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16.
경력이 아주 많은 신입.
마왕을 무찔렀던 태광휘다.
그랬던 그가 이세계의 방랑 기사 솔라시우스가 되었다.
―――――!!
그의 몸에서 궁극기 ‘태양의 후예’가 펼쳐졌고.
쿠아아앙!
빛의 갑옷을 입은 태양의 화신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마왕도 무찌른 빛의 화신 앞에 그림자 핵 따위가 나서 봤자다.
[!!]
거대한 빛과 뜨거운 열기.
심연의 덩어리는 비명조차 못 지르고, 솔라시우스가 휘두르는 광휘에 넘실거렸던 흑염을 잃었다.
‘빠르게, 한번에.’
태양의 후예를 발동한 솔라는 서둘렀다.
굳이 궁극기까지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후욱!
벌써 부작용이 느껴졌다.
애초에 아무리 그림자 핵이 강하다고 해도 태양의 후예를 쓸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태양의 화신이 되기로 자처한 것은.
‘살려 보자.’
티끌만 한 희망을 위해서다.
그는 빛의 검을 생성해 이자벨이 있는 흑염의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콰아아앗!!
그림자 핵의 흑염은 솔라의 빛의 갑옷을 막지 못했고 소멸하기 바빴다.
쌰아아악!!
마침내 흑염으로 이뤄진 가죽이 전부 타 버리고.
새카맣게 변한 마녀가 솔라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녀, 사령술사 이자벨 리버스!
부우우웅!
그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빛의 검을 휘둘렀다.
화아아악!
빛의 권능이 흑염에 휩싸인 이자벨을 향해 쏘아졌고, 빛의 파도가 그녀의 뇌와 심장, 척수를 쓸었으며, 그곳에 잠식한 그림자 핵의 심연을 정화했다.
“하아악!”
이자벨의 육성이 들렸다. 흑염으로 가득 찼던 마녀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검었던 피부는 창백한 피부로, 붉었던 눈동자는 갈색 눈동자로, 거칠고 산발한 머리는 검고 윤기 나는 생머리로.
“…….”
하지만 이를 보는 솔라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 * *
전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그가 궁극기를 발동한 직후부터 1분도 안 돼 모든 것이 끝났다.
사방이 온갖 잔해와 열기와 연기로 어지럽다.
파앗.
솔라는 급히 빛의 갑옷을 해제했다.
“……!”
어느 때보다 강렬한 후유증이 그를 뒤덮었다.
“리나!”
그는 이곳을 주시 중일 견습 마녀를 불렀고.
“에어컨! 에어컨 준비됐어!”
리나는 이제 스스로를 에어컨이라고 부르며 솔라에게 달려왔다.
“아니.”
솔라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리나에게 턱짓으로 오두막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부작용이!”
그의 고갯짓에 리나가 멈추더니 망설인다.
“괜찮아.”
어린 마녀의 걱정에 솔라는 피식 웃고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마도구 2개가 나왔다.
촤악, 촤악!
아이스붐 2개를 한꺼번에 던졌고 강력한 냉기가 터졌다. 솔라의 주변이 꽁꽁 얼었다. 그는 사우나를 즐기듯 그 안에 들어가서 열기를 다스렸다.
“어서 가라. 시간이 별로 없다.”
수증기 속에서 솔라의 착잡함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
그 말뜻을 알아차린 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오두막으로 달렸다.
완전히 파괴되어 터만 남은 오두막.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마녀가 오순도순 살던 마녀의 공방은 이제 그 흔적만 남아 있다.
그 중심부에 한 마녀가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다.
원래대로 돌아온 갈색 눈동자엔 초점 하나 없다.
“스승님!”
하지만 사랑하는 제자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자, 죽어 가던 마녀의 눈에 작게나마 초점이 모였다.
“스승님…….”
회색 머리에 회색 눈동자를 한 소녀.
본래엔 금발, 금안을 했던 소녀지만 그림자 핵 때문인지 색이 변했다.
하지만 이자벨의 눈에는 언제나 똑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리나…….”
자신에게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준 존재에게 감사할 뿐이다.
빛의 갑옷을 입은 존재였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리나야,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하고 당당하게!”
이자벨은 밝게 웃으면서 제자에게 말했고, 어린 마녀는 엉엉 울면서 스승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내 제자, 내 딸, 나의 모든 것.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은…… 진실된 축복이었어.”
우우우웅.
이자벨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 남은 생명과 마나를 이용해 리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마법진과 마나가 송풍처럼 불기 시작했다.
계승식이다.
조촐한 계승식.
건강한 상태에서 진행해도 며칠을 앓아눕는 계승식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얼마 남지 않은 이자벨의 수명을 완전히 끊었다.
리나는 그런 스승의 주검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그때.
스으으으.
이자벨의 주검에서 검은색 흑염 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먹만 한 작고 은밀한 덩어리는 정신없이 울고 있는 리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이대로 소멸할 수 없어. 복수할 테다. 기필코! 기필코!
그림자 핵이다.
이자벨과 리나의 마지막을 만들어 주기 위해, 솔라는 최대한 힘을 빼서 광휘를 휘둘렀고, 이로 인해 녀석은 완전한 소멸을 면할 수 있었다.
―저 반쪽짜리 로사리오에 나의 일부가 있어.
그림자 핵은 당장 리나의 몸속에 갈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 기생하려 하면, 품속에 있는 로사리오가 막았기 때문이다.
―일단 저 로사리오 안에서 힘을 회복하자.
하지만 지금의 그림자 핵에겐 오히려 로사리오로 들어가는 게 좋았다.
파아앗.
그림자 핵은 리나에게 달려들었다.
“?!”
정신없이 울던 리나가 갑자기 튀어나온 그림자 핵에 깜짝 놀랐고.
파슈우!
안주머니에 있던 로사리오가 튀어나오더니 그림자 핵을 집어삼켰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리나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림자 핵을 삼킨 로사리오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요동쳤고.
스으으으.
회색 머리에 회색 눈동자였던 리나의 머리 색과 눈은 이제는 완전한 흑발, 흑안이 되었다.
“이, 이런……!”
리나는 요동치는 로사리오를 양손에 쥐고서 패닉에 빠졌다.
불안정한 봉인이 느껴졌다.
‘나머지 반쪽이 필요해!’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이 로사리오의 짝을 찾아야만 완전한 봉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대로 놔두다간 언젠간 힘을 회복하여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다. 스승님에게 했던 것처럼.
‘로안 님이라면……!’
그러다 자연스레 금발, 금안의 잘생긴 방랑 기사가 떠올랐다.
그라면 로사리오의 짝을 찾을 필요도 없이 이걸 없애 줄지도 모른다.
리나는 조심스레 로사리오를 두 손에 들었다. 이걸 로안에게 가져가서 부탁해 보자.
“그랬던 건가?”
그때,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로사리오를 들고 있는 리나 위로 솔라시우스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처억.
그녀가 들고 있는 로사리오 위에 똑같이 생긴 로사리오가 등장했다.
“?!”
마침내 만난 두 로사리오는 곧바로 하나로 합쳐졌다.
번쩍!
합쳐진 로사리오에서 빛이 발생하더니 그림자 핵을 완전히 봉인했다.
끼아아악!
심연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
리나는 떨리는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으로 어떤 기억들이 막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오라버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이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처럼 리나의 머릿속을 밝혔다.
“솔라…… 오라버니……?”
“……그래.”
흑발, 흑안의 마녀로 성장한 여동생을 보면서, 태광휘는 가슴이 요동침을 느꼈다.
‘아마도 이 감정은 솔라시우스의 감정이겠지.’
솔라는 동생을 내려다보며 밝게 웃었다.
“한참 찾았어, 루나.”
루나.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 보는 동생의 애칭이다.
“응…….”
흑발, 흑안의 마녀, 몰락한 제국의 1황녀 루나시르네가 눈물을 훔쳤다.
남매는 재회했고, 루나시르네는 스승 이자벨을 오두막이 있던 공터에 깊게 묻었다.
비석을 하나 작게 세우고, 말 위에 올라탄 남매는 여정을 떠났다.
* * *
반나절이 지나고, 이자벨의 무덤이 있는 곳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타앗!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빗자루에서 회색 로브와 회색 모자를 쓴 마녀가 착지했다.
회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한 마녀, 루한의 재상이자 여공작인 아리아 데스모다.
“그림자 핵이…… 내 그림자 핵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온 아리아는 얼굴을 구겼다.
“이자벨…… 이 무능한 년!”
그림자 핵의 이상을 알아차린 것은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최근 여왕이 돌발 행동을 많이 저질러서 이를 확인하고 대처하느라 늦게 알아챘다.
‘궁 안에 처박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인 줄 알았더니,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군. 베네사 그 쥐새끼 같은 년이 바람을 넣었나?’
특히나 루카스 에버가든 대공의 섭정 복귀는 아리아에게 큰 충격이었다.
‘여왕이 나를 견제하고 있어. 루카스의 복귀를 내게 상의조차 안 하고 결정하다니! 누가 뒤에서 바람을 넣는 거지? 베네사? 하이마? 아니면 루카스가?’
문득, 여왕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인지 염려되었다.
‘그랬다면 설원의 권능으로 나를 단번에 얼음으로 만들어 부쉈겠지.’
그건 아닌 듯싶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여왕을 알현하는데, 적대감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전보다 좀 꺼린다는 정도.
‘기쁘지 않군.’
급격히 어긋나는 계획의 톱니바퀴. 재의 마녀는 깊은 짜증을 느꼈다.
아리아는 왕도에서의 생각을 접었다. 당장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젠 하다 하다 여기서도 문제가 터지니.’
피를 머금은 것 같은 붉은 눈동자로 재가 휘날리는 공터를 둘러보았다.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여왕의 반항, 섭정의 탄생보다 더 짜증 나는 상황이 이렇게 터졌다.
이자벨의 것으로 보이는 묘지가 보였다.
‘이자벨에게 제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이름은 끝내 알려 주지 않았지만.’
보아하니 그 제자가 만들어 놓고 간 묘지인 듯하다.
‘그 아이 인생도 참 고단하겠어. 계승식도 못 한 반쪽짜리 사령술사로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할 테니.’
아리아는 차가운 비웃음을 지었다.
무덤을 파헤칠까 생각하다가 관뒀다.
묘의 크기가 아주 작았다.
‘화장을 했군. 사령술사 아니랄까 봐.’
관 대신 유골함이 들어간 것이다.
“설원의 가호를 뚫기 위한 나의 계획이…… 새로운 사천왕을 만들기 위한 계획이…….”
두통을 느낀 회색 마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림자 핵. 황궁 보고의 제일 깊숙한 곳에 봉인돼 있던 고대의 악.
잘 키우기만 하면 설원의 가호를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되었다.
비록 설원의 가호가 옅은 외곽이지만 거대한 살육을 했음에도 멀쩡했으니까, 잘만 키우면 왕도 윈테라에서도 이런 폭주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존재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감지되지 않는 것을 보니 소멸한 게 분명하다.
“누구지? 도대체 누가?”
아무리 미완성 상태라고 해도 대마녀가 달라붙어야 잡을 수 있는 존재다.
‘2차 토벌대? 교단? 말이 안 되지.’
신성력이 아무리 상성에서 우위라고 해도 2차 토벌에 동원된 교단은 루한에 속한 2류들이다.
최소한 교국에 있는 성자들이 나서야만 상대할 수 있었다.
‘로안 샬루트?’
문득, 아리아의 머릿속에 최근 여왕이 관심을 가진다는 망명 황족이 기억났다.
동시에, 2차 토벌대를 향해 알 수 없는 확신에 차 있던 여왕의 반응도 떠올랐다.
‘로안 샬루트라는 이름은 황실 계보에 없어. 사생아인가? 아니면 수배 중인 황족?’
악황후 옥타나의 추격을 피하느라 가명을 쓰는 황족이 일부 있긴 했다.
재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런 실력자가 지금까지 왜 활동을 안 했던 것일까? 진즉에 나섰다면 제국은 망하지 않았을 텐데.
‘뒤늦게 깨달음을 얻어서 실력이 급격히 오른 건가?’
일단 수배 중인 황족일 가능성이 높다.
돌아가면 수배 황족들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들로 리스트를 정리해 봐야겠다고 아리아는 생각했다.
‘정말 좋지 않아.’
예상치 못한 강자의 등장.
어찌 되었든 좋은 상황은 아니다.
‘서둘러 대마법진 이노센티아를 준비해야겠어.’
그녀는 소실된 그림자 핵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가장 필요한 재료가 태양샘 반지와 세계수 묘목인데…….’
궁상맞게 아쉬워할 바엔 다른 대안을 찾는 편이 나았다.
‘세계수 묘목은 당장 구하기 힘들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게 태양샘 반지야.’
대안을 생각해 내는 재상의 눈동자가 피처럼 붉었다.
‘오랜만에 황궁에 연락을 해야겠군.’
볼카 광산은 문라이트 변경백 제일 남쪽에 있는 광산이다. 그곳에는 태양샘 반지가 있는 데다, 변경백의 최외곽이기 때문에 루한에서 설원의 가호가 가장 약했다.
‘볼카 광산에는 고대의 데몬이 있어. 그 데몬을 상대하려면 못해도 그가 와야 해. 그는 싫어하겠지만 황궁의 명령이라면 따르겠지. 모처럼 진한 피 냄새가 나겠어.’
재의 마녀가 생각해 낸 대안은 더 많은 철과 피를 흘리는 대안이었다.
키득, 키득, 키득.
예고된 진한 혈향에 마녀는 소리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