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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27화 (27/212)

제27화

#27.

솔라시우스는 겉으로 무심한 눈을 했지만, 속으로는 살짝 놀랐다.

‘얘가 유리아였구나.’

원작 플레이에서 몇 번 힘을 합쳐 제국군과 싸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우 같은 기사였다.

게임 내 일러스트와 비슷하게 생겼기에 짐작은 했었다. 그랬기에 처음 악수를 나눴을 때 솔직히 반가움도 느꼈다.

게임에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몇 안 되는 여자 캐릭터기도 했으니까.

“트롤, 그것도 네 마리나 되는 트롤에게 어쩌다 쫓기게 된 거요?”

그런 반가움과 별개로 솔라는 무심한 어조로 유리아에게 질문했다.

“아마도…… 제국의 짓이오.”

“제국?”

“그렇소. 몬스터를 부리는 테이머 계열의 마녀와 마법사가 최근 국경을 넘어 변경백 외곽까지 휩쓸고 있소.”

유리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표정을 굳혔다.

“우리를 습격한 것은 마법사였소. 습격한 트롤의 상태가 특이한 것이 어쩌면 흑마법사일지도 모르고. 그가 조종하는 트롤 33마리 때문에 함께 있던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용병대까지 모두 당했소. 생존자는 이렇게 다섯이 전부요.”

“마법사는 어떻게 되었지? 나머지 몬스터들은?”

“기사와 병사들이 희생한 덕분에 격퇴할 수 있었소. 처음 33마리였던 트롤은 설원의 징벌 덕분에 3분의 1만 살아남았지. 하지만 피해가 워낙 커서 남은 10마리의 트롤도 버거웠소. 심지어 일반적인 트롤보다 더 강했었고. 결국 이렇게 네 마리를 남겨 놓고 도망쳐야 했었소.”

유리아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피었다.

루한은 설원의 가호 때문에 몬스터들이 대체적으로 순하다. 때문에 몬스터를 조종하는 테이머 마법을 펼치기가 매우 수월했다.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살육하는 것이기에 테이머에겐 설원의 징벌이 피해 가기도 했다.

“아무리 테이머라고 해도 한 번에 33마리의 트롤을 조종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소?”

씁쓸한 미소를 짓는 유리아를 향해 솔라가 물었다.

“제국에서 새로운 마도구를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되오.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트롤들이 그 증거고.”

솔라의 물음에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마저 답했다. 그런 여기사의 대답에 솔라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훗날 밝혀지지만, 외곽과 국경 곳곳에 제국에서 만든 몬스터 사육장이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지. 당장 트롤 농장만 제대로 운영해도 그 귀한 포션을 우유 만들 듯 뽑아먹을 수 있을 테니.’

자신이 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솔라 본인이 잘 알았다. 그저 이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차 질문해 본 것일 뿐.

‘이 몬스터 농장에 루한의 마녀와 마법사 들도 많이 가담 중이고.’

이게 늦게 밝혀지는 이유는 루한의 마녀회와 마탑에서도 비밀리에 제국과 협력 중이었기 때문이다.

‘루한에서는 설원의 가호를 이용해 생명체를 괴롭히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니까.’

일부 마탑과 마녀회의 마법사들은 루한의 법을 답답해 했고, 때문에 비밀리에 제국과 협력하여 설원의 가호를 악용 중이었다. 루한의 마탑과 마녀회가 괜히 제국과의 전쟁에서 소극적인 게 아니다.

‘제국은 일부러 설원의 가호를 내버려 두고 있는지도 몰라.’

생각을 마친 솔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양 이능을 쓰면서 발현했던 광휘의 여운이 어느덧 꺼져 간다. 해는 완전히 내려앉았고 두 개의 달과 무수한 별들이 밤의 장막을 장식한다.

숲속이다 보니 밤하늘의 달과 별빛도 대지를 비춰 주지 못한다.

“오라버니! 어두워서 그런데 그 빛 좀 더 밝혀 줄 수 없어?”

그러자 여전히 트롤 해체 마무리에 들어가던 루나가 당당히 솔라에게 요구한다.

동생의 부탁에 솔라는 말없이 새벽의 등불을 펼쳤다.

그 또한 루나를 에어컨이나 레이더로 이용해 먹었으니 그녀가 자신을 조명으로 써먹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화앗.

순식간에 깊은 어둠에 잠겼던 대지가 무드 등 켜진 것처럼 은은히 빛났다.

솔라시우스의 이능에 기사와 병사들이 숨을 들이쉬는 게 느껴졌다.

“일단 노숙 준비를 해야겠군.”

솔라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트롤 네 마리의 사체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채집 중이다.

“으음…… 확실히 특이한 트롤이긴 하네. 하지만 당장 여기선 제대로 된 분석을 할 순 없을 거 같아. 이 시체를 끌고 갈 수도 없고.”

“굳이 분석할 필욘 없어. 네가 필요한 것만 챙겨.”

“그런가? 그럼 피만 챙길게. 트롤에게 가장 가치 있는 부산물은 피니까. 어쩌면 이 피에 돌연변이의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얼마나 걸려?”

“그렇게 오래 안 걸려. 그런데 이렇게 트롤의 피를 많이 보는 건 진짜 처음이다. 도대체 포션이 몇 개야?”

“힘줄이나 가죽은?”

“난 필요 없어. 팔면 짭짤하긴 한데, 난 지금 피 뽑는 거로도 벅차거든.”

루나의 말에 솔라는 자신이 챙길까 생각했다가 관뒀다. 그의 아공간 인벤토리에는 칼트 상단으로부터 받은 금화와 은화가 잔뜩 있다. 돈이 급한 것도 아닌데 저기 있는 동생처럼 피와 오물을 묻혀 가면서 칼질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트롤 사체에 대한 소유권 주장도 루나 때문에 한 거고.

그는 시선을 돌려 여전히 뻘쭘히 서 있는 다섯에게 물었다.

“여기서 노숙을 할까 하는데?”

“우…… 우리는 다른 곳에서 노숙을 하겠소. 죽은 기사와 병사들 시신도 수습해야 하고 놓고 온 짐도 챙겨야 해서…….”

솔라의 물음에 여기사 유리아가 대표로 말했다.

“낮에 안 하고? 지금은 밤이라서 위험할 텐데?”

“괜찮소! 정말이오.”

그녀의 말에 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리아를 포함한 다섯 모두가 그의 눈을 피한다.

‘뭔가 숨기고 있군.’

하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못 느꼈다. 원작 게임에서 알던 인물이라고 해도 딱 그뿐일 뿐. 게임 플레이에서 큰 역할을 하는 인물도 아니다.

“그러시든지.”

솔라가 흔쾌히 보내 주자, 오히려 유리아 일행이 당황한 듯 보인다.

그들은 주춤주춤 솔라와 루나의 곁을 떠났다.

“어찌 되었든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오. 인연이 되면 다시 봅시다, 광…… 광휘의 기사여.”

떠나기 직전 유리아가 그를 향해 이상한 칭호를 만들어 붙였다.

‘광휘의 기사?’

오글거리는 칭호에 솔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행히도 루나는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엉덩이를 흔들면서 트롤의 피 채집에 정신없어 보였다.

솔라는 사라지는 그들을 무시하고 노숙을 준비했다.

걸어 다니는 인간 조명인 그라도 거대한 밤하늘 아래서는 반딧불에 불과하다. 혼자라면 모를까, 루나까지 있는 상태에서 강행군을 할 필요는 없었다.

* * *

문라이트 변경백의 여기사 유리아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겼다.

그에게 멀어질수록 숲을 밝혀 주던 은은한 빛 또한 줄어든다.

“그냥 그 기사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유리아는 미련을 접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도망친 마법사가 다시 올지 모르잖아? 그 정도 기사라면 큰 힘이 될 텐데…….”

“안 됩니다. 상대는 방랑 기사입니다. 언제 도적으로 변할지 모릅니다.”

그녀의 말에 기사 미하일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 로안 샬루트라는 기사의 실력은 아가씨와 저희를 단번에 몰살시킬 만한 실력입니다.”

미하일의 말에 유리아는 결국 단념했다. 자신을 향해 음흉한 시선이나 아첨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트롤 사체는 알뜰하게 챙기는 걸 봤다. 즉, 어느 정도 물욕은 있다는 뜻이다.

“서둘러야 합니다. 그 마차에 실린 것들은 문라이트 후작가의 비자금 전체라 봐도 무방합니다. 혹여나 분실된다면…….”

“그랬다간 볼카 전선이 위태롭지. 그 비자금으로 군량미를 사들여야 하니까.”

유리아의 말에 미하일은 더 말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대신 음흉함과 욕정이 담긴 눈으로 유리아를 힐끔 훑었다.

미하일의 음흉한 시선. 하지만 유리아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에겐 다른 문제가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값이 너무 올랐어. 과연 얼마나 많은 군량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군.’

왕도와 다른 영지에서 지원해 준 군수품은 오래전에 다 썼다. 지금은 후작가의 재산을 물처럼 쓰면서 막는 중이다.

기사도 정신에 투철하신 유리아의 아버지는 이런 힘겨운 싸움을 벌써 몇 년째 이어 오고 계셨다. 유리아는 그런 아버지를 답답해 하면서도 존경했다.

“슬슬 마차가 있던 곳 주위입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미하일이 작게 말했다.

그들은 어느새 준비한 횃불로 조심히 숲길을 비췄다.

횃불 사이사이로 낮에 있었던 전투의 흔적이 가득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기사와 병사의 시체들. 비슷한 수준으로 난도질당한 몇 안 되는 트롤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4미터 크기의 얼음 조각들이다. 설원의 징벌에 당한 트롤들이다. 꽁꽁 얼어 절명한 트롤 사체 수십 구가 가뜩이나 어두운 숲을 더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저깄습니다!”

횃불을 든 한 병사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작게 외쳤다.

모두가 병사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3대의 마차가 있었다.

“다행히 말도 무사합니다.”

“마차에 걸린 보안 마법도 멀쩡합니다.”

그 난전에서도 말들은 살아 있었다. 많이 겁먹은 것 빼고는 멀쩡했다. 천만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로……!”

유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마차 내부의 짐들을 보았다.

커다란 상자가 가득 있었다. 상자 안에는 금화와 각종 보석 비단 등이 담겨 있다.

한편으론 이걸 헐값에 팔아 식량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것만, 이것만 있으면!”

뒤이어 미하일과 병사 셋도 마차에 실린 짐들을 보고 눈을 빛냈다. 네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여기서 밤을 지내고 날이 밝으면 바로 떠나자.”

이를 못 본 유리아는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다들 힘들겠지만 조금만 버텨 다오. 세바스에 가면 전쟁 상인과 보급관의 부대가 있을 거다. 그들에게 이 마차를 인도하면 우리의 임무도 끝이야.”

“예.”

“알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죠.”

그녀의 말에 미하일과 병사들이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뭔가 찝찝한 어투였지만, 긴장으로 범벅된 유리아는 신경 쓰지 못했다.

다섯은 노숙을 위한 텐트를 칠 생각도 없는지 횃불을 곳곳에 설치하고 사방을 경계했다. 하루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아우우우-.

그렇게 몇 시간을 있었을까? 아직 하늘은 밤의 장막이 드리운 깊은 새벽.

피 냄새를 맡은 늑대 울음소리가 유리아와 마차 주위를 포위했다.

“모두 당황하지 마라! 몬스터도 아닌 짐승 무리다! 시체를 먹으러 온 것뿐이야.”

유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다독였다. 눈에 마나를 부여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마법사는 안 보여.’

다행히도 몬스터를 부렸던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늑대 무리라니.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무기를 애처롭게 겨눌 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늑대 무리의 붉은 눈동자들. 단순히 짐승 무리라고 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저렇게 많은 늑대는 처음 봐.”

“못해도 100마리는 넘을 거 같은데…… 미친!”

“제발 시체만 먹고 꺼져라!”

병사들이 동요하는 게 대놓고 들렸고.

“빌어먹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잔뜩 일그러진 미하일의 목소리도 추가됐다.

‘그냥 로안 경과 함께 있어야 했어.’

유리아는 속으로 작은 후회를 품고서 여차하면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늑대들은 널브러진 시체에겐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오직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죽은 고기보다 살아 있는 고기가 낫다는 건가? 설원의 징벌을 무시할 정도로?!’

이곳은 설원의 가호가 옅은 곳. 그녀를 포함한 다섯 일행과 마차에 묶인 말은 수가 많지 않다. 저 많은 늑대가 협공한다면 설원의 징벌을 피할 수도 있을 거다.

우르르르.

팽팽한 대치가 못해도 수 분 정도 더 이어졌고.

크와아앙.

가장 선두에 있던 늑대 몇 마리가 달려들려고 막 몸을 움츠릴 때였다.

[엘루디네 이시리느 엔하 샬라데.]

어디선가 대륙 공용어가 아닌 생소한 언어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 흘렀다.

화아앗.

동시에 익숙하고 친근한 빛이 늑대 무리 뒤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

그 빛은 어찌나 따듯한지, 그 엘프어는 어찌나 감미로운 노래 같은지, 유리아를 비롯한 다섯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을 정도다.

[엘루디네 아샤인 엔후 엘리테.]

엄숙함을 품은 요정어가 늑대 무리 사이를 강줄기가 되어 흘렀다.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가 요정어를 노래처럼 뱉으며 빛과 함께 다가왔다.

[엘루시데 시하인 카슈티헤!]

자연의 신비를 담은 솔라의 요정어가 이어졌고.

얼마 후.

끼이잉, 낑.

늑대들은 하나같이 꼬리를 내리더니 순식간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대신 죽은 트롤들의 사체를 크게 한 움큼씩 입에 물고 물러났다.

짐승 무리가 물러가고 다시 안정이 찾아왔다.

“이래서 황족, 황족 하는 거였구나…….”

“아무리 원수 같은 제국 황족이라도 저 정도면 인정이지.”

“그런데 저렇게 몸에서 빛이 나는 거는 어떻게 하는 거지? 기사는 마법을 못 쓰잖아? 황족들만 사용하는 마도구라도 있는 걸까?”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며 전율했고.

“……마도구?”

기사 미하일은 말없이 솔라시우스의 허리춤에 있는 푸른색 마검을 응시했다.

“그…… 로안 경! 정말로…… 고맙소!”

유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솔라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까부터 가슴이 심하게 뛰었고 그의 금색 눈동자와 도저히 눈을 못 마주칠 것 같았다.

“뒤에 있는 마차 때문에 위험을 자처한 것인가?”

솔라시우스는 그런 유리아 일행을 보면서 무심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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