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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3화 (13/212)

제13화

#13.

마녀 리나 리버스는 쭉 솔라 곁에 붙어 있었다.

혹시나 솔라가 자신의 정체를 발설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랬기에 리나가 솔라의 몸종이라는 말은 거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요즘엔 몸종을 넘어서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18살이라고?!”

처음으로 리나의 진짜 나이를 알게 된 솔라가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리나의 몸을 훑어봤다.

“기분 나쁘거든! 그런 눈으로 훑어보지 마!”

솔라의 눈빛을 받은 리나 또한 얼굴을 찡그리며 응수했다.

“그러는 그쪽은 몇 살인데?”

“스물하나.”

그는 지구에서의 나이와 이곳에서의 나이 중 하나를 고민하다가 솔라시우스의 나이를 말했다.

“나랑 별 차이도 안 나는구만…….”

리나 리버스는 금발, 금안의 기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금발, 금안이면 제국 황족이야?”

로안 샬루트의 정체는 토벌대원들에게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그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수일 뿐이다.

“그래.”

솔라는 리나의 뻔한 질문에 딱히 뭐라 안 하고 무심히 대답해 줬다.

“그렇구나…….”

리나는 계속해서 호기심과 호감이 섞인 눈으로 로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회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이제 슬슬 얘기 좀 해 보시지?”

옆에서 솔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엿듣는 사람도 없어.”

어느새 날이 저물었고 불침번을 서는 당직자 외에는 대부분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솔라와 리나는 각자의 텐트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네 스승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솔라의 황금빛 눈동자가 밤하늘 아래서 빛났다.

* * *

어느 날 리나의 스승 이자벨이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스승님, 그게 뭔가요?”

마법 처리된 유리병에 담긴 그것은 흑염으로 이뤄진 주먹만 한 구였다.

“재의 마녀가 준 의뢰란다.”

“재의 마녀라면 루한의 재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

이자벨은 사랑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리나의 황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의 마녀에게 듣기론 ‘그림자 핵’이라고 하더구나. 이걸 한번 연구해 보라고 의뢰가 들어왔어.”

이자벨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림자 핵을 공방 탁상에 올려놨다.

스스스슷.

탁상에 올려놓은 그림자 핵은 기분 나쁘게 흑염을 움직였다. 핵을 가둔 유리병이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

“스, 스승님…… 이거 기분 나빠요.”

이를 본 리나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왠지 이 평화로운 일상이 이것으로 끝날 것 같은 느낌. 마녀 생에 몇 번 없을 ‘예지’를 느낀 것이다.

“나도 이게 위험하다는 건 잘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단다. 우리 같은 사령술사를 챙겨 주는 재상 같은 귀족은 드물단다.”

리나를 보는 이자벨의 입가엔 씁쓸함이 보였다. 자신의 제자를 향한 미안함이 눈에 맺혔다.

“미안하구나. 다른 마녀들은 제자 자랑하기 바쁜데…… 너는 사령술사인 나를 만나 평생 숨어 지내야 하니, 너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거 같아.”

“아니에요! 스승님! 저는 스승님의 제자가 된 게 제일 행복해요!”

그런 이자벨의 말에 리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스승님이 절 거둬 주지 않았다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10년 전, 의식을 잃고 강물에 떠밀려 왔던 리나를 거둔 것이 이자벨이었다.

평생 사령술을 연구하면서 숨어 지내던 그녀는 늘 혼자였다. 제자도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 이런 비참한 운명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에게 어느 날 불쑥 다가온 리나라는 아이는 운명 그 자체였다.

분명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로웠던 이자벨은 리나를 거두었다.

처음에는 사령술을 가르치지 않았으나, 마법에 재능이 있던 리나는 스스로 스승의 사령술을 배웠고 결국엔 이자벨의 정식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다니…… 정말 고맙구나. 리나, 너는 나에게 친딸과 같아. 내 모든 것이란다.”

리나의 말에 이자벨은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며 금발, 금안의 견습 마녀를 꼭 안았다.

이자벨은 리나를 친딸처럼 키웠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리나가 입고 있는 로브와 모자만 봐도 보통의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리나를 꼭 안고 있던 이자벨은 자식 같은 제자의 정수리를 보았다. 황금색 머리카락, 황금색 눈동자.

이것이 무얼 뜻하는지 이자벨은 잘 알았다.

‘비록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야. 언젠간 리나는 날 떠나겠지…….’

리나 또한 자신의 본래 신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모양이다. 비록 너무 어릴 적에 고아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많이 잃었지만, 몇몇 남아 있는 기억이 있었다.

‘언젠간 요정 숲에 한번 가 보고 싶다고 흘리듯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테고.’

이자벨이 리나의 존재를 유독 숨기는 데에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비록 언젠가 떠나더라도 후회 없이 기르자. 적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게!’

종종 이자벨과 교류하는 마녀들에게서 제자 자랑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들보다 리나가 훨씬 뛰어났다.

이 아이는 황족이라서 그런지 재능이 넘쳤다. 거기에 마법에 대한 흥미와 노력까지 더 하니, 실력이 좋지 않을 수 없다.

말만 견습 마녀지, 실력으로 치면 어지간한 중급 마녀 정도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리나를 자랑하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간 괜히 밉보일 수 있어서 애써 참았다.

그녀와 교류 중인 마녀들은 이자벨에게 제자가 하나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 이름도, 나이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이번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리나를 양지에서 키울 수 있을지도 몰라.’

이자벨이 위험과 불길함을 무릅쓰고 재의 마녀의 의뢰를 맡은 데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이 그림자 핵을 잘 다룰 수만 있다면. 제국과의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거야. 사령술에 그림자술을 더한다면…… 더 이상 사령술이 흑마법 취급받진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리나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자벨은 품속의 리나를 꼭 안으면서 눈을 빛냈다.

시간이 흘렀다.

이자벨과 리나는 매일매일 그림자 핵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스스스슷.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자 핵은 더 커지고 진해졌다.

이젠 특수 제작한 마법진 안에 가둬야 할 정도로 강렬해졌다.

“스승님…… 이거 너무 위험한 거 같아요!”

리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말을 외쳤다.

“그러게 말이다. 재의 마녀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했을까?”

이자벨 또한 멍한 표정으로 그림자 핵을 보았다.

‘이 정도 힘이라면!’

그녀는 점점 욕심이 났다. 이 정도면 제국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 대륙을 자신의 발아래에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쿵쿵쿵쿵쿵.

가슴이 뛰었다. 늘 자신을 무시하고 핍박하던 놈들이 이제는 반대로 자신을 경외하는 것이다.

사방팔방에 리버스 학파의 사령술을 뽐내고,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제자 리나를 자랑하는 것이다. 마음껏!

‘양지에서! 그래, 양지에서 리나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이 정도 위험쯤이야!’

“흐흐흐흐흐…….”

이자벨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도 모르게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스승님……!”

옆에 있던 리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최근 들어 유독 음침해진 스승이 낯설었다.

시간이 몇 주 정도 더 흘렀다.

그림자 핵은 여전히 마법진 안에 있었지만.

핵이 뿜어 내는 흑염은 진작에 마법진 밖으로 흘러나왔다.

“키키키키킥……!”

그리고 이 흑염은 욕망과 열등감에 휩싸인 리나의 스승을 손쉽게 잠식했다.

“크흐으으으으…….”

이제 이자벨은 리나가 알던 스승이 아니었다.

그림자 핵에 잠식당한 사령술사였다.

“……스승님.”

리나는 괴물처럼 변한 스승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림자 핵에게 잠식당한 이자벨 또한 이성을 잃었음에도 리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스승님, 제가 반드시 구해 드릴게요!’

그림자 핵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잠식할 때, 리나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그림자 핵을 없앨 방법은 없었고, 스승을 그림자 핵에서 멀리 떨어트리려 하면 스승의 심장이 멈추려고 했다.

‘이 로사리오면! 가능할지 몰라!’

대신 그녀는 늘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목걸이를 꺼냈다. 자신이 강물에 떠밀려 왔을 때 목에 걸고 있었다는 로사리오다.

스승님은 이 로사리오를 절대 밖에 보이지 말라고 했었다.

리나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줄 로사리오를 매일 스승 몰래 조금씩 연구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이 로사리오에는 빛의 힘이 담겨 있어.’

이 평범해 보이는 로사리오는 사실 아주 고등급의 마도구라는 사실.

‘짝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현재 반쪽짜리였다.

스승이 그림자 핵에 잠식당하는 동안, 그녀는 로사리오를 가지고 그림자 핵을 해결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모든 준비가 끝났다.

“키흣! 크아아악!”

앞에 선 이성을 잃은 이자벨이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비단결 같았던 스승님의 흑발은 이제 산발이 되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스승의 사지를 묶었다. 리나가 이자벨의 몸을 구속할 때에도 이자벨은 가만히 있었다.

훌쩍!

그런 스승을 볼 때마다 어린 마녀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비극도 이젠 끝이다.

“하아아압!”

리나는 그동안 은밀히 준비한 마법진과 마석, 마도구를 총동원해 그림자 핵을 압박했다.

저 핵의 사악한 힘을 이 로사리오에 가둘 작정이다.

파아아앗.

로사리오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고.

“아아아악!”

사지가 묶여 있던 스승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너! 리나! 네가 감히 나를! 나를! 죽여 버릴 거다! 죽이겠어! 개 같은 년! 너를…… 내가!”

이자벨은 처음으로 리나를 향해 공격성을 내보였다.

마법진 안에 갇혔던 그림자 핵 또한 요동쳤다.

그렇게 밤에 시작된 의식이 새벽까지 이어졌을 때.

[꺄아아아악!]

마법진이 깨졌다.

승자는 그림자 핵이었다.

“……!”

리나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마법진에서 해방된 그림자 덩어리를 보았다.

“리나야……? 내가 지금까지 무슨……!”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일시적으로 스승 이자벨의 정신이 돌아왔다.

[키슈아아아아!]

그림자 핵은 이자벨이 아닌 리나를 노렸다. 너는 절대 살려 두지 않겠다는 사념이 강하게 두 마녀에게 전파됐다.

“안 돼!”

그림자 핵의 사념을 알아챈 이자벨은 지쳐서 주저앉은 리나를 대신해 그림자 핵을 맞아 버렸다.

“아아아악!”

“스승님!”

리나는 그런 스승을 보며 절규했고.

화아아아앗.

동시에, 그녀 목에 걸려 있던 로사리오가 빛나면서 이자벨에게 향하던 그림자 핵의 일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하지만 그림자 핵의 사념이 아닌 본체를 정통으로 맞은 이자벨은 무사하지 못했다.

로사리오로 그림자 핵을 받아 낸 리나 또한 눈동자와 머리 색이 회색으로 변하는 후유증을 입었다.

“리나야…… 어서, 어서 도망…… 크아아악!”

이자벨은 흑염에 뒤덮였고, 제자가 보는 앞에서 폭주했다.

두 마녀가 오손도손 살던 오두막과 공방 일대는 순식간에 오염되었고, 땅속에서 온갖 시체들이 튀어나오더니 군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폭주한 사령술사는 제자를 공방에 남기고 밖으로 떠났다.

어린 견습 마녀는 스승이 떠난 공방의 창밖을 멍하니 보았다.

꺄아아악!

으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바람을 타고 창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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