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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3화 (3/212)

제3화

#3.

제국 황제가 대마녀 2황후에게 이지를 잃고 꼭두각시가 된 지금, 제국을 비롯한 대륙 전체에는 피와 철이 넘쳐 흘렀다

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왕국 루한 또한 제국과 전쟁 중이다.

루한의 여왕 루시푸르네가 설원의 가호로 제국군의 진격을 막고 있다.

하지만 제국은 국지전을 통해 루한의 국력을 눈 녹이듯 갉아먹고 있었다.

제국군을 이끄는 암흑대공은 루한의 변경백을 괴롭혔다.

* * *

루한 왕국.

문라이트 변경백의 오스키 외곽로.

덜크렁, 덜컹. 20명 정도의 상인과 40여 마리의 말과 짐마차가 이동 중이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그나마 도로의 꼴을 갖춘 길.

하지만 피와 철이 가득 흐르는 전쟁의 시대엔 이런 대로조차 위태롭다.

특히나 이렇게 용병단 하나 없는 상인 행렬은 늑대 무리 앞에 선 새끼 양 꼴이다.

“앞에 도적들이 있군.”

마차 위에 앉아 있던 솔라시우스가 문득 말했다.

“기사님은 눈도 참 좋으십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 말에 상인 도미닉이 급히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망원경으로 길을 막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숫자는 스물. 차려입은 것을 보니 단순한 도적은 아닌 듯하군. 깃발을 들고 있는 도적이 있던가?”

도미닉이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것과 동시에 맨눈으로 관측하던 솔라가 중얼거린다.

“예, 보아하니 통행세를 요구하는 기사들 같습니다. 깃발은 이 근방의 롤드 남작의 깃발이고요.”

망원경을 든 도미닉은 기사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라고?”

도미닉의 말에 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장은 제법 차려입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기사나 귀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기사나 귀족을 대신해 통행세를 뜯어내는 자들입니다. 사실상 사칭에 가깝죠.”

“귀족 사칭은 중범죄가 아닌가?”

“그렇게 걷은 통행세 중 절반을 영주에게 바치면 눈감아 주는 편입니다. 전쟁으로 변경백은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영주와 기사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추가 수입이 늘어나니 나쁠 게 없지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사칭범이라고 하고서 꼬리 자르면 그만이고요.”

그 말에 솔라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래서 방랑 기사에 대한 인식이 만만했던 거군.”

“하하하…… 로안 기사님처럼 명예와 실력을 동시에 갖춘 방랑 기사는 정말 드문 경우이긴 합니다. 기사님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신의 은총입니다.”

게임 ‘루한의 국서’를 플레이할 때에도 제법 전투력 높은 도적들이 있었는데 지금 마주한 자들이 바로 이런 설정이었나 보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통행세만 내면 건들지 않으니까요.”

도미닉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에 있던 상인들과 눈빛을 교환해 통행료를 갹출하기 시작했다.

“그냥 베고 가지.”

솔라시우스는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도적과 달리 전투 경험도 있고 무장도 잘 갖춘 자들입니다. 물론 로안 기사님의 실력이 뛰어남은 잘 알지만…… 저쪽은 숫자도 많고……. 반면 저희는 전투에 큰 도움이 안 됩니다.”

그의 말에 상인들이 오히려 난처하다는 듯 반응한다.

“과연 통행세만 받고 보내줄까?”

그런 상인들을 향해 솔라시우스는 피식 웃으며 턱 끝으로 앞을 가리켰다.

“?!”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사칭하는 도적들이 뿌연 먼지와 함께 말을 타고 이곳으로 돌격해 오고 있었다.

아까까지 높이 들고 있던 롤드 남작의 깃발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손에는 도끼와 창, 검을 위협적으로 들고 있다. 딱 봐도 좋은 의미로 돌진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호위 하나 없이 상인으로만 구성된 행렬이야. 통행세를 걷을 필요도 없지. 그냥 다 죽이고 털어먹으면 되니까.”

“그런…….”

눈앞에 닥친 위협과 솔라시우스의 설명에 상인들이 패닉에 빠진다.

“이 정도도 예상 못 했나?”

그는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시골 농부도 아닌 상인들이 이토록 순진하다니.

“사칭이더라도 기사 행세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명예는 지키는 편입니다. 영주의 명예도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놓고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영주들이 궁핍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문라이트 변경백 수준이 이렇게까지 떨어지다니…….”

도미닉을 비롯한 상인들이 분노를 담아 답했다.

“로안 기사님, 몸이라도 피하시지요. 짐을 놓고 도망치면 놈들도 굳이 쫓지 않을 겁니다.”

몇몇 상인은 짐을 두고서 값비싼 보석류만 황급히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상인들의 모습을 보던 솔라시우스는 마차에서 내리더니 도적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검을 뽑았고, 몇 걸음 더 걷더니 이제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발을 움직였다.

“……!”

“기, 기사님……!”

상인들은 도망도 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방랑 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말을 몰고 달려드는 도적들과 금발의 방랑 기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방랑 기사의 검이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 오러!!”

달려들던 기사가 경악에 찬 외침을 내뱉었지만 이어지는 폭음에 묻혔다.

퍼어엉!

마법 같은 폭발음이 터졌다.

무시무시하게 달려들던 선두의 도적들이 산산조각 났다. 그들은 타고 있던 말과 함께 고깃덩어리가 되어 흩어졌다.

첫 폭발을 시작으로.

서걱― 서거걱― 사아악―.

소름 끼치는 빛의 궤적이 그어졌다.

어제 나 홀로 도적 무리를 학살했던 것과 같은 방랑 기사의 전설적인 무용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

상인들은 도망치려던 것도 잊고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싸움이라고 볼 수도 없어.”

“저건 그냥 학살이야.”

“어제 봤던 용력은 극히 일부였어.”

기사를 사칭하던 무리는 어떻게 저항할 틈도 없이 전멸했다.

사방에 사람과 말의 일부가 고르게 뿌려졌다.

피와 살점이 가득한 것이 마치 거름을 뿌린 듯하다.

“이래서 다른 왕국들이 황족들의 망명을 받아 주는 거였구나.”

“찝찝해도 저 정도면 받아야지.”

상인들은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기사님의 무용담을 찬양했다.

솨아아아.

뒤이어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역시나 덥군.’

태광휘, 솔라시우스는 몸에서 몰려오는 뜨거움에 미간을 찌푸렸다. 지구에서는 경험한 적 없던 스킬 후유증이 그를 괴롭혔다.

‘태양 이능을 쓸 때마다 이러는군. 이것도 저주의 일종인가?’

뒤늦게 올라오는 강한 더위에 그는 입고 있던 후드 달린 로브를 벗어 던졌다.

애써 심호흡을 하면서 더위와 뜨거움을 달랬다.

시선은 자신이 만들어 낸 시체가 널린 들판으로 향했다.

들판에선 상인들이 너도나도 뛰어가 도적들의 시체를 털고 있었다.

“기사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한 상인이 솔라시우스에게 공손히 다가와 물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상인이었다.

“여름이라 더워서 그래.”

지금 대륙의 계절은 여름이 맞다. 하지만 루한은 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나라. 여름인데도 서늘한 편이다.

“여기 시원한 물이 있습니다.”

상인은 곧바로 가죽 주머니에 담긴 물을 건넸다.

솔라는 상인이 건넨 물을 받아 마셨다. 시원한 물이 몸속으로 퍼졌고. 일부는 정수리에 뿌렸다. 주체할 수 없었던 더위가 조금이지만 가라앉았다.

“그런데 기사님…….”

그런 솔라시우스를 보며 팔에 붕대를 감은 상인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우려겠지만 기사님의 복장은 너무 가볍습니다. 눈먼 화살에 혹여나 맞으실까 염려됩니다.”

상인의 말처럼 솔라의 복장은 아주 가벼웠다.

로브를 벗어 내린 솔라는 어깨와 팔에만 가죽으로 된 견갑을 걸치고 리넨으로 된 셔츠 한 장만 입은 상태였다.

마치 산책 나온 귀족 도련님 꼴이다.

당장 상인들만 해도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 갑옷을 겹겹이 껴입은 것을 생각하면 그의 복장은 확실히 이상했다.

“제가 가진 상품 중에 괜찮은 갑옷이 있습니다. 기사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상인은 진심이 담긴 눈으로 솔라에게 말했다.

자신의 팔은 물론 재산과 목숨을 구해 준 분이다.

갑옷이라도 드리지 않으면 죄송해서 잠도 못 이룰 것 같다.

애초에 이렇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사든 성직자든 어지간하면 대가를 요구하는 편이다.

때문에 상인들은 솔라시우스의 이러한 행동에 감사하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괜찮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솔라는 상인의 성의를 거절했다.

지금 그에게 갑옷은 방해만 됐다. 지금도 스킬 후유증으로 더워 죽을 것 같은데 여기서 더 껴입으라고?

솔라시우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기사님이 단호히 거절하자, 상인은 발을 동동 구른다.

“도시에 도착하면 필요한 것들을 말하겠다.”

그런 상인에게 솔라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고.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비자금을 털어서라도 은혜를 갚겠습니다.”

상인은 맹세라도 하듯 답했다.

“대단한 걸 요구할 생각은 없어.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무기 그리고 은화 정도면 될 거야.”

“최상급으로! 마도구라도 구해서 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희 칼트 상단의 이름을 걸지요!”

그제야 상인은 안도한 표정이다.

“팔은 괜찮은가?”

그렇게 상인이 물러나려는데, 솔라는 이전보다 눈에 띄게 편해 보이는 상인의 팔을 보며 물었다.

“예! 효과가 아주 큽니다. 정말 평생의 은혜를 졌습니다. 기사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팔을 잘라 내야 했을 겁니다.”

그러자 상인은 몇 번째인지 모를 감사를 또다시 표했다.

‘게임에서도 비슷하게 흘러갔었지.’

솔라는 상인의 감사 인사를 받아넘기며 그가 했었던 게임 루한의 국서를 최대한 떠올렸다.

게임에서도 솔라시우스는 도적단을 무찌른다.

부상으로 의식을 잃었지만 빠르게 정신을 되찾은 후 무력을 선보인다.

‘한마디로 튜토리얼 플레이.’

상인들에게도 여러 지식들을 공유해 호감도를 쌓았었다.

지금까지 그의 행동은 게임에서 행했던 튜토리얼 플레이와 거의 유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게임에서의 솔라시우스는 매우 힘겹게 도적을 무찔렀고 상인들도 지금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로 도시로 향했다는 점이다.

상인들이 조각난 시체에서 아득바득 전리품을 다 챙겼다.

적은 인원, 없다시피 한 호위. 그런데 마차는 더욱 커진 상황.

그래서인지 상인들의 표정은 이를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이런 습격이 도시까지 가는 내내 계속될 거 같은데 말이지…….”

몸집이 줄기는커녕 전리품 등으로 오히려 덩치가 더 커진 상단.

하지만 호위 하나 없는 상단. 어그로가 안 끌릴 수가 없다.

“변경백 치안이 이렇게 안 좋았던가?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좀 심하군.”

상인들의 걱정 어린 웅성거림을 들은 솔라가 더위를 식히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처 국경에서 최근 제국군과 큰 전투가 있었는데, 크게 패배했다고 합니다. 도적 중 상당수는 탈영한 패잔병일 겁니다.”

“그들에겐 무시무시한 제국군과 싸울 바엔 도적이 돼서 방랑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변경백 외곽은 설원의 가호가 옅습니다. 살육에서 비교적 자유롭지요.”

“추가로 사령술사가 폭주해서 자작령 하나가 날아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사령술사에겐 설원의 징벌이 내려지지 않아서, 이 문제 때문에 왕도에서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위대하고 고귀하신 기사님의 질문에 상인들이 너도나도 알고 있고 추측하는 바를 말했다.

‘귀찮게 됐군.’

그들의 말에 솔라시우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호위 하나 없는 상단 행렬. 마차의 짐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빵빵하다.

‘한마디로 보물 고블린이 된 꼴이야.’

덩치는 아주 커서 눈에 잘 띄고, 숫자와 짐도 많아서 느리고 느린 보물 고블린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불나방들이 쭉 몰려올 거란 의미.

이 근방의 도적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검으로만 상대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해.’

그의 몸은 하나다. 마왕의 저주 때문인지 태양검을 지구에서처럼 무지막지하게 휘두를 수도 없다.

솔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인들이 어미를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그를 바라본다.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

‘게임이었다면 상인들과 짐을 최대한 보존해서 이동시키라는 도전과제가 생겼을 터.’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괜한 승부욕이 솟았다. 그는 생각했다. 최대한 편하게. 최대한 힘을 덜 쓰고 불나방을 처리할 방법을.

그러다가 문득 태광휘가 아닌 솔라시우스의 기억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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