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5화 (15/212)

제15화

#15.

마지막 남은 언데드까지 불태웠다.

‘라이프 포스 배슬은 없나 보군. 급조한 리치인가?’

두 리치에겐 라이프 포스 배슬 같은 건 없었다.

하긴 이지를 잃은 상태로 제대로 된 리치를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피해가 컸다.’

솔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언데드의 것으로 보이는 타다 남은 재가 가득했다.

살아남은 다른 토벌대원들은 힘없이 터벅터벅 전장 정리를 하고 있었고, 사제들 또한 전의를 잃은 얼굴로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 주고 있었다.

2차 토벌대는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아무리 태양 이능이라고 해도 그런 난전에서 모두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스키에서 함께 출발한 사람들만 지키기도 벅찼으니까.

후우우욱!

뒤이어 부작용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솔라는 급히 손짓으로 리나를 불렀다.

리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전에 준비한 온갖 냉기 마법을 솔라에게 퍼부었다.

“기사님.”

“로안 기사님.”

그렇게 냉찜질(?) 중인 솔라를 향해 여러 사람이 조심스레 몰려왔다.

오스키의 토벌대원, 칼트 상단주를 비롯한 전쟁 상인들도 있었지만 의외였던 것은 사제들이었다.

“로안 샬루트 기사님.”

그들은 이제 솔라에게 ‘경’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기사님’이라는, 기사에게 줄 수 있는 존칭을 사용했다.

“아아…… 마하 대제의 재림이시어!”

살아남은 교단의 사제 전원이 솔라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토벌대의 모두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오스키에서부터 인연을 이어 온 칼트 상단의 상인들도 솔라를 경배하듯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에? 에?!”

냉기 마법을 쓰던 리나는 자신도 무릎을 꿇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눈치 보다가 엉거주춤 허리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냉기 마법은 계속 펼쳤다.

“…….”

솔라시우스는 이 상황이 딱히 어색하지 않았다.

‘지구에서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지.’

지구 최강의 EX급 헌터, 세계 각성자 협회의 초대 회장, 세계 최강 검룡길드의 길드장, 지구를 구한 용사이자 구원자.

지구에서도 자신을 향해 광적인 팬심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었기에 태광휘이자 솔라시우스인 그는 덤덤했다.

“오오!”

그리고 그런 그의 태도가 더더욱 후광에 시너지를 더했다.

“마하 대제의 재림?”

한편 사제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칭호가 거슬렸다.

마하 대제라면 지금 폭망 중인 제국의 건국 시조다.

“그렇습니다! 오러와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마검사! 당신의 무용은 제국의 건국 신화 이상이었습니다. 제국을 건국하고 문명을 펼친 마하 대제의 재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로안 샬루트여! 유일한 희망이여, 가장 고귀한 황족이여! 대륙을 구원하소서! 제국을 다시 세우소서!”

사방에서 그를 찬양하는 외침이 가득하다.

궤멸하다시피 한 토벌대가 맞나 싶을 정도.

애초에 제국과 제국 황족을 경멸하는 루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이러니.

그만큼 방금 솔라가 보인 무용은 중세 판타지인 이세계에서도 놀라웠다.

“……!”

이런 상황에 솔라는 미간을 찡그렸다.

‘졸지에 건국까지 할 분위기야.’

건국이라니, 왕좌라니. 지구에서도 그런 게 싫어서 은퇴 후 잠적한 게 태광휘였다.

‘차라리 욕을 해라.’

마왕 무찌르고 하루빨리 지구로 돌아갈 생각뿐인 그에겐 어떤 저주와 비난보다 더 끔찍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솔라는 머리를 굴렸다.

“조용.”

생각을 정리한 후 목소리에 마나를 담고 조용을 외쳤다.

그를 찬양하던 기도문과 외침이 순식간에 들어갔다.

높은 제국어와 요정어 억양이 합쳐진 그의 목소리는 세상 어떤 신분패보다 고귀한 신분임을 증명했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너희는 알 것이다. 제국의 악황후가 얼마나 사악한지. 너희 중 몇몇은 제국의 암흑군단을 상대해 봤을 것이다. 놈들이 얼마나 많고 강한지. 너희 모두는 암흑대공 둠과 흑태자의 믿어지지 않는 용력을 들어 봤을 것이다.”

솔라시우스의 목소리가 초토화된 진지에 불었다.

“지금 내게 이런 힘이 있다고 해도 한참 부족하다. 나는 아직 멀었다. 힘을 길러야 한다.”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의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광적인 눈으로 경청한다. 옆에서 냉기 마법을 쓰는 리나 또한 어느새 솔라의 연설에 매료된 듯하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완성될 때까지 지금의 일을 함구하라. 나는 악황후를 죽일 것이며, 암흑대공의 심장을 뚫을 것이며, 흑태자의 목을 벨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짧고 굵은 연설이 끝났다. 모두가 감화되었다.

“마나의 맹세를 하겠습니다!”

“신성의 맹세를 하겠습니다!”

“목숨과 영혼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어떤 협박을 받아도 로안 샬루트 님을 지키겠습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들은 마나의 맹세를,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용병들은 사제의 도움을 받아 신성의 맹세를.

맹세를 하며 그들은 생각했다.

아! 지금 이 순간은 기억되고 기억돼, 먼 훗날 신화가 될 것이다.

마하 대제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죽더라도 신화 속에 남아 영원을 노래할 것이다.

저 앞에 우리의 신화가 되실 분이 계시다.

맹세하는 이들의 머릿속에 광명이 펼쳐졌다.

모두가 눈물의 서약을 했다.

솔라는 그들의 맹세를 굳이 막지 않았다.

‘마왕은 어쨌든 잡아야 하니까. 제국은…… 알아서 하라고 하지, 뭐.’

자신에 대해서 덜 알려질수록 이득인 것은 맞았다.

마왕의 저주에 의한 디버프를 해결하지 않는 한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다.

“저기…… 나도 마나의 맹세를 해야 해?”

옆에서 냉기 마법을 사용 중인 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솔라의 카리스마에 끌리는 것과 별개로 마나의 맹세는 영 꺼림칙한 모양이다.

“넌 하던 거나 계속해.”

“응!”

솔라는 냉기 마법을 사용 중인 리나를 보며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여전히 덥군.’

리나는 인정사정없이 냉기 마법을 퍼붓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즉에 동상에 걸려 사지를 절단했을 상황이지만, 솔라에겐 아니었다.

‘마도구 아이스붐을 사용할까?’

시선을 돌려 공터를 보았다.

그곳에다 마도구를 사용하고 추가로 리나의 냉기 마법까지 받으면 될 것 같았다.

‘나중에.’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아직 안 끝났어.’

그는 사령술사 이자벨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봤다.

“네 스승, 어디로 도망쳤을 것 같아?”

냉기 마법을 사용 중인 리나에게 물었다.

“아마 공방일 거야.”

그의 물음에 리나가 울적한 얼굴로 답했다.

휘익!

그녀의 말을 들은 솔라는 휘파람으로 흑마 맨해튼카페를 불렀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솔라 근처로 달려왔다.

“안내해.”

“응!”

솔라는 말에 오른 후, 리나를 들어 앞에 앉혔다.

“너희는 여기서 전장 정리를 하고 있어라. 나는 사령술사를 마저 처리하고 오겠다.”

그는 떠나기 전 자신을 우러러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함께하겠습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자 기사와 용병, 사제들이 너도나도 나서려 한다.

“아니, 괜찮다. 너희는 이곳에서 혹시 모를 언데드의 탄생을 경계하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솔라의 말투는 고압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그런 솔라의 말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가능하면 이자벨을 살려야 해. 그러기 위해선 목격자가 없어야 한다.’

저들은 합류해 봤자 방해만 된다.

“리나, 안내해.”

솔라는 그 말을 남기고는 말을 몰고 빠르게 사라졌다.

모두가 새롭게 탄생한 영웅의 뒷모습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음유시인에게 이 무용담을 전해 대륙 곳곳에 희망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침묵하기로 맹세까지 한 상황.

다들 아쉬우면서 두근거리는 감정으로 새벽을 기다렸다.

* * *

과거 리나와 이자벨이 함께 지냈던 오두막 안.

으으으으…….

상처 입은 짐승의 신음 소리 같은 게 새어 나온다.

검은 머리카락을 지저분하게 산발한 여인이 구석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루한의 작은 영지 중 하나인 토베스 자작령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 마녀가 고통과 상실감에 흐느끼고 있다.

언데드 군단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재가 되었다.

아무리 그림자 핵의 힘을 받는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에 큰 힘을 잃은 이자벨은 결코 멀쩡하지 않았다.

거기다 등에 큰 상처까지 입었다.

치이이익.

살이 익는 소리가 아직도 등에서 나고 있었고, 연기와 살 타는 냄새도 심하다.

살은 물론 등뼈가 일부 보일 정도의 중상.

그림자 핵의 검은 흑염이 이를 치유하고 있지만, 상반되는 빛의 힘 때문인지 신통치가 않다.

“스승님!!”

그때, 오두막 밖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 목소리를 들은 이자벨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잠시나마 고통도 잊은 상태로 숨을 죽였다.

“스승님!!”

다시 한번 익숙하고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나? 리나……?”

이자벨의 입에서 오랜만에 사람의 육성이 나왔다.

큰 고통과 그림자 핵의 힘 분산으로 이자벨의 이성이 잠시나마 되돌아온 것이다.

덜덜덜덜덜.

이성이 돌아온 이자벨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비록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그녀가 벌인 참극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공방에 있는 마법 단검을 발견했다.

단검을 꽉 쥐고는 목에 가져다 댔다.

허억, 허억, 허억…….

흐으으으.

가쁜 숨과 흐느끼는 소리를 동시에 흘리며, 이자벨은 자살을 선택했다.

죽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자살을 결심한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흐읍.

이자벨은 숨을 참고는 목에 검 끝을 찔렀다. 살이 뚫리고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대로 몇 센티미터 더 들어가면 죽을 수 있다.

늘 고독했고 잠시 행복했고 처절했던 삶의 끝이다.

―어림없지.

“!!”

하지만 목에 단검을 찌른 그녀의 머릿속에 그림자 핵의 사념이 다시 가득 찼다.

땡그랑.

단검을 쥐었던 손에 힘이 풀리더니 이내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해방을 원하나? 안식을 원하나?

이자벨의 심상 속에 똬리를 튼 심연의 그림자가 물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이자벨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몸은 이제 쓸모없다. 나약하고 병들고 큰 상처까지 입었지. 새로운 몸을 나에게 바치면 너는 자유와 안식을 누리리라.

그림자 핵의 속삭임.

“……!!”

녀석이 말한 새로운 몸이 무엇인지 눈치챈 이자벨은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안 돼! 리나는 절대 안 돼!’

사령술사는 거부했다. 저항했다.

―이미 늦었다.

하지만 그녀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꺄아아아악!!”

이자벨의 온몸이 흑염에 뒤덮였고.

―새로운 몸. 싱싱한 몸. 그리고 빼앗긴 나의 일부.

그림자 핵은 붉은 안광을 흘리며 오두막 밖으로 나섰다.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 * *

“꺄아아아악!!”

오두막 안에서 이자벨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리나는 당장이라도 오두막 안으로 달려갈 기세다.

하지만 솔라에게 로브가 잡혀 달려가지 못했다.

“제발, 제발……. 스승님을 살려 줘…….”

리나가 솔라에게 무릎 꿇고 사정한다.

“부탁이에요, 제발. 뭐든 할게요. 뭐든…… 제발…….”

어린 소녀가 눈물 콧물 쏟으며 애원한다.

“…….”

솔라는 그런 리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심각해.’

오두막 안에서 거대한 어둠이 감지됐다.

“여기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

그랬기에 그는 어린 마녀에게 확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냉기 마법, 할 수 있는 모든 냉기 마법 준비할 테니까…… 제발! 우리 스승님 좀 살려 주세요. 우리 스승님은 정말 불쌍하신 분이에요. 진짜 착하신 분이에요! 살려만 주면 평생 속죄하실 거예요. 제발…… 제발!”

“……노력해 보지.”

솔라는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리나를 맨해튼카페에 강제로 태우곤 멀리 보냈다.

콰아아앙!

이윽고 오두막이 폭발하더니 거대한 흑염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키아아아아악!]

물질세계의 것이 아닌 듯한 존재의 괴성이 터져 나왔다.

“후우…….”

이를 본 솔라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리나에게 냉기 마법을 풀로 받았다. 그럼에도 워낙 크게 이능을 써서 그런지 몸이 뜨겁다.

“…….”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그걸 사용하면,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회복할 수 없는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저 리나라는 마녀를 돕고 싶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솔라시우스, 태광휘는 한숨을 쉬었고.

―――――!

얼마 있다가 거대한 열풍과 함께 빛이 터졌다.

솔라의 몸에 빛으로 된 전신 갑옷이 생성되었다.

지구에서 태광휘가 마왕을 잡을 때 사용했던 스킬.

태양 이능의 궁극기

‘태양의 후예’가 루한 땅에서 처음으로 발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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