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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35화 (35/212)

제35화

#35.

여왕 루시푸르네의 멘털은 쉽게 무너지지만 반대로 빠르게 회복되기도 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모든 일정을 취소한 상황. 반나절을 대마법진 이노센티아를 연구하면서 낑낑거리다 보니 어지러웠다.

그녀가 몹시 사랑하는 남자, 금발, 금안의 솔라시우스가 보고 싶었다.

어차피 이노센티아든 설원의 저주든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녀는 조심스레 침대 옆의 보주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암전된 세상이 펼쳐졌고 좀 더 있으니 여관으로 보이는 침실에 나타났다.

‘마을에 잘 도착했나 보네?’

루시는 솔라가 간만에 잘 쉬게 된 거 같아 기쁘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솔라는? 왜 윈테이라만 이렇게 달랑 있지?’

동시에 늘 그의 허리춤이나 품에 있어야 할 윈테이라가 왜 따로 떨어져 있는지 의아했다.

“아직 씻고 있나 봅니다!”

“쉿! 조용히 해! 귀가 엄청 밝은 기사다! 너희 둘은 문 쪽에서 망보고 있어!”

그녀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기도 전. 침실로 누군가가 들어오더니 작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그 변경백 영애의 부관으로 있던 평기사다. 뒤에는 변경백의 병사들이고. 물론 얼굴만 알 뿐 이름은 기억하지 않았다.

“혹시 저 푸른색 마검…… 국서의 검 윈테이라가 아닐까요? 저 망명 황족, 여왕님께서 굉장히 아끼신다고 하던데.”

“말이 되는 소릴 해! 루카스 공이 섭정으로 멀쩡히 살아 있는데 왜 그게 저기 있냐! 애초에 루한에 푸른색 마검이 한둘이냐?”

“이러다가 기사님이 눈치채고서 나오면…….”

“그분 엄청 강하지 않습니까?”

“멍청아! 전부 이 마검 때문에 강한 거야! 저 마검만 내가 가지면 다 끝나!”

그나저나 놈들의 대화와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것들이?! 그러고 보니 솔라가 씻고 있다고 했지?’

대충 놈들의 의도를 눈치챈 루시는 분노와 역겨움을 느꼈다. 동시에 왜 자신을 여기에 두고 씻으러 갔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의문도 들었다.

“쫄지 말고 마차 안의 금은보화를 생각해! 저 마검을 가져야 마차를 털 수 있어! X발, 그나저나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미하일을 비롯한 병사들의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윈테이라에 담긴 설원의 권능 때문인지 강한 추위를 느낀 모양.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려 해?’

그녀는 어떻게 해야 저 가증스러운 기사와 병사들을 징벌할지 생각했다. “꺄악!” 하고 비명을 질러 솔라를 부를까?

하지만 간만에 씻으면서 쉬고 있는 솔라시우스를 귀찮게 할 순 없다.

‘윈테이라에도 보안 마법이 걸려 있긴 한데…….’

나름 국서의 검이다. 마검이기도 하고 루한의 국보기도 하다. 저주나 위치추적 같은 보안 마법이 나름 부여돼 있었다.

자아, 어떤 마법으로 혼쭐을 내줄까?

루시가 고민하는 동안. 기사 미하일이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이 푸른색 마검 윈테이라의 손잡이에 닿았다.

화아아아앗!

[?!]

동시에 윈테이라에 깃들었던 설원의 권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루시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기능.

기사 미하일은 얼음 동상처럼 완전히 얼어 버렸다.

‘뭐, 뭐야?!’

부정한 살육을 벌이다가 설원의 징벌을 받은 것과 그 모습이 아주 똑같았다.

미하일 뒤에 있던 병사 셋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들은 즉사하지 않았지만, 온몸에 극심한 동상을 입고 쓰러졌다. 끙끙거리면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데 의식은 없어 보였다.

‘설원의 권능을 부여하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루시는 윈테이라가 만들어 낸 현장을 보며 놀랐다. 하지만 그녀가 더 크게 놀랄 것은 따로 있었다.

벌컥!

방금의 소란 때문인지 욕실 문이 세게 열리면서 솔라시우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

문제는 그의 복장이었다. 수건으로 아슬아슬하게 하체, 그것도 사타구니만 간신히 가린 그의 모습에 여왕은 입을 쩌억 벌렸다.

얼핏 저 수건 사이로 그의 엉덩이와 고환이 보일 것만 같았다.

전에 보았던 탄탄한 상체에 이어서 탄탄한 허벅지 또한 루시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얼어 죽는군.”

솔라는 무심한 눈으로 마검 루시를 잡고 즉사한 미하일을 보았다. 그리곤 힘을 줘서 얼어 버린 그의 손을 부쉈다.

손과 손가락이 얼음 조각이 되어 잘게 부서지며 마검의 손잡이를 보였고 그는 조심스럽게 루시를 들었다.

훌렁~.

문제는 그 잠깐의 활동으로 허리에 묶었던 수건이 풀렸다는 것이다.

[꺄아아아악!!]

떨어지는 수건과 함께 루시는 참았던 비명을 질렀다.

“루시? 깨어났구나. 응? 이런……!”

루시의 비명과 함께 솔라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루시를 바라보면서 흘러내린 수건을 다시 허리에 묶었다.

여관 안에서 거대한 냉기 폭풍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솔라가 묵고 있는 방에서 난 사고기 때문에 루나와 유리아가 급히 방으로 달려왔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야?! 엄마! 젠장!”

“이게 무슨…… 꺄악!”

그리고 방 안의 상황을 보곤 비명을 질렀다.

“오, 오라버니! 그 모습!! 그거!!”

루나가 양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으으…… 도대체 이게 무슨…….”

유리아 또한 떨리는 분홍색 눈동자로 방 안을 보며 몸을 떨었다.

동상을 입고 신음하는 병사들. 미하일로 추정되는 얼음 덩어리.

“므으으으…….”

무엇보다 아찔하게 수건으로 가린 솔라시우스의 몸!

좋지 못한 상황임에도 유리아의 시선은 계속 금발, 금안의 남자에게로 향한다. 여기사의 얼굴이 그녀의 분홍색 머리보다 더 진한 핑크빛이 되었다.

[나는 안 봤다! 나는 못 봤다! 나는 눈이 없다!]

솔라시우스의 손에 있는 푸른색 마검 루시가 이상한 소리를 연신 외쳤다.

“일단 옷부터 입어야겠어.”

솔라는 침대 위에 마검 루시를 놓고 말했다.

[딸꾹, 딸꾹]

반라의 남성이 자신을 침대 위에 던지듯이 내려놨다. 비록 마검 상태지만 루시는 절로 긴장되어 딸꾹질이 났다. 이것이 첫날밤 치르기 직전, 신부의 기분일까?

앞뒤 맥락을 고려한다고 해도 루시 입장에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아……!]

그런 루시의 위로 침대의 이불이 덮어졌다.

“안 보이지? 루시.”

[그……그렇다. 안 보인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그럼, 다 갈아입으면 다시 불러! 오, 옷 좀 똑바로 입고!!”

“실……실, 실례했습니다, 로안 경!”

뒤이어 루나와 유리아의 목소리가 들렸고 방문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 * *

다시 진정된 솔라시우스의 방.

벌벌벌벌.

넓고 쾌적한 솔라의 방에는 여섯 사람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아직 동상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병사 셋이 무릎 꿇고 앉아 있었고, 곧 행해질 처벌의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욕실 문 앞에는 오른쪽 손목이 절단난 미하일의 얼음 동상이 놓여 있었다.

“……면목 없습니다.”

유리아가 고개를 숙여 솔라시우스에게 사과했다.

“아니야! 이건 유리아 언니 잘못이 아니야. 그치, 오라버니?”

유리아의 사과에 루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잘못이 있다면 그 미하일이라는 기사에게 있지.”

솔라시우스는 침울한 얼굴의 유리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 부하기도 합니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털썩.

유리아는 고개를 숙이는 것도 모자라서 무릎까지 꿇었다.

치욕과 분노, 실망, 죄송함이 가득한 표정이다. 분홍색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차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사죄를 위해 뭐든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로안 경.”

“아니! 언니 잘못 아니라니까!”

무릎 꿇은 유리아를 루나가 다가가 애써 일으켜 세우려 한다. 하지만 유리아는 꼼짝하지 않는다. 루나는 체구도 작고 마법사라서 기사인 그녀를 물리적으로 어찌하지 못했다.

“괜찮소.”

그런 유리아에게 솔라는 가까이 다가갔다.

“저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치밀하게 계획된 배신이었더군.”

그리고 애써 버티는 유리아를 반쯤 안아서 일으켜 세웠다.

“……!”

솔라에게 반쯤 안기게 되자, 유리아는 귀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고 심장이 힘차게 떨려 왔다.

토닥, 토닥, 토닥.

몸을 부르르 떠는 유리아를 솔라는 반쯤 안아 일으켜 세운 뒤, 어깨와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 줬다.

그럴수록 유리아의 귀는 새빨개졌다.

[…….]

그 모습을 솔라의 허리춤에 달린 루시가 말없이 응시했다. 하지만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우리 오라버니 의외로 좀 하네? 이젠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

루나 또한 그런 두 사람을 의미심장한 미소로 관찰했다.

유리아를 일으켜 세운 솔라는 무심한 눈으로 무릎 꿇고 있는 병사 셋에게 물었다.

“묻겠다. 미하일은 몬스터와 짐승들의 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나?”

“그런 것 같았습니다!”

“대놓고 저희에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마치 일어날 줄 알았던 것처럼 행동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자세한 것은 정말 모릅니다! 그저…… 기사 미하일이 자신을 도우면 한몫 챙겨 준다고 해서…….”

병사들은 자신들이 아는 모든 것을 불었다.

“그 한몫 챙기는 것에 내 마검도 있었겠지.”

그들을 바라보는 솔라의 눈은 여전히 무심했다.

“더불어 나와 내 동생 그리고 변경백 영애의 목숨도.”

고오오오.

금색 눈동자에 고요함이 담겼다. 너무나 고요해서 극한의 두려움마저 불러일으키는 눈빛.

“히이이익!”

“잘, 잘못했습니다! 기사님!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저희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기사 미하일에게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병사는 이제 엎드려 절하듯 통곡했다. 어찌나 두려운지 셋은 눈을 질끈 감고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지구식 표현으로 전형적인 큰절 자세다.

“웃기는군.”

솔라시우스는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을 광장에서 풍겼던 비슷한 차가움이 몸에서 흘렀다.

“……!”

“…….”

[……!]

그에게 반쯤 안겼다가 막 풀려난 유리아도, 이를 지켜보던 루나도, 허리춤에 있던 루시도 솔라시우스의 이런 모습에 숨을 죽였다.

“너희가 정말 결백했다면 몰래라도 알렸어야 했다.”

서걱-!

그 말과 동시에 솔라는 어느새 손에 쥔 검으로 병사 셋의 목을 순식간에 갈랐다.

뎅구르르.

셋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목이 잘렸다. 그들의 얼굴은 눈을 질끈 감고 용서를 빌었을 때에 멈춰 있었다.

치이익.

병사 셋의 목이 잘렸음에도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가 손에 든 드워프제 검에 태양검이 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오러 혹은 검기라고 부르는 이능.

검기의 뜨거움이 목을 가르면서 절단면을 태웠다.

“여관 뒤쪽에 마당이 있더군. 거기다 전부 매장하는 게 좋겠어.”

깔끔한 처형을 마친 솔라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두 여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들은 네 사람의 시체를 들고 방문을 나섰다.

“히이이익!! 무슨! 무슨 일입니까?!”

문을 열자, 문 앞에서 초조하게 서 있던 여관 주인이 방문이 열리자마자 외쳤다.

비명이 들리고 방 안에서 강한 냉기가 휘몰아쳤기에 마냥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

“허어어업!”

그러다가 솔라와 유리아, 리나의 손에 머리 없는 시체들과 꽁꽁 언 기사의 시체가 보이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억!”

“무슨 일이지?”

여관 주인과 좀 더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종업원들과 투숙객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솔라는 그들을 말없이 고요한 눈빛으로 훑었다.

알 수 없는 소름을 인지한 모두가 벌벌 떨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피했다.

“쉿!”

솔라는 이어서 주저앉은 여관 주인에게 검지를 입술에 대면서 작게 주의를 주었다.

“흐으으으…… 쉬, 쉿!”

여관 주인은 반쯤 흐느끼면서 솔라가 준 주의를 따라 했다.

세 사람은 병사 셋과 얼어 죽은 미하일의 시체를 여관 뒷마당에 묻었다.

루나가 그들을 묻기 전에 옷이나 무기, 돈들을 따로 챙긴 것은 덤이다.

돈을 몹시 밝히는 편인 루나는 미하일과 병사들의 소지품을 상인들에게 팔았다.

강매에 가까웠지만, 상인들은 벌벌 떨면서 높은 값에 루나가 내민 것들을 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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