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60화 (60/212)

제60화

#60.

루시의 설득에 고민하던 솔라는 미간을 좁히다가 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는 세계수를 먼저 보러 갈 거야.”

[?!]

그의 입에서 나온 결론은 루시의 바람과는 정반대.

“로안, 만약 우리 때문에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된다. 세계수께서 당장 오라고 하신 것은 아니니까. 순서는 상관없어.”

솔라의 결정에 옆에 있던 로뮤가 조심스레 말한다.

“아니, 정리가 끝나면 바로 요정 숲으로 간다.”

‘여왕과의 스캔들과 별개로 세계수는 가급적 빨리 만나야 해. 원작과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해. 그리고…….’

솔라의 머릿속에 다시금 원작에서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루시, 루시를 부탁해요.

세계수 묘목을 구하던 과정에서 받았던 부탁.

참으로 아련하고 애절했던 염원.

어쩌면 그 부탁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임을 플레이하던 태광휘와 게임 속 캐릭터 솔라시우스를 끝까지 루시 곁에 있게 만든 원동력이.

‘이번엔 다를지도 몰라.’

그의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 결정이 그렇다면 나야 상관없지.”

로뮤는 솔라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도다.]

반대로 루시는 솔라의 고집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로안 샬루트! 다시 한번 권고한다. 왕궁으로 먼저 가자!]

감정이 없는 마검의 어조지만 어쩐지 삐진 느낌이다.

[마검의 예감이 말해 준다. 가능한 한 빨리 루한의 여왕을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심지어 그녀는 무리수까지 감행했다.

[세계수에게 가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일단 루한의 여왕부터 만나고 가는 거다!]

“……요정 숲부터 갈 거야.”

루시의 반복되는 말에 솔라가 슬슬 표정을 굳혔다.

[답답하구나! 여왕을 알현하고 그다음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니깐.]

여왕 또한 요정 숲에 가는 것 자체를 반대하진 않았다.

오히려 루시는 반드시 솔라를 통해 요정 숲의 세계수를 만나야 했다.

세계수를 찾아가서 회귀에 대해 물어봐야 했고, 특히 설원의 저주를 완전히 해주할 방법을 알아봐야 했다.

‘하지만 요정 숲에 바로 갈 필요는 없잖아? 왕궁에서 내가 내리는 포상도 받고 국서에 준하는 대접도 받으면서 서로 친분도 쌓고 그러면 좋잖아?’

왕궁으로 오기만 하면 진짜 잘해 줄 자신 있는데…… 회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대우를 해 주고 싶은데…….

여왕은 괜히 불안했다.

‘솔라가 요정 숲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마도 리리아 때문이겠지?’

그녀는 특히 요정 숲에 있다는 또 다른 잠재적 연적 리리아가 신경 쓰였다.

‘리리아보다 내가 먼저 솔라와 인연을 맺어야 해! 유리아 때처럼 일이 꼬일 순 없어!’

루시는 요정 숲에 유독 집착하는 솔라시우스의 모습이 불안했다.

‘수상하군.’

반대로 솔라 또한 마검 루시가 의심스러웠다.

그녀가 자신의 생명줄인 것과 별개로, 이 마검이 수상했다. 모를 수가 없지. 기억을 잃었다는 것도 분명 거짓일 터.

솔라는 늘 이를 염두에 두고서 이 푸른색 마검을 대했다.

하지만 의문을 덮어 두는 것도 정도가 있지.

특히 이번 볼카 광산에서부터 루시에 대한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가뜩이나 의심스러운데, 이번에는 여왕을 만나는 것에 유독 집착한다.

‘여왕과 무슨 관계가 있나?’

분명 뭔가 숨기고 있었다.

솔라는 이 푸른색 마검을 믿지 못하겠다. 만약 에어컨 기능이 없었다면 진즉에 버렸을 것이다.

만약 그가 국서의 검 윈테이라에 대해 알았다면 몰랐을까.

태광휘는 원작 게임에서 국서의 검에 대해 듣도 보도 못했기에 이런 의심은 더욱 가중됐다.

[로안 샬루트, 너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설원의 대마녀를 만나는 것이다!]

“…….”

계속되는 루시의 말에 마검을 바라보는 솔라의 눈빛이 서서히 변했다.

무심하고 메마른 금색 눈으로.

최근에 더 심해진 이 마검에 대한 의문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행동과 운명에 간섭하려는 루시의 행태가 솔라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루시.”

그의 입이 차갑게 열렸다.

“결정은 내가 내려.”

무덤덤하면서도 차가운 솔라의 어조.

[!!]

처음 들어 보는 그의 매정한 반응에 루시는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

솔라 옆에 있던 로뮤 또한 살짝 놀란 눈치다.

“!?”

조용히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나 또한 놀란 눈을 했다.

그녀는 마검 루시를 대하는 오라비의 모습이 조금은 충격이었는지 입을 가렸다.

“루시, 너는 나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 네가 나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과 별개로…… 나는 너를 무조건 신뢰할 수 없어.”

솔라의 금색 눈동자는 무심했고 어조는 차가웠다.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

여전히 영웅의 귀환을 환호하는 주변과 대조적이다.

쿠웅!

‘솔라가…… 나의 솔라가 화를 냈어!’

윈테이라와 동기화된 루시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아찔해서 현기증이 났다.

무서웠다. 그에게 버려질까 괜히 두려웠다. 뒤늦게 후회와 이성이 밀려왔다.

[그…… 미안하다, 로안 샬루트…….]

루시는 반쯤 울먹이며 솔라에게 사과했다. 윈테이라에 자신의 울먹이는 감정이 묻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내가, 내가 주제넘었다, 로안 샬루트. 나의 주인이여, 그대의 결정이 그렇다면 나 또한 따르겠다.]

루시는 솔라의 말에 조마조마한 감정을 느끼며 홀린듯 그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순식간에 바뀐 그의 모습이 매우 낯설어서 고집 피울 마음마저 앗아 가 버렸다.

[…….]

루시는 솔라의 반응이 무서웠고, 조금이지만 서운함마저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론…….

‘뭐지? 나 왜 이러지?!’

평소 자상하고 따스한 솔라도 매력적이지만, 이렇게 차가운 솔라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자주 저러면 슬프겠지만, 가끔 저렇게 해 준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 진짜 미친년인가?’

루시는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솔라의 차가운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루시는 그가 자신(마검)에게 품고 있는 의심을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 하지만 로안 샬루트, 그대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슬프다.]

“미안하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네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솔라시우스 본인 또한 루시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어디 마검과 그 마검의 주인이 같겠는가? 이런 부분에서는 은근히 이기적인 솔라였다.

[괜찮다. 이해는 한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은…… 나중에 반드시 때가 되면 맹세코 말하겠다. 아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나 실은 여왕임, 못 믿겠으면 문라이트 후작에게 물어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안 돼! 못 해도…… 그의 동생 루나시르네와 좋은 관계를 구축한 후에 밝혀야 해!’

지금까지 해 놓은 이미지 때문에 감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 여왕인 내가 마검인 척 연기한 걸 밝히려면…… 으으.’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다. 여왕인 걸 숨기고 지금까지 보였던 언행들.

솔라의 알몸을 본 것도 그렇고 옆에서 루나와 투닥거렸던 것도 문제다.

틈날 때마다 ‘나의 주인 로안 샬루트여’라고 말했던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루시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냥 처음부터 밝힐걸 그랬어!’

괜히 목부터 얼굴, 귀 끝까지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로안 그대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한다. 나는 그대에게 해가 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루시는 진심을 담아 솔라에게 말했다.

“그래.”

솔라는 무심한 눈을 유지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웠던 그의 어조가 살짝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나는…… 이만 잠들겠다. 무리를 했더니 피곤하구나.]

대충 상황이 매듭된 것 같자, 루시는 윈테이라와의 동기화를 풀기로 했다.

심적으로 너무 피로했기 때문이다.

* * *

다음 날, 솔라와 루나 그리고 로뮤는 조용히 떠날 채비를 마쳤다.

문라이트 후작에게는 전날 얘기를 마친 상태.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의외로 순순히 허락했다.

왕궁에도 요정 숲에 들렀다 가겠다는 식으로 마법 통신을 보냈는데, 의외로 승낙이 떨어졌다. 그것도 바로 말이다. 덕분에 이렇게 다음 날이 되자마자 떠날 수 있었다.

볼카는 물론, 볼카까지 오면서 솔라가 변경백에 기여한 업적은 엄청났다.

금전이든 명예든 뭐든 보상을 줘야 마땅했는데, 변경백의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솔라는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영지와 작위를 받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여왕이 영지와 작위를 주기로 했기 때문에 여기서 후작이 끼어들면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문라이트 후작은 이를 미안하게 느낀 모양인지 솔라에게 마패처럼 생긴 신원패를 하나 줬다.

조그마한 마석이 박힌 신원패로 대대로 변경백의 전권 특사를 상징하는 신분증이었다.

적어도 변경백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데, 징집과 징발은 당연히 가능했고 영주를 대신하여 재판도 열 수 있었다. 재판을 열게 되면 백작급 이하 귀족까지 처벌할 수 있었다.

‘돈 대신 권력을 주겠다는 건가?’

적어도 마을이나 도시에 밤늦게 도착해도 노숙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유리아가 유독 안 보이는군’

한편 마지막까지 모습을 안 보이는 유리아가 살짝 신경 쓰였다.

루나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싸우기라도 했는지 루나 또한 유리아를 굳이 찾거나 하진 않았다.

‘차라리 잘됐어.’

어찌 되었든 솔라에겐 잘된 상황. 만약 루나가 유리아를 요정 숲 여행길에 데려가려 했다면 난감했을 것이다.

시원섭섭한 기분으로 솔라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볼카 요새를 둘러보았다. 반파된 요새는 적막함이 가득했다.

그는 문득 허리춤의 푸른색 마검을 살폈다. 어제의 일 이후로 루시는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준비 다 됐어!”

성채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데, 루나가 로뮤와 함께 나타났다.

루나는 빗자루를 타고 있었고, 로뮤는 전에 솔라가 타던 검은색 말 맨카를 타기로 했다.

솔라의 뒤에는 붉은색 드레이크 시즈가 조용히 서 있었는데, 특수 제작된 드레이크 전용 안장과 등자, 고삐가 인상적이다.

볼카의 모든 대장장이와 무두장이 그리고 엘프들까지 가세해 하루 만에 만든 것이었다.

일행의 짐은 없다시피 했다. 각자가 소유한 아공간 인벤토리에 보관했기 때문이다.

“볼카 요새에 남은 엘프들은 어떻게 할 거지?”

솔라는 루나와 함께 나타난 로뮤에게 물었다.

“그들은 이곳에 남아서 루한과 요정 숲의 교류를 이어 갈 것이다. 돌아가는 것은 나와 너 그리고 리나뿐이야.”

“공간 이동으로 가나?”

“아쉽게도 힘들어. 요정 숲에는 세계수의 결계가 있기 때문에 누구도 공간 이동을 할 수 없어.”

“요정 숲이 아니라 인근에서 하면 되지 않나? 세계수의 결계 밖에서 말이야.”

“세계수의 결계 밖이면 설원의 가호가 있는 곳이겠군. 설원의 가호 내에서의 공간 이동은 우리 엘리멘탈리스트라고 해도 위험 부담이 커. 여기 볼카는 설원의 가호가 가장 옅어서 가능했던 것이고, 이마저도 내 누이 리리아가 크게 무리를 했었지.”

“뭘 해도 안 된다는 거군.”

“여정이 쉽다면 그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네, 형제여.”

“……어서 가지.”

로뮤의 대답에 솔라는 아쉽다는 듯 인상을 썼다가 바로 폈다.

일행은 서두르기로 했다. 해가 완전히 뜨고 괜히 보는 시선이 많아져 봤자 좋을 게 없다.

그렇게 막 요새를 나서려는데.

“저…… 로안 기사님, 혹시 어디로 가십니까?”

볼카 요새 후문 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한 나이 든 병사가 후문으로 향하던 솔라 일행을 발견하곤 조심히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기사님. 제가 주제넘게 괜한 말을 올렸습니다요.”

늙은 병사는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곤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다.”

요새 안에서의 그의 위치라면 굳이 대답해 줄 필요는 없지만, 솔라는 그렇게까지 매정히 굴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후문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는 병사의 물음에 최대한 축약해서 답해 줬다.

완전히 떠난다는 얘기를 하면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짐이 인벤토리에 있었기에 이들의 모습은 나들이 가는 귀족 일행처럼 보였다.

“그, 그러시군요.”

솔라의 대답에 나이 든 병사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저…… 그런데…… 기사님…….”

하지만 늙은 병사는 고개를 숙이면 숙였지 물러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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