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10.
다음 날.
눈을 뜬 솔라는 고소한 아침 냄새를 따라 텐트 밖으로 나왔다.
“일어나셨습니까?”
아침을 준비하던 상인 도미닉이 그를 반겼다.
“기사님, 잘 주무셨습니까?”
“로안 경, 어서 와서 드시지요. 아주 간이 잘됐습니다.”
상인들뿐만 아니라 토벌대의 용병, 모험가, 기사도 솔라를 반겼다.
딱히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눈 적 없거늘, 어제의 일이 기폭제가 된 모양이다.
“에어컨은?”
솔라는 스튜를 담은 그릇을 받고는 어제 잡은 견습 마녀를 찾았다. 옆 텐트에 재웠던 것 같은데 일어나니까 안 보인다.
“캐리어 휘센 에어컨 마녀님 말씀인가요? 로안 기사님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그의 물음에 상인 도미닉이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망쳤나?”
솔라는 바로 짐작했다.
“별수 없지.”
잠시 미간을 찌푸린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반응했다.
구속하거나 족쇄를 채워도 됐지만 하지 않았다.
자유 의지로 남게 했다.
그리고 자유 의지에 따라 떠났다. 인간 에어컨을 놓친 셈이지만 크게 미련은 없었다.
‘세상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으니 자중하겠지. 그 정도 실력이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고.’
그저 살짝 아까울 뿐이었다.
“로안 경, 원한다면 수배를 할 수도 있네.”
옆에서 솔라의 눈치를 보던 중급 기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토벌단을 지휘하는 오스키의 기사다. 그가 동의한다면 이 일대를 수색할 수도 있었다.
“괜찮소. 그런데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
“하지만 저 어리고 어설픈 마녀는 금방 다른 이들에게 잡힐 거요.”
보아하니 토벌대장은 다른 이유로 걱정이 된 모양이다.
“설마, 학습 능력이 있으면 다신 안 그러겠지.”
토벌대장의 우려에 솔라는 피식 웃으며 먹기 좋게 식은 스튜를 떠서 입에 넣었다.
“스승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왜 저렇게 방임하는지 모르겠군.”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없다고? 설마?”
이후 몇 마디 걱정 어린 대화가 오갔으나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며칠 후.
솔라와 오스키의 토벌대는 교단과 합류하기로 한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른 도시나 영지에서 출발한 또 다른 토벌대들이 먼저 진을 치고 있었다.
교단의 깃발도 보이는 것이 어지간한 토벌대는 다 모인 모양이다.
그리고…….
“기사님…… 저기!”
“……에어컨이군.”
“그렇습니다.”
먼저 도착한 토벌대 진영 가운데에는 한 견습 마녀가 나뭇더미 위에 묶여 있었다.
“사령술사와 한 패인 사악한 마녀를 죽여라!”
“화형! 화형이다! 불로 정화하라!”
솔라가 에어컨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던 어린 마녀는 화형당하기 직전이었다.
* * *
화형대에 묶인 마녀 에어컨의 몰골은 멀쩡했다.
폭행이나 더러운 짓을 당하진 않은 듯하다.
타락한 마녀와 닿으면 저주받는다는 미신이 어린 견습 마녀의 신세를 도운 꼴이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소?”
솔라는 화형대 주위에 있던 한 방랑 기사에게 물었다.
“저 마녀 말이오? 사령술사 이자벨과 한통속인 마녀요!”
“근거는?”
방랑기사의 대답에 솔라는 질문을 이었다.
질문을 하면서 은화 한 닢을 은밀히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세는 동화가 알맞겠지만, 그에겐 은화와 금화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뭘 이렇게 많이……! 흠흠! 글쎄 갑자기 빗자루를 타고 우리 앞에 내려와서는 다짜고짜 토벌대를 해산하라고 하던 마녀요. 사령술사는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주장하면서 말이오.”
은화를 건네받은 방랑 기사는 술술 이야기를 이었고
‘전혀 학습하지 않았어.’
솔라는 화형대에 묶인 어린 마녀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수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마녀였기에 이름과 학파를 물어보았소. 하지만 대답하지 않더군. 그래서 일단 대화에 응하는 척하면서 식사를 대접했지.”
“마녀가 그 식사에 응했나?”
“며칠 굶었는지 아주 맛있게 먹더군. 음식에 수면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솔라는 도저히 구분이 안 됐다.
“여하튼 잠든 마녀를 묶고서 다시 한번 이름과 학파를 물었소. 하지만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지.”
‘이름 정도는 내가 지어 준 이름으로라도 말해도 될 것을. 거짓말하면 안 되는 제약이라도 걸린 건가?’
방랑기사의 말에 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보다, 애초에 목숨을 걸 정도로 숨길 비밀은 아니지 않나? 내 추측이 틀린 건가?’
자신이 추측했던 것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론 사령술사와 한 패라고 확정하기엔…….”
반대로 이런 이유를 들고 화형을 하려는 토벌대 쪽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찝찝한 것은 사실이지. 어차피 잠시 후 사제들이 이단 심문을 할 예정이오. 하지만 저렇게 위협을 하는데도 입을 안 여는 걸 보면 하나 마나지. 지독한 마녀 같으니!”
방랑기사는 혀를 차면서 화형대에 묶인 견습 마녀를 노려봤다.
그리고 화형대 방향으로 침을 퉤 하고 뱉고는 사라졌다.
‘교단이 끼어 있었군.’
대대로 성직자와 마법사는 사이가 나쁘다. 그들에게 이 마녀사냥은 토벌대의 사기를 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
솔라는 말없이 마녀 에어컨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솔라는 발견한 마녀는 놀람과 반가움이 담긴 표정을 짓다가 이내 후회 묻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르겠군.’
무시해도 될 법하다. 냉기 마법을 쓸 수 있는 에어컨 마녀지만 이미 자신에게서 한번 도망친 마녀. 지금 구해 준다고 해도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
그런데 이상하게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외면하면 크게 후회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잠시 후, 교단 소속의 사제들이 화형대로 다가왔다.
“네 순수를 증명하라, 마녀야!!”
사제는 화형대에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이단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
마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견습 마녀라면 스승의 이름을 대라!”
“…….”
“독립한 마녀라면 학파의 이름을 대라!”
“…….”
어린 마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허!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니, 사령술사 이자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마녀가 분명하다! 사령술사에겐 제자가 없다고 했으니, 너는 이자벨의 부하이거나 조력자일 터!”
사제가 손을 들어 신호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횃불이 등장했다.
“이것은 정당한 살육이니! 설원의 가호여! 그저 지켜보소서!”
그들은 심문 전에 이미 판결을 정해 놓은 것 같았다.
“……!”
어린 마녀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횃불을 보다가 뒤이어 솔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옆에선 칼트와 도미닉이 조심스레 물어 왔다.
“…….”
확실히 수상하긴 하다. 저렇게 끝까지 이름과 스승을 밝히지 않는 이유가.
하지만 수상함과 반대로 이상하게 외면할 수 없었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 수에 맞게 은화를 준비했으면 해.”
솔라는 결심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고.
“하긴, 저 마녀를 아군으로 만들면 기사님의 그 더위도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요. 이해했습니다.”
“부담이 된다면 내 사재를 쓰지.”
“아닙니다. 기사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그가 말한 바를 이해한 칼트와 도미닉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인들이 돈을 준비하는 동안 솔라시우스는 빠른 걸음으로 화형대 가까이 다가갔다.
“멈추시오!”
그리곤 막 불을 붙이려는 이단 심판관을 막았다.
“이 마녀는 나와 관련이 있는 마녀요.”
“그대는……?”
솔라의 개입에 화형을 준비하려던 이단 심판관이 멈칫했다.
“기사 로안 샬루트요.”
“그대의 이름과 무용을 들어 알고 있소.”
금발, 금안에 지나치게 가벼운 무장을 한 방랑 기사. 무엇보다 망명 황족 출신.
기사 로안 샬루트의 등장에 사제들이 성호를 그으며 화답했다.
“……?!”
화형대에 묶여 있던 견습 마녀는 놀란 눈으로 솔라를 바라본다.
“사실 이 아이는 나의…… 몸종이오.”
“!!”
그러다가 이어지는 솔라의 말에 마녀는 표정을 구긴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반박은 하지 않았다.
“로안 샬루트 경의 몸종이라고?!”
“그렇소.”
몸종이 마법을 쓴다는 것을 그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로안 샬루트의 본래 신분은 황족이다. 황족의 몸종이라면 어지간한 평민보다 훨씬 대우가 좋다. 재능만 있으면 검술이나 마법도 얕게나마 배울 수 있다.
“…….”
솔라의 말에 이단 심판관이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참고로 이 아이의 이름은…… 캐리어 휘센이오. 에어컨학파에서 냉기와 어둠 마법을 배웠지.”
“에어컨학파?”
처음 듣는 학파다.
“신생 학파였으나 제국의 몰락과 함께 지금은 없어졌지. 몸종이다 보니 도제식이 아닌, 아카데미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고.”
사제들이 고개를 갸웃하자, 솔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이지?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서 말이오.”
“이 아이가 충성심이 강해서 그렇소. 무식할 정도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이단 심판관에게 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히 나에게 피해를 줄 것 같으니 입을 닫은 거요. 토벌대 해산을 말한 것도 내가 혼자서 활약하길 바라는 바람에 저지른 짓이고.”
“……그 말을 우리 보고……!”
“물론 미심쩍은 것을 인정하오. 하지만 진실이오. 비록 몰락했지만 내 신분과 이름을 걸지.”
“!!”
분명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높은 제국어와 요정어 억양이 섞인 그의 말은 이상하게 신뢰가 갔다.
루한 사람 못지않게 제국과 제국 황족을 싫어하는 성직자들임에도 이런 변화는 비슷했다.
“로안 기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하하하, 이거 귀하신 분들에게 폐만 끼쳐 드린 것 같습니다. 사과의 의미로 약소하게나마…….”
뒤이어 칼트와 도미닉을 비롯한 상인들이 나섰다. 어떻게 보면 이게 결정적이었다.
투둑.
이단 심판관과 사제 손에 은화 다섯 닢이 든 주머니가 하나씩 올라왔다.
주위에서 이를 구경하던 다른 토벌대원들에게도 적에는 은화 한 닢에서 많게는 두세 닢이 직급에 따라 쥐어졌다.
“흠흠! 가만 보니 나쁜 마녀는 아닌 거 같습니다, 사제님.”
“로안 경의 말을 들어 보니 이해가 가는 것 같소.”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신분과 명예를 걸었는데 이를 마냥 안 믿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보오.”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토벌대에 참가한 용병과 방랑 기사, 모험가가 이구동성으로 마녀의 결백을 주장했다.
“아무리 변경백의 외곽이지만, 설원의 가호를 생각하셨으면 하오. 이건 정당한 살육이 아니니.”
솔라는 이단 심판관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 말이 쐐기를 박았다.
“크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로안 샬루트 경, 그대에게 책임을 묻겠소.”
“물론이오. 내가 책임지지.”
결국 화형대 앞에 있던 사제들도 품속에 은화를 챙기면서 물러났다.
* * *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화형대에서 풀려난 견습 마녀는 솔라 옆에 바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일로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모양이다.
“이봐, 에어컨.”
솔라는 그런 어린 마녀를 불렀다.
“나 에어컨 아니라고! 그 이름, 뭔가 기분 나빠!”
그러자 심신의 여유가 찾아왔는지 그녀가 반발한다.
그래도 목소리는 최대한 작게 낮춘 상태다.
“그래서, 진짜 이름이 뭐지?”
“…….”
역시나 이 어린 마녀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꽈악!
그러자 솔라는 양손으로 마녀의 양어깨를 잡았다.
도망치거나 마법을 쓰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엔 대충 안 넘어가. 말하는 게 좋을 거야.”
“!!”
“나와 내 일행은 너를 위해 보증을 서 줬어. 만약 문제가 생기면 큰 희생을 치러야 해.”
‘확실히 알아야겠어.’
전처럼 천천히 접근할 생각은 없다. 이 아이의 정체가 자신의 추측과 많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린 네 목숨을 구해 줬어. 네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솔라는 협박을 이었다.
“그러니 나한텐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아.”
“……!”
그녀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리곤 솔라의 얼굴을 힐끔 보면서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귀 좀…….”
솔라의 귀에다가 입을 가져다 대고는.
“리나, 리나야.”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학파나 성은 말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그 이름을 들은 솔라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작 ‘리나’라는 이름만을 들었을 뿐인데 소름이 돋았고 그녀의 모든 정체를 알게 되었다.
“……!”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솔라는 앉아서 멀뚱멀뚱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견습 마녀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이름이 리나라고?! 네가?”
“왜……? 내 이름이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에어컨보단 낫거든!”
리나는 솔라를 향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솔라는 떨리는 황금빛 눈동자로 리나를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봐도 그 이름은 싫어. 나는 스승님이 지어 주신 리나라는 이름이 더 좋다고!”
그의 눈빛에 리나는 괜히 움츠리며 몸을 떨었다. 겁은 먹었지만 할 말은 하는 것이 꽤 당돌했다.
“그리고…… 성과 학파는 좀 이따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그때 말하면 안 될까?”
리나는 솔라가 자신을 노려보는 이유를 나름 짐작한 듯 눈치를 보며 물었다.
“너…… 성이 ‘리버스’인가?”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솔라는 리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흐익!!”
솔라의 물음에 당돌했던 리나의 태도는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내 존재는 스승님과 친분이 깊은 몇몇 마녀님만 알고 있는 거였는데……!”
리나는 불안한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딸꾹, 딸꾹.
너무 놀랐는지 딸꾹질도 한다.
“제발 나를 부를 때 리버스라는 성은 빼서 불러 줘. 부탁이야.”
그리곤 간절한 눈빛으로 솔라에게 애원했다.
솔라는 리나의 애원 어린 부탁을 한 귀로 흘리며 눈앞의 어린 마녀를 노려봤다.
“스승님 일은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그건 절대로 스승님 짓이 아니야! 그림자 핵에게 몸을 빼앗겨서 그러신 거야. 내가 스승님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게!”
리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빌고 또 빌었다.
‘리나 리버스. 현재 폭주한 사령술사 이자벨 리버스의 숨겨진 제자이자…….’
그런 리나를 솔라는 심각한 눈으로 관찰했다.
‘훗날 사천왕이 되는 죽음의 대마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