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8화 (8/212)

제8화

#8.

말은 묶여 있음에도 땅이 울릴 정도로 발버둥 쳤다.

주위에 있는 말들은 그런 녀석의 난동에 겁먹은 듯 벌벌 떨었다.

쿠웅, 쿠웅, 쿠웅.

푸르르릇!!

근육질이었지만 야윈 것이 최소 며칠간 제대로 먹고 마시지 않은 듯하다.

“내가 신호하면 족쇄를 풀도록.”

“하지만……!”

“괜찮아.”

상인과 조련사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솔라는 발버둥 치는 흑마 앞에 섰다.

‘요정 숲에서 별걸 다 배웠군.’

태광휘는 솔라시우스의 기억을 활용하기로 했다.

솔라시우스는 요정의 숲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웠는데, 그중에는 짐승을 다루는 방법도 있었다.

[엘루디네 이시리느 엔하 샬라데.]

그의 입이 열렸다.

[엘루디네 아샤인 엔후 엘리테.]

입에서 대륙 공용어가 아닌 생소한 언어가 나왔다.

요정어다. 하지만 단순한 요정어가 아니다. 자연의 엄숙함을 품은 요정어가 발악하는 말을 쓰다듬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엘프어는 마치 노래 같았다.

[로아르, 엘루시데 시하인 카슈티헤.]

자연의 신비를 담은 솔라의 요정어가 이어졌고.

얼마 후.

푸르르르…….

날뛰던 흑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다.

“맙소사…….”

이를 본 상인과 조련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제 족쇄를 풀게.”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말든 솔라는 족쇄를 풀라고 지시를 내렸다.

철컥, 처억!

족쇄가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된 흑마는 난동 부리거나 뛰쳐나가지 않았다.

“그래, 그래. 착하지. 오래 굶은 듯하니 먹이와 물을 가져오게.”

그저 솔라의 몸에 얼굴을 비벼 대면서 애교 부리기 바빴다.

“난 이 녀석으로 하지.”

솔라는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으로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이름을 지어 줘야겠지?”

[엘리니아 샬루 샬라테?]

그는 공용어와 요정어를 번갈아 말했고.

푸르르르.

말은 솔라의 말을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반응했다.

“이름은 맨해튼카페. 맨해튼카페가 어떠냐?”

그가 지어 준 맨해튼카페라는 이름은 대전쟁 전에 즐겨 했던 지구의 어느 게임에서 따왔다. 말을 의인화한 게임에 등장한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흐이잉?!

흑마 맨해튼카페는 말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그게 뭔데, X덕아?’라고 표정으로 말했을 것이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그러든 말든 솔라는 이미 이름을 확정한 듯했다.

* * *

흑마 맨해튼카페를 얻은 다음 날.

부랴부랴 구성된 2차 토벌대가 오스키를 나섰다.

솔라는 전쟁 상인으로 종군하는 칼트 상단과 함께했다.

“냉기를 발생하는 마도구 말입니까?”

칼트 상단주는 크고 거친 흑마 위에 탄 솔라시우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공격용 마도구도 상관없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이유는 짐작했기에 묻지 않았다. 기사 로안 샬루트는 그 뛰어난 용력을 대가로 더위를 매우 잘 타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지금도 토벌대 일행 중 제일 가벼운 복장이다.

“부탁 좀 하지.”

“부탁이라니요. 명령을 내리시지요. 일단 지금 저희가 챙겨 온 물품 중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도미닉!”

모처럼 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칼트는 도미닉을 불렀고,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도미닉은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에 있을 때 말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왜 그땐 생각 안 나고 이제야 생각이 나 버려서.’

상인들의 분주함을 보면서 솔라는 입맛을 다셨다.

이어서 행렬의 선두에 시선을 돌렸다.

2차 토벌대에 자원한 용병, 모험가, 방랑 기사들이 말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더불어 이들을 지휘하고 관리할 오스키 소속의 기사도 포함돼 있다.

소수 정예를 지향하기 때문에 토벌대 인원은 상인과 마부를 제외하고서 50명뿐이다.

모두 이 근방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양반들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마녀나 마법사, 사제는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매우 희귀한 클래스들이었고 여왕이나 마녀회, 마탑의 명령이 아니면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들 각자의 공방에 박혀 있길 좋아하는, 태광휘보다 더한 집돌이였기 때문이다.

‘나를 그리 좋게 안 보는군.’

솔라가 토벌대원들을 보자,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토벌대원 중 몇몇이 그를 대놓고 노려본다.

그러고 보니 저들과 아직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토벌대를 이끄는 오스키의 중급 기사와 가볍게 인사만 나눴을 뿐이다.

토벌대장인 중급 기사는 솔라시우스에게 어떤 터치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이 다른 토벌대원과 솔라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칼트 상단과 오스키 시장의 특별 대우 때문인지, 망명 황족이라는 신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찾았습니다, 기사님.”

그렇게 선두의 토벌대와 눈싸움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칼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라는 눈싸움을 관두고 시선을 돌렸다.

“일단 이 두 개가 답니다, 지금은. 다음 도시에 들리면 추가로 구해 보겠습니다.”

“상단주님, 상단과 거래 중인 마녀 공방에 의뢰해 볼까요?”

“도시에 도착하면 바로 시행하게, 도미닉.”

칼트와 도미닉의 대화를 뒤로하고 솔라는 그들이 건넨 마도구를 살폈다.

둘 다 팔뚝 길이의 막대기 끝에 손톱만 한 마석이 박혀 있는 마도구였다.

“어떻게 쓰는 거지?”

“예, 봉인막을 제거하고서 원하는 방향으로 강하게 던져서 사용합니다.”

‘막대형 수류탄처럼 생겼군.’

칼트의 설명을 들은 솔라는 건네받은 마도구의 봉인지를 확인했다.

“루한은 북부에 위치해서 여름에도 선선한 편입니다. 때문에 더위를 식혀 주는 마도구는 주문 제작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힘듭니다.”

옆에선 칼트가 마도구의 설명을 이었다.

“이건?”

“전투용 마도구입니다. 이름은 아이스붐이라고 합니다. 던지게 되면 그 방향에 있는 적을 순식간에 얼려 버릴 수 있습니다. 추운 곳에서 쓸수록 효과가 좋지요.”

‘진짜 수류탄이잖아?’

새삼 중세 판타지의 마법에 신선함을 느꼈다. 물론 지구와 달리 이런 마도구는 하나하나가 매우 비싸다.

“일회용인가?”

“그렇습니다. 마석 하나를 한번에 터트리는 방식이라 매우 낭비가 심한 마도구입니다.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거의 쓰지 않습니다.”

비싼데 일회용이다.

‘없는 것보단 낫겠지. 태양검을 쓰고서 공터에 터트린 후 그 안에서 쉬면 되겠어.’

설명을 들은 솔라는 마도구 아이스붐 두 개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 * *

오스키 소속 토벌대의 이동은 무난히 이어졌다.

도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2차 토벌대에 대한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다.

소수지만 한 명 한 명이 이름난 실력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최근 이름을 널리 떨친 망명 황족 출신의 방랑 기사가 이 행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틀째 되는 날까지도 한가롭고 따분한 여정은 지속됐다.

토벌대원들도 그리고 솔라도, 교단과 합류하기 전까진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다들 마음 놓고 긴장을 풀었다.

“응?”

마차 지붕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던 솔라시우스는 저 앞에 뭔가가 보이자 시선을 집중했다.

눈에 마나가 투영됐고, 저 멀리 있는 뭔가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마녀?”

복장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마녀들이 쓰는 챙이 넓은 고깔모자에 치마 형태의 검은색 로브, 그리고 한 손에 든 빗자루까지.

저게 마녀가 아니라면 뭐겠는가?

“예? 마녀라고요?”

솔라시우스의 말에 마부 옆에 앉아 있던 상인 도미닉이 망원경을 꺼냈다.

“어? 정말이네? 그런데 어린 마녀입니다. 견습 마녀인가?”

토벌대 선두에서도 길막 중인 마녀를 발견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양 같은 게 안 보이는 게…… 마녀회 소속은 아닌 거 같습니다.”

도미닉의 말을 들으며 솔라는 유심히 어린 마녀를 관찰했다.

나이는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것 같은 소녀다. 열셋에서 많이 쳐 줘야 열다섯이 넘지 않는 듯하다.

마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잘 안 보이지만, 얼핏 보이는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회색 머리에 회색 눈동자다.

‘마법사를 보는 건 처음이군.’

이세계로 소환돼서 처음 보는 마법사다. 도시 오스키에도 마법사들이 있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엔 공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도시 시장이 부탁해도 듣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

“딱 봐도 견습 마녀입니다. 스승이 누굴까요? 저렇게 어린 마녀를 홀로 돌아다니게 두진 않을 텐데요.”

“가출이라도 했나 보지.”

솔라가 눈을 빛내며 마녀를 관찰했다.

“여하튼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저 견습 마녀 뒤에는 스승 마녀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입고 있는 복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빗자루도요. 분명 상위 마녀의 제자입니다.”

마법사와 마녀의 차이는 단순하다. 마법을 쓸 줄 아는 남자를 마법사라 하고, 마법을 쓸 줄 아는 여자는 마녀라 불렀다.

기사들과 달리, 마법의 경우 남녀 신체에 따라 마나를 모으고 발현하는 방법이 달랐다.

이런 이유로 스승과 제자도 철저히 성별에 따라 분류했다. 스승과 제자의 성별이 다르면 서클 계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오직 어린 소년을 제자로 받고, 마녀 또한 어린 소녀를 제자로 받는다. 어쩌다 재능이 높은 아이를 발견해도 성별이 다르면 거두지 않았다. 대신 친분이 있는 마법사나 마녀에게 소개해 준다.

“어디 학파의 마녀시오? 우리는 사령술사의 폭주를 막기 위해 오스키에서 결성된 토벌단이오!”

솔라가 이세계의 마녀, 마법사 설정을 떠올리는 사이, 토벌대 선두와 어린 마녀가 2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서 대치했다.

“그 사령술사는 내가 막을 것이니 너희는 돌아가도 좋다!”

체구에 비하면 다소 성숙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 토벌대는 해산하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물론 성숙한 느낌이라고 해도 여전히 소녀의 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저희는 오스키 시장 이전에, 여왕 폐하의 명령으로 구성된 토벌대입니다. 오직 여왕 폐하의 명령이 있어야 해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토벌대의 보급 겸 전쟁 상인을 담당하고 있는 칼트가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어설퍼.’

솔라시우스는 마녀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칼트 바로 뒤에 섰다.

그의 눈에 비친 마녀는 누가 봐도 경험이 일천한 견습 마녀였다. 서 있는 모습부터 어설펐고 빗자루를 든 손을 잘게 떨고 있는 게 긴장을 한 모양이다.

“마, 마지막 경고다! 어서 해산하지 않으면 주…… 죽, 죽여 버리겠다!”

말투도 긴장한 투가 역력하다.

“어찌할까요?”

토벌대 선두에 있던 용병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차라리 도적이나 제국군이었으면 죽이고 가면 되는 건데…….”

토벌대의 지휘관 역할을 맡은 오스키의 중급 기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 통할 것 같지도 않고.”

딱 봐도 세상 경험 없는 철부지 마녀다.

“그냥 제압해서 묶어 놓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마녀라고 해도 저렇게 어린 견습 마녀라면…….”

“아니,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나름의 준비를 했다는 뜻이야. 역으로 우리가 당한다.”

용병과 방랑 기사의 제안에 중급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령술사는커녕, 교단과 합류하기도 전에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어. 게다가 저 발음은…….”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근처에 있던 누군가를 힐끔 보았다.

“…….”

“…….”

3분 정도 난감한 대치가 이어졌다. 견습 마녀는 눈을 부릅뜨고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고, 토벌대 또한 곤란한 눈동자를 굴리면서 주변에 있을지 모를 마녀의 스승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쪽의 이름을 듣지 못했군. 어디 학파의 마녀지? 이름과 소속을 말해.”

결국 보다 못한 솔라가 나섰다. 그는 흑마 맨해튼카페를 몰고 제일 앞에 나섰다.

“……!”

다른 말들보다 커다란 덩치와 위협적인 갈기. 그런 말 위에 아무렇지 않게 올라탄 금발, 금안의 기사.

“너…… 넌 뭐야!”

어린 견습 마녀는 그런 솔라시우스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아까보다 더 크게 움츠렸다.

“마녀여, 그대의 이름과 배경을 말하라. 그럼 나도 내 소개를 하겠다.”

마녀 앞에 선 기사는 잘생긴 것을 떠나서 말투와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남달랐다.

“…….”

견습 마녀는 당황한 눈으로 솔라시우스를 바라보았다. 특히 그의 황금색 눈동자와 황금색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았다.

“로안 기사님, 부디 손속에 자비를 담아 주시길. 저 견습 마녀의 억양에는 기사님과 같은 높은 제국어가 묻어 있습니다.”

그때, 솔라 옆에서 칼트가 조심스레 조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