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4화 (14/212)

제14화

#14.

“……그렇게 된 거야.”

리나의 이야기가 끝났다.

“…….”

솔라는 말없이 리나를 보았다.

리나는 그의 눈동자를 보았다. 황금색 눈동자. 자신이 얼마 전까지 하고 있던 눈동자다.

‘로사리오와 머리 색 얘기도 할걸 그랬나? 어쩌면 같은 황족일 수도 있는데…….’

리나는 솔라에게 자신의 본래 머리 색과 눈동자 색, 그리고 로사리오와 관련된 내용은 빼고 말했다.

‘아니야. 악황후 옥타나에게 충성하는 황족도 있다고 했어. 루한의 여왕님도 그 황족에게 배신당해서 지금 고생 중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내 속으로 신중함을 선택했다.

“재상이 그림자 핵을 줬다고?”

지금 솔라는 이자벨이 재상이 준 그림자 핵을 연구하다가 몸을 빼앗겼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응.”

‘역시 모든 흑막은 재상이야.’

분명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정보와 합치니 대강 넘어갈 수 있었다.

‘죽음의 대마녀는 그림자술과 사령술을 동시에 사용했지. 그림자술로 강화된 언데드 군단은 정말이지 위협적이었고.’

솔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곧 게임에서도 어려웠던 적을 상대하러 가야 한다. 마왕의 저주라는 페널티가 가득한 상태로.

“그런데 1차 토벌대 때는 왜 나타나지 않은 거야?”

그러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긴 솔라는 리나에게 물었다.

“1차 토벌대에는 상급 마녀와 마법사가 있었는데?”

“그건…….”

1차 토벌대 얘기가 나오자, 리나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첫 번째 토벌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다.

“난 폭주 중인 사령술사의 제자야.”

그녀가 쓴맛을 다시는 표정으로 말했다.

“1차 토벌대에서 이름과 스승을 알린 건가?”

“……상급 마녀와 마법사에게만 말했어.”

“표정을 보니 좋은 대우는 못 받았겠군.”

“응. 날 벌레 보듯 했어. 결국엔 나를 구속하고 죽이려 들었어. 폭주했던 스승님이 그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살해당했을 거야.”

왜 리나가 그토록 자신의 이름과 정체를 밝히는 걸 싫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1차 토벌대가 전멸한 이유가, 그럼?”

“어차피 전멸할 팔자였어, 그들은.”

어린 마녀의 눈가에 우울함이 번졌다.

‘원작, 그러니까 내가 했던 플레이에서는 2차 토벌대도 전멸했어. 교단에 의해 화형당하던 리나를 이자벨이 구해 주면서 전멸한 셈이군.’

2차 토벌대를 몰살한 사령술사는 죽은 리나를 살리기 위해 어떤 주술을 썼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과 그림자 핵을 리나에게 주입하면서 살렸을 것이다.

그렇게 부활한 리나는 재상 아리아에 의해 거둬진 후 제국의 사천왕이 된 거겠지.

“스승님은 폭주 후에도 나를 건들지 않았어. 내가 다가오면 피하셨어. 그러면서도 내가 위험에 처하면 바로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고 다시 가셨어.”

리나의 변해 버린 회색 눈동자가 애절하다.

“나는 그걸 이용해서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켰어. 하지만 역부족이었어.”

방랑 기사의 황금색 눈동자가 소녀 마법사의 회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부탁이야. 스승님을 구해 줘!”

리나는 솔라의 옷깃을 꼭 잡고 빌듯이 부탁했다.

“내가 미끼가 될게! 스승님을 잠시 붙잡기만 하면 돼! 내게 방법이 있어.”

“방법?”

“내 로사…….”

솔라의 질문에 리나는 대답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회색 눈동자에 갈등이 서렸다.

이 로사리오는 보통 물건이 아니다. 만약 눈앞의 망명 황족이 실은 나쁜 사람이라면?

“아직 숨기는 게 더 있나 보군.”

솔라는 무심한 눈으로 갈등하는 리나를 보았다.

“그게…….”

리나는 갈등하다가 눈을 꾹 감았다.

‘믿어 보자!’

이내 품속에 숨긴 로사리오를 꺼내려 했다.

“나는 사실…….”

콰아아아아!

어린 마녀의 고백 직전, 가까이에서 거대한 괴성이 터졌다.

“사령술사다!”

“사령술사의 언데드 군단이다!”

땡땡땡땡땡땡!!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적막에 싸인 토벌대 진지가 순식간에 전쟁터가 돼 버렸다.

* * *

사방이 어두워지고, 땅은 그림자 늪에 스며든 것처럼 침식됐다.

키히히히히.

크샤아.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은 오싹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어어어.

우우우우.

1차 토벌대로 추정되는 병사와 용병들이 언데드가 되어 붉은 안광을 흘리며 걸어오고 있다.

히히히힝.

부패와 악취를 풍기는 말을 탄 기사들도 보였다. 그들 또한 시체처럼 창백한 언데드, 데스나이트다.

‘……?’

솔라는 문득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떠올랐다.

전에 리나가 펼쳤던 귀신의 집 마법과 환경이 비슷하다.

‘그림자 마법이었나?’

어둠과 정신 마법인 줄 알았는데.

‘저 아이에게도 그림자 핵이 스며든 건가?’

그는 심각한 눈으로 옆에 붙어 있는 마녀를 보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리나의 귀신의 집은 단순히 겁만 주려 했다는 점일 뿐.

“스승님…….”

리나는 열심히 언데드 군단 어딘가에 있을 스승을 찾는 중이다.

“깔깔깔깔깔.”

잠시 후, 허스키한 마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등장했다.

검은 머리를 산발하고 리나와 비슷한 마녀복을 입은 사령술사 이자벨이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다.

“키아아아아!”

폭주한 사령술사는 끓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사령술을 펼쳤다.

토벌대와 언데드 군단의 격전이 시작됐다.

쿠와아아아아!

콰앙, 콱, 퍼억!

“막아라!”

“사제님들이 사령술사를 처리할 때까지만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

적의 숫자는 많았고 사방이 포위됐다. 도망칠 곳은 없다.

‘아직 그림자술로 강화한 언데드 군단은 아니군.’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솔라는 오히려 안도했다.

‘이 정도면.’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사님!”

“어떻게 할까요?”

언제 왔는지 상인들이 부랴부랴 솔라 주위로 다가왔고, 그런 상인들 주위는 오스키의 토벌대가 호위하듯 둘러섰다.

그들은 전에 솔라가 펼친 마법, 새벽의 등불을 기억한 모양이다.

“그거 펼치는 거야?”

솔라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마녀 리나가 불쑥 물었다.

“그래. 바로 에어컨 쓸 준비나 해.”

“도대체 그놈의 에어컨이 뭔데? 냉기 마법을 뜻하는 황실 은어야?”

리나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자, 솔라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졸지에 쓰다듬어진 리나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뭐야? 이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다.

혼란스러워하는 리나를 뒤로하고, 솔라는 걸음을 옮겼다.

“같이 가!”

그런 그의 뒤를 리나가 급히 쫓았고.

“기사님!”

“로안 경!”

상인과 토벌대원들 또한 병아리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전황은 토벌대에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사령술사의 군단과 제대로 싸우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정예만을 엄선했거늘, 상당수는 정신 공격에 당해 패닉에 빠져 버렸다.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만이 힘겹게 신성력으로 버틸 뿐이다.

“오…… 신이시여!”

푸욱!

눈앞에서 신성한 갑옷을 입은 성기사의 몸통이 꿰뚫렸다.

마법이 분명한 공격이 창처럼 성기사의 몸을 뚫은 것이다.

“아아……!”

자신을 보호하던 성기사가 즉사하자, 사제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습관처럼 숨 쉬듯 긋던 성호조차 힘이 빠져 긋지 못했다.

“1차 토벌대의 마녀와 마법사를 리치로 만들다니……!”

사제의 눈동자가 떨렸다.

방금 성기사를 꿰뚫은 마법은 사령술사 이자벨이 발현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리치로 길들인 두 마법사가 쏜 것이다.

교단의 토벌대는 겨우 두 리치에게 농락당하는 중이었다.

“이게 어떻게 일개 사령술사의 힘이란 말인가. 대마녀, 아니, 그 이상이야…….”

사제는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상성을 떠나서 실력 차가 너무 났다.

퍼억!

눈을 질끈 감은 사이 옆에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흐이이익!”

놀라 눈을 떠 보니 신성 결계를 펼치고 있던 동료 사제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 끝났어!”

사제들을 보호해야 할 성기사들은 전멸했고 이제는 사제들의 차례. 몇몇 사제는 결계를 유지하는 것도 포기하곤 머리를 감싼 채 벌벌 떨었다.

챙그랑!

뒤이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간신히 유지하던 신성 결계도 무너졌다.

허억, 허억, 허억.

신성력을 다 소진한 사제들은 절망이 담긴 숨을 몰아쉬며 최후를 기다렸다. 몇몇은 성호를 그으며 기도했고,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공통점은 다들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는 점이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사방에서 들리던 다른 토벌대의 비명 소리도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언데드 군단의 괴성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은 상태에서 따듯한 바람이 밀려왔다.

사제들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

어두웠던 사방이 반딧불 가득한 숲에 온 것처럼 은은히 빛났다.

끼아아아악!

저 앞에서 사령술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가득 포위했던 언데드 군단 또한 보이지 않았다.

대지 위에 언데드 군단의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가 보였다. 반쯤 재가 된, 하나같이 불탄 흔적이다.

화르르륵, 화락!

이어서 눈부신 빛이 터지고 뜨거운 바람도 연이어 몰아쳤다.

“로안 샬루트 경.”

“신이시여……!”

모두가 이 기적 같은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지 인지했다.

사제들은 멍하니 빛과 열을 휘두르는 기사를 보며 성호를 그었다.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는 눈부신 빛에 휩싸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빛이 터졌고 화염이 일었다.

그는 사령술사의 언데드 군단을 전부 태워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사령술사가 부리는 두 리치마저 불태우고 있었다.

“저건 오러야! 소드 마스터라고!”

“마법에다가 오러까지! 저런 게 가능하다니……!”

“신께서 루한과 여왕 폐하를 버리지 않으신 거야!”

신성한 빛의 검이 인두처럼 리치와 데스나이트의 몸을 지졌다.

“흐이이이익!”

마녀 이자벨은 그림자 핵에 의해 이성을 잃었음에도 본능적으로 눈앞의 기사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두려움과 별개로 그를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쐐애애액!

솔라가 리치와 데스나이트를 상대할 때, 이자벨은 그림자술로 만든 흑염의 창을 던졌다.

파앗!

하지만 흑염으로 이뤄진 창은 솔라의 피부 앞에 생성된 실드로 인해 소멸됐다.

태양 이능 중 하나인 빛의 실드였다.

“이이이익!”

이자벨은 이를 갈면서 다시 한번 사령술을 펼쳤다.

쿠우우우.

그워어어.

방금 전에 죽인 2차 토벌대가 언데드가 되어 일어났다.

성기사는 다크템플러가 되었고 사제는 암흑 사제가 되었다.

다시금 적지 않은 수의 군대가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 한 명을 향해 몰려왔다.

막 마녀 리치의 심장에 태양검을 쑤신 솔라는 무심한 눈으로 몰려오는 언데드 군단을 훑었다.

그는 리치의 심장에 박은 검을 뽑았다.

파아아앗.

군단을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화르르르륵!!

검 끝이 겨눠진 모든 곳에 거대한 불길이 터졌다.

태양 이능 중 광역 스킬인 ‘열사의 필드’다.

마치 지금까지 자신을 제한했던 리미트가 풀린 것처럼, 마치 태양신의 화신이라도 된 것처럼, 솔라시우스는 지구에서의 태광휘의 힘을 아낌없이 펼쳤다.

‘에어컨 마녀에 마도구 아이스붐까지 쓰면 되겠지.’

물론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흐으으으.”

이자벨은 결국 도망을 선택했다. 도망치기 전, 아직 남아 있는 다크 프리스트와 마법사 리치에게 저 괴물 같은 기사와 자폭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에 말이다.

‘어딜!’

이자벨이 도망치려 하자, 그는 검에 태양검을 담고는 멀리 날아가고 있는 사령술에게 검기를 던졌다.

“끼아아아악!”

등을 보이며 도망치던 이자벨의 뒤에서 불길이 터졌다.

태양 이능 중 원거리 스킬로 분류되는 ‘빛의 추적’이 정확히 명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자벨은 뒤통수와 등, 엉덩이가 불타는 고통을 버티면서 꿋꿋이 도망쳤다.

솔라시우스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추격하진 않았다. 시체 폭발로 자폭을 준비 중인 나머지 언데드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태양검을 발동해 시체 폭발을 준비 중인 놈들을 먼저 터트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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