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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53화 (53/212)

제53화

#53.

시간을 잠시 되돌린 몇 분 전.

볼카 요새의 후문.

솔라와 루나 그리고 소수의 병력은 아직도 키메라 부대를 막고 있었다.

키메라들은 빛과 열에 엄청난 면역을 지녔는지, 솔라의 태양 이능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신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었다.

콰아아앙, 우르르르르.

정문 쪽에서는 몇 번째인지 모를 일어난 거대한 파괴음이 터졌고, 땅의 흔들림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로안 경!”

그리고 얼마 후. 피와 먼지투성이가 된 프리드리히가 나타났다.

“부탁이오! 제발 우리 후작 각하를 살려 주시오! 그대의 친구 로뮤라는 엘프도 위험하오!”

“……!”

“로뮤 오라버니가?!”

프리드리히의 외침에 솔라는 물론 루나까지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아직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숫자가 줄지 않은 키메라 부대가 있었다.

그가 아는 원작의 키메라보다 훨씬 강하고 까다로운 놈들이.

‘태양의 후예를 쓰자!’

솔라는 결국 결심했다. 태양의 후예를 사용하여 키메라 부대를 없애고 암흑대공까지 상대하기로.

다만, 궁극기를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했을 때 그의 마검 루시가 괜찮을지가 걱정이다.

그녀는 괜찮다고 하지만 솔라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오라버니! 나 이제…… 사령술 쓸게!”

그때, 솔라 옆에 있던 동생 루나가 자신의 마나를 일으키며 오라비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키메라 놈들도 플래시 골렘 놀이를 하는데! 명색이 내가 사령술을 안 쓰면 쪽팔려서 스승님 볼 면목이 없다고!”

그녀는 솔라가 말린다고 해도 기어코 자신의 힘을 사용할 작정이다. 이미 루나의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에, 근처에 있던 엘븐나이트와 엘리멘탈리스트들이 흠칫하며 루나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어쩔 수 없지.”

솔라는 결국 동생의 사령술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쓰고 있기에 허락도 의미 없었다.

가능한 한 쓰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가능하겠어? 일반적인 언데드로는 저 키메라를 상대하기 힘들 텐데?”

“나…… 이거 써 보려고!”

솔라가 우려를 표하자, 루나가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품에서 로사리오를 꺼냈다.

“!!”

루나의 로사리오를 본 솔라의 금색 눈동자가 커졌다.

“……그래.”

동생의 눈을 본 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눈동자에는 진심 어린 각오가 담겨 있었다.

전에 그는 저 로사리오가 어쩌면 최고의 보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루나는 스승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 보주를 사용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뭔가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간 써야 할 힘이었어.’

걱정되었지만 솔라는 자신의 동생 루나시르네의 재능을 믿었다.

“그럼 함께 키메라를 처리하자.”

“아니! 오라버니는 당장 정문으로 가!”

“뭐?”

“시간 없잖아! 여긴 내가 최대한 버티고 있을게! 엘프들도 옆에 있으니까 버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루나의 말에 솔라는 후문이 있는 방향과 앞쪽의 키메라들을 번갈아 보았다.

“제발 나 좀 믿어 줘, 솔라 오빠! 로뮤 오빠 죽으면 진짜 원망할 거야!”

루나는 반쯤 소리 지르듯 솔라에게 외쳤다.

“금방 처리하고 올게.”

솔라는 결국 몸을 돌려 정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오라비 솔라시우스가 사라지고.

“어디 한번 해 볼까?”

루나시르네는 로사리오를 보주처럼 한 손에 꽉 쥐었다. 마치 악력기처럼.

우우우우우우.

그녀의 로사리오가 어느 때보다 크게 공명한다.

로사리오에서 그림자가 마치 오러처럼 흘러나왔고.

화아아아악.

이윽고 사방으로 퍼진다.

“저게 무슨!”

“맙소사, 이토록 심연에 가까운 힘이라니!”

함께 있던 엘프들이 경악한 얼굴로 루나를 쳐다봤다.

키르르르르…….

그녀 앞에 있던 키메라들이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꼈는지 괜히 뒤로 주춤한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지고, 볕이 뜨거울수록 그늘을 찾아 헤매지.”

사르르르.

루나의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에서 색이 급격히 빠지더니 본래의 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령술사이기도 하지. 그리고 이 요새에는 지금 시체가 아주 많고.”

고오오오오.

마치 봉인된 힘을 사용하듯이, 스포츠카가 꽉 막힌 도심에서 뻥 뚫린 아우토반으로 막 진입한 것처럼, 루나시르네는 쾌락에 가까운 시원함을 느꼈다.

“나의 사령술과 이 음영술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금발 금안 마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어졌다.

우르르르.

땅속에서, 성채 곳곳에서, 시체들이 우르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시체들은 이내 그녀가 생성한 그림자를 입었고, 솔라에겐 원작이고 루시에게는 회귀 전인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군단, 교국을 멸망시킨 죽음의 대마녀 리나 리버스의 군단, 죽음의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쓰나미. 그림자로 이뤄진 거대한 쓰나미였다.

루나시르네는 그림자로 이뤄진 물결로 오라비의 열사의 필드를 대신했다.

아니, 단순히 대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넘어섰다.

적어도 눈앞의 키메라들에겐 솔라의 태양보다 동생의 어둠이 더 치명적이었다.

키에에에엑!

쿠우우우우!

솔라 앞에선 차마 내지 못했던 고통과 두려움 섞인 비명들.

그림자 물결 사이사이에 이 요새에서 죽어났던 자들이 되살아나 전진한다.

그림자 갑옷, 그림자 실드를 입은 죽음의 군대는 키메라들의 공격에 찢기면서도 그들이 입고 있던 그림자를 묻히는 데 성공한다.

빛과 열에 특화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반대의 속성에 취약하다는 뜻.

!!

놈들은 그림자가 묻었을 뿐임에도 크게 절규했다.

“이때다!”

“저 마녀가 우리 편이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야…….”

“공격하라!”

엘프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세에 가담했다.

그러자 꾸역꾸역 버티던 키메라들이 하나둘씩 쓰러졌고. 쓰러진 고깃덩어리들은 그림자에 먹히고 먹혀 검은 마녀의 일원이 되었다.

“거기 있었구나!”

키메라를 흡수한 루나는 이들을 조종하는 제국 마법사들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랬으니까 못 찾았지.”

금색으로 변한 루나의 눈에 순수한 잔혹함이 빛났고, 그림자 마녀는 그림자 파도를 서핑하듯 타면서 볼카 요새의 중심부로 향했다.

* * *

볼카 요새 중심부. 옛 볼카 광산 입구.

이곳에는 촘촘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루한의 전대 여왕들이 대대로 펼쳐 놓은 결계.

고대의 데몬과 그 데몬이 지키고 있는 태양샘 반지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결계이기도 했다.

역대 설원의 대마녀들도 고대의 데몬을 죽이거나 봉인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들은 안에서 밖이 아닌, 밖에서 안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결계를 펼쳤다.

적어도 주제도 모르는 이가 쓸데없이 데몬을 자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광산 입구의 결계 주위에서 10명의 마녀와 1명의 마법사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흐음~ 이건 전대 여왕 예나체리나의 술식인가?”

회색 마녀복을 입은 아리아 데스모가 고운 미간을 구기며 광산의 결계를 살폈다.

이 결계만 해제하면 볼카 광산의 결계는 전부 해제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복잡한 광산을 미로처럼 헤맬 필요가 없다.

그저 힘으로 무식하게 뚫고 내려가면 됐다.

“고대의 데몬이 그렇게 강한가? 역대 설원의 대마녀들도 이렇게 결계만 펼치고 손을 못 댔을 정도로?”

회색 마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광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지하가 심연처럼 그녀를 반겼다.

‘확실히 데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맞긴 하네. 엄청 깊게 잠든 모양이야.’

쿠르르쿠르르.

싸움의 여진이 여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밖에서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

본래라면 진작에 역대 여왕들이 펼친 결계를 찢고 나왔어야 했다.

“쿠억! 쿨럭!”

“꺄아아악!”

그때, 마지막 결계를 해제하던 아리아의 뒤에서 피를 토하는 기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도 못 버텨?”

벌써 일곱 명째다, 이곳에 숨어서 키메라를 조종하던 마녀들이 쓰러진 것이.

“분명 빛과 열에 무적에 가까운 면역을 부여했을 텐데?”

‘거기다 만약 그 고기까지 먹었다면, 키메라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패닉에 빠져야 할 텐데?’

추하게 바닥에 쓰러진 마녀들을 보며 아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강화한 지하드의 키메라는 보통의 키메라가 아니었으니까.

“조금만 버텨! 이것만 해제하고 도와줄 테니까! 암흑대공을 불러올 테니까!”

그녀는 아직 힘겹게 버티고 있는 2명의 마녀와 1명의 흑마법사를 보며 외쳤다.

하지만 아리아의 당부에도 두 마녀와 마법사는 그저 몸을 벌벌 떨면서 식은땀만 흘릴 뿐이다.

“재상, 어둠! 어둠이 몰려온다! 이건…… 심연의 그림자야!”

결국 못 참고 이곳의 유일한 마법사인 흑마법사 지하드가 발작하듯 외쳤다.

“좀 닥쳐 봐! 집중 좀 하자!”

그런 지하드의 외침에 아리아는 짜증 어린 고함을 질렀다.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야? 어둠이 뭔데?!’

앞의 일곱 마녀들이 쓰러질 때도 어둠이니 그림자니 같은 이상한 소릴 했다. 괜히 더욱 초조해졌다. 특히 그림자라는 말이 걸렸다.

결계를 해제하느라 현장을 못 보는 아리아는 답답할 뿐이다.

아아아악!

흐으으으으…….

간신히 버티고 있는 두 마녀의 비명과 흐느끼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린다.

“조금만 더 버텨! 5분! 아니…… 3분!”

아리아는 괜히 초조해졌다.

1분 1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됐다!”

마침내, 루시의 어머니이자, 전대 여왕 예나체리나가 펼쳤던 결계가 해제됐다. 이제 암흑대공만 부르면 됐다.

그를 호위로 두고서 태양샘 반지를 구하러 가기만 하면 된다.

지금쯤이면 루한의 소드 마스터와 엘프 지원군을 모두 학살했겠지.

그녀는 대공을 부르기 위해, 하늘 위로 신호 마법을 쏘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흑대공이 여기로 온다면 전부 해결되겠지.

그런데 그때.

“찾았다!”

어린 마녀의 밝은 외침이 아리아의 귀에 들렸다.

“……?”

막 신호 마법을 쏘려던 아리아는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금발 금안의 마녀?’

처음 보는 마녀다. 하지만.

‘저 로사리오는……? 그리고 저 그림자들은!’

금발 금안의 마녀가 지니고 있는 보주와 파도처럼 넘실대는 그림자 물결은 아리아가 절대 모를 수 없는 것들이다.

‘1황녀 루나시르네!’

저 로사리오는 대대로 황제의 정실만이 소유했던 목걸이다. 때문에 저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금발 금안의 소녀의 정체를 아리아는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솔라시우스의 의동생 리나 샬루트가…… 진짜 동생이었다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아리아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이자벨에게 제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허 참! 1황녀를 제자로 들인 거야?! 그것도 사령술을 가르쳤다고? 빛 속성을 가진 황족에게?!’

“무엇보다…… 쟤가 왜 그림자핵을 쓰고 있는 건데!”

그녀에겐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현실들이 넝쿨처럼 굴러왔다.

“뭣들 하는 거야! 당장 저 마녀를……!”

뒤늦게 이성을 찾은 아리아는 주위를 돌아보며 외치려다가 멈칫했다.

멀쩡히 서 있는 마녀는 오직 그녀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지하드? 지하드~!”

그녀는 유일하게 바닥에 안 보이는 지하드를 불렀다.

“빌어먹을 흑마법사 새끼!”

하지만 녀석은 진작에 도망친 모양.

“너구나?”

당황하는 아리아를 향해 루나시르네가 차갑게 물었다.

파스스슷!

이어서 루나의 바로 옆에, 그림자로 이뤄진 날카로운 창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또 그걸 겪고 싶진 않은데…….”

아리아는 전투보단 연구와 저주, 제작에 특화된 마녀.

딱 봐도 눈앞의 전투 특화 마녀와 싸워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파아아앗.

이윽고 루나가 그림자로 된 창을 아리아에게 쏘았다.

“아으! 진짜! 요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자신에게 쏘아지는 창을 보며,

퍼엉―!

아리아는 급히 신호 마법을 쏘았다.

푸욱!

신호 마법이 쏘아지자마자, 아리아의 몸이 그림자 창에 꿰뚫렸다.

“뭐야?”

회색 마녀를 꿰뚫은 루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인형술사?”

생명을 잃은 마녀는 가슴이 부서진 마네킹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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