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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34화 (34/212)

제34화

#34.

솔라시우스는 이 여관에서 가장 크고 좋은, 욕실까지 붙어 있는 방을 자연스레 배정받았고, 리나와 유리아는 두 번째로 좋은 방을 함께 쓰게 되었다.

기사 미하일은 어쩐 일로 평범한 다인실에서 병사들과 함께 묵었다.

“그…… 기사님? 정말로 하실 겁니까?”

병사들과 함께 머물러야 하는 다인실. 다들 씻거나 개인 정비를 해야 하지만 이 방 안의 사람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미 늦었다. 지금 변심하는 놈이 있다면 죽어야 할 거다.”

병사 한슨의 눈동자가 떨리자 미하일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너희들은 언제든 마차를 몰 준비만 하고 있어. 나는 그 마검을 챙겨 올 테니까.”

미하일의 눈이 로안이 머물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씻으러 간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소중히 여기는 마검이지만 씻을 때는 벗어 두고 씻겠지.

“바로 시작한다. 따라와!”

미하일은 병사들에게 명령하곤 방문을 나서려 했다.

“……?”

하지만 방 안에 있던 병사들이 머뭇거린다.

“이 새끼들이!”

변경백의 평기사지만 어찌 되었든 기사는 기사. 조금이나마 마나를 다룰 줄 안다.

미하일은 살기를 퍼트리려다가 말았다.

‘협박으로 해 봤자야. 여차하면 배신 때릴 수 있어.’

그의 머리가 회전했다.

“생각해 봐라, 이놈들아.”

애써 살기를 가라앉히고 진지하게 나름 진심을 담아 병사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이 지옥 같은 변경백 외곽에서 살래?”

미하일의 시선이 세 병사를 훑는다.

“한슨, 너는 강도짓 하다 걸려서 내곽에서 수배 중이지? 여기서 얼마나 복무해야 면죄부를 준다고 했지? 5년? 10년? 이제 몇 년 남았지? 욥, 너는 도박 빚 못 갚아서 여기로 팔려 온 거라며? 어서 돈 벌어서 내곽이든 다른 왕국이든 새 시작 하고 싶지 않아? 잭, 제국 출신인 너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은근히 무시당하지. 차라리 다시 제국으로 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병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신세를 자극했다.

“나만 믿고 따라와라! 참고로 나는 제국으로 갈 거다. 이 엿 같은 루한은 질색이야. 설원의 가호 때문에 답답할뿐더러 세금이 지X 맞지! 장담컨대 내곽으로 가면 저 마차에 있는 돈 중 9할이 세금과 뇌물로 빠져나갈 거다!”

루한의 국경이자 변경백 외곽은 설원의 가호가 얕다. 그리고 늘 제국과 전쟁 중이다.

왕국 내에서 수배 중인 자들은 대부분 여기로 도망친다. 상당수는 바로 도적으로 빠지지만, 그중 일부는 면죄부를 받는 대가로 입대한다. 그러다가 탈영을 하거나 패잔병이 되어 도적으로 전직한다.

또 마법사나 마녀들의 불법적인 실험 장소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옅은 설원의 가호는 그들에게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오죽하면 제국이나 다른 왕국의 마법사들도 여기에 실험실을 세울까.

때문에 이 땅은 루한에서, 아니, 대륙에서 가장 살기 힘든 마경이기도 했다.

대신 세금이 많이 낮은 편이었다. 영주나 관료들도 잘 건드리지 않는다. 국경의 백성들이 도망치지 않고 꾸역꾸역 버티는 이유기도 하다.

“루한 그중에 변경백 외곽은 아주 엿 같은 곳이야!”

미하일은 이를 갈았다. 남은 게 목숨밖에 없는 이들에게나 꾸역꾸역 살 만한 곳이지, 자신처럼 야망이 있는 남자에게 루한은 거대한 감옥 왕국이다. 특히나 변경백 외곽은 더더욱.

“나는 제국으로 갈 거다! 저 비자금과 그 마검만 있으면 제국에서 작위와 영지를 받을 수 있어! 나를 따라오면 너희에게도 땅과 집! 그리고 여자를 주겠다!”

마지막에 여자를 주겠다고 얘기한 미하일의 머릿속에 분홍 머리 여기사가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욕정을 품어 왔던 여자. 연모나 짝사랑보단 더러운 욕망에 가까웠던 감정.

‘저 마검만 얻으면!’

유리아 또한 품에 안을 수 있을 터!

유리아를 범하는 상상을 잠깐만 했음에도 하체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털끝 하나 더럽히지 말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더더욱 더럽히고 싶잖아?’

그는 한 흑마법사를 떠올렸다. 비자금 수송 임무를 떠나기 직전 은밀히 접근해 온 흑마법사였다. 그는 미하일에게 이상하고 위험한 제안을 하나 했다.

‘비자금을 가지고 싶지 않은가? 도움을 줄 테니 손을 잡자. 대신 변경백 영애를 나에게 넘겨라. 단, 그녀는 털끝 하나 건들면 안 된다. 강력한 수면 마도구를 주겠다.’

미하일에게 접근한 흑마법사는 유독 유리아에게 관심이 있었다.

유리아를 넘기는 대가로 변경백의 금은보화는 미하일이 가져도 된다고 했다.

흑마법사는 자신의 흑마법으로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몬스터의 습격도, 짐승 무리의 습격도, 전부 그 흑마법사의 짓일 터. 하지만 이후로 특별한 습격이 없는 걸 봐선 그 흑마법사도 힘이 다한 모양이다.

‘거의 성공했었는데! 어디서 그런 괴물 같은 놈이 튀어나와서는!’

로안 샬루트라는 기사 때문에 미하일은 흑마법사가 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괜히 초조해졌다. 흑마법사와의 거래는 둘째치고. 자신을 보는 유리아의 눈초리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게 가장 걸렸다. 어쩌면 세바스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될지도 몰랐다.

“너희도 나와 함께 제국으로 가자! 잭이 제국 출신이니까 저놈만 따라가면 제국서도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거다. 이 돈으로 작은 영지를 사서 떵떵거리며 사는 거야!”

잠깐 상념에 빠졌던 미하일이 다시 시선을 병사들에게 향하곤 명령하듯 말했다.

“미하일 기사님…… 제국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듣기론 흑마법사들이 대낮에 대놓고 돌아다니면서 어린아이를 삶아 먹고 다닌다는데…….”

“제국에 가면 악황후에게 영혼을 바쳐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국군 병사들처럼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서 죽어서도 저승에 못 가고 평생 언데드로 살아야 한다고…….”

미하일의 제국행 선언을 들은 병사 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잭, 제국 출신인 네가 말해 봐라! 악황후 옥타나의 제국이 한슨과 욥이 한 말처럼 끔찍한가?”

그들의 물음에 미하일은 제국에서 도망쳐 온 잭에게 물었다.

“흑마법사들이 대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를 먹는다거나, 영혼을 바쳐 언데드가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험체를 사용하긴 하지만 대부분 포로나 노예, 범죄자들입니다.”

미하일의 물음에 잭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상대하는 제국군도 정신 버프 때문에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평소에는 일반 사람과 똑같습니다. 암흑군단은 좀 다르다곤 하지만, 애초에 거긴 아무나 들어가는 곳도 아니라서…….”

“정말이야?!”

“잭! 왜 그 말을 이제야 하는데?”

그러자 한슨과 욥이 잭에게 따진다.

“나 같은 제국 출신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애초에 제국에 대해 최대한 안 좋게 말하라고 명령까지 받았는데. 무엇보다 내 말을 믿어나 줄까?”

두 병사가 따지자 잭이 조소를 지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서러움이 눈빛으로 나왔다.

“미하일 기사님, 저는 기사님과 함께 제국으로 가겠습니다. 제국에 대해선 그래도 살다 온 제가 잘 알 테니까요.”

“잘 생각했다. 그나저나 너는 왜 제국에서 여기로 온 거지?”

“뭐, 비슷합니다.”

잭은 눈앞의 한슨과 욥을 가리켰다. 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 왔다는 뜻이다.

“좋아! 그러면 내가 마검을 가져오지. 아니다, 망을 볼 사람도 필요하니 너희도 같이 간다!”

미하일은 처음엔 혼자 갈 생각을 하다가 뒤늦게 번복했다.

“어차피 그 마녀가 마차에 건 마법 때문에 따로 가 봤자 의미도 없겠군.”

아직 저놈들을 믿을 수 없다. 마검을 가지러 간 사이에 배신을 때리면 끝장이다.

미하일과 병사 셋은 조심조심 기사 로안 샬루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래층에서는 여기사와 마녀가 맥주를 마시며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 * *

솔라시우스는 옷을 벗고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씻을 때 사용할 몇 가지를 챙긴 후 방에 달린 욕실로 향했다.

마검 루시는 욕실 문 바로 옆에 가까이 뒀다.

원래는 씻거나 볼일을 볼 때도 바로 옆에 뒀었는데, 마검이 에고를 가지고 있는 데다 심지어 그 에고도 여성형이다 보니 주의를 하게 되었다.

아무리 검이라고 해도 다 보여 주는 것은 좀 그랬으니까.

문과 벽으로 마검과 자신의 시야를 가렸지만,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다.

5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게 말이다. 그 이상 떨어지면 솔라는 극심한 더위를 느껴야 했고 마검 루시 또한 차가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오스키에서 묵었던 방보단 못하군.’

욕실 안에 들어선 솔라는 속으로 짧은 감상을 중얼거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에 있는 유일한 고급 여관.

애초에 욕실이 붙어 있는 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라 볼 수 있다.

욕실 안은 매우 좁았고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욕조 하나와 씻을 때 사용할 바가지 하나가 전부였다.

욕조에는 깨끗한 물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차가웠다.

오스키에서 누렸던 욕실은 이보다 훨씬 컸다. 샤워기처럼 생긴 마도구도 있어서 씻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철퍽, 철퍽.

욕조에 몸을 담그기 전에 바가지로 간단히 몸을 적시기로 했다. 욕실에 구비된 돼지기름과 각종 향초를 섞은 비누로 비누칠을 하고 물로 씻었다.

이어서 미리 가져온 세면도구를 꺼낸다. 오스키에서 샀던 손거울로 얼굴을 보고 마찬가지로 오스키에서 구매한 면도용 칼로 면도를 했다. 중세 판타지 세계지만 귀족 문화 중에 면도하는 문화가 있다 보니 구할 수 있었다.

면도를 끝낸 후 소금과 치아에 좋다는 약재를 섞은 양칫물을 입에 물고 가글하듯 굴리곤 뱉었다. 그리곤 칫솔 역할을 하는 작은 솔로 양치질을 했다.

‘음?!’

마지막으로 욕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감지됐다.

“아직 씻고 있나 봅니다!”

“쉿! 조용히 해! 귀가 엄청 밝은 기사다! 너희 둘은 문 쪽에서 망보고 있어!”

아주 작은 목소리지만 솔라의 귀에는 바로 옆에서 듣는 대화처럼 잘 들렸다.

‘한번 사고를 칠 거 같더니.’

안 그래도 평소 미하일이라는 기사의 낌새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긴 했다.

“혹시 저 푸른색 마검…… 국서의 검 윈테이라가 아닐까요? 저 망명 황족, 여왕님께서 굉장히 아끼신다고 하던데.”

“말이 되는 소릴 해! 루카스 공이 섭정으로 멀쩡히 살아 있는데 왜 그게 저기 있냐! 애초에 루한에 푸른색 마검이 한둘이냐?”

“이러다가 기사님이 눈치채고서 나오면…….”

“멍청아! 전부 이 마검 때문에 강한 거야! 저 마검만 내가 가지면 다 끝나!”

잭이라는 병사의 목소리와 기사 미하일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쫄지 말고 마차 안의 금은보화를 생각해! 저 마검을 가져야 마차를 털 수 있어! X발, 그나저나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평소 눈빛이 수상하더니만 마차와 자신의 마검을 노리고 있었나 보다.

처음에 솔라시우스는 곧바로 놈들을 제압하려 했다.

‘한번 시험해 볼까?’

그러다가 이내 생각을 접고는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루시가 내 손에 없을 때, 다른 사람이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루시에게 이건 물어보지 못했었다.

전에 리나가 만졌을 때가 있지만, 그때는 솔라가 검을 잡고 있었기에 논외로 둬야 했다.

솔라는 수건으로 허리를 묶어 하체를 가렸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기 위해 화장실 문 앞에 섰다. 하체를 가린 수건은 생각보다 폭이 작아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가린 상태다. 수건으로 가린 하체를 본 그는 루시가 잠든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

바깥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났고, 얼마 후.

화아아아앗!

거대한 냉기가 솔라가 있는 욕실과 방 안에서 터졌다.

냉기가 터진 것을 확인한 솔라는 욕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꺄아아아악!!]

루시의 비명이 터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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