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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72화 (72/212)

제72화

#72.

차와 다과까지 마련되자, 리리아와 솔라의 대화는 더욱 깊고 길게 이어졌다.

‘저 팔찌, 도대체 뭐야? 내 것과 똑같은 팔찌를 왜 리리아가 가지고 있는 거지?’

루시는 리리아의 손목을 노려보았다. 옆에선 솔라와 리리아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지구에서 했던 게임 속 세계가 실제로 멸망한 세계선이라는 겁니까?”

“맞아, 마왕의 아바타가 유희를 즐기던 무수한 차원 중 하나지.”

“그럼 제가 플레이했던 솔라시우스는?”

“둘은 같은 존재야. 마왕이 마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조종한 것처럼. 지구의 태광휘와 게임 속 솔라시우스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보면 돼.”

[……?!]

둘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리리아의 팔찌에 집중된 루시의 신경은 전혀 예상치 못한 쪽으로 향해야만 했다.

‘무슨 소리지? 지금의 솔라가 다른 사람이라는 거야?’

마검에 동기화 중인 루시는 리리아와 솔라가 나누는 알 수 없는 대화에 혼란스러워했다.

‘솔라도 게임이라는 걸로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다고? 회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차라리 솔라시우스가 자신과 함께 회귀한 것이었다면 이런 패닉에는 빠지지 않았을 텐데.

‘마검 루시가 내 정체에 대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편, 리리아와 대화를 나누던 솔라도 슬쩍 허리춤의 루시를 살폈다. 그는 일단 루시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의 추측이 맞다면 오히려 이게 더 속 편할 수도 있다.

‘리리아와 세계수는 이 또한 염두에 둔 건가?’

솔라는 눈앞의 리리아를 살폈다. 그녀 뒤에 있는 황금색 나무 세계수도.

“저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방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루시가 멘붕에 처하든 말든, 솔라와 리리아의 대화는 이어졌다.

“일단 마왕을 없애도록 해. 로……태광휘, 네가 원하는 것은 마왕을 없애야만 해결 가능하니까.”

리리아는 차를 마시면서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지구로 돌아가려면 마왕을 없애야 한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료해서 좋다.

“마왕을 없애면, 솔라시우스와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애초에 태광휘가 솔라시우스고 솔라시우스가 태광휘였어. 이미 하나가 된 이상 앞으로도 하나여야 해. 즉, 분리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거야.”

“……그렇군요.”

그럴 거 같긴 했다. 솔라시우스의 기억과 습관은 이제 태광휘를 구성하는 것들 중 당연한 일부가 되었다.

오히려 이제 와 갈라진다면 그게 더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루시푸르네의 설원의 저주는 풀 수 있는 겁니까? 태양샘 반지를 구하긴 했는데.”

그렇게 말을 주고받던 중, 이번엔 대화의 주제가 루시에 대한 것으로 흘렀다.

[?!]

솔라의 입에서 자신이 거론되자 멘붕에 빠졌던 루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능할 거야. 아마 지금 당장도 가능할걸? 세계수 묘목도 필요 없을지도 몰라.”

[!!]

리리아의 말에 루시는 그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뛸 뻔했다.

‘나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설원의 저주를 풀 수 있다고?!’

오늘도 머리를 싸매면서 이노센티아의 술식을 연구했던 그녀다. 동기화에 임하기 전까지 말이다.

‘역시 태양샘 반지가 답이었구나! 재상만 아니었으면! 그때 솔라를 믿고 바로 손에 꼈어야 했는데!’

이노센티아에 부었던 노력이 허사가 된 거 같아서 허탈했지만, 그보단 기쁨과 설렘이 더 컸다. 더불어 회귀 전의 후회가 살짝 밀려왔다.

“그렇군요.”

리리아의 말에 솔라는 담담한 눈을 할 뿐이다. 추측성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맞는다고 확답을 받았다. 눈은 담담했지만 그의 속은 개운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태양샘 반지만으로 해주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으음…… 내 입으로 말해 주기가 좀 그런데.”

리리아는 입을 살짝 삐쭉 내밀었다.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원하는 거야 있지. 하지만…….”

솔라의 물음에 리리아는 눈을 흘겼다.

“아니야. 이건 나중에 너희가 정 눈치를 못 챘을 때 말해 줄게.”

“너희…… 라니요?”

“아아!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엘프 여왕은 손으로 입을 가리곤 작게 웃었다. 그녀의 시선이 찰나였지만 푸른색 마검을 쓸었다.

“그냥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리리아가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자, 솔라가 미간을 좁혔다.

[설원의 저주는 아주 중요하오, 리리아! 장난을 칠 사안이 아니오!]

루시 또한 참지 못하곤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로안, 너는 안 궁금해?”

하지만 리리아는 말해 줄 생각이 없는지 괜히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무얼 말입니까?”

“저주는 너도 걸렸잖아? 별의 저주.”

[……!]

리리아가 대화의 주제를 솔라의 저주로 돌리자, 설원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루시의 기분이 급히 진정됐다.

“이 저주를 별의 저주라 부르는군요.”

“맞아. 별은 태양을 뜻하잖아? 태양처럼 스스로를 불태우다 소멸하라는 원념이 담긴 저주야. 참으로 고약한 마왕의 저주지.”

“괜찮습니다. 이것도 마왕을 없애면 해결되겠지요. 저에겐 루시푸르네의 저주를 푸는 게 더 중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솔라의 대답에 리리아가 특유의 묘한 눈을 했다.

‘역시 솔라야! 자신의 저주보다 나의 안위를 더 생각하다니!’

반대로 루시는 감동한 눈으로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눈을 뜬 리리아를 보니 괜히 의기양양해졌다. 첫 만남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패배감이 싹 사라진 느낌.

‘듣기론 회귀 전의 솔라시우스의 생각과 행동을 지구의 태광휘가 결정했다고 했었어!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있으라고 결정한 것도 태광휘라고 했었지? 태광휘는 지구라는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솔라라고 했고.’

옆에서 들은 내용은 워낙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라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회귀라고 생각하면 편해! 솔라도 나도 똑같이 회귀했던 거야! 그 회귀의 성격이 살짝 달라서 어색한 것일 뿐.’

그럴수록 루시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에겐 루시푸르네의 저주를 푸는 게 더 중합니다.

무엇보다 루시는 방금 태광휘가 한 말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랑! 결론은 사랑이야!’

원래 진실은 단순한 법!

‘태광휘면 어떻고 로안이면 어떤가! 눈앞의 남자는 언제나 변함없는 나만의 태양 솔라시우스이거늘.’

그녀는 잠시나마 솔라시우스의 정체성(?)에 흔들렸던 스스로를 나무랐다.

여왕 루시푸르네가 속으로 나름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도 리리아와 솔라의 대화는 현재진행형.

“정말 말 안 해 주실 겁니까?”

솔라는 리리아에게 다시 한번 루시의 저주를 풀 방법을 물었다. 여차하면 무력이라도 쓸 기세다.

“진짜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런데…….”

“그럼, 힌트라도 주십시오.”

리리아가 계속해서 말하길 거부하자, 솔라는 한숨을 쉬었다. 무력을 쓸까 했지만 그런다고 말할 여자도 아니다. 그냥 힌트나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힌트 정도야 줄 수 있지!”

다행히도 리리아는 흔쾌히 힌트를 주는 것을 수락했다.

“일단~ 여기 일이 끝나면 바로 루한의 여왕부터 알현하도록 해. 그러고도 모르겠다면 그때 다시 물어봐.”

“……?”

저 말, 이 마검에게서 전에 들은 건데?

[……?]

저 말, 내가 전에 했던 말인데?

리리아가 말한 힌트에 솔라와 루시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단순해서 좋군요.”

힌트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솔라는 남은 차를 원샷했다. 리리아 또한 마찬가지로 차를 다 마셨다.

“더 줄까?”

대신 리리아가 주전자를 들고 물었다.

솔라는 고개를 저었고, 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대신 질문이나 마저 더 하고 싶습니다.”

“응, 말해 봐.”

“거짓의 대마녀, 악황후 옥타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또 그녀의 수하 아리아 데스모도요.”

“……그건 나도 자세히는 몰라.”

“……세계수도 모르는 건가요?”

“알아도 알 수 없는 존재야. 그녀는…… 거짓말로 대마녀의 위치에 오른 여자야. 세계도 속일 수 있지. 더 나아가 세계에게 거짓을 말하게 할 수도 있고.”

“……?”

솔라는 리리아가 대답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안, 그 질문 말고 다른 질문을 해 줬으면 해.”

“알겠습니다.”

리리아가 끝내 자세한 대답을 아끼자, 솔라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재상과 악황후가 한 패인 것만 알면 됐지.’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분위기상 계속 조른다고 말해 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서 다음 질문을 했다.

“듣기론 흑태자가 악황제로 즉위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정보다 훨씬 빠릅니다.”

혹시 악황제의 즉위도 세계수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미를 지닌 물음.

“루한의 왕궁에서도 제가 알던 것과 다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여왕의 바뀐 반응과 섭정 루카스의 복귀에 대한 질문도 넌지시 했다. 그가 지금 한 질문들은 사실 이미 9할 정도 확신을 가지긴 했다. 그저 심증만 있어서 찝찝할 뿐.

“우리의 세계수가 다른 멸망한 세계선의 이야기를 덮어쓰기 당했어. 그리고 너도 여기로 왔지. 그것만으로도 나비효과는 엄청나.”

리리아는 추상적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눈앞의 푸른색 마검을 보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루시푸르네의 회귀와 마검 윈테이라에 대해서 얘기할까 했다가 말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어. 매우 중요하고 위험한 사실이지.”

리리아는 말없이 자신의 말을 경청 중인 솔라를 향해 말을 이었다.

“이 세계선의 세피로스 또한 지금 세계수와 비슷한 상태야.”

“…….”

엘프 여왕의 말에 솔라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삼켰고 루시는 숨을 크게 삼켰다.

“악황제 또한 다른 세계선의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지. 더불어 지구에서 온 태광휘 너의 존재도. 아마 지구에서 소멸한 마왕의 기억도 일부이지만 공유했을 거야.”

솔라시우스와 루시푸르네는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머리가 멍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악황제가 이를 알게 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지. 세계수가 온 힘을 다해 시간을 벌었거든.”

‘난이도가 올랐군. 권능도 대부분 회복했겠어.’

좋지 못한 사실이었지만 예상 범주 안이다. 솔라는 무심한 표정으로 지구에서의 마왕 세피로스를 떠올렸다.

‘그래도 해 볼 만해.’

그는 아공간 인벤토리 속의 태양샘 반지를 떠올렸다. 하나만 껴도 오리지널의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둘을 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저주만 풀면 되겠어.’

엘프 여왕 리리아의 말은 이 세계의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세계수의 말과도 같다.

스캔들이니, 히스테리 같은 건 이제 신경 쓸 거리도 되지 못했다.

요정 숲에서의 일이 끝나면 곧장 왕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엘프 여왕 리리아와의 대화가 어느덧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두 아이를 데려올까?”

일어서서 자리를 정리한 리리아는 팔을 휘둘러 의자와 테이블을 치웠다. 다시 봐도 신기하다. 마법보단 마술쇼 같다.

“그럼~ 로안과 마검께서는 어서 가도록 해. 둘에겐 내가 잘 설명할 테니까.”

“……어딜 말입니까?”

루나와 쥴리아를 기다리려던 솔라가 뜬금없는 리리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세계수 속이지.”

리리아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녀의 어조에는 약간의 다급함도 보였다.

“이게 필요하지? 받도록 해.”

그녀는 손목의 푸른색 팔찌를 벗더니 솔라에게 건넸다.

“세계수의 팔찌야. 세계수는 황금색인데 이건 왜 녹색이냐고 묻는 거라면, 세계수에서 떨어지면 색이 바뀌더라고?”

[……!!]

루시푸르네는 자신의 손목에 있는 팔찌와 놀랍도록 유사한 녹색 팔찌를 리리아가 솔라에게 건네자 흠칫 놀랐다.

“어서 가.”

팔찌를 넘긴 리리아는 이어서 손을 뻗어 뒤쪽의 황금색 나무를 가리켰다. 세계수의 뿌리 쪽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법한 포털 같은 게 생성돼 있었다.

“이번엔 부디 성공하길 바라.”

리리아의 시선이 푸른색 마검 루시에게 잠시 향했다가 벗어났다.

“……지금 말입니까?”

이제야 리리아의 말을 이해한 솔라가 당황했다.

“시간이 없어. 세계수 묘목 안으로 어서 가야 해.”

“빨라서 좋긴 하지만…….”

솔라시우스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원작에서는 평판작이라고 해서 로뮤와 함께 요정 숲을 침략해 오는 제국군과 수인족 부대를 죽어라 잡아야만 했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나서야 세계수 묘목을 구하러 갈 수 있었는데.

[잠깐! 엘프 여왕이여, 지금 바로 세계수의 묘목을 구하러 간다는 말이오?]

보다 못한 루시푸르네가 리리아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세계수의 묘목을 어떻게 구하는 것이오?]

“세계수 안으로 들어가면 된답니다.”

리리아는 루시의 물음에 웃으면서 친절해 대답해줬다.

[하지만 세계수의 묘목은 설원의 저주를 해주하는 데 딱히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루시는 그런 리리아의 친절한 대답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방금 리리아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루시푸르네의 설원의 저주를 푸는 데 세계수의 묘목까지는 필요 없다고.

“아니, 설원의 저주와 별개로 이건 해야 해.”

루시의 의문에 이번에는 솔라가 답했다.

“그래, 맞아! ‘그녀’를 만나야지. 그래야 우리 우주의 세계선이 계속 순환될 거야.”

솔라의 말에 리리아가 맞장구친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엔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하이엘프 여왕은 이어서 진한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

솔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마치 결의를 다진 듯한 표정.

리리아는 입을 다문 솔라시우스를 기대 어린 표정으로 보았다.

[?!]

‘여……여자가 또 있다고?!’

루시는 여기 와서 몇 번째인지 모를 패닉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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