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0화 (20/212)

제20화

#20.

그리핀에서 내린 선전관은 목을 가다듬고는 엄숙히 외쳤다.

“폐하의 명을 전달하겠소!”

엄숙히 외치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힐끔힐끔 솔라의 허리춤을 보았다.

“다들 예를 표하시오!”

솔라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선전관은 엄숙하게 비단으로 된 두루마리를 펼쳤다.

“사령술사 이자벨 리버스의 폭주를 막은 토벌대의 노고를 치하한다.”

여왕이 직접 작성한 서신이 낭송되자, 다소 어수선하고 들떴던 사방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특히! 가장 용맹하며, 가장 명예로우며, 가장 큰 활약을 한 방랑 기사 로안 샬루트에게 설원을 대신하여 축복한다.”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곤 선전관이 읽는 서신을 경청했다.

“토벌대 모두를 왕궁으로 부르고 싶지만, 지금은 난세이니 그대들 같은 일당백의 인재가 한꺼번에 자리를 비우면 좋지 않다.”

납득하면서도 아쉬움 담긴 한숨과 탄성이 곳곳에서 작게 들렸다.

“대표로 로안 샬루트를 왕궁으로 초대하니, 짐이 직접 그대에게 영지와 작위를 하사하겠다.”

그러다가 솔라를 향한 보상이 들리자, 주위에서 “오오! 역시!”라는 등의 조용한 환호가 들렸다.

“…….”

하지만 정작 이 명령서의 주인공인 솔라시우스는 딱히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토벌대의 다른 이들은 왕실 직할령 오스키에 머물면서 변경백의 안전을 수호하라. 논공에 따라 시장을 통해 금은보화를 내릴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선전관의 낭송이 끝났다.

“와아아아!”

“축하드립니다, 로안 기사님!”

“여왕 폐하께서도 영웅을 알아보신 겁니다!”

주위에서 환호가 본격적으로 터졌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진심으로 솔라시우스를 축하했다.

“여기 폐하의 서신을 받으시오, 로안 샬루트 경.”

선전관이 비단으로 된 명령서를 정성스레 다시 말아서 솔라에게 건넸다.

“고맙소.”

솔라는 처음과 달리 유독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선전관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그가 건넨 두루마리를 받았다.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 같소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소?”

덤덤한 솔라의 반응을 본 선전관이 우려를 담아 물었다. 혹여나 자신이 실수한 게 있나 괜히 가슴이 졸였다.

“아무것도. 충분히 만족하오.”

내뱉는 말과 달리 솔라는 분명 기뻐하지 않았다.

‘기어코 가게 되는구나.’

영지니 작위니 하는 등의 포상은 그에게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애초에 지구로 돌아갈 것이라 필요도 없고.’

이세계 사람이라면 환장하는 작위와 영지도 솔라에겐 큰 감흥이 없다. 그에겐 이런 중세 영지보다 초고속 인터넷과 아직 못 본 드라마 시리즈가 더 절실하다.

‘지금의 진행 상황은 원작과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런 거로 그 성격이 바뀔 리는 없지.’

솔라는 여왕이 직접 썼다는 이 서신을 순수하게 보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도적단을 많이 없앴고, 사령술사를 척살한 공은 치하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왕의 명예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명령서에 적힌 보상 또한 주기 싫은데 억지로 주는 것일 터.

‘작위나 영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없는 것부터가 그 증거야.’

분명 왕궁에 도착하면 왕국 최북단에 제대로 된 마을 하나 없는 빈 땅을 영지라고 던져 줄 게 분명하다.

‘여왕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다들 관심이라고 하지만, 이건 100퍼센트 경계야.’

여왕 루시푸르네는 제국과 황족을 증오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망명 황족이 루한에 나타났다. 설원의 가호를 무시하고 폭주하던 사령술사도 기다렸다는 듯이 척살했다.

‘나라도 경계한다.’

이대로 왕궁으로 가게 된다면 게임에서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서 여왕을 상대할지 모른다.

‘좋지 않아.’

생각을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부정적인 관측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라버니,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혹시 또 더운 거야?”

그때, 옆에서 루나가 솔라의 굳은 표정을 보곤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 몸은 멀쩡해.”

동생의 걱정에 솔라는 애써 밝게 웃으며 답했다.

‘루나까지 여왕의 히스테리에 말려들게 할 순 없어. 저 아이 성격에 마냥 여왕에게 당하고만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문득 루나와 루시가 만나게 되면 상황이 어찌 될지 심각하게 염려되었다.

슬슬 본래의 왈가닥 기질을 보이는 여동생과 여왕의 조우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왔다.

“크흠, 흠! 혹시 뭔가 부족하거나 아쉽소? 내가 왕궁에 돌아가서 보고드리겠소.”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선전관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다시 한번 물어본다.

“아니오. 폐하의 성은에 그저 감복할 뿐이오. 내 표정은 원래 이러니 염려 마시오.”

그런 선전관이 딱했던 솔라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만족을 표했다.

“휴우, 만족했다니 다행이군.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소.”

뒤늦게나마 솔라가 표정을 피고 만족한다고 하자, 선전관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그리핀에 올랐다.

본래라면 선전관의 위세를 이용해서 이런저런 대접을 받고 가야 했다. 실제로 칼트를 비롯한 상인들이 저 뒤에서 선전관을 위한 호화로운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꼬르르륵.

콧속으로 스며드는 맛있는 냄새에 선전관은 배고픔을 느꼈다. 밤새 맛대가리 없는 페미컨을 뜯으며 왔기에 더더욱 배가 고팠다.

‘크흐흑!’

하지만 그는 눈물을 머금고 배고픔을 애써 참았다. 괜히 얼쩡거리다가 혹여나 이 상황을 보고 계실 여왕께 찍힐 수 있다.

“명예 높은 기사를 보게 되어 영광이었소! 조만간 왕궁에서 뵙겠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늘 높이 사라졌다.

* * *

윈테이라와 동기화된 루시는 자신이 직접 쓴 서신의 내용을 듣고 있던 솔라를 가장 가까이서 보았다.

‘왜 안 기뻐하는 거지?’

그랬기에 그녀가 느끼는 충격은 더욱 컸다.

‘오히려 안 좋아하는 거 같아…….’

왜지? 뭐가 문제일까?

괜히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건 없어 보이는데, 괜히 잘못한 거 같고 미안했다.

‘영지랑 작위, 이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회귀 전에는 마지막에서야 하사했던 보상이다.

‘왕실 직할령 중에서 아무거나 고르게 하려 했는데…… 작위는 그렇게 고른 영지에 맞게 주려 했고.’

따로 작위와 영지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나름의 백지수표였다.

여왕은 혼란에 빠졌다.

‘물어볼까?’

궁금함과 답답함에 루시는 솔라를 향해 메시지를 던져 볼까 고민했다.

제한이 좀 있지만 윈테이라를 통해 그녀의 의지를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첫 대화를 뭐라고 시작해야 하지?’

하지만 막상 하려니 엄두가 안 났다. 말을 건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그때, 침실 밖에서 베네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을 맞이하여 인사차 방문한 모양이다. 마침 혼란스러웠던 루시는 베네사의 방문을 핑계로 윈테이라와의 동기화를 해제했다.

* * *

선전관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던 요리들은 솔라를 비롯한 토벌대원들이 먹게 되었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인지, 선전관이 밥도 안 먹고 후딱 가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맛있고 화려한 음식은 솔라와 토벌대의 송별회 음식으로 활용되었다.

“이렇게 헤어지게 되니 참으로 아쉽습니다.”

상인들은 대표해 칼트 상단주가 진심으로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마음 같아선 왕도까지 기사님을 모시고 싶지만…….”

칼트는 죄송스럽다는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마음만으로 충분하네. 어차피 빨리 가려면 소수 인원으로 가는 게 편해.”

솔라는 고개를 저었다. 여왕이 부른다. 가기 꺼려지지만, 여왕이 부르는 것이기에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마차가 있는 상단과 함께 가게 되면 지체된다.

“어차피 여기서 하루만 더 가면 변경백 내곽이니까.”

“그렇긴 합니다. 내곽부턴 설원의 가호가 짙으니까요.”

“사령술사를 해결해 한시름 놓나 싶더니만, 곧바로 제국군이 문제군.”

“그렇습니다. 놈들의 움직임이 요사이 심상치 않은 모양입니다. 식료품 시세가 급등했습니다.”

솔라와 상인들은 아쉬움과 함께 송별회의 대화를 이었다.

“그나저나 기사님, 이젠 더 이상 마도구는 안 필요하신 겁니까?”

칼트 옆에 있던 상인 도미닉이 조심스레 물었다.

마도구 또한 식량과 더불어 구하기 힘들었다. 식량은 가격이 올라서 그렇지, 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마도구는 워낙 수량이 적어서 값은 둘째 치고 돈이 있어도 구하기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마도구는 전쟁에서도 사용되는 군수품이었으니까.

“그래, 냉기와 관련된 마도구는 딱히 필요 없을 거 같다.”

솔라는 도미닉에게도 칼트에게 해 줬던 것처럼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위로했다.

“그 새로 허리춤에 찬 푸른 검 때문입니까?”

도미닉은 감격에 겨우면서도 자신의 죄송스러움을 많이 사해 준 푸른색 마검을 응시했다.

“덕분에 살았지.”

솔라는 허리춤에서 한시도 떼어 놓지 않게 된 마검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안 기사님은 역시나 하늘에서도 알아보셨나 봅니다.”

“하늘에서 운석처럼 떨어지는 검이라니!”

“신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바로 옆에서 이렇게 펼쳐지다니!”

여기 있는 이들은 마나와 신성의 맹세를 한 사람들. 솔라는 윈테이라를 얻은 경위를 딱히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놀라워하면서도 동시에 바로 납득했다. 마치 밤하늘 아름다운 별 무리를 보듯 말이다.

“맞다! 그러고 보니, 최근 왕도에서 정치적으로 큰 움직임이 있었나 봅니다.”

“움직임?”

“예, 전대 국서 루카스 공이 섭정으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무슨 화로 같은 걸 만들어서 여왕님께 진상했고, 그 공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다.”

상인들이다 보니 소식에 민감하다. 아마 인근 도시로 식료품을 구하러 가는 길에 들은 모양.

‘전대 국서? 섭정?’

그들의 말을 들은 솔라가 눈을 크게 떴다.

원작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 생겼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긴 해. 전대 국서라면 그날의 가장 큰 책임자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리 폐하의 아버님이라도 너무 과한 처사야. 화로 하나 만들었다고 복귀라니. 그것도 섭정으로.”

“폐하도 너무 성정이 착하셔서 탈이야. 그날의 죄인을 용서하고 품어 주신 것만 봐도 말이야.”

솔라는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원작에서 루시푸르네는 아버지 루카스 공을 원망하면서 한편으론 그리워했었지.’

그가 자살했을 때, 여왕은 굉장히 슬퍼했었다.

그런 여왕의 모습을 생각하면, 화로 하나 만들었다는 이유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고 봤다.

‘문제는 도대체 어떤 나비효과로 섭정이 마음을 바꿨냐는 거다.’

솔라시우스는 섭정이 먼저 움직인 것으로 이해했다.

실제론 여왕 루시푸르네가 몰래 찾아가서 부탁한 것이지만, 대외적으론 반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나비효과가 아니라면? 꼭 원작 플레이와 동일하게 진행되라는 법은 없어. 하지만…… 루카스의 섭정 복귀는 너무 앞뒤가 안 맞아.’

생각을 거듭하던 그의 머릿속에 어떤 답이 떠올랐다.

‘회빙환!’

나비효과가 아니라면 회빙환밖에 없다. 자신도 겪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회귀, 빙의, 환생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루카스가 회귀자?’

솔라는 만약을 상정하고 섭정의 회귀설에 무게를 뒀다. 빙의와 환생도 있지만 전해 들은 소문대로라면 회귀에 가깝기 때문이다.

‘만약 회귀가 진짜라면…… 그가 회귀했을 당시가 문젠데.’

원작에서 솔라는 섭정을 만난 적 없었다. 그저 스스로를 유폐했고 설원의 저주가 심해지자 자살했다는 소식만 들었었다.

‘루카스는 여왕의 설원의 저주가 심해질 때 자살했어. 솔라시우스에 대한 소문이 가장 좋지 않을 때 말이지.’

더 심오해진 난이도에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송별의 의미를 담은 식사가 끝났다.

솔라는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검은 말 맨해튼카페를 타고 여정을 떠났다. 그런 그의 옆에는 빗자루에 앉아 뽈뽈뽈 날고 있는 루나가 있었다.

이제 루나의 에어컨 기능은 필요 없었기에, 그녀는 빗자루에 앉아 편하게 날고 있었다.

방랑 기사와 어린 마녀. 단둘뿐이었지만 걱정 없었다. 변경백의 내지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턴 설원의 가호가 강하게 펼쳐져 있다.

때문에 몬스터나 짐승, 도적의 출몰도 거의 없다.

이때만큼은 솔라도 왕도와 관련된 심란한 마음을 잠시 접었다.

간만에 느껴 보는 판타지 세계의 평화로운 여행을 즐겼다.

그토록 평화로운 여정이지만 그는 아쉬웠다.

‘짐승 무리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그는 허리에 찬 푸른색의 마검을 만지작거렸다.

본래 새로운 무기를 얻었으면 써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이다.

윈테이라를 얻고서 아직 한 번도 태양 이능을 써 보지 않았다.

‘짐승 하나 없군.’

솔라는 눈에 주입하던 마나를 거뒀다.

가끔, 설원의 가호를 거역하고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나 몬스터가 출몰한다. 솔라는 그런 이벤트가 있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진 발생하지 않았다.

“루나.”

그는 고개를 들어,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 높게 떠 있는 루나를 불렀다.

“알았어! 알았다고! 보이면 바로 말해 줄게!”

몇 번째인지 모를 오라버니의 채근.

“진짜…… 에어컨 졸업하니까, 이젠 레이더인지 뭔지 하는 걸 시키고 있어!”

여동생은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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