국왕은 헤츨링에게 요청했지. 나와 함께 국가를 만들고 내가 만든 국가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수호해 달라고.”
“그런 터무니없는 소원을 들어준 겁니까? 대륙의 관조자라고 하는 드래곤이 말입니까?”
“대륙의 관조자인 동시에 철이 없는 드래곤이기도 했지. 드래곤은 초대국왕의 소원을 들어 주었지. 그렇게 왕국은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졌지.”
“뭔가 허무한 결론이군요.”
“겨우 10서클 마법사가 드래곤이라는 것이 이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네. 진짜 핵심은 따로 있지. 철이 없는 드래곤이지만 영원한 수호를 약속할 수는 없었지. 그래서 초대국왕에게 한 가지 제약을 건 약속을 해주었다네.”
“제약이라 하시면?”
“오직 왕가의 자손 중 차남이 국가를 다스릴 때만 국가를 수호해 주겠다. 그리고 국가를 수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적의 침략을 막아줄 뿐 적국을 공격하지는 않겠다.”
“역사의 어느 부분에서도 드래곤이 나타나 침략한 적군을 물리친 사실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왕국의 대는 모두 장자가 잇고 있습니다. 불충한 말이지만 국왕전하께서 하신 말씀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 왕국이 매번 공격을 받을 때마다 드래곤이 현신하여 적을 물리친다면 이미 대륙일통을 달성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드래곤들은 유희를 할 때마다 강력한 마법사나 기사의 모습으로 적국의 침략을 막아주거나 적국의 주요 인물이 돼서 우리 왕국에 대한 공격의 방향을 돌려주는 식으로 도와주고 있다네.”
드래곤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아스트라의 말에 후버는 허탈함을 느꼈다. 아스트라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처리하든지 아니든지 결국은 왕국은 커다란 피해를 입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번에 조금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네. 자네가 말한 대로 대대로 왕국의 대는 장자가 이어오고 있었지. 나 역시도 외부에 알려지기로는 전대 국왕의 장자이고 말이야.”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왕국이 드래곤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후버가 생각에 잠겼지만 답을 생각해 내기는 힘들었다. 아니, 한 가지 답안이 떠오르긴 했지만 설마 하는 생각에 아스트라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뭐 대략 짐작했겠지만 바꿔치기네. 왕국의 초기 시절에는 최대한 비슷한 시기에 왕비와 첩을 통해 자손을 생산하고 그중 장남과 차남을 바꿔치기하는 거라네. 안전한 방법이지. 하지만 너무 많은 첩을 얻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하여 이후 비밀스럽게 개발한 마법으로 미리 2명의 남자아이를 잉태할 때까지만 임신을 시키고 그 이상의 왕손을 얻지 않는 것으로 후계자 구도를 안정시켰지.”
“그렇다면 아스트라 국왕전하께서도?”
“나 역시 차남이지. 이러한 방식으로 내가 왕이 될 때까지 왕국의 안정을 도모하였지. 그리고 내가 왕이 되었을 때 그분께서 나의 침소에 방문하셨네.”
“그분이라 하시면 가호를 내린 드래곤께서?”
“그렇지 그분께서 더 이상 그러한 꼼수는 쓰지 말라고 하시더군. 수십 대를 우리 왕국을 지켜준 분에게 예의를 갖출 시간도 없이 하실 말씀만 하고는 자신의 레어로 떠나셨네.”
침중한 아스트라의 표정에서 후버 역시 아스트라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첫째 왕자를 왕으로 내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왕파 귀족들을 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척의 힘을 뒤에 얻고 3왕자를 추대하길 원하는 귀족파의 귀족을 누르는 데 국왕파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견제에 성공하면 다음 국왕이 첫째 왕자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사실을 국왕파의 귀족에게 알리지 않은 것입니까?”
“왜 알리고 싶지 않겠는가? 드래곤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나를 제외한 단 세 사람만 알아야 한다고 하셨네. 그 이상의 인원이 안다면 역시 더 이상의 왕국에 대한 가호는 없을 거라고 하셨지. 당사자인 왕세자들은 당연히 몰라야 하는 것이고…….”
“까다로운 조건이군요. 그런데 제가 몇 번째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까?”
“첫 번째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첫 번째네. 정확히 말한다면 조건을 듣기 이전에 이미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네. 그러니 자네가 허락된 마지막 사람이지만 말일세.”
“누가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은거해서 생존했는지 사망했는지도 알 수 없는 전대 마탑주 그리고 전대 마탑주의 자리를 이은 지금의 마탑주 이렇게 딱 두 명이네. 전대 마탑주는 전대 국왕이 임신시킨 처와 첩의 성별을 감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의 마탑주는 전대 마탑주가 마탑을 떠나면서 탑주의 책무 중 하나라며 마법 공식을 알려주며 떠나면서 알게 되었지.”
“그럼 왜 하필 저인 겁니까? 아니,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면 말씀하시기 전에 들어는 보겠냐고 질문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말했지 않나, 왕국이 위험할 때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말이야. 그렇다고 자네가 드래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네. 그저 드래곤이 자네를 주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주시한다니요?”
“말 그대로일세. 원래는 드래곤이 해야 할 일을 자네가 처리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드래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런 단순한 이유로…….”
“그게 중요하다네. 단순한 것이 아니라 전부나 마찬가지이지. 드래곤의 가호가 왕국을 떠나려고 하는가? 아니면 그저 공정한 규칙으로 왕국이 계속되길 바라는가? 자네의 행보에 대한 드래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나의 왕세자 아모르를 잠시 맡아 주었으면 하네.”
맡아 달라는 말에 후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백작가의 차남인 자신이 어떻게 왕세자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자네는 대리영주 자격이 있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그 권리를 아직 사용하지 않았지. 내가 그 권리를 사용하도록 도와주지.”
“그게 무슨?”
“와일리 상단의 일은 이제 나와 자네의 측근의 손에 맡겨 두도록 하게나. 어차피 국가기관의 힘이 필요한 일이지 않나? 앞으로의 계획을 문서로 넘기도록 하게. 그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지휘하도록 하지. 자네는 그러니까…….”
아스트라는 몸을 일으켜 집무실 벽에 붙어 있던 크랩스 왕국의 지도를 떼어내서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곳의 대리영주로 부임하게 해주지. 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인해 연결은 차단되어 있지만 스타치 왕국과 인접한 곳이라네. 이곳으로 아모르와 함께 가도록 하게나. 필요한 지원은 내가 확실히 해주도록 하지.”
아스트라가 가리킨 곳은 크랩스 왕국과 스타치 왕국의 국경 역할을 하는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북쪽 영지. 사방이 트여 있어 영지의 크기는 레빌리온 백작가보다 두 배 이상의 크기를 자랑하지만 몬스터의 잦은 출몰로 인해 그저 크랩스 왕국의 소유라는 말뚝만 박아 놓았을 뿐 별다른 관리는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 넓이가 넓은 만큼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에서 내려온 몬스터 들은 야생 동물을 잡아먹으며 남하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거나 동족상잔을 일으켜 크랩스 왕국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었다.
“이 영지는… 사실상 버려진 곳이 아닙니까?”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군.”
“이런 곳으로 정말 아모르 왕자님을 보내실 작정이십니까?”
“이곳이 아니면 안 되네. 영지의 관리나 국가의 관리나 그 규모가 다를 뿐 결국은 매한가지 아니겠나? 나는 우리 왕국을 지켜보는 드래곤들에게 왕국의 건재함을 그리고 아모르의 왕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네. 실무적인 부분은 재상과 이야기해보도록 하게. 자네라면 언제든지 재상과 대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두겠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대와 대화를 나눈 것 같군. 이만 물러나 줄 수 있겠나?”
“저는…….”
“부탁하네…….”
“그럼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금 진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후버는 아스트라의 재촉에 못 이겨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어쩌면 공평한 거래일지도 모르겠군.’
분명 후버는 자신이 이곳에 올 때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을 국왕에게 약속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당한 거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크랩스 왕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쓰고 아스트라는 나에게 레빌리온 백작가의 밝은 미래를 주는 건가? 입바르게 내뱉은 소리처럼 되버렸군. 이제 내가 대표적인 2왕자파가 되어 버렸어. 파벌도 뭣도 없는… 있는 것은 달랑 영지 하나…….’
후버의 입맛에 씁쓸한 느낌이 감돌았다. 후버가 내린 2왕자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그저 썩은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썩은 동아줄을 강제로 잡고 있는 것은 자신.
‘드래곤이라니… 결국 2왕세자가 국왕이 되지 못한다면 레빌리온 백작가도 함께 끝장이란 말인가?’
일순간 드는 생각은 레빌리온 백작가 전체를 다른 왕국으로 이주시키고 자국인 크랩스 왕국을 공격할 때 선봉에 서서 공을 올리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한 상황의 설명도 없이 가문의 모든 사람을 타국으로 이주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걸리는 것은 아스트라가 말한 드래곤의 존재…….
‘혹시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아스트라가 했던 말, 드래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말이 후버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저 아스트라의 추측일 뿐이겠지만 왠지 아스트라 국왕의 말에 자신이 이 세계로 온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갑자기 웬 선민사상이 드는지 귀족질을 너무 오래했나?’
혹시나 이곳에 와서 귀족 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사고방식 자체에 문제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괜한 기대감 역시 머리의 한구석에서 빠져 나가지 않았다. 복잡한 생각은 후버가 여관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