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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73화 (73/212)

제73화

#73.

이 남자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루시는 심장이 철렁거림을 느꼈고, 리리아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런 솔라와 푸른색 마검을 번갈아 구경했다.

“이번엔 구할 겁니다. 하지만…….”

솔라는 고개를 끄덕이곤 리리아를 향해 무거운 눈으로 말했다.

“이보다 급한 것이 제국군과 악황제 아닙니까? 파괴왕 가오이와 동부 대초원의 수인족들도 시급할 텐데요?”

세계수 묘목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이게 맞는가 하는 의문을 여왕에게 보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세계수의 대리자여. 이 순서가 맞는 겁니까? 악황제가 각성한 이상 요정 숲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여기로 오면서 제국군이 지금 어디로 집결 중인지 들었습니다.”

솔라의 물음에 리리아는 확신에 찬 눈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세계수의 묘목이 더 급해. 수인족과 가오이는…… 내 동생과 너의 동생에게 맡길 것이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솔라는 리리아가 건네준 녹색 팔찌를 손목에 끼면서 물었다.

눈으론 궁금증을 표현하면서 몸은 벌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후드가 달린 짙은 갈색 로브를 꺼내곤 망토처럼 걸쳤다. 복면도 썼다.

붕대도 꺼내더니 갑자기 푸른색 마검 루시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검 자루 쪽의 마석은 눈의 역할도 하고 있어서 딱 거기만 놔뒀다. 푸른색 마검을 가린 다음엔 뒤이어 등에 메고 있던 회색 장검 제노사이드까지 붕대로 가렸다.

마지막으론 두 개의 태양샘 반지까지 꺼내더니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는 상의 속에 숨겼다.

그렇게 솔라는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가렸다. 손목에 낀 녹색 나뭇잎 팔찌만 빼고.

‘솔라의 저 표정!’

준비를 하는 솔라시우스의 표정에서 루시푸르네는 기시감을 느꼈다.

‘회귀 전에…… 늘 요정 숲 방향을 보면서 지었던 표정이야!’

그녀는 얼마 후 솔라시우스의 지금 표정을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깨달았다.

‘그녀를 구하러 세계수 속으로 들어간다고? 그녀가 누군데? 세계수 묘목을 말하는 건가?!’

루시의 시선이 리리아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리리아와 솔라의 사이에선 단순한 우호 이상의 것은 감지되지 않았다.

둘은 그저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는 정도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솔라가 요정 숲에 마음을 둔 여인이 리리아가 아니었단 말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연적(?)에 루시는 다시금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의 솔라도, 회귀 전의 솔라도, 둘 다 같은 표정을 지었어!’

특히나 지금까지 모든 여자관계에 무심한 반응을 보였던 솔라가 이번만큼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루시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녀의 불안과 별개로 솔라시우스와 리리아는 마저 대화를 나눴다.

“세계수 묘목이 더 급한 이유를 알아야겠습니다.”

“으음~ 악황제 세피로스가 너보다 먼저 세계수 속으로 침투해 버렸어.”

리리아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

해맑은 웃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에 솔라의 표정이 굳었다.

“너도 알다시피 악황제는 봉인된 권능 중 상당수를 회복했어. 그 권능 중에는 멀리서 세계수의 묘목에 접근할 수 있는 권능도 있더라고?”

“세계수의 가호로도 못 막은 겁니까……?”

“그게…… 아까 생각 정리한다고 삽질하다가 그만 놓쳐 버렸어…….”

리리아는 머쓱하다는 자세로 자신의 뒤통수를 긁으며 배시시 웃었다.

* * *

급히 동기화를 해제한 여왕 루시푸르네는 침실을 서성거렸다.

‘솔라는 회귀하지 않았어. 하지만 회귀한 것처럼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어. 지구의 태광휘라는 또 다른 솔라시우스가 덮어씌워졌다고 했지? 지금의 세계수와 리리아처럼.’

그녀는 방안을 서성거리면서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실들을 정리해 보았다.

‘솔라시우스와 태광휘는 본래 같은 존재. 회귀 전 솔라시우스의 모든 언행을 지구의 태광휘가 결정했다고 했어.’

일단 솔라시우스의 정체성은 패스다.

그녀가 솔라에게 마음을 준 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리지 않고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

‘지금의 솔라시우스는 내가 아는 그가 맞아!’

여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이해력으로 솔라시우스와 태광휘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내린 결론은 ‘상관없다’였다.

‘회귀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변하지 않았어!’

루시는 아까 리리아 앞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저주를 걱정하던 솔라를 떠올렸다.

-저에겐 루시푸르네의 저주를 푸는 게 더 중합니다.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솔라는 변하지 않았어!’

변한 게 있다면 수염의 유무 정도일 뿐.

그리고 여왕은 면도를 하고 다니는 지금의 솔라가 더 좋았다.

하지만 이어서 또 다른 걱정이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잠식한다.

‘차원 이동에 대해 집착했던 것도 이 때문인가? 그렇다면 솔라는 지구로 돌아가려는 걸까?’

문제는 차원 이동에 유독 집착하던 그의 태도였다.

‘듣기론 분리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던 거 같았는데?’

그렇다고 지금의 솔라가 다시 둘로 나뉘는 것도 싫었다. 그녀가 아는 솔라는, 그녀에게 익숙한 솔라는 이제 태광휘와 하나가 된 솔라시우스였다.

‘그래서 영지나 작위에 욕심을 안 냈던 건가? 금은보화에도 초연했던 것이…… 언젠가 떠날 거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왕국을 버리고 그를 따라가야 할까?’

설원의 저주 따위는 이제 그녀의 걱정거리도 되지 않았다.

솔라의 목적, 세계수 묘목,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 언급된 연적의 존재. 이 세 가지가 그녀의 정신을 무겁게 만들었다.

새로 알게 된 정보가 너무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었기에 루시의 생각 정리는 깊어져만 갔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러다가 괜히 혼자서 화들짝 놀라더니 침실과 연결된 유일한 문을 쳐다보았다.

“베네사!!”

그리고 언제나 충성스러운 여왕의 시녀장을 불렀다.

지금 루시가 동기화를 해제한 것은 어디까지나 곧 있을 여정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폐하, 들어가겠습니다.”

여왕이 급히 외치자 곧바로 익숙한 노크 소리와 함께 베네사가 침실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응, 며칠간 여왕의 업무를 쉬도록 하겠다.”

“??”

고개를 숙였던 베네사가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방금 마법 연구를 하다가 영감을 얻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수련을 할 것이다! 절대 누구도 침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깨달음! 마법이든 검이든 마나를 익힌 존재라면 살면서 종종 겪는 일이다.

시녀장 이전에 하급 마녀인 베네사는 단번에 여왕의 말을 이해하고는 허리를 깊게 숙였다.

“고맙다. 어서 나가 보거라. 나는 방금 얻은 영감을 되새김할 것이다. 내가 먼저 부르기 전까진 오지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기사단장과 섭정공에게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베네사는 황급히 답하곤 침실 문을 살며시 닫았다.

베네사가 사라지고 고요한 침실 안.

“휴우. 그럼, 세계수 속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새로운 연적이 누군지 보러 가 볼까?”

루시푸르네는 손목의 녹색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눈앞의 팔찌가 동기화 때 보았던 팔찌와 겹쳐 보였다.

‘오래 기다렸겠어. 어서 들어가자!’

솔라가 막 세계수 속으로 들어가려던 것을 급히 멈추게 하고서 동기화를 해제한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위해 잠시 명상을 하겠다는 핑계로.

듣기론 세계수 속은 현실의 시공간과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지금처럼 마음대로 동기화를 하거나 말 수는 없을 터.

“회귀 전의 솔라는 이렇게 세계수 묘목을 구해 온 것이었구나. 그냥 쉽게 얻어 온 것인 줄 알았거늘…….”

윈테이라와 동기화를 준비하던 루시푸르네는 문득 회귀 전의 일이 떠올랐다.

* * *

회귀 전의 루시푸르네는 솔라시우스에게 명했다.

“두 번째 임무다. 요정의 숲에서 세계수 묘목을 가져와라.”

그녀는 태양샘 반지를 구해 오라는 첫 번째 시련에 이어서, 두 번째 시련을 내렸다.

그래도 첫 번째 시련을 내렸을 때보다는 다소 부드러운 어조.

“받들겠습니다.”

솔라시우스는 자신 있게 그녀가 내린 시련을 받았다.

그렇게 1년 후, 그는 왕궁으로 세계수 묘목을 가져왔다.

두 번째 시련도 그는 해내고 만 것이었다.

“요정들과 그토록 빠르게 친분을 쌓았을 줄이야. ……수고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긴 했다. 듣자 하니 엘프들과 함께 요정 숲을 침공한 수인족과 제국군을 격퇴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뭔가 밝히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지만…….’

그녀는 약간의 찝찝함을 느꼈다.

당시만 해도 루시는 솔라가 요정 숲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저게 바로 세계수의 묘목인가?”

하지만 의구심과 별개로 루시는 가슴이 설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다가온 희망이 저 앞에 있다.

그가 구해 온 세계수 묘목은 순백의 은빛이 감도는 작은 나무였다.

“그렇습니다.”

솔라시우스는 여왕의 물음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한 눈을 한 솔라의 시선은 세계수 묘목에 고정돼 있었다.

루시는 세계수 묘목에 정신이 팔려 그런 솔라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

그런 두 사람을 알현실 구석에서 재상이 묘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재상, 세계수 묘목을 어디에 두는 게 좋겠는가?”

루시는 시선을 재상에게 돌리며 물었다.

‘만약 이번에도 안전을 이유로 가져간다고 하면 어쩌지?’

재상에게 물어보면서도 루시는 작은 우려를 가슴속에 머금었다.

‘괜히 불안하네.’

태양샘 반지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검사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그들의 충심과 별개로 마녀들의 호기심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쩌면 태양샘 반지도 재상과 마녀들이 이것저것 몰래 연구해 보다가 훼손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태양샘 반지를 운송했던 로안의 실수와 별개로 말이다.

“폐하의 침실에 두소서.”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인가? 이번엔 마녀회와 검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예상외의 대답에 여왕은 오히려 아리아에게 다시 물어야 했다.

“그렇습니다.”

재상 아리아 데스모는 묘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다! 침실 안으로 깊게 들어가 있을 테니, 침실 문 바로 앞에 두도록 하여라.”

루시는 환하게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침실 안으로 사라졌다.

여왕이 사라진 알현실에는 오직 두 사람, 솔라시우스와 재상 아리아 데스모만이 남았다.

“고생 많았어요, 로안 경.”

재상은 단둘이 남게 되자, 솔라를 치하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솔라는 재상의 치하에 고개를 살짝 숙이곤 가져온 세계수 묘목을 들었다. 그리고 침실 문 앞으로 향하려 했다.

“그건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로안 경.”

재상은 그런 솔라의 행동을 제지했다.

“…….”

솔라는 그런 재상의 제지에 살짝 눈을 굳혔으나 이내 말없이 그녀에게 세계수 묘목을 건넸다.

“고마워요. 당신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대가 여전히 제국의 황족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요. 이해 바랄게요?”

“괜찮습니다.”

아리아는 세계수 묘목을 들고는 여왕의 침실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

그런 재상의 뒷모습을 솔라가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여왕의 침실 앞에 있던 세계수 묘목이 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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