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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7화 (7/212)

제7화

#7.

만찬은 화려했지만 크진 않았다.

이번 상행에서 귀환한 상인들과 상단주 그리고 솔라시우스만을 위한 만찬이었기 때문이다.

저 앞에서는 광대와 음유시인들이 나와서 흥을 돋우고 있었고, 솔라는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흡족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한편, 몇몇 상인들은 지나치게 성대한 만찬에 뭔가가 있음을 직감하고는 눈을 빛내며 시장과 상단주의 대화에 집중하기도 했다.

‘토벌대? 사령술사? 아! 그게 있었군.’

둘의 대화에 집중하는 사람 중에는 솔라시우스도 있었다. 그는 입으로는 음식을 먹고 상인들과 수다를 떨면서도 청력을 집중하여 상단주와 시장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마도 칼트 상단에서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네.”

“2차 토벌 말입니까?”

시장과 상단주는 각자 머릿속에 다른 생각(로안 샬루트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대해 줄까?)을 하면서도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갔다.

“고된 상행을 끝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황이 급박해서 말이야.”

“저희야 오히려 요청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위험해서 그렇지, 전쟁 상인만큼 이윤이 많이 남는 장사는 없습니다.”

“상단주가 그렇게 응해 주면 고맙지.”

“그래서 2차 토벌은 언제 시작될 예정입니까?”

“이웃 영지와 도시에서도 토벌대를 보낸다고 하니…… 보름 정도는 걸릴 것이야.”

“생각보다 촉박하군요. 집결지까지 모일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주일 내로 상행 준비를 마쳐야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사령술사 이자벨의 영역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마녀회와 마탑에선 뭐랍니까? 그들도 1차 토벌대에 참여했을 텐데요?”

“이건 아직 기밀이지만, 칼트 상단주는 전쟁 상인으로 참가한다고 말했으니 얘기해 주지.”

칼트의 물음에 시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1차 토벌대는 단순히 실패한 게 아니야. 전멸했어. 마녀와 마법사도 죽었고. 생존자는 가까스로 탈출한 기사 다섯이 전부야.”

“기, 기사 다섯 빼고 모두 죽었다는 겁니까? 1차 토벌대에 상위 마법사와 마녀도 포함됐다고 들었는데…….”

칼트의 얼굴이 굳었다. 단순히 1차 토벌대가 실패했다는 소식은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멸이었을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많이 위험하군요.”

“많이 위험해.”

“어쩐지 만찬이 지나치게 화려하다 싶었습니다, 하하하하…….”

“뭐, 그렇게 해석이 된다니 다행이군.”

실은 로안 샬루트를 대접하기 위한 만찬이었지만 이렇게 해석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2차 토벌은 어떻게 구성되는 겁니까? 상위 마법사와 마녀를 죽인 사령술사입니다. 그사이 더 강해졌을지도 모르고요.”

“이번엔 교단에서 나서기로 했어. 보름에 출발하는 이유도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함이고.”

“교단이라면 안심이군요. 다른 건 몰라도 사령술 같은 흑마법에는 교단이 상성이 좋으니까요.”

이제야 칼트의 표정이 펴졌다.

“내일부터 바빠지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2차 토벌대를 구해야 하는데 실력 있는 방랑 기사나 용병, 모험가가 많이 없단 말이지. 상당수는 제국군을 상대하러 국경에 가 있으니, 원.”

“2차 토벌대는 소수 정예로 진행할 예정인가요?”

“다른 도시나 영지에서도 소수 정예로 구성할 예정이야. 1차 때처럼 대규모로 보내 봤자 적에게 힘만 실어 주는 꼴이 되니까.”

“그렇다면 음식과 의복, 무구류는 중등품 이상으로 챙겨야겠습니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두 사람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토벌 말이오.”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입을 열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참가할 수 있겠소?”

높은 제국어가 짙은 공용어가 시장과 상단주 사이를 가로막았다.

“로안 기사님?”

“로안 경?”

어느새 다가온 솔라시우스는 눈을 빛내며 둘의 대화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기사님, 사령술사 이자벨은 매우 위험합니다. 왕도에서 온 상위 마녀와 마법사도 죽었다고 합니다.”

솔라시우스의 말에 칼트가 급히 만류한다.

“듣자 하니 그대도 위험을 무릅쓰고 종군하기로 했다지? 상인인 그대도 종군하는데 기사인 나도 참가해야지.”

솔라시우스이자 지구인 태광휘는 간만에 기사 흉내를 제대로 내기로 했다.

“저희야 이 종군으로 큰 이윤을 남길 수 있기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기사님.”

“그런가? 시장, 내가 2차 토벌대에 참여하면 보상이 있겠소?”

솔라의 시선이 오스키 시장에게 이동했다.

“물, 물론이요! 하지만 로안 경, 그대는 한시라도 빨리 폐하를 알현해야 하지 않나?”

“이자벨이라는 사령술사가 있는 곳이 왕도로 가는 방향과 일치하더군. 가는 길에 처리하고 올라가면 되겠어.”

“우리야 그래 주면 고맙지. 고맙긴 한데…….”

솔라시우스의 참가 의사에 시장은 말끝을 흐렸다.

‘이거 어떻게 한다냐? 로안 경 같은 실력자가 토벌대에 합류하면 환영할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은 속으로 고민에 빠졌다.

‘거절할 명분이 없다! 비록 방랑 기사지만 그 신분은 황족! 심지어 여왕께서 관심 가지시는 남자야. 그런 그의 참가를 거절하면 명예를 훼손하게 돼.’

그는 머리를 죽어라 굴렸다. 여왕으로부터 온 지령을 떠올렸다.

―그가 요청하는 모든 것에 협조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 것.

그리곤 눈을 크게 깜빡였다.

‘지령에는 그를 빨리 왕궁으로 보내라는 말은 없었어.’

뒤이어 그의 얼굴이 편해졌다.

“물론이네! 하지만 보상은 오스키가 아닌 왕도에서 내릴 것이야. 세운 공에 따라서 적게는 금은보화가, 많게는 영지와 작위를 하사받을 수도 있네!”

‘매뉴얼대로 하자, 매뉴얼대로. 난 로안 경의 요구 사항을 매뉴얼대로 들어줬을 뿐이야.’

시장은 두 팔 벌려 솔라시우스의 참가를 환영했다.

“이렇게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방랑 기사라니! 정말 감격스럽군. 칼트 상단주! 돈은 내가 부담할 테니 로안 경이 필요하다는 건 전부 구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시장님.”

솔라의 토벌대 참가는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토벌대 참가가 결정되자, 솔라시우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분기점 이벤트. 이게 오스키에서 있었지.’

그는 게임 ‘루한의 국서’에서의 플레이를 떠올렸다.

‘사령술사 이자벨. 사천왕 중 하나인 죽음의 대마녀와 가장 관련 깊은 존재.’

게임 초반, 어쩌면 게임의 모든 방향을 가르는 이벤트였다.

‘그때의 나는 이 분기점에서 토벌대 참가를 거절했었어.’

그런 중요한 선택지였지만 당시 태광휘는 이 이벤트를 거절했었다.

‘스킵 누르다가 실수로 거절을 눌렀었지…….’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 * *

도시 오스키에서의 일주일은 누군가에겐 촉박하지만, 누군가에겐 호화로운 일주일이었다.

솔라시우스는 후자였다. 처음부터 부담스러움을 넘어설 만큼 대접을 누렸기 때문이다.

‘도적단 척살 효과가 생각보다 컸다고 하니까 말이야. 칼트 상단주가 살아 있는 덕분에 2차 토벌대의 보급 문제도 쉽게 해결됐고. 게다가 내가 2차 토벌대에 참가까지 했으니…….’

매일매일 호화스러운 식사와 도시에서 시장 다음으로 자유로운 신분까지. 솔라는 이 모든 호의에 대한 의문을 이제는 반쯤 납득한 상태였다.

‘그럼 뭐 해? 심심한데…….’

하지만 이와 반대로 솔라는 할 것 없는 중세 판타지 세계의 무료함에 점점 질려 가고 있었다.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본래 천생 집돌이였던 그에겐 맞지 않았다.

이 도시의 귀족 여식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관심만 보일 뿐 누구도 솔라에게 접근해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반짝이는 눈빛으로 멀찍이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솔라는 그런 여자들의 시선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이곳에 정착할 생각이 없었기에 책임질 수 없는 불장난은 사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 종일 숙소에 머물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사님! 말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데, 마침 상인 도미닉이 희소식을 들고 왔다.

솔라는 모처럼 외출에 나섰다. 상인 도미닉이 앞장서서 그의 안내를 맡았다.

“저 사람이 로안 기사님이라고?”

“혼자서 인근에 있는 도적단을 모두 척살한?”

“흥, 과장된 소문이겠지. 아무리 망명 황족이라고 해도 그게 말이 되나?”

“근데 진짜 잘생겼다. 역시 황족은 다르구나. 분위기부터가 달라.”

“정신 차려. 몰락했든 망명했든, 제국은 우리 루한의 원수라고.”

“그래도 저 기사님은 좋은 분이라고 들었는데…….”

길을 걷는데 솔라를 보면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도 쏠렸다. 자신과 관련된 소문이 어느덧 도시는 물론 인근까지 다 퍼졌기 때문이다.

“…….”

그가 밖으로 안 나돌고 숙소에만 있던 이유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애초에 집돌이인 점도 있었지만 괜한 관심이 쏠리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거슬리는 시선과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시 오스키 외곽에 위치한 마시장이었다. 이 마시장에는 오늘따라 유독 사람들이 몰렸다. 상인, 용병, 기사, 모험가로 구성되었다.

“여깁니다! 기사님!”

마시장에 도착하니 미리 도착해 있던 칼트 상단의 상인들이 솔라를 반겼다.

“기사님에게 제일 좋은 말을 드리기 위해서 아직 마시장을 열지 않았습니다.”

칼트 상단주와 오스키 시장의 과분한 배려에 속이 거북할 지경이다.

마치 백화점의 VVIP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몇 시간 전에 막 이 도시로 들어온 말들을 보았다.

‘확실히 기존 도시에 있던 말들과는 분위기부터 다르구나.’

솔라는 눈으로 감탄을 표했다. 말에 대해 잘 모르는 그였지만 묶여 있는 말들은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었다.

‘판타지 세계라서 더 그런 것일지도.’

솔직히 여기 있는 것들 중 아무거나 골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결정 장애가 올 정도로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사님, 마음에 차는 놈이 있으신지요?”

상인이 굽신거리면서 솔라에게 물었다. 그 또한 눈앞의 기사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전부 좋은 말 같아. 여기서 제일 비싼 말이 뭐지?”

결정 장애가 왔을 때는 가격으로 정하는 거다. 게다가 내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대신 내준다고 했으니 제일 비싼 말로 고르면 될 것 같았다.

“예, 물론 있지요!”

상인은 솔라를 곧바로 안내했다.

상인이 보여 준 말은 백마였다. 피부는 비단처럼 윤기가 흘렀고 탄력이 넘쳤다. 성격도 온순해 보였다.

“흐음…….”

하지만 이 말을 본 솔라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예쁘고 고급스러워.’

마치 동화 속 공주님이나 왕자님이 탈 것 같은 말이다. 신분상으론 솔라에게 어울리겠지만, 방랑 기사로 여기저기 싸돌아야 할 그에게 이런 말은 부담스러웠다.

마치 부카티를 몰고 오프 로드를 가야 하는 기분.

“마음에 안 드십니까?”

솔라의 반응을 본 상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상인에게 다른 말은 없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저 말은 뭐지?”

솔라의 눈에 어떤 말이 보였다.

구석에 꽁꽁 묶여 있는 흑마였는데, 어지간한 말보다 1.5배 컸고 갈기도 사자처럼 풍성했다.

무엇보다, 딱 봐도 거칠고 사나워 보였다.

“그 말은…… 동부 대초원에서 우연히 잡은 녀석입니다. 하지만 반쯤 몬스터에 가까운 놈입니다.”

솔라가 관심을 보이자, 상인이 난감하다는 듯 답했다.

“기사님, 다른 말을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 녀석을 길들이려다가 3명이 죽었고 5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조만간 안락사 후에 마법 재료로 팔 예정입니다.”

상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솔라의 눈은 오히려 빛났다.

“클리셰군.”

“예?”

솔라는 상인이 이해 못 할 말을 내뱉고는 묶여 있는 말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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