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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41화 (41/212)

제41화

#41.

볼카 요새의 분위기는 크게 밝아졌다.

자살하거나 탈영하는 병사는 더 발생하지 않았고, 솔라의 동생 루나가 볼카 성채의 결계와 마법을 손봐 주면서 암살자의 습격도 끊어졌다.

“…….”

성벽에 서서 말없이 적진을 응시 중인 솔라시우스.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인간을 초월한 솔라의 눈에는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용하지만 그 속에서 움직임은 활발한 제국의 암흑군단.

조만간 뭔가를 준비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좀 걸릴 뿐. 태양샘 반지는 언제든 얻을 수 있어.’

그는 고개를 돌려 볼카 요새의 중심부 방향을 보았다.

온갖 결계가 펼쳐진 깊고 깊은 광산.

‘볼카를 지키는 고대의 데몬은 지금 깊은 잠에 빠졌으니까’

솔라가 태양샘 반지 얻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원작 플레이에서도 쉽게 얻었기 때문이다. 광산 입구에 있는 결계와 그 속의 미로가 문제지, 데몬 자체는 걱정 없었다. 잠든 데몬을 조심히 피해서 몰래 반지를 얻어 오면 되니까.

‘이번엔 더 쉽게 찾겠지.’

게임이었지만 무수한 시도 끝에 정복한 광산의 결계와 미로는 그의 머릿속에 완벽히 각인돼 있었다.

‘추가로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탈것도 챙겨야지.’

태양샘 반지와 별개로 고대의 데몬처럼 저 광산에 봉인돼 있는 고대의 생명체도 있었다. 일종의 히든 피스인 탈것이었는데, 나중엔 하늘도 날 수 있어서 게임 후반부까지 요긴하게 써먹었었다.

‘문제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여기가 얼마나 버틸 수 있냐다.’

솔라시우스는 혼자다. 아무리 그가 엄청난 무력을 지녔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루시.”

그는 자신의 마검을 불렀다.

[…….]

마검은 반응이 없었다.

‘오늘은 깨어날 생각을 안 하는군.’

요 근래 잠이 부쩍 많아진 마검 루시가 신경 쓰였다. 괜히 이능을 쓴 것 때문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었다. (실제론 여왕의 업무와 이노센티아 연구 때문에 동기화할 시간이 길지 못한 것뿐이지만.)

지금도 이런데 태양샘 반지를 얻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지만.

‘루시의 상태와 별개로 어쨌든 태양샘 반지는 필요해.’

훗날, 설원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태양샘 반지는 필요했다.

무엇보다 제국이나 재상에게 빼앗길 바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게 나았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요새에 없는 동안에도 아군이 제국군을 잘 막을 수 있어야 했다.

“…….”

솔라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몇 분을 있었나? 그는 결심했다는 듯 황금색 눈을 빛냈다.

푸른색 마검 루시를 쓰다듬으며 성벽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동생 루나시르네를 불렀다.

“뭐? 마법 통신구를 쓰겠다고?”

루나를 찾은 솔라는 다짜고짜 볼카 요새에 배치된 마법 통신구로 동생을 데려갔다.

“지원을 요청할 거야. 지금 상태론 결국 못 버텨.”

“그건 아는데……. 어디로? 오라버니가 아는 데가 있어?”

루나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녀가 아는 오라버니는 인맥이 딱히 없었다.

“요정 숲.”

동생의 물음에 솔라는 무덤덤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 * *

편지를 보내듯 요정 숲으로 마법 통신을 보냈다.

답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부디 와 줬으면 했지만 안 올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 안 올 확률이 훨씬 높았다.

자신이 비록 엘프 여왕과 그녀의 동생 로뮤와 인연을 맺었다고 해도, 그거 하나로 지원을 요청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게임에서는 요정 숲의 평판작이 완료된 후에야 엘프 지원군을 받을 수 있었지.’

지금의 그는 요정 숲과 우호 관계에 있을 뿐, 확고한 동맹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솔라는 시도라도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제국의 1황자 솔라시우스, 마지막 적장자이자, 제국 최초의 황후 아낙시아의 핏줄이지. 제국과 요정 숲이 맺은 언약의 상징이기도 하고.’

그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의 적통을 써 보기로 했을 뿐이다. 과연 그들이 이 언약을 얼마만큼 크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답장이 올 때까지 현재에 충실하기로 솔라시우스는 생각했다.

일단 최대한 제국군을 상대하자. 끝내 답장이 안 오거나 요정 숲에서 거절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두 가지 플랜도 짜 놓았다.

찜찜함을 뒤로하고 최대한 빨리 광산으로 갔다 오는 플랜과, 매우 위험하겠지만 단독으로 암흑군단 본진으로 가서 암흑대공을 죽이는 플랜이다.

반쪽짜리 태양 이능이라서 다소 불안하지만, 지금의 솔라시우스는 원작 플레이에서의 솔라시우스가 아니다. 그의 본체 태광휘는 이세계의 마왕보다 더 강력한 마왕군을 10년 동안 상대한 인물.

지금과 비슷한 경험은 차고 넘쳤다.

1주일, 오래 사는 엘프들은 인간들과 시간 개념이 다르다. 그들의 기준에서 1주일이면 매우 빠른 편.

답장이 오지 않더라도 솔라는 일단 딱 1주일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로안 경! 제국군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성 마법! 놈들이 공성 마법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제국군의 움직임은 요정들의 답장보다 아주 빨랐고 파격적이었다.

“전면 공격은 아닌 듯합니다. 도대체 뭘 할 속셈이지?”

변경백의 장남 프리드리히가 망원경으로 전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놈들이 처음으로 전진해 오고 있다.

“제2기사단과 제2기병대는 출격을 준비한다. 테일러, 함께 종군하시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지크문트 폰 문라이트 후작의 입이 열렸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후작의 출격 명령. 2기사단장 레인이 주군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 따르겠습니다.”

테일러라는 이름의 마법사도 한숨을 쉬면서 후작의 명을 승낙했다.

“요새 문을 열어라! 우리가 먼저 공격해야 한다!”

이어서 후작은 더욱 알 수 없는 지시를 내렸다.

“후작 각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지크문트의 지시에 궁금함을 참다 못한 유리아가 물었다. 그녀는 지금 아버지의 부관직을 수행 중이었다.

“공성전이다.”

딸의 질문에 후작은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공성전이라고요?! 공성 무기는 안 보이는데?”

“정확히는 공성 마법이다. 지금의 우리 마법 전력으론 절대 방어하지 못해. 놈들이 드디어 미쳤나 보군. 데몬 따윈 신경도 안 쓰겠다는 건가?”

후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볼카 요새의 문이 열렸고, 2기사단장이 지휘하는 총 200기의 기마대가 성문을 나섰다.

* * *

약 500 정도의 보병대가 쇠뇌와 공격 마법 사거리가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멈췄다.

암흑군단 보병대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흑색 중장갑을 입은 정예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하나 같이 4~5미터 길이의 장창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보병대 중심부에는 11명의 마법사가 커다란 마법진을 수놓고 있었다. 마법진 곳곳에는 각종 토템을 박았다.

그들 중에는 회색 마녀복을 입은 마녀도 보였다. 그 마녀는 다른 마법사와 마녀들보다 유독 챙이 넓은 마녀 모자를 썼는데, 하관만 간신히 보였다.

“흐응~ 역시 문라이트 후작인가? 바로 눈치챘네?”

아리아는 보병대 중심부에 서서 볼카 요새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미소와 함께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가 인상적이다.

‘우리 까마귀가 본 게 맞다면~ 고대의 데몬은 지금 깊게 잠들어 있어.’

그녀는 얼마 전 패밀리어를 볼카 광산으로 보냈었다.

‘아쉽게도 데몬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토록 조용한 광산은 처음이었어.’

광산 입구에는 온갖 결계가 펼쳐져 있다. 결계를 어찌 통과한다 해도 데몬과 태양샘 반지가 뿜어내는 열기로 패밀리어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녀는 급히 자신의 패밀리어를 광산 밖으로 빼야 했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광산 초입이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볼카 광산과 분위기가 매우 달랐으니까.

그녀는 고대의 데몬이 잠들었을 거라는 추측을 했고, 때문에 암흑대공을 설득해 과감히 움직이기로 했다.

마침 암흑대공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라 이렇게 빠르게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

‘설령 이번 일로 데몬이 잠에서 깨어나도 손해는 없지. 솔라시우스의 실력이 뛰어난 것을 확인했으니까.’

서로 힘을 빼게 만든 다음에 암흑대공이 마지막에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

“적의 차징에 대비하라!”

선두열에서 보병대장의 외침이 낮게 울렸다.

처억, 척!

마법으로 감정이 거세된 최정예들답게 어떤 동요도 두려움도 없이 달려드는 기사단을 향해 기계처럼 창을 겨눴다.

두두두두둣.

멀리서 변경백의 맹렬한 흙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대비한다고 마법사를 하나 대동하긴 했다만.”

아리아는 자신들을 향해 돌격하려는 변경백 기마대를 보곤 차갑게 비웃었다.

“운이 없네요~.”

먼지구름과 함께 기사단의 랜스가 보였고.

“미끄러지거나, 파인 땅에 걸려 넘어지거나, 잠들거나, 공포에 떨거나, 공황에 미칠지어다.”

공성 마법을 준비 중인 10명의 마법사를 뒤로하고, 아리아는 달려드는 기마대를 향해 나 홀로 여러 마법을 쏘았다.

콰앙, 퍼버버벅, 콰지직!

히이잉, 힝.

끄아아아악!!

듣기만 해도 참혹해지는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성채에서 기사단과 기병대의 차징을 지켜보던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

“신이시여…….”

암흑군단의 장창에 찔려서 저런 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이해라도 됐다. 그렇게 죽는 거라면 명예롭기라도 하지.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은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다수의 기사와 기병들은 놈들의 창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잠들고 공포에 빠졌다.

“맙소사…… 중위급 마법사 테일러 경을 붙였는데 이렇다니!”

상식적으로 저런 공성 마법을 준비 중인 보병대에 이를 지원할 보조 마법사가 없다는 게 이상하다.

그래서 나름 방비를 했던 것임에도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요새에 있던 모두가 참담한 표정을 지었고, 문라이트 후작 또한 표정을 굳혔다. 오직 솔라시우스만이 덤덤한 표정이다.

200여 기의 기마대는 결국 선두에서부터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제국군은 큰 피해 없이 차징을 막아 냈다.

이들 중 절반인 100여 명의 기사와 기병 들만이 간신히 말고삐를 돌려 후퇴할 수 있었다.

처억, 처억, 척.

암흑군단의 보병들은 차징으로 비어 버린 열을 빠르게 채웠고, 다시 한번 장창을 전방으로 겨눴다.

간신히 살아남은 100의 기마대가 요새로 후퇴하려 한다.

전의를 완전히 잃은 모양.

“하아.”

문라이트 후작은 한숨을 쉬면서 몸을 돌리려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러다가 문득, 유독 평온한 솔라시우스를 보았다.

후작의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후작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변경백 각하, 제가 가겠습니다.”

“로안 경.”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후작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 요새에 남아 방어 마법을 부탁해.”

솔라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자신의 여동생을 보았다.

“오라버니……!”

여동생 루나가 걱정스러운 눈을 한다.

“…….”

후작 옆에 서 있던 유리아 또한 걱정과 기대가 담긴 눈으로 솔라를 보았다.

솔라는 동생 루나시르네의 도움을 받아 성문으로 가지 않고 성벽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단순히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혼자서도 가능했지만, 그가 타는 말 맨해튼카페도 같이 뛰어내리기 위함이었다.

성벽에서 맨카와 함께 내려온 그는 바로 전장으로 달렸다.

저 앞에 반쪽으로 줄어든 기사단과 기병대가 보였다.

3기사단장과 중위급 마법사 테일러는 방금 돌격으로 전사한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부대 장악은 쉽겠어.’

그는 속으로 무심히 생각하며 박차를 가했다.

요새로 도망쳐 오는 기마대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스르릉.

솔라는 그들 앞에 멈춰 서고선 검을 뽑아 들었다.

“전열 재정비.”

그리고 짧게 말했다. 마나를 담아 뱉은 말이기에 후미의 기병들에게까지 들렸다.

그의 눈동자는 오랜만에 고요함을 유지했다.

고오오오오-.

엄청난 살기와 위압감이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허억!”

“으윽!!”

솔라에게서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눌린 기사와 기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말의 고삐를 당겼다.

말을 멈춰 세운 그들은 두려움 담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솔라가 시키는 대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저길 다시 돌격하겠다고?!’

‘거짓말이지?’

‘이건 미친 짓이야!’

생존한 기사와 기병 모두가 속으로 절규했다.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항명하는 자는 바로 목을 베겠다.”

솔라는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높은 제국어와 요정어가 섞인 그의 어조는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부여하는 듯했다.

게다가 일격으로 돌격대장 헌스터를 죽인 기사다. 항명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치욕스럽게 죽을 바엔, 명예롭게 죽는 게 낫겠지.’

상당수는 반쯤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지구에서 10만 헌터를 총지휘하던 태광휘라서 그런가?

태광휘, 솔라시우스에게선 거대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다수의 인원을 통솔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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