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50화 (50/212)

제50화

#50.

솔라는 둘이 왜 친해졌는지는 짐작해 보았다. 일단 서로 얘기와 성격이 잘 통한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루나가 유독 로뮤에게 먼저 접근을 많이 한 것 같았지만.’

그럴 만도 하다. 로뮤는 자신의 스승이자 형과 같은 존재였다.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솔라밖에 없던 루나에게 또 다른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으니 새로울 수밖에

‘로뮤도 요정 숲에선 나름 별종이긴 했지. 흑발에 붉은 눈동자부터가 엘프들에게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색이기도 하고.’

솔라는 요정 숲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로뮤가 유독 인간인 솔라시우스에게 친절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로뮤 또한 엘프들 사이에선 소외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누이 리리아 때문에 대놓고 따돌림받지는 않았지만, 머리 색과 눈동자 색 그리고 호기심이 유독 많은 성격은 은근한 벽을 만들었었지.

“요정 숲에 가면 세계수도 볼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너라면 세계수와 내 누이도 환영할 거야.”

“진짜? 하지만 난…….”

“네가 뭘 익혔든, 뭘 품었든, 세계수는 오직 영혼으로만 판단해. 그리고 내가 본 너의 영혼은 선한 편이야.”

“선한 편이라고?”

“으음…… 엘프들은 거짓말을 못해……. 리나, 너는 아주 선하지는 않더라고. 대체로 선한 편이야.”

“이상하네? 난 내가 착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 그러니?”

솔라가 옛 생각을 떠올리는 중에도 루나와 로뮤는 자잘하게 대화를 이었다.

서서히 제국군 무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다들 긴장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림에도, 저 둘은 매우 평화로웠다.

로뮤와 루나의 관계는 뭐랄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매 같았다. 자신은 나이 차이 별로 안 나는 오빠인 것 같았고.

‘잠깐, 요정 숲에 함께 데려가려는 게…… 유리아인가?’

그나저나 가만 생각해 보니 처음 루나가 물었던 질문이 신경 쓰인다.

“리나, 함께 데려가려는 사람이 설마…….”

솔라는 루나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쿠오오오오!

전방에서 거대한 고함 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시작이군.”

루나와 대화를 나누던 로뮤가 장궁을 손에 쥐며 중얼거렸다.

처억, 척.

엘븐레인저들이 그런 로뮤를 따라 절도 있게 활을 조준했다.

스르릉.

솔라시우스 또한 검을 뽑아 들고는 광휘를 흘리기 시작했다.

“로안 경! 요정들에게 우리가 지시하면 쏘라고 전해 주시오!”

요새 사령부에서 프리드리히가 솔라를 향해 외쳤다. 마나를 담은 외침이라 그의 귀에 쏙 들어온다.

“엘-리히티 하르만!(내 호령에 맞춰 주시오!)”

그 말을 들은 솔라가 검을 하늘 위로 치켜세운 뒤 요정어로 외쳤다.

솔라의 외침에 엘프들이 로뮤를 쳐다봤고, 로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솔라의 구호에 따르라 전했다.

조준을 마친 엘프들의 화살에는 엘프 아니랄까 봐 각자 정령의 힘을 화살촉에 담았다.

불과 바람, 빛 등이 성벽의 일부를 빛냈고 변경백의 병사들은 석궁을 장전했다.

[…….]

마검 윈테이라에 접속한 여왕 루시푸르네도 숨을 멈추고는 눈앞의 전장을 구경했다. 이번에는 때가 잘 맞아서 솔라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제발…… 솔라시우스! 무사해야 해!’

속으로는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모르겠다. 저 제국군 중에는 암흑대공도 있을 것이다.

회귀 전의 솔라는 암흑대공에게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두렵고 걱정됐다.

아까부터 너무 긴장하고 떨려서 어떤 말도 감히 꺼낼 수 없었다.

“오라버니, 사령술을 써도 될까?”

옆에서 루나가 솔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솔라는 그녀 옷 속에 가려진 로사리오를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에만 써.”

솔라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언제까지 막거나 숨길 순 없었다. 루나 또한 성장해야 했고, 이번 전투는 이 아이에게도 많은 기회가 될 거다.

솔라는 동생에게 짧게 답한 후, 엘프어로 엘프들에게 외쳤다.

“놈들은 감정을 잃은 병사들이오. 저들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구원이오! 망설이지 말고 살육에 임하시오! 설원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할 것이오!”

광휘를 뿜어 대면서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외치는 솔라시우스의 모습은 변경백의 병사들은 물론 엘프들까지 그를 공경하게 만들었다.

“신이시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뒤이어 솔라는 대륙 공용어로 다시 한번 외쳤다.

“신이시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솔라의 외침에 인간 병사들이 한목소리로 루시의 안녕을 외쳤고.

[!!]

처음으로 이를 직접 들은 루시푸르네는 가슴속 깊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울컥하여,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쿵쿵쿵.

제국군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흑색 중갑을 입은 암흑군단의 보병들이 포진했고, 사이사이 테이머 마법사들이 길들인 것으로 보이는 트롤과 오거가 유일하게 괴성을 지르며 포효한다.

이제는 데몬이 깨어나든 말든 상관 안 하겠다는 태도다.

잠깐의 고요한 대치가 일었고.

“공격 준비!”

성채 사령부에서 신호가 떨어졌다.

“엔-하루 하람(조준)!”

솔라가 다시 한번 엘프어로 지시를 내렸고, 활과 마법, 창을 든 엘프들이 각자의 목표를 정했다.

“니페레 하인달 에루메인 이달랑크 바루랑크(갑옷이 비어 있는 목과 관절을 노려라)!”

중간에 로뮤가 엘프들에게 조언을 더했다.

쿠오오오오!

쿠와아아아!

잠깐의 대치가 종료되고 제국군이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쏴라!”

“테르고! 인페레!”

문라이트 후작과 솔라시우스가 동시에 공격을 외쳤다.

제국군은 공성 무기와 공성 마법을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10명의 엘프 엘리멘탈리스트들 때문이었다.

하이엘프까지는 아니지만 10명 모두 평균 700살 이상 먹은 장로급 엘프였고, 하나같이 정령술과 마법에 통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대마녀, 대마법사 수준이었기에 그들이 요새에 추가로 설치한 방어 결계는 제국의 어지간한 시도를 저지했다.

물론 제국도 높은 위계의 마법사와 마녀가 포진되어 있었고, 질보단 숫자로 요새의 결계를 상대 중이었다.

이러다 보니 전투는 사실상 마법은 거의 보이지 않는 냉병기의 향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거거걱- 퍼억.

피슉- 퍼엉.

이 냉병기의 향현에서 유리한 쪽은 변경백이었다. 아직까지는.

엘프가 쏘는 정령 화살은 한 발, 한 발이 지구의 대물 저격총처럼 강력했고, 가까스로 성벽으로 올라온 군단 돌격병들도 대기하고 있던 엘븐나이트의 곡도와 창에 금방 떨어져 나갔다.

인간 병사들이 있는 쪽이 문제였는데, 그쪽도 힘을 회복한 문라이트 후작과 기사들이 전면으로 나서서 무난히 방어하고 있었다.

쏴아아악.

특히나 태양 이능을 활용하는 솔라시우스의 활약이 독보적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태양검을 비롯한 다양한 태양 이능을 사용했다.

궁극기인 태양의 후예를 제외한 모든 스킬을 골고루 발현했고, 이는 제국군에겐 태양이 내린 천벌처럼 여겨졌다.

“이길 수 있다!”

“신이시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적에겐 천벌이지만, 반대로 아군에게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

처음으로 솔라의 능력을 본 루시 또한 입을 쩍 벌리고 감상했을 정도였다.

‘저 정도면 그런 저주를 받을 만하네’라는 생각이 잠깐이지만 들 정도였다.

“와아아아!”

“힘을 내자! 이길 수 있어!”

“로안 기사님이 암흑대공도 무찔러 주실 거야!”

승리가 벌써 보이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앙.

볼카 요새 후문에서 거대한 폭발이 들리기 전까진.

후문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생전 처음 듣는 끔찍한 괴성들이 들렸다.

* * *

볼카 요새는 협곡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측면이나 후방 공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후문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볼카 요새의 후문에서 흉측한 괴물들의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

앞쪽의 오거와 오크, 트롤이 내는 괴성과는 차원이 다른 괴성.

“키메라?!”

이는 솔라시우스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다.

‘키메라라니! 저건 게임 후반부에서나 나오는 몬스터인데?’

솔라는 광휘를 휘날리며 안색을 굳혔다.

“아아아악!”

“끄아아악!”

후방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키메라들의 끔찍한 무력 앞에 잘게 찢겼다.

“루-엔페로 테르고(저 끔찍한 걸 막아야 하오)!”

솔라가 급히 엘프어로 외치자, 일부 엘리멘탈리스트와 엘븐나이트가 후문으로 향한다.

“로뮤! 여길 부탁해!”

게임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솔라는 로뮤에게 이곳을 맡기고 황급히 키메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암흑대공이 아직 안 보이는 게 불안한데…….’

찝찝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뒤에서 몰려오는 키메라 무리에게 먼저 무너질 것이다.

“로안, 괜찮겠어? 저 흉측한 괴물은 엄청 강해. 숫자도 많고.”

로뮤가 후문으로 가려는 솔라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오지. 암흑대공이 나타나면…… 절대 무리하지 말고 버티기만 해.”

솔라는 로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여동생을 불렀다.

“기다렸다고!”

루나가 씨익 웃으며 빗자루를 챙겼다. 상의 속에 가려진 로사리오가 웅웅거리며 우는 것 같기도 하다.

솔라와 루나는 함께 키메라를 상대하러 출발했다.

후문 쪽은 혼란 그 자체였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괴생명체 키메라.

숫자도 숫자지만 온갖 생명체의 장점만 쑤셔 넣었는지 그 파괴력이 장난 아니었다.

지금 볼카 성채의 방어막을 주먹과 망치로 두들기는 암흑군단의 거대 몬스터들보다 더 포악스러웠다.

체구는 황소만 한데 파괴력은 어지간한 오거를 압도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급히 이쪽으로 20명의 엘븐나이트와 2명의 엘리멘탈리스트가 집결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키메라 부대가 요새 전체로 널리 퍼지지 않았다.

“마법사를 찾아!”

장소에 도착한 솔라는 엘프어로 엘리멘탈리스트와 엘븐나이트에게 외쳤다.

마법사가 죽으면 통제 불능이 되어 날뛰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어떤 게 피해가 적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괴물이 지능을 가지는 것보단 낫겠지.

“리나! 키메라를 조종하는 마법사부터 찾아.”

“알았어!”

솔라는 그 말을 마치곤 곧바로 태양검을 발동했다.

이어서 열사의 필드라는 광역 이능도 사용했다.

그러자 후문에 집결한 키메라들의 몸이 일부 녹거나 불타기 시작했다.

평범한 생명체였다면 순식간에 즉사했어야 했지만, 키메라라서 그런지 꽤 잘 버텼다.

그래도 움직임도 많이 둔해졌고 놈들의 어그로가 솔라 한 사람에게 쏠렸다.

“루시, 괜찮아?”

드워프제 검에 빛의 오러를 일으킨 솔라가 허리춤에 있는 루시를 살폈다.

[괜찮다. 이렇게 냉기가 감소하는 거였군.]

솔라의 염려에 루시는 괜찮다고 말했다.

‘설원의 가호가 옅은 곳이라서 그런가? 소모 속도에 비해 충전 속도가 낮아. 이번 전투가 끝나면 내곽으로 가서라도 충전을 하라고 해야겠네.’

속으로는 자신이 접속한 윈테이라의 상태도 점검했다.

‘솔라시우스의 저주가 이 정도라면…… 어쩌면 나에게 가까이 와도 괜, 괜찮지 않을까……?’

동시에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묘한 망상도 하게 된다. 검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솔라와 가까이 앉고, 함께 그의 몸을…… 그의 몸을……!

루시는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타다다다닷.

서거거걱.

망상에 빠진 루시와 다르게 솔라는 태양검과 함께 키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암흑대공이 나타나기 전까지 최대한 키메라의 수를 줄여야 한다.

솔라는 엘븐나이트와 엘리멘탈리스트와 함께 키메라를 베고 찌르고 불태웠다.

화아아악!!

틈틈이 펼치는 빛의 추적과 열사의 필드가 다른 곳으로 튀려는 키메라들을 묶었다.

게임으로 치면 딜과 탱을 혼자서 다하고 있는 셈이다.

‘로안 샬루트가 저렇게 강했나?’

‘원래 빛과 열 속성을 지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잠깐 못 본 사이에 저게 가능하다니……! 단명종의 성장 속도는 엄청나군.’

이를 보는 엘븐나이트와 엘리멘탈리스트 들은 할 말을 잃었을 정도다.

엘프들에게 지구의 EX급 헌터 태광휘의 무용은 경악 그 자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