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64.
솔라 일행의 모습은 결코 평범치 않다.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와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 그리고 흑발의 엘프까지.
애초에 붉은색 드레이크 시즈 하나만으로도 멀리서도 시선 집중이다.
하지만 솔라 일행은 지금까지 커다란 인파를 맞이하진 않았다.
바로 루나가 만든 인지 왜곡 마도구 때문이다.
볼카 요새에서 루나가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정신계 마도구였는데, 시즈에게 이 마도구를 안장과 고삐에 박아 놨다.
그랬기에 이렇게 특이하고 거대한 탈것이 길을 돌아다님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쏠리지 않았다. 평범한 이들에겐 시즈가 그저 덩치 큰 적갈색 말 정도로 인지될 터.
빗자루를 타는 마녀 루나도 시선을 끌었는데, 이건 다른 의미로 상관없었다.
마녀는 드물긴 해도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대다수 사람들은 마녀를 무서워하면서 피한다.
로뮤와 솔라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다니는 편이었고 말이다.
따라서 상단을 구해 줄 때처럼 솔라가 후드를 벗고 직접 가까이 서지 않으면 시선이 집중될 일은 없었다.
해가 질 무렵, 일행은 나베트 마을에 도착했다.
나베트 마을 한복판에 있음에도 일행은 시선을 크게 끌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빗자루 타고 돌아다니는 루나 덕분에 외면에 가까운 반응이다.
“여기도 못 본 사이에 많이 회복됐네?”
“우리가 간 이후로 추가로 침략을 받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야.”
덕분에 그들은 편하게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다.
“오라버니야 후드를 썼다고 해도, 나는 알아볼 줄 알았는데 아니네?”
“추워졌다고 마녀복을 바꿔 입었잖아. 얼굴도 모자로 가렸고.”
솔라는 루나가 만든 인지 왜곡 마도구(엘프들이 도와주긴 했지만)의 유용성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원작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천왕 중에 파괴왕 가오이가 있었지. 그 녀석도 루나처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요정 숲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 나열된다. 대부분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어쩌면 나비효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틀어졌을지도 모른다.
“로뮤, 요즘 요정 숲은 어때? 특히 동부 대초원 쪽 말이야.”
“음? 내가 수인족에 대해 말했던가?”
솔라가 콕 찍어서 묻자, 로뮤가 신기하단 반응을 보였다.
“인간들은 소문이 아주 빨리 퍼지거든.”
솔라는 씨익 웃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나중에 요정 숲에 가까워졌을 때 얘기하려 했는데 말이야.”
로뮤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볼카로 떠날 때쯤에 동부 대초원에서 소란이 있었어. 듣기론 수인족 중 몇몇 부족이 제국과 손을 잡았다고 하더군.”
“그 외에는?”
“제국과 맞닿은 숲 남쪽 경계에 제국에서 도망친 인간들이 하나둘씩 정착 중이었지.”
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그가 알고 있던 원작의 상황이다.
‘결국엔 수인족 전체가 제국에게 흡수되지. 사자족장 가오이가 사천왕 중 하나인 파괴왕이 되어 요정 숲을 공격하고.’
원작에선 게임 속 캐릭터 솔라시우스가 이를 막는다. 여왕이 내린 두 번째 시련이 요정 숲에서 세계수 묘목을 구해 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정 숲과 솔라시우스의 사이가 아주 좋아졌다.
훗날 루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엘프가 파병을 와 줄 정도로 말이다.
평판과는 별개로 세계수의 호감도도 올랐었다. 그리하여 세계수의 묘목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지금이라면 수인족도 완전히 제국에 굴복하지 않았으니까.’
생각에 잠겼던 솔라는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쩌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빗자루를 타고 있는 검은 마녀 루나시르네가 있었다.
“왜? 뭔데?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솔라가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루나는 괜히 발끈하며 외쳤다.
‘어쩌면 네 번째 사천왕 가오이도 얻을 수 있겠어.’
솔라는 괜히 찝찝해 하는 루나를 무시하곤 마저 걸음을 옮겼다.
이 블록만 넘어가면 쥴리아를 맡겼던 신전이 보일 것이다.
* * *
황당함이란 감정으로 이 상황을 표현하기엔 부족할 것 같다.
멀리 신전이 보일 때부터 이상했던 것이 점점 신전과 가까워질수록 황당함으로 변했다.
솔라 일행이 마주한 신전은 기억 속의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히 무너지고 불타 없어진 폐허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루나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폐허가 된 신전을 살폈다.
“외적의 침입은 아닐 거야.”
그러기엔 나베트 마을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평화로웠다.
“마을 사람들이 저지른 짓일까?”
“말이 안 돼. 아무리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신전을 태울 정도로 미치진 않았어.”
이 세계에서 종교가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단체로 악마에게 홀리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벌이진 않는다.
“누구십니까?”
그때, 뒤에서 한 마을 사람이 솔라 일행을 향해 조심히 말을 걸었다.
중년 남성이었는데 폐허가 된 신전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나 보다.
마녀를 눈앞에 두고도 말을 걸다니 용기 하나는 대단해 보였다.
“말 좀 묻겠다.”
마을 주민을 향해 솔라는 차갑게 물었다.
깊게 후드를 눌러쓴 건장한 남성 둘과 괜히 소름이 돋는 마녀의 차가운 시선.
중년 남성은 어깨를 떨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솔라는 폐허가 된 신전을 가리켰다.
“아아, 신전 말이군요.”
마을 주민은 안타까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얼굴을 보였다.
“전부 그 저주받은 마야나 때문입니다.”
“저주받은 마야나?”
남자의 대답에 솔라와 루나는 바로 쥴리아를 떠올렸다.
마야나는 이 세계 평민들의 은어였다. 저주받은 존재를 부를 때 쓰는 멸칭.
“그렇습니다! 죽음과 화마를 몰고 다니는 아이지요. 아주 강력한 악마가 깃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아이 이름이 쥴리아야?!”
이번엔 루나가 끼어들어 물었다.
“네! 쥴리아라고도 불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광휘의 기사께서 지어 준 이름일 겁니다. 나베트의 성자께서 직접 이름까지 지어 주고 축복까지 내렸지만 결국에는 악마가 되었지요.”
마을 주민이 끔찍하고 두렵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저었다.
솔라는 시선을 루나에게로 향했다.
“아니야. 쥴리아에게선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어.”
루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어딨지?”
솔라는 주민에게 쥴리아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직접 쥴리아를 확인해 봐야 알 것 같았다.
마을이 많이 복구되었다고 해도 완전히 복구된 것은 아니었다.
마을 외곽에는 여전히 폐가가 남아 있었다. 대부분 그 집에 살았던 일가족 전체가 몰살당해 수리할 이유를 잃은 집들이었다.
그 폐가 중 제일 멀쩡해 보이는 집 안.
한 여자아이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신전에서 받았던 새 옷은 그간의 노숙으로 넝마가 되어 있었고, 잠깐 동안 올랐던 살은 다시 빠져 말라 있었다. 붉은 비단 같던 적발은 떡 지고 흙먼지투성이라 걸레로도 못 쓸 것 같았다.
추워 죽을 것 같을 때마다 생성되는 화염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얼어 죽었을 것이다.
혹여나 이 마을을 다시 찾을 광휘의 기사를 염려하여, 몇몇 주민이 어쩌다 건넨 감자나 빵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아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한계에 부딪혔다.
아이의 짙은 금색 눈동자에는 서서히 죽음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
한때 마야나라고 불렸던 아이. 뒤늦게 쥴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아이는 죽어 가고 있었다.
화르르릇.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확인했는지 갑자기 쥴리아 앞에 화염이 발화되었다.
사그라지는 쥴리아의 생명력을 증명하듯 눈앞의 화염은 가족과 친척네 집을 불태웠을 때보다, 신전을 불태울 때보다 약했다.
“왜…….”
아이의 마른 눈에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쥴리아의 삶은 시작부터 불행했다. 당장 그녀의 엄마가 쥴리아를 낳다가 죽었다.
아버지는 어미를 잡아먹고 나온 자식이라면서 쥴리아를 방치했다.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다.
그런 쥴리아를 안타깝게 여긴 언니 오빠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젖동냥으로 어떻게든 키웠다.
쥴리아가 죽지 않고 크자, 아버지의 폭력이 이 작고 어린 아이에게 가해졌다.
본래에도 폭력적이었던 아비는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쥴리아를 더욱 학대했다.
학대는 나날이 심해졌고 아이의 몸은 갈수록 멍들고 야위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쥴리아의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심하게 쥴리아를 때렸다.
“X발년! 넌 내 자식이 아니야!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년! 죽어! 그냥 죽으라고!!”
쥴리아는 그때 처음으로 이대로 가다간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죽음을 직감한 순간!
화르르릇!!
갑자기 쥴리아 앞에서 화염이 발화되었고.
“아아아악!!”
자신을 때리던 아버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거대한 화염은 어린 소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아버지뿐만 아니라 구석에서 벌벌 떨며 폭력을 보고 있던 오빠들과 언니들도 태웠다.
그 화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쥴리아가 유일했다.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 이유 모를 화재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아이.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쥴리아를 ‘마야나’라고 부르면서 경원시했다.
“흐흐흐흐, 마야나라고? 나는 그딴 미신 따윈 믿지 않아. 얘야, 내가 너를 키워 주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네 아비처럼 때리거나 하진 않을 거야. 이름은…… 나중에 성인이 되면 지어 주마.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다, 크히히히!”
고아가 된 쥴리아를 아버지의 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거뒀다.
그리고 얼마 뒤, 쥴리아를 거둔 친척의 집 또한 불탔다.
큰아버지라는 작자는 쥴리아를 향해 몹쓸 짓을 벌이려 했고, 위기를 느낀 쥴리아의 ‘화염’이 나선 것이다.
그때부터 쥴리아는 이 나베트 마을의 정식 ‘마야나’가 되었다.
마야나를 만지거나 죽이면 저주받는다는 미신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쥴리아를 없는 존재로 치부했다.
아이는 집도 없이 마을 곳곳을 쏘다니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녀의 친구는 외로움과 배고품 그리고 추위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다. 그저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한 마리의 길고양이가 되어야 했다.
그랬던 아이의 운명은 어느 순간 바뀌었다.
“로안…… 로안 기사님…… 광휘의 기사…….”
쥴리아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금발 금안의 남자. 눈부시고 따듯했던 기사님.
이름은 그 당시에는 몰랐고, 훗날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던 자신을 눈에 담아 줬고, 누구도 만지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품에 안아 줬다.
그리고 음식을 줬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배부르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이름도 지어 줬다. 마야나가 아닌 쥴리아라는 예쁜 이름을.
늘 일렁거리던 쥴리아의 ‘화염’도 그 기사님 앞에서는 반딧불처럼 작고 얌전해졌다.
기사님은 자신을 신전에 맡겼다. 그분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신전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할머니 사제님은 매우 자상하고 좋은 분이었다. 그녀는 쥴리아를 손녀 돌보듯 돌봐줬다.
그때가 쥴리아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때였다.
하지만 자신을 손녀처럼 돌봐주던 할머니 사제는 쥴리아를 맡은 지 얼마 안 가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마야나! 마야나의 저주야!”
노환으로 죽은 것이지만 선입견이란 무서운 법.
심지어 무지몽매한 마을 주민도 아닌 신전의 사제들이 쥴리아를 꺼리기 시작했다.
“형제님! 저 마야나를 신전에 계속 둘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설마 마야나 같은 미신을 믿는 겁니까?”
“그 뜻이 아닌 걸 잘 아시잖아요?”
“으음, 하지만…… 광휘의 기사가 거둔 아입니다.”
“그분이 저 아이를 기억이나 할까요? 그리고 원래 아이들은 쉽게 죽지요.”
“맙소사! 혹여 광휘의 기사가 저 아이를 보러 오면 어쩌려고요?”
“여기는 신전입니다. 우리만 입을 닫으면 됩니다. 저 불길한 아이를 처리하면 로안 경이 기증한 금화는 우리 것이 됩니다.”
사제들의 마야나는 핑계에 불과했다.
솔라가 쥴리아를 맡기면서 신전에 기부한 금화는 쥴리아를 맡은 할머니 사제가 관리했고, 오직 쥴리아를 위해서만 쓰기로 교단과 계약을 맺어 놨다.
신성의 맹세를 한 것이기에 함부로 이를 어길 수도 없었고 신전의 하급 사제들은 이를 불만스러워했다.
하지만 쥴리아를 돌보던 노파 성직자는 노환으로 죽었고 계약상으론 쥴리아만 죽으면 그 금화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죽은 노파는 신전의 사제들이 돈 때문에 어린아이까지 죽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계약을 굉장히 허술하게 작성했었다.
“오늘 밤! 자고 있을 때 처리하지요.”
“좋습니다.”
결국. 금화에 눈이 먼 사제들은 움직였고, 그날 밤 신전이 불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