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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37화 (37/212)

제37화

#37.

“그럼, 로안 경은…… 폐하의 임무를 완료한 후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새벽 속에서 대화는 이어지고 이어져 이제는 서로의 미래를 논하게 되었다.

“당장 계획은 없소.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한 후에 결정할 생각이니까.”

유리아의 질문에 솔라는 자연스레 답했다.

‘태양샘 반지를 얻으면 본래의 힘을 쓸 수 있을 터. 바로 제국으로 가서 각성하지 못한 마왕의 목이나 따 버리자.’

하지만 속으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재 흑태자로 있을 각성 전의 마왕을 죽이는 것이 다음 목표다. 하지만 이걸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는 유리아 경은? 앞으로 뭘 할 생각이오?”

질문을 받았으면 마찬가지로 같은 질문을 해 줘야 이치에 맞다. 솔라는 유리아에게 받았던 질문을 그대로 돌려줬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기사로서 루한의 국경을 지킬 겁니다.”

그의 물음에 유리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답했다.

“다른 목표는 없소? 만약에 전쟁이 끝난다면 말이오.”

“그건……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몬스터나 도적들은 잡초처럼 남아 있을 터. 큰 변화 없이 쭉 변경백을 지키겠지요.”

“결혼은 안 하고?”

솔라가 결혼에 대해 묻자, 유리아의 얼굴이 괜히 붉어졌다.

“저, 저는 딱히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검과 결혼한 셈 치고 평생 독신으로 살 겁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들도 포기하셨습니다.”

그녀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외치듯 답했다. 동생이자 친구 같던 리나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 평소 그녀의 신념이었던 것을 고백하듯 말했다.

‘이상한 여자로 보겠지? 분명 오라버니들과 아버지처럼 이상한 눈으로 볼 거야. 어쩌면 어머니처럼 크게 한소리 할지도 몰라.’

그녀는 괜히 붉어진 얼굴로 방금 했던 대답을 조용히 후회했다.

“그런가?”

독신 선언을 한 유리아의 대답에 의외로 솔라시우스의 반응은 담담했다.

“그…… 안 놀라십니까?”

오히려 유리아가 당황할 정도다. 보통 그녀의 독신 선언을 들으면 백이면 백, 놀라거나 이상하게 쳐다봤기 때문이다.

“그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어쩔 수 없지 않소? 마음에 차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사는 것보단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요. 함께해서 괴로운 것보단 혼자라서 외로운 게 낫지.”

솔라시우스의 본체 태광휘는 초저출산 국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 보니 독신에 대한 관점이 이곳 사람들과 굉장히 달랐다.

“……그런가요?”

솔라시우스의 말에 유리아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주장에 동의해 주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이상해……. 왜 기쁘지 않지?’

하지만 눈앞의 남자, 로안 샬루트가 이를 공감해 주자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표정이 안 좋군.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갑자기 침울해진 유리아의 얼굴을 보며 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

“깜짝이야.”

그리고 그때, 솔라의 허리춤에서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얼핏 듣기론 요즘 능력 있는 여성들은 전부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는 추세다. 서른, 아니! 마흔 넘어서도 충분히 반려를 찾을 수 있으니 걱정 마라!]

줄곧 말이 없던 마검 루시가 두 사람의 대화에 모처럼 끼어들었다.

“루시?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솔라가 푸른색 마검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도 듣는 귀라는 게 있다. 듣자 하니, 마녀들은 제자를 들이는 대신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여기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렇습니까?”

[그래! 결혼은 여자에게 크나큰 손해다. 정 결혼을 하고 싶다면 젊음을 충분히 즐기다가 나이가 찼을 때 결혼해도 된다고 본다. 그대 같은 예쁘고 능력 있는 여기사는 서른, 아니, 마흔 살이 되어도 충분히 멋진 반려를 만날 수 있을 것이야!]

“…….”

유리아는 루시라는 푸른색 마검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도 늘 주장하던 독신이었고. 모처럼 자신의 신념을 이해해 주는 존재를 둘씩이나 만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찝찝하다.

“그나저나 오늘은 꽤 오랫동안 깨어 있군?”

솔라는 루시를 보면서 사람 같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손으로는 시원한 루시의 검면을 쓰다듬어 주면서.

[오늘은 컨디션이 좋, 좋아서 그렇다. 거기, 거기를 좀더 쓰다듬어 다오……! 나의 주인…… 로, 로안 샬루트여!]

비록 마검이지만 촉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루시는 우웅거리면서 진동음을 냈다.

“…….”

유리아는 황당함과 신기함을 담아 솔라의 손길을 느끼는 마검을 보았다.

휘이잉.

그러다가 문득 닭살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휘이잉, 휘이잉.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여관 주위로 하얀색의 사람 모양을 한 기체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유리아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급히 솔라시우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로, 로안 경! 혹시 저거 보이십니까?”

“뭐 말이오?”

“저기 하얀 옷을 입은 여자처럼 생긴 거 말입니다!”

“……안 보이네만.”

“그, 그런!”

솔라의 반응에 유리아의 얼굴이 더더욱 사색이 되었다.

‘루나가 말한 밴시가 저거군.’

물론 솔라 또한 유리아가 말한 유령을 보았다. 하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괜히 보이는 척했다가 퇴마라도 하게 되면 자고 있던 루나가 깨어날 수 있을 테니까.

[유령이구나.]

그 대신 솔라가 아닌 루시가 밴시에 대해 반응했다.

[듣자 하니 오늘 이 마을에서 큰 살육이 있었다고 했지? 아직 성불하지 못한 원혼들인가 보구나.]

루시의 말에 유리아의 짧은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의외로 이 여기사는 귀신을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마검 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제를 부를까요? 퇴마를 해야 합니까?”

유리아가 바들바들 떨면서 물었고.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들 저승으로 가는 편이다.]

“하지만 저렇게 많이 보이는 것은……!”

[그건 그대가 많이 피로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 주인 로안 샬루트는 안 보인다고 하지 않았더냐.]

루시는 아까 루나가 솔라에게 속삭였던 말을 허리춤에서 들었기에 저깄는 밴시가 무엇인지 알았다.

[어서 들어가서 자는 것을 추천한다. 괜히 피로한 상태에서 원혼들에게 노출되면, 원혼이 그대의 몸을 노릴 수 있을 테니.]

그녀는 솔라가 밴시를 못 본 척하자, 괜히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 나름 장난을 쳐 봤다.

“!!”

그 말이 결정타였는지. 유리아는 식은땀과 동시에 몸을 벌벌 떨었고.

“저는…… 들, 들어가 보겠습니다. 리, 리나가 보안 마법을 아주 잘해 놨을 겁니다, 하하하…….”

서둘러 여관으로 들어가려 했다. 정말 귀신을 무서워하나 보다.

“같이 가 주지.”

솔라는 피식 웃으며 마검을 쓰다듬어 주곤 유리아의 뒤를 따랐다.

유리아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

뒤이어 여관 문 안으로 반쯤 들어간 솔라는 문을 닫기 전, 어딘가를 고요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높게 자란 나무가 있는 곳.

그 높은 나무 주위로 유독 밴시가 어슬렁거렸다.

솔라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하얀색 올빼미를 정확히 응시했다.

저 올빼미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기묘한 눈으로 그와 유리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휘익!

솔라는 언제 뽑았는지 모를 드워프제 검을 작게 휘둘렀다.

황금색 포탄 같은 게 쏘아졌다.

원거리 스킬 중 하나인 ‘빛의 추적’이다.

퍼엉!

어찌나 빠르고 기습적이었는지 이곳을 응시하던 올빼미는 피할 겨를도 없이 솔라의 공격에 맞아 즉사했다. 하얀색 올빼미의 깃털만이 밴시들과 함께 휘날렸다.

패밀리어와 동기화되었기 때문에 마법사에게도 타격은 엄청날 터. 만족한 솔라는 고요한 시선을 거두곤 여관 문을 닫았다.

한편, 루나시르네는 참으로 오랜만에 푹신한 침대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끼이익.

후다다닥.

숙소 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유리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이라도 갔다 온 건가?’

루나는 그 소리에 살짝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려 했다.

우우웅.

하지만 다시 깊은 잠에 빠지려는 루나의 가슴 쪽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녀의 목에 걸린 로사리오에서 나는 진동이었다.

로사리오에 봉인된 그림자 핵. 녀석은 가끔씩이지만 이렇게 웅웅 울었다.

“이 씨……!”

로사리오의 떨림에 루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이렇게 자신을 귀찮게 했다.

우우우웅-.

가만히 놔두자, 진동이 더 심하게 울렸다.

루나는 그런 그림자 핵의 진동을 들을 때마다…….

꽈아아악.

우우우웅!!

로사리오를 악력기처럼 졸라 주는 것으로 조교했다.

“한 번 더 자는데 귀찮게 하면…… 죽어어어.”

사령술사의 악력을 받은 그림자 핵은 바로 잠잠해졌고.

루나는 다시 만족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 * *

여명이 밝아 오는 새벽이 되자마자 셋은 여관을 나섰다.

마검 루시는 어느 순간부터 잠을 자는지 반응하지 않았다.

하얀색 올빼미를 제외하면 밤사이 어떤 습격도 오지 않았기에 유리아와 루나의 얼굴도 약간이지만 피로가 풀린 상태. 짧지만 깊은 잠을 자서 그런 모양이다.

달그락달그락.

마을과 도시를 잇는 길을 세 대의 마차가 질주하듯 이동했다.

다행히도 루나와 유리아는 마차를 몰 줄 알았다. 솔라시우스 또한 기억을 뒤집어 보니 요정 마을에서 마차를 몇 번 몰아 본 기억이 있었다.

사람 셋에 마차 셋. 딱 알맞게 맞아떨어졌다.

솔라시우스는 제일 선두에서 마차를 몰았다. 흑마 맨해튼카페도 마차에 묶어서 마력(馬力)을 높였다.

뒤에 있는 마차들도 쌍두마차가 아닌 삼두마차가 되었다. 각자 유리아의 말과 죽은 미하일의 말을 추가로 달았기 때문.

그래서인지 이동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다.

‘날파리 같군.’

물론 치안이 극단적으로 개판인 외곽에서 평화로운 질주는 불가능하다.

어떤 호위도 없는 마차 세 대의 출현은 하이에나처럼 도로 인근을 어슬렁거리는 도적과 모험가, 방랑 기사에게 좋은 먹잇감이니까.

피슝-!

솔라는 마차를 몰면서 한편으론 화살을 쏘았다.

퍼억! 퍼억!

백발백중. 말을 타고서 무기를 뽑고 다가오던 한 모험가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요정 숲에서 익혔다는 궁술이 다시 한번 빛을 내는 순간이다.

휘이잉, 휘이잉.

동시에 밴시 무리들도 호위에 가담했다. 루나 또한 마차를 몰면서 놀라운 집중력으로 밴시들을 조종했다.

“으아아악! 귀신! 귀신!!”

밴시를 보고 놀란 도적 무리가 깜짝 놀라 도망친다.

몇몇 경험 있는 모험가와 방랑 기사들은 그런 밴시를 향해 성수를 뿌리려 했지만, 그때마다 솔라의 화살이 목과 눈을 저격했다.

휘이이잉.

그렇게 죽은 이들을 향해 밴시들이 접근했다. 그리고 돈주머니와 같은 작은 전리품들을 챙겨 루나에게 가져왔다. 물리력이 약한 밴시라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다.

‘마치 아이템 줍는 페트 같군.’

솔라는 여동생의 밴시들을 보면서 무심히 생각했다.

제일 선두에는 솔라시우스가, 제일 후미에는 루나가 있었고, 가운데에서는 유리아가 멀뚱멀뚱 마차를 몰았다.

* * *

해가 지기 직전. 마차가 부서질 정도로 거칠게 몰고 몰아서 마침내 변경백 남쪽 최대 도시, 세바스에 도착했다.

몇 분만 늦었어도 성문 앞에서 노숙을 할 뻔했다. 아니지, 유리아의 신분을 이용하면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세바스에 도착한 유리아는 제일 먼저 보급 부대부터 찾았다.

마차를 몰고 도시 외곽의 넓은 공터로 향하니 그곳에는 제법 많은 변경백의 군대가 천막을 치고 있었다.

“아돌프 오라버니!”

“오오! 유리아! 어떻게 된 것이냐?! 호위들은? 그리고 이분들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돌프 오라버니!”

세바스에 집결한 군대는 보급 부대라고 했다. 그리고 이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보급대장직을 맡고 있던 문라이트 후작의 셋째 아돌프 폰 문라이트라고 했다.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은 유리아와 달리 짙은 갈색에 푸른색이었다.

“그럴 수가! 미하일이……?! 감히 배신을 해?!”

유리아는 아돌프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줬고, 그녀의 친오빠인 아돌프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안도했다.

솔라와 루나는 옆에서 식사를 하면서 조용히 또 다른 남매의 대화를 들었다.

“정말 고맙소! 앞서 동생이 소개했지만 내 이름은 아돌프 폰 문라이트, 문라이트 변경백 각하의 삼남이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오! 로안 경과 리나 양이 없었다면 비자금은 물론 유리아 또한 위험했을 것이오!”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솔라는 아돌프의 진심 어린 감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백 문라이트 후작가는 원작 플레이에서도 체험한 것이지만 소드 마스터인 후작부터 그의 자식들까지 대부분 성격이 괜찮았다.

히스테리 여왕과 달리 충분히 이성적이었고 말도 통했다.

“마음 같아선 로안 경과 리나 양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큰 보상을 주고 싶소만…….”

아돌프가 뒷말을 흘린다. 아마도 변경백 사정이 많이 좋지 못해서 그렇겠지.

“괜찮소. 그럴 시간에 폐하의 명을 한시라도 빨리 수행하는 게 내겐 좋으니.”

솔라의 담담한 태도에 아돌프 또한 놀란 눈을 했다. 처음 솔라를 보았을 때 유리아가 보였던 반응과 유사하다.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최대한 빨리 볼카로 갈 예정이오. 볼카의 전황은 어떻소?”

솔라는 아돌프의 반응을 흘리며 가장 궁금한 전황을 물었다.

“그게…… 좋지 않소. 볼카 요새는 현재 함락 직전이오. 현재 후작 각하를 지원하기 위한 별동대를 편성 중에 있소.”

그 말에 유리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루나 또한 표정을 굳혔다.

“그 별동대는 언제 출발하오?”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할 예정이오.”

“나도 그 별동대에 끼워 주시오.”

오직 솔라시우스만이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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