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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19화 (19/212)

제19화

#19.

“오라버니! 괜찮은 거야?”

추위가 사라지자 루나가 급히 다가온다.

“이게 뭐야?”

그녀의 시선은 솔라가 쥐고 있는 푸른색 검에 쏠렸다.

보기만 해도 냉기를 펄펄 흘리고 있는 검이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띤 마검. 생김새가 베고 찌르는 용도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식용 보검에 가깝다.

“일반적인 마검이 아니야……. 운석처럼 떨어진 것부터가 평범하다고 볼 수 없겠지만.”

마녀답게 마도구에 관심을 보였다. 마검 또한 마도구니까.

솔라는 루나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푸른 검을 휘둘러 보았다.

부웅, 부웅.

푸른 검의 궤적과 함께 하얀 서리가 휘날렸다.

“우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소녀의 눈은 몽롱하다.

“하늘에서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검이라니. 이런 경우가 있나?”

솔라는 푸른 검을 관찰하면서 동생에게 물었다.

“마하 대제의 건국 신화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어. 거긴 검이 아닌 반지였지만. 그 외에 용사가 나오는 몇몇 이야기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긴 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거군.”

동생의 말에 솔라는 일단 이 검을 챙겼다.

‘전투용으론 힘들 거 같고, 부적처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 되겠어.’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놈의 더위를 막아 준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럼 오라버니…… 용사가 된 거야?!”

검을 챙기는 솔라를 루나가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운석처럼 떨어진 검. 그 검에 선택받은 남자. 누가 봐도 신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 아닌가.

“아니. 그냥 방랑 기사야.”

‘용사라니. 그런 칭호는 지구만으로 충분해.’

루나가 눈을 빛내며 묻자, 솔라는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 * *

루시푸르네는 새벽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 침실을 서성거렸다.

불안, 초조, 걱정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출이 시작될 때쯤.

번쩍! 하는 발광과 함께 침대 옆에 있던 보주가 밝게 빛났다.

윈테이라와 연결된 보주, 설원의 저주 속에서 어머니의 팔찌와 더불어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도구.

‘다행이야!’

이를 본 루시의 얼굴이 한순간에 환해졌다.

이 보주의 빛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

솔라시우스가 무사히 윈테이라를 잡았다는 뜻이다.

커다란 안도감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눈꽃이 되어 떨어졌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선대 여왕님들, 선대 국서님들! 감사합니다!’

평소 찾지도 않던 신과 선조에게 감사 기도를 올린 루시는 서둘러 침대 옆에 마련한 작은 어항 크기의 보주 앞에 섰다.

콩콩콩콩콩.

안도와 설렘, 기쁨에 심장이 빠르게 뛴다.

설원의 대마녀는 아주 강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여왕을 암살하거나 납치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대신 여왕의 반려를 향한 공격은 종종 있었다. 특히 국서가 외유를 나갔을 때.

이런 이유로 국서의 검에는 동기화 기능이 존재했다.

여왕은 언제든지 검과 동기화되어 멀리서도 국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어차피 곧 왕궁으로 올 것이다. 낮에 선전관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다리기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특히나 솔라 옆에 있다는 마녀. 매번 들을 때마다 이름과 신분이 바뀌는 수상한 마녀가 너무 찝찝했다.

저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솔라의 상태도 하루빨리 보고 싶었고.

처억.

루시는 보주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감긴 그녀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국서의 검 윈테이라의 시점에 접속한 루시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봤다.

검이 떨어진 곳은 개울가로 추정됐다.

순식간에 얼었다가 다시 녹은 듯한 환경에 괜한 아찔함도 들었다.

‘아……!’

뒤이어 윈테이라를 쥔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아아……!’

금발, 금안의 젊고 잘생긴 기사.

‘솔라시우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자가 눈앞에 있다.

‘수염이……?!’

루시는 솔라의 얼굴을 보곤 놀랐다.

회귀 전의 솔라는 수염을 길렀었다. 지저분하게 기르지는 않았고 깔끔하게 다듬고 다녔었다.

하지만 회귀 후 윈테이라의 시점으로 보게 된 솔라는 수염을 깔끔하게 민 상태였다.

‘하이마가 얘기한 내용에는 수염과 관련된 내용이 없었지.’

기사들이 쓴 보고서라서 그런지 세심함이 부족했다. 그들은 잘생기고 깔끔한 용모라고 표현했는데, 수염을 민 것을 단순히 깔끔하다고 설명한 것이었다.

‘더 잘생긴 거 같아. 수염도 어울리지만…… 수염을 민 것도 멋져!’

동기화된 루시의 가슴이 더 크게 뛰었다.

‘……!’

하지만 격하게 뛰던 그녀의 심장은 얼마 안 가 급격히 템포를 잃었다.

‘저 마녀가 리나 샬루트?’

솔라 바로 옆에 흑발, 흑안의 마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엽지도 않은 거 같은데!’

괜히 보주를 쥔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오라버니, 몸은 괜찮은 거야?”

“괜찮아.”

“그 마검에 역시 냉기가 포함된 거구나.”

“맞아. 천만다행이지.”

“신기하다! 어떻게 절묘하게 오라버니에게 필요한 물건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두 사람의 대화도 들렸다.

솔라를 자꾸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마녀가 거슬렸지만, 한편으론 으쓱함도 들었다.

‘냉찜질 마녀! 이젠 너는 필요 없도다. 이제부터 내가 이 윈테이라로 솔라를 챙길 거니까!’

만약에 네가 죽음의 대마녀라고 해도, 내가 이렇게 보고 있는 한 넌 아무것도 못 해!

한동안 위축되었던 그녀의 자존감이 어쩐 일로 팔팔해졌다.

“휴~ 다행이다. 그럼 앞으로 냉기 마법 안 써도 되겠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저 불길한 마녀는 자신의 쓰임이 다했음에도 오히려 기뻐한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어.”

기뻐하는 루나의 머리 위로 솔라가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업!!’

이를 본 루시는 경악했다.

“아이 씨! 머리 헝클어져!”

그런 솔라의 쓰담쓰담에 이 가증스러운 마녀는 행복해 하기는커녕 싫어하는 티를 냈다.

‘쓰담쓰담이라니! 머리를 쓰다듬다니!’

루시는 경악을 넘어 어지러움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윈테이라와의 동기화가 끊어질 뻔했다.

‘나는…… 나는…….’

설령 솔라와 직접 만난다고 해도 그의 손길은 받을 수 없겠지.

이 설원의 저주가 이어지는 한.

그녀의 감정이 급격히 우울해졌다. 어쩐 일로 차올랐던 자존감도 급히 바닥에 처박혔다.

그렇게 우울해 하고 있는데, 솔라가 있는 개울가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기사님! 로안 기사님!”

“급히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전관이 왔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직접 보내신 선전관입니다!”

솔라를 발견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개울가에 있던 로안을 불렀다.

‘어제 보낸 선전관이 도착했구나. 빨리도 도착했네.’

어제 낮에 지시한 내용이길래 딱히 놀랍진 않았다.

‘선전관이 눈치가 있는 자여야 할 텐데…….’

다만 몇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긴 했다.

* * *

일반적인 통신이나 밀명은 마법 통신구로 하면 된다. 하지만 여왕이 직접 하달하는 공식 명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왕도의 선전관이 직접 움직였다.

급박한 경우에도 마법 통신구로 선조치 후, 훗날 선전관이 와서 여왕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전달했다.

크웽, 크웽.

하늘에서 들리는 신비롭고 우렁찬 영물의 울음소리.

여왕이 보낸 선전관은 그리핀을 타고 하늘에 떠 있었다.

“우와아!”

“나, 그리핀은 처음 봐!”

“여왕 폐하께서 직접 보낸 전령은 탈것부터가 틀리구나…….”

그리핀을 보는 토벌대원들은 너도나도 감탄한다.

그리핀은 희귀한 영물이고, 길들인 그리핀은 더더욱 귀하다. 루한 왕국 전체에서도 10여 마리밖에 없기에, 왕권을 상징하는 용도 외에는 쓰이지 않는다.

지금같이 여왕의 서신을 선전관이 직접 들고 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선전관은 그리핀에 앉아서 의기양양하게 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래, 이 시선!’

이 시선들 때문에 선전관을 하는 것이다. 밤새 잠도 못 자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 날아온 보람이 있다.

자, 이제 자신을 이토록 고생시킨 기사를 찾아보자. 금발, 금안에 잘생긴 방랑 기사라고 했다. 무장도 다른 기사와 다르게 매우 가볍게 입고 다니고, 옆에는 검은 머리를 한 어린 마녀가 붙어 있다고 했는데?

‘저자인가?!’

옳지! 방금 수풀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하늘에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금발, 금안의 잘생긴 남자가 저기에 있다.

‘위축되지 않는군. 하긴, 황족이라면 그리핀 정도는 몇 번 봤을 테지.’

선전관은 땅에 착지하지 않고 지상에서 7미터 정도 위에 떠 있었다.

“그대가 로안 샬루트 경이오?”

그는 그리핀을 타고 거만하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고.

“그렇소.”

기사 로안 샬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망명 황족이 이 루한 땅에서 저리도 당당하다니!’

그런 로안의 태도에 선전관은 불쾌했다. 모든 황족이 나쁜 건 아니라지만, 그 또한 루한의 백성이자 귀족. 제국과 제국 황족에 대한 악감정이 분명 존재했다.

그는 표정을 굳히고는 그리핀의 기수를 움직여 좀 더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금발, 금안의 망명 황족과 선전관의 거리는 고작 3미터 거리.

거대한 그리핀의 위용으로 압박감을 주려 했지만, 상대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다. 그저 무심한 듯 덤덤한 표정을 유지할 뿐이다.

‘허! 아주 대단한 황족 나리 납셨군.’

그런 솔라를 본 선전관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핀의 날개를 펄럭이게 해 수모를 줄까 생각도 했다.

‘그나저나 저 허리춤에 찬 검은 뭐지?’

실제로 그렇게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선전관은 문득 그가 허리에 찬 푸른색 검을 보았다.

‘저 검…… 분명 어디서 본 적 있어.’

굉장히 오래전이지만 명확히 기억에 있는 검이다.

‘아! 생각났다! 설마……?!’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윈테이라? 저 푸른 빛은 분명 국서의 검, 윈테이라야!’

윈테이라는 국서의 검. 하지만 국서와 직접 대면하는 이는 많지 않았고, 윈테이라의 정확한 모습을 아는 사람 또한 소수였다. 게다가 계승식이 실패한 날로부터 10년 동안 윈테이라는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선전관 또한 젊었을 적 몇 번 본 게 전부다.

‘어떻게 국서의 검을 저자가?!’

그럼에도 그 푸른 빛의 검은 워낙 인상적이라서 긴 시간이 지나고도 잊지 않았다.

‘윈테이라는 여왕 폐하가 국서로 지정한 반려가 아니면 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눈앞의 푸른색 마검은 분명 국서의 검, 윈테이라다. 저런 빛을 내는 검은 모방도 불가능에 가깝다.

선전관은 급히 머리를 굴렸다.

최근 오랫동안 은거하셨던 루카스 공이 섭정으로 복귀하셨다.

‘루카스 공이 전례를 깨고 생전에 국서의 검을 여왕 폐하께 드렸다면?’

그리고 여왕 폐하는 비록 저주를 입으셨지만 설원의 대마녀시다.

‘대마녀께서 그분만의 마법으로 이 검을 저자에게 보냈다면?’

서서히 나름의 퍼즐이 맞춰진다.

‘로안 샬루트는 폐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기사.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서라니…….’

제국과 황족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선전관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

‘저 방랑 기사가 차기 루한의 국서라는 것인가? 못해도 유력한 후보인 건 확실하군. 파격적이다. 아주 파격적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별개로 선전관의 정치 회로는 빠르게 돌아갔다.

“왜 그렇게 보고 있소?”

그때, 선전관의 시선에 불편해진 솔라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계속 내 검을 보고 있는 거 같은데…… 이 검에 대해 아시오?”

“이 검이라니?”

“나도 갑작스레 (하늘로부터) 선물받은 거라서, 이 검의 이름도 모르거든.”

“?!”

그 말에 선전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로안 샬루트 경은 저 검에 대해 모른다! 그렇다는 것은…… 맙소사! 폐하께서 짝사랑을?!’

머릿속에선 그의 관료 인생이 막을 내릴 것 같은 경보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전해 듣기로 여왕 폐하는 윈테이라를 통해 상황을 공유할 수 있다고도 했어!’

선전관은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모르오! 나는 모르는 일이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외쳤다.

“……?”

알 수 없는 선전관의 외침. 솔라를 비롯한 토벌대의 모두가 고개를 갸웃한다.

꿀꺽.

그러든 말든 선전관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리핀을 부드럽게 땅에 착륙시켰다.

그리곤 아주 조심히, 공손하게 그리핀에서 내렸다.

본래엔 그리핀에 탄 상태로 하늘에서 여왕의 명을 전달하지만, 지금은 감히 그럴 수 없다. 어찌 그리하겠는가?

차기 국서가 저기 계신다. 어쩌면 여왕께서도 이 상황을 보고 계실지 모른다.

덜덜덜덜.

선전관은 몸을 잘게 떨면서 애써 시선을 먼 산 보듯 했다.

‘눈치는 있군.’

선전관의 이런 행동을 말없이 보고 있던 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끝까지 하늘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혹은 눈치 없이 윈테이라에 대해 왈왈 떠들었다면? 가만두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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