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58화 (58/212)

제58화

#58.

루시는 반가움과 미안함이 섞인 눈으로 붉은색 드레이크 시즈를 바라보았다.

회귀 전, 솔라시우스의 발이자 날개가 되어 줬던 아이다.

또한 그녀는 저 시즈라는 아이에게도 마음의 빚이 있었다.

“이번에도 솔라를 잘 부탁해, 시즈.”

그녀는 촉촉함이 묻어나는 어조로 10미터 거리에서 뻘쭘히 자신을 보는 시즈에게 말했다.

쿠이잉?

그런 루시를 시즈는 경계와 호기심 섞인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어쩜 회귀 전의 모습과 똑같은지. 여왕은 애써 밝은 미소로 저 착하고 충실한 드레이크에게 손을 흔들었다.

좀 더 재회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이 다 되었음을 느꼈다.

화아아앗.

공간 이동을 알리는 마법진의 환한 빛이 루시의 발아래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루한의 수도 윈테라, 왕궁 순백궁.

여왕 루시푸르네의 침실.

설원의 계승식 이후, 루시가 일생의 전부를 보내는 여왕의 침실은 넓었다.

그 침실 안에 여왕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세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여왕의 침실을 살피고 있었다.

시녀장 베네사와 기사단장 하이마 그리고 섭정 루카스다.

“언제부터 안 보이셨지?”

마법으로 침실을 스캔하던 루카스가 잔뜩 굳은 얼굴로 베네사에게 물었다.

“좀 되셨습니다. 처음 갑작스레 비명과 통곡을 내지르셨고…… 말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계속 흐느끼셨습니다. 그러다가 방금 전에 거대한 마력까지 느껴졌습니다.”

시녀장 베네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 침실에서 갑작스러운 여왕의 통곡이 들려왔다. 늘 문 앞에 대기 중이던 그녀는 화들짝 놀랐고 여왕의 안위를 걱정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겠다고 말했지만 여왕 루시푸르네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베네사의 걱정은 가라앉지 않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침실 앞에 서성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 다시 한번 침실에서 비명이 들리더니,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결국 시녀장은 침실 문을 열었고 여왕이 보이지 않음을 확인했다.

“거대한 마력을 느낀 저는 결국 침실 안을 살폈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으음…… 설원의 가호와 설원의 저주가 급격하게 어긋나고 있어.”

베네사의 말을 들으며 루카스는 설원의 중심부인 왕궁을 살폈다.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신 모양이야. 하지만 이렇게 빠르고 급격히 어긋난다는 것은 아주 멀리 이동하셨다는 뜻인데…….”

침실의 또 다른 구석, 여왕의 공방실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을 분석한 루카스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볼카로 가신 건가?’

그는 루시푸르네가 어디로 갔는지 어째 짐작이 되었다.

“폐하께서 순백궁을 나가셨단 말입니까? 맙소사……!”

섭정의 분석에 기사단장 하이마가 탄식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폐하를 잘 보필하지 못해서…….”

시녀장 베네사는 괜히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런 둘을 보면서 루카스는 심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은 폐하께서 다시 오시길 기다리…….”

화아아앗.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간 이동 마법진이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이런! 다들 물러나!”

여왕의 귀환을 확인한 루카스가 다급히 외쳤다.

셋은 동시에 마법진에서 최대한 멀리 뛰었다.

마법진에서 나는 빛이 크게 번질 때쯤에 그들은 간신히 10미터 밖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윽고 눈부신 빛의 안개 속에서 그들이 애타게 찾던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폐하!”

“무사하십니까! 폐하!”

“폐하……!”

셋은 루시가 나타나자 먼발치서 그녀를 불렀다.

‘추워졌어……? 거리는 10미터를 훨씬 지났는데?’

‘설원의 저주가 심해졌어…….’

‘……!’

동시에 설원의 저주가 심해졌음을 느꼈다.

“다들 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위험하니 어서 침실에서 나가라!”

공간 이동을 완료한 루시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더니 놀란 얼굴로 명령했다.

“폐하, 설마 볼카에 갔다 오신 겁니까?”

루시의 명령에 유일하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섭정 루카스가 물러나지 않고 단호히 물었다.

“……그래요.”

그의 물음에 여왕은 마지못해 답했다.

“설원의 가호와 저주의 균형이 크게 어긋났습니다. 폐하께서 복귀하심과 동시에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만…….”

지난번 루시가 유폐된 루카스를 보고 왔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루카스는 왕도 안에 있었고, 반면 이번 볼카행은 거리가 아주 멀었다. 심지어 볼카에서 그녀는 설원의 권능을 크게 사용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각오했던 일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유의하도록 할게요.”

루카스의 말에 루시 또한 설원의 가호와 저주를 살폈고, 이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시가 복귀하니까 느리지만 다시 원래대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심신의 안정을 살피소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소환하소서.”

그 말을 끝으로 루카스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베네사와 하이마도 마찬가지.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모두가 침실 밖으로 떠나려 한다.

“하이마 경!”

그때,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기사단장을 루시가 불러세웠다.

“루나시르네는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된다. ……방금 찾았다.”

“……!”

예상치 못한 루시의 대답. 하이마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그녀가 갔다 온 곳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전력을 재상을 감시하는 데 투입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모두가 떠나고 고요해진 침실은 언제나처럼 루시 혼자만이 남았다.

그녀는 침대 옆에 있는 수정 구슬을 살폈다. 마검 윈테이라와 연결된 구슬. 그녀가 유일하게 바깥과 솔라를 볼 수 있는 창구.

혹시나 지금의 어긋남으로 이 마도구마저 쓰지 못할까 걱정이다.

“휴우…….”

살펴본 결과 다행히도 멀쩡하다.

루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바로 마검 윈테이라에 접속했다.

* * *

솔라시우스는 시원함을 넘어선 쌀쌀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쌀쌀함이라니. 그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로안 샬루트, 정신이 드는가?]

쌀쌀함이라는 낯설면서도 반가운 느낌과 함께 마검 루시의 목소리도 들렸다.

“루시, 괜찮은가?”

눈을 뜬 솔라는 자신의 몸을 살피기도 전에 자신의 푸른색 마검을 살폈다.

[나는 멀쩡하다, 언제나처럼.]

“그럴 리가, 내가 힘을 쓸 때마다 너의 냉기가…… 어?”

[냉기가 어쨌다는 말인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솔라는 이제야 자신의 몸과 주위를 살폈다. 또 처음 이 마검을 손에 넣었을 때와 맞먹는 푸른 냉기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뒤이어 그의 시선에 설원처럼 변한 볼카 광산 심층이 담겼고 설원의 징벌을 받아 죽은 것 같은 발록의 시체도 보였다.

설원처럼 변한 볼카 광산이라고 해도 본래에는 용암이 흐르던 곳. 루시푸르네가 사라지자 설원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수증기가 나오면서 안개를 풍기고 있다.

발록의 조각조각 난 얼음 시체도 슬슬 녹기 시작한다.

[내가 품고 있던 냉기는 전부 소모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충전되는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설원의 징벌이 반응한 것 같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던 솔라에게 루시는 나름 생각해 둔 변명을 했다.

“여긴 설원의 가호가 사실상 없는 곳인데?”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은 또 아니지.]

“혹시 발록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았나?”

[……내가 깨어났을 당시에는 이미 다 끝난 뒤였다.]

“……?”

솔라는 뭔가 미심쩍은 눈을 했다. 그의 의문 가득한 시선이 루시에게 향했다.

[…….]

루시는 애써 모른 척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반응했다.

‘차라리…… 솔라에게 사실대로 말할까?’

애써 솔라의 시선을 회피하던 그녀는 문득 마검 루시의 정체를 밝힐까 고민했다.

‘아니야……! 지금까지 마검으로 있으면서 보였던 추태를 떠올리면 이건 절대 알려선 안 돼!’

그러다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이미 정체를 밝히고 조신하게 행동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

[…….]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않은 솔라와 이를 애써 모른 척하는 루시의 대치.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끼우우웅.

그런 적막을 깬 것은 솔라의 새로운 탈것이 된 드레이크 시즈였다.

“시즈, 무사했구나.”

솔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몸에 얼굴을 들이대는 시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천천히 녀석을 쓰다듬으면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에서 2D와 일러스트로만 보던 녀석이 실체화되어 눈앞에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저 고대의 드레이크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펫이 될 것 같구나. 내 예감이 말해 주고 있다.]

루시는 솔라와 시즈를 보면서 확신하듯 말했다.

[그럼 로안, 이제 슬슬 광산을 나가도록 하자.]

그녀는 수증기로 인해 점차 습해지고 안개가 짙어지는 광산을 나가자고 독촉했다.

“그래야지. 그 전에…….”

루시의 말에 솔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꽉 쥐어진 자신의 손을 폈다.

그의 손바닥에는 두 개의 붉은색 보석이 인상적인 반지가 있었다. 바로 태양샘 반지.

[참으로 강한 열기가 담긴 반지다.]

루시는 솔라와 함께 그 반지를 보며 말했고.

“이거…… 하나가 아니었나?”

솔라는 태양샘 반지를 천천히 관찰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딸깍.

그는 조심스레 태양샘 반지의 두 붉은색 보석을 집었고 살짝 힘을 주면서 꺾었다.

화악!

그러자,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면서 태양샘 반지가 두 개로 나뉘었다.

[!!]

“……!”

태양샘 반지가 본래 두 개였다니! 이를 본 루시와 솔라는 깜짝 놀랐다.

솔라시우스는 무심코 두 개로 나뉜 태양샘 반지 중 하나를 검지에 꼈다.

[잠, 잠깐! 로안, 그 반지는 위험……!]

루시가 그런 솔라의 행동을 막을 새도 없이 말이다.

그가 검지에 반지를 끼자마자.

후우우욱!

얼청난 열기가 그의 몸과 주위를 데웠다. 태양 이능을 쓰지 않았음에도 사방에 열사의 필드가 펼쳐진 느낌이다.

꾸이이잉!

열기를 느낀 시즈가 급히 솔라와 거리를 벌리곤 멀어졌다.

“시즈, 내가 말할 때까진 가까이 오지 마!”

솔라는 그런 시즈를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외쳤다.

그리고 새로 얻은 회색 마검 제노사이드에 태양검을 펼쳤다.

화아앗!

회색 검날에 태양검이 그 어느 때보다 진하고 촘촘하게 쌓였다.

‘본래의 힘 그대로야!’

지구에서 사용하던 그의 오리지널 태양 이능이다.

‘하지만 냉기의 소모가 커.’

동시에 마검 루시의 냉기가 더 빠르게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하나만 껴도 이 정돈데? 둘까지 끼면?!’

이어서 당연한 호기심이 들었다.

태양샘 반지 하나를 끼니까 오리지널의 태양 이능을 되찾았다. 만약 두 개를 동시에 낀다면?!

‘어쩌면 태양 이능 그 이상을…….’

솔라는 마저 남은 태양샘 반지를 껴 볼까 싶었다.

[로안! 그 반지를 빼라!]

그러다가 루시의 다급한 외침에 관뒀다.

[다시 차오른 냉기가 급격히 소모되고 있다. 아무리 재충전된다고 하지만 이런 건 자주 해 봤자 좋다고 볼 수 없다.]

루시는 다급히 말했다. 변명하듯 지어낸 완전 재충전이 후회됐다. 만약 지금 그가 마검의 냉기를 다 쓴다면 그녀는 다시 여기로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설원의 저주와 가호는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날 것이다.

[엄살로 보이겠지만. 나에게 담긴 냉기는…… 가급적 아껴 써 줬으면 한다.]

“물론이야.”

솔라는 루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검지에 있던 태양샘 반지를 뺐다.

지금 당장은 태양샘 반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두 개를 낄 필요는 없었다.

솔라가 반지를 빼고 태양 이능을 거두자 눈 녹듯 소모되던 윈테이라의 냉기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직 설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광산이라서 그런지, 어지간한 바깥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다.

‘두 개라니……! 태양샘 반지가 두 개였다니!’

루시는 다시 회복되는 냉기에 안도하면서도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회귀 전에는 왜 이걸 몰랐지?’

분명 회귀 전의 그녀는 이 태양샘 반지를 손에 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게 둘로 나뉜다는 것을 몰랐다.

애초에 알았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가만. 반지가 두 개면? 내가 하나, 솔라가 하나씩 끼면 되겠네!?’

한편으론 진정한 의미의 결혼반지이자 커플링의 탄생에 여왕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어쩜 좋아! 진짜 결혼반지 같잖아? 커플링이라니!’

마검에 동기화되었음에도 루시는 너무 설레서 몸을 떨었다.

루시가 소녀처럼 속으로 꺅꺅거리는 동안.

‘나중에 마왕과 싸울 때, 그때 두 개를 끼자!’

솔라시우스는 두 개의 태양샘 반지를 자신의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으며 생각했다.

‘그렇게 마왕을 제압한 다음에, 둘 다 여왕에게 던져 주면 되겠지.’

뭐 하러 한 쌍씩 나눠 끼나?

태양샘 반지를 보는 그의 머릿속엔 결혼이니 커플링이니 같은 생각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