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71화 (71/212)

제71화

#71.

리리아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솔라시우스의 금색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그리고 그쪽도 반가워요.”

이어서 리리아의 시선이 솔라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

리리아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아는 척하자, 루시는 마음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리리아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 갑작스러운 전개.

‘진정해, 루시! 쫄 것 없어! 어차피 다 같은 여왕이야!’

그녀는 급히 침착함을 되찾으려 했다.

‘나는 루한의 여왕이자 설원의 대마녀다! 귀쟁이 여왕 따위에게 질 수 없도다! 비록 저쪽은 내가 여왕인지 모를 테지만!’

속으로 각오도 다졌다.

이건 루한과 요정 숲 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다.

“귀하신 분이 이렇게 직접 오시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만찬이라도 준비하라 했을 텐데요. 마검에 계셔서 맛은 못 느끼겠지만 눈과 귀로 즐길 수 있는 것도 많답니다?”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리아는 특유의 묘한 미소로 루시를 대했다.

[!!]

‘내…… 내가 여왕인 걸 알고 있는 건가?!’

다짐한 각오가 무색하게 루시푸르네는 곧바로 멘붕에 빠졌다.

[그건…… 그러니까!]

여왕 대 여왕의 대립은 처음부터 승패의 추가 기울어져 버렸다.

‘어떡하지? 여기서 솔라가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루시는 패닉에 빠졌다. 애초에 자신과 급이 맞는 존재(그것도 연적)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던 그녀다.

“아~? 아직 로안은 모르나 보죠?”

루시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리리아는 다시 한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저도 입 다물고 있을게요.”

[그…… 고, 고맙소!]

루시는 얼떨결에 리리아에게 감사를 표했고.

‘뭔가 자존심이 상해!’

첫 만남부터 이상하게 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리리아와 마검 루시 사이에 낀 솔라는 미간을 구겼다. 그리고 엘프 여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만?”

리리아가 자신의 마검 루시에 대해 아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랜만이라는 알 수 없는 말도.

“내가 우리 로안을 배려하지 못했구나? 미안!”

리리아가 미간을 구긴 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 로안?!]

‘리리아의 말투가 저랬던가?’

솔라와 루시는 제각각의 이유로 다시 한번 표정을 굳혔다.

“으음~ 뭐부터 말해야 될까?”

엘프 여왕은 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일단~ 나는 세계수로부터 계시를 받았어. 편지에 적은 것처럼.”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겁니까?”

“단순히 알고 있는 걸 넘어서…… 멸망한 세계선의 기억이 세계수에게 덮어쓰기 되었어.”

리리아의 에메랄드 눈동자가 잠깐이지만 흔들렸다.

“그래서 지금 내 머릿속은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야. 막…… 기억이 뒤죽박죽이거든. 지금 이렇게 삽질하고 있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하는 발버둥이고.”

“그렇군요.”

‘오랜만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였나?’

솔라는 기억과 다른 리리아의 태도가 이제야 납득됐다.

“그럼 마검 루시에 대해서는?”

“아! 미안, 이건 말할 수 없어. 지금 말하면 재미없을 거 같구~.”

“…….”

리리아가 대답을 거절하자, 솔라는 자신의 허리춤을 보았다.

[…….]

푸른색 마검은 말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

솔라는 마검 루시를 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막 든 것은 아니다. 전부터 조금씩 추측성으로 들었던 생각. 그랬던 가정이 어째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솔라는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휴우.]

허리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그럼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응응! 뭐든지!”

“저에 대해서 아십니까?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지구에서 온 태광휘에 대해 아십니까?”

“태광휘를 여기로 부른 것은 세계수가 한 게 아니야.”

“그건 압니다. 마왕 세피로스가 저주를 내렸지요.”

[……?]

‘태광휘? 지구?’

리리아와 솔라의 대화에 이번엔 루시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태광휘랑 솔라시우스는 무슨 관계입니까?”

루시가 궁금해 하든 말든 솔라는 질문을 이었다.

“평행 우주, 멀티버스에 대해선 알고 있지? 지구에선 그렇게 표현하던데?”

“예, 대략적으로나마.”

마블 영화가 흥행한 덕분에 어지간한 대중들도 평행 우주나 멀티버스의 개념 정도는 알았다. 이는 태광휘도 마찬가지.

“그거랑 비슷해.”

“솔라시우스가 다른 차원의 태광휘라는 겁니까?”

“반대일 수도 있지.”

“!?”

“정확히는 둘 다 맞아. 마왕 세피로스는 지구의 태광휘를 이 세계의 솔라시우스와 합쳤어. 네가 지금 앓고 있는 저주는 그 부작용이야.”

리리아는 말을 하다가 마지막엔 살짝 힘을 주었다.

“즉, 여긴 게임 속 세계 같은 게 아니야, 태광휘.”

평소 알게 모르게 이 세계를 게임 속 세계로 치부하던 태광휘는 속으로 살짝 뜨끔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세계지요?”

“왜냐하면 우주마다 전부 또 다른 내가 있는 게 아니거든. 또 다른 내가 있는 우주는 그렇게 많지 않아.”

리리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쓱 하고 휘둘렀다.

그러자 얕은 연못 위로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생겼다. 테이블 위에는 막 끓인 것 같은 차와 과자가 놓였다.

“앉아.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니.”

어느덧 리리아의 옷도 바뀌었다. 활동하기 편한 튜닉은 온데간데없고 순백의 가벼운 드레스를 입었다. 머리에는 황금색 월계관을 썼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에는 푸른 나뭇잎으로 만든 팔찌가 보였다.

[저 팔찌는……!]

리리아의 손목에 있는 팔찌를 본 루시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소중히 차고 있는 팔찌와 아주 똑같은 팔찌가 저기 있다.

* * *

로뮤 엘펜리트는 에메랄드빛이 넘실거리는 호수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호수를 눈에 담은 그의 머릿속에는 환청 같은 옛 기억이 흘렀다.

“흑발 적안의 엘프라니. 에이션트 엘프가 오랜만에 태어났군. 하이엘프에서 에이션트가 태어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가?”

“아깝군. 하필이면 하이엘프에서 이런 영혼이 나오다니.”

“하이엘프면 더더욱 위험합니다. 요정 숲에 오래 두면 불화를 끼칠 겁니다. 그녀 때처럼요.”

“대대로 요정 숲에 크고 작은 혼란을 일으킨 이 영혼을 어찌할꼬?”

“차라리 서약 엘프로 활용하지요? 요즘 들어 제국으로 파견 간 형제들 중에 단명종의 시간선에 오염된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어릴 적부터 커 오면서 들었던 말이었다.

만약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흑발 적안은 영혼과 마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엘프 사이에선 저주에 가까웠다.

“로뮤, 누가 뭐라 해도 난 너를 믿어. 너의 영혼과 마나는 속성이 다를 뿐이야. 절대 사악하거나 혼란을 품고 있지 않아!”

오직 그의 하나뿐인 누이 리리아만이 로뮤의 편이었다.

리리아와 로뮤를 비롯한 극소수의 하이엘프에겐 부모가 없었다.

일반 엘프와 달리 세계수의 열매 속에서 가끔 태어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뮤는 어릴 적부터 리리아에게 많이 의지했다. 리리아도 그런 로뮤를 많이 챙겨 줬다.

만약 리리아가 없었다면 로뮤는 진즉에 귀를 자르고 요정 숲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해가 지면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로뮤는 성인이 되자마자 ‘서약 엘프’가 되었다.

서약 엘프. 인간과 요정이 맺은 언약이자 맹세를 행하는 자.

하이엘프 아낙시아가 요정 숲을 대표하고 세계수를 대신하여 맺은 언약에 따라, 엘프들은 제국 황족과 교류를 이어 가야만 했다.

50년 주기로, 요정들 중 가장 강인한 정신을 가진 엘프가 교대로 서약을 행했다.

하지만 단명종이 발산하는 강렬한 감정과 에너지는 알게 모르게 장수종의 시간선을 오염시켰다.

그렇게 모두가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절묘하게 흑발 적안의 엘프가 태어났고 로뮤는 100살이 되자마자 바로 서약 엘프가 되어야 했다.

“허업?! 하이엘프라니! 전설적인 존재가 직접 오셨군요! 요정 숲의 정성에 어찌 보답해야 할지…….”

“100살이라고요?! 굉장히 젊은 분께서 오셨군요.”

“비단처럼 고운 흑발에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욱 특색 있어서 뇌리에 남는군요! 서약만 아니면 화가를 시켜 초상화를 그리고 싶은데…….”

제국 황족들은 서약 엘프로 온 로뮤를 신기해 하면서도 환대했다.

로뮤는 오히려 요정의 숲보다 인간세계가 더 마음이 편했다.

한편, 요정 숲에서는 로뮤 이후로 점차 서약 엘프의 수를 줄였다.

“로뮤 님은 요정 숲으로 안 가십니까? 아, 싫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저 100년 가까이 남아 계시는 요정은 로뮤 님이 처음이라.”

일반적인 엘프였다면 교대했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로뮤는 요정 숲으로 가지 않았다.

요정 숲에서도 로뮤를 원치 않았고 로뮤도 고향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로뮤는 제국에서의 삶이 마음에 들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스승님은 늘 그대로군요. 저는 이렇게나 늙었는데.”

“감사했습니다, 로뮤 엘펜리트. 당신 덕분에…….”

“엘프의 장수는 어떻게 보면 비극적인 것 같습니다. 먼저 가게 돼서 미안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너무도 짧았고, 눈앞에서 어릴 적부터 가르쳐 온 제자와 인연들이 나이를 먹고 죽는 것을 보았을 때 로뮤는 왜 엘프 장로들이 단명종과의 교류를 극도로 경계하는지 깨달았다.

그때 이후로 로뮤는 점차 인간들과의 교류를 줄이기 시작했다.

요정의 숲으로도 종종 돌아가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엘프들은 여전히 로뮤를 꺼렸지만 그의 누이 리리아만큼은 언제나처럼 그를 진심으로 대해 줬다.

로뮤는 요정 숲에서 10년 정도 쉬면 다시금 제국으로 떠났다.

그래도 이전처럼 활발히 인간들과 교류를 나누진 않았다.

그저 최소한의 접촉과 최소한의 교류만 할 뿐.

그렇게 서서히 인간들 사이에서 로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때쯤.

“처, 처음 뵙겠습니다! 텔미노아 폰 유프라네스라고 합니다……!”

로뮤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금발 금안이라는 황족의 특색이 명확한 소녀.

“황족이긴 합니다만, 아주 먼 방계라서……. 그…… 정령사의 자질이 있다고 해서…… 그러니까…….”

유독 자신감과 자존감이 결여된 아이가 불안한 눈동자로 로뮤를 찾아왔다.

훗날 제국의 1황후가 될 여인 텔미노아와 로뮤는 그렇게 만났다.

로뮤의 붉은색 눈동자에 초점이 생겼다.

키에에엥?

푸르릉.

시즈와 맨카의 울음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그래…….”

로뮤는 쓰게 웃으면서 맨카와 시즈의 갈퀴를 쓰다듬어 줬다.

“여기 있기는 지루할 거다. 가자, 저쪽에 너희가 뛰어놀 만한 곳이 있으니까. 배도 채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둘의 고삐를 쥐고서 걸음을 옮겼다.

로뮤는 맨카와 시즈를 요정 숲의 공터에 풀어 놨다.

그곳에는 다른 영물들도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수목 도시의 엘프들의 탈것이자 친구기도 했다.

결계를 펼쳐 놓았기 때문에 안전하고 쾌적하기도 하다.

그는 둘을 이곳에 두고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세계수가 모셔진 에메랄드 호수에 도착했지만 아직 세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좀 걸리나 보군.’

평소라면 기다렸을 것이다. 아무리 단명종의 시간에 익숙해진 그라도 본판은 장수종.

한 자리에서 이틀 정도 기다리는 것 정도는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텔미노아에게 인사나 하러 갈까?’

간만에 애틋했던 회상을 해서 그럴까? 로뮤는 괜히 가슴이 심란했고, 이윽고 도시 외곽의 묘지를 향해 걸었다.

요정들의 묘지는 엘프들답게 수목장을 했기에 묘지보다는 숲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숲에서 유독 튀는 모양의 비석이 보였다.

인간들의 풍습으로 보이는 묘였다.

묘의 비석에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대륙 공용어로 1황후 텔미노아 폰 유프라네스의 이름과 생몰일이 새겨져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로뮤는 텔미노아의 무덤 앞에 서서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 다행히도 솔라시우스가 루나시르네를 찾았어. 너를 닮아서 그런지 밝고 예쁘게 자랐더군.”

그의 붉은 눈동자에 아련함과 애틋함이 서렸다.

“그러니까…… 이젠 안심해도 돼. 로안, 아니, 솔라는 이제 나보다 더 강하거든. 조만간 악황후와 악황제를 죽이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거야.”

처음에는 어색했던 그의 얼굴이 어느덧 슬프게 일그러졌다.

-스승님…… 사실 저는 스승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안하구나.

-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다. 빨리 못 와 준 내가 미안하지.

-부디, 제 아들을…… 솔라시우스를 부디……!

-걱정 마라. 최선을 다해 가르칠 테니.

무덤 앞에 서니, 죽은 제자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루나, 루나도 찾아야 하는데……. 분명 죽지 않았어요! 이 로사리오가 빛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래, 일단 회복부터 하고 찾도록 하자.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미안해요. 저는 스승님, 로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노아?! 텔미노아! 정신 차려! 잠들면 안 돼!

-부탁해요……. 제 아이들을…… 부디…….

-노아!!

텔미노아는 요정 숲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숨을 거뒀다.

너무나 많은 미련에 눈조차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여인.

그 감지 못한 얼굴이 아직도 로뮤의 뇌리에 생생하다.

욱신!

그는 마음의 통증을 느끼며 무덤 앞에 고개를 숙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