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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81화 (81/212)

제81화

#81.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서서히 지려 한다.

미나스는 오늘도 반응이 없음에 낙담하고 등을 돌렸다.

그가 막 등을 돌려 말 위에 오르려 했을 때였다.

부스럭부스럭.

그의 염원을 세계수가 듣기라도 했는지, 요정 숲에서 드디어 반응이 왔다.

“!!”

숲의 드넓은 결계 중 일부가 해제되었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안에서 인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왔다! 엘프들이 나온다아~!”

이를 본 사람들이 놀라 외쳤다.

“정말 1황자 전하였단 말인가!”

“오오! 마하 대제와 아낙시아의 전설이여!”

특히나 놀란 것은 미나스가 아닌, 뒤에 기립해 있던 귀족들과 기사들이었다.

‘이 작자들이……!’

미나스는 시선을 숲으로 다시 집중하면서 뒤에서 호들갑 떨고 있는 자들을 기억해 뒀다.

그는 눈으로 요정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엘프들을 담았다.

“흠흠! 이렇게 맹약을 잊지 않아 줘서 고맙소, 요정들이여. 나는 마하 제국의 1황자 솔라시우스라고 하오.”

입으로는 미리 준비했던 말을 이어서 말했다.

혹시나 하이엘프가 있는지 찾는 것도 동시에 진행했다.

“지금 제국은 악황후와 악황제에 의해 위태롭소. 대륙 전체에 암운이…… 암운이……?”

하지만 미나스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엘프들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저 소녀는……?’

숲에서 엘프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의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단발머리로 인해 인간의 짧은 귀가 훤히 드러나 더욱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금발, 금안…….’

그녀의 눈과 머리 색이 미나스의 시선을 끌었다.

로사리오의 그림자핵을 잠시 활성화시켜 눈과 머리 색을 본래 색으로 바꾼 루나는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제일 앞에 섰다.

복장 또한 평소 즐겨 입던 검은 마녀 복장이 아니다. 고급스럽지만 활동하기 편한 여성용 튜닉을 입은 상태였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금발, 금안의 청년 기사에게 나긋한 미소로 물었다.

“당신이 제 오라버니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루나는 지금 이 상황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자신의 오라버니를 사칭하는 남자가 있다.

‘심지어 전혀 안 닮았어……!’

속으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당장이라도 루한에서 맹활약 중인 광휘의 기사 로안 샬루트가 솔라시우스라고 당당히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방금 엘프 여왕 리리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애써 참았다.

아까 숲 밖으로 나오기 직전 리리아가 루나에게 다짜고짜 말했었다.

“리나 샬루트, 아니, 지금부터는 그냥 루나시르네라고 하자.”

“갑자기 뭔 소리인가요, 여왕님?”

“제국군의 대병력이 여기로 집결 중이야. 수인족 회유는 어차피 늦었으니, 우린 저 인간들이 필요해. 저 사칭범과 잠시 어울려 줘.”

리리아는 이런 의미를 담아 루나에게 말했다.

“그러면 저와 솔라 오라버니의 정체를 밝히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녀의 요청에 루나의 검은 눈동자가 의문을 그렸다.

“로안은 지금 세계수 안을 헤매고 있어. 언제 나올지 모르지.”

“제가 있잖아요? 이 로사리오도 있고.”

“로안의 안전을 위해서 대역도 필요하다고 봐. 저기 솔라시우스를 사칭 중인 황족에게 제국의 모든 시선이 쏠리면, 로안은 그만큼 안전해지겠지?”

“……!!”

리리아는 루나에게 사그라진 세계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로뮤에게만 슬쩍 말했을 뿐이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괜히 변수만 늘어날 것 같았고, 사그라진 세계선에서의 리나 리버스의 모습을 알려 줘 봤자 루나의 심리에 좋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따라서 루나는 태광휘라는 존재에 대해 몰랐고 악황제가 로안 샬루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일리가 있군요.”

리리아의 말에 루나는 깊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루나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로안…… 태광휘는 언젠간 지구로 돌아가야 해. 그와 같은 존재가 이 세계에 계속 머무는 것만큼 불안정한 것은 없어.’

루나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은 리리아의 속마음은 이랬다.

어차피 태광휘는 지구로 가야 한다.

그가 제국 황제로 이 세계에 계속 남아 있으면 세계수와 태광휘의 존재가 충돌하게 된다.

이는 이 세계에 커다란 불안정을 만들어 낸다.

누구보다 안정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수와 그 세계수의 무녀 리리아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거짓말하지 않는 엘프들의 불문율을 어기고서 루나를 설득했다.

만약 태광휘가 이 상황을 알았다면 활짝 웃으며 리리아를 칭찬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서로의 니즈가 잘 맞아떨어진 상황.

“……알았어요!”

결국 루나는 리리아의 제안을 승낙했다.

솔라의 안전과 제국군을 막을 추가 병력을 얻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루나시르네는 숲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엘프들 중 가장 선두에서 걸었다.

그림자핵을 숲의 대지에 길게 늘렸고, 활성화된 로사리오는 은은한 빛을 내면서 루나의 목과 가슴을 비췄다.

다시 찾은 그녀의 금발과 금안은 서서히 어두워지는 요정 숲의 저녁 하늘 아래에서 별빛처럼 돋보였다.

“……!”

미나스는 기이함을 느끼면서 눈앞의 금발, 금안의 소녀를 보았다.

“오……오라버니라고?”

무엇보다 저 황족으로 추정되는 소녀가 자신에게 한 말이 가슴을 세게 때렸다.

마찬가지로 미나스의 뒤에 있던 귀족들 또한 경악에 물든 얼굴이 되었다.

“저……저 로사리오는!”

경악 어린 반응을 보인 대부분은 나이가 제법 있거나 한때 제국 황궁에서 관료로 일했던 고위 귀족들이었는데, 그들은 유독 소녀가 목에 건 로사리오를 유심히 보았다.

“아낙시아의 로사리오야!”

“대대로 제국의 정실 황후만이 소유했던 아티팩트!”

“그렇다면…… 저 소녀가 1황녀 루나시르네?!”

“죽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었나?”

“황궁 앞에 내걸렸던 시신들이 정녕 가짜였단 말인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시장 한복판에 온 것처럼 산만하게 들렸다.

동시에 미나스를 향한 귀족들의 신뢰도 급격히 높아졌다.

‘…….’

반대로 미나스는 혼란스러웠다.

‘저 아이가 루나시르네라고? 진짜로?’

1황녀 루나시르네라니!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솔라시우스에게 중요도가 쏠려서 그렇지, 1황녀 또한 주요 인물인 것은 마찬가지니까.

‘정말로 안 죽었던 건가? 그……그렇다면 솔라시우스와 1황후마마는 요정 숲에……?!’

괜히 오금이 저렸다.

잔뜩 굳은 얼굴에 파랗게 변한 안색으로 눈앞의 소녀를 보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 요정 숲에서 반응이 왔을 당시엔 하늘로 승천했던 기분이 지금은 다시 땅으로 추락하려 한다.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솔라 오라버니. 10년…… 만인가요? 그날 악황후를 피해 도망치다가 헤어졌으니까요. 돌아가신 어마마마도 장성하신 오라버니를 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

그러다가 이어진 루나시르네의 말에, 땅으로 추락하려던 미나스의 기분이 다시 승천해 버렸다.

‘다행이다! 1황후마마는 돌아가셨군. 진짜 솔라시우스 또한 행방이 묘연하고!’

미나스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 미나스의 표정 변화를 루나시르네가 쎄한 눈으로 훑어본다.

미나스를 물끄러미 보던 루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로뮤와 리리아가 서 있었는데, 리리아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흥!’

마치 잘했다고 칭찬하는 꼴이었는데 이상하게 루나는 그 모습에 반항심이 생겼다.

“아~ 참고로! 요정 숲에는 지금 광휘의 기사 로안 샬루트도 와 있답니다. 저는 처음에 그가 제 오라버니인 줄 알았다니까요? 실력도 출중하고 외모도 제 기억과 어찌 비슷한지…….”

그래서 리리아와 사전에 얘기하지 않은 말을 추가로 지어서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뒤쪽에 있던 리리아의 귀에도 들렸고, 고개를 작게 끄덕이던 그녀는 멈칫했다.

리리아의 반응과 별개로.

“광휘의 기사라면?!”

“암흑대공 둠과 암흑군단을 무찌른 루한의 망명 황족…….”

루나가 꺼낸 말이 다시 한번 인간 진영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광휘의 기사에 대한 소문은 벌써 루한을 넘어 대륙 전역에 퍼진 모양이다.

광휘의 기사 로안 샬루트, 북쪽의 왕국 루한에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이자 망명 황족이었다.

모두가 로안 샬루트가 어쩌면 1황자 솔라시우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미나스트림이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그 의혹은 끊이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으로 들은 그의 무력은 엄청났기 때문이다. 제국 최강의 기사 암흑대공을 이긴 황족이었으니까.

샬루트라는 성이 방계 황족의 어떤 계보에도 없던 것도 심증을 높이는 데 한몫했었고.

“…….”

로안 샬루트가 요정 숲에 있다는 루나시르네의 말에 다시 한번 미나스를 향하는 귀족들의 눈초리가 묘해졌다.

‘젠장!’

미나스는 소문이 무성한 강력한 경쟁자를 앞두게 되었다.

‘소문은 원래 과장된 법.’

하지만 이내 자신감을 되찾았다.

“오랜만이구나. 어릴 적 보았던 얼굴이 남아 있어서 한눈에 알아봤다, 루나.”

일단 루나시르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덤이다.

거짓말은 아니다. 어릴 적 먼발치에서 그는 1황녀 루나시르네 또한 보았다. 그날 이후 자신에게도 저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예~ 다시 뵙게 되어 반가워요, 오라버니.”

루나는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는 미나스를 향해 애써 웃어 보이면서, 모처럼 숙녀답게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로안 샬루트라는 황족은 어디에 있니? 무너진 황족의 이름을 높이 세워 준 그의 얼굴을 보고 싶구나.”

미나스는 루나의 인사에 묘한 쎄함을 느끼면서도 애써 여유로운 척했다. 그는 짧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로안이라는 황족부터 찾았다.

‘직접 봐야겠어. 대련이라도 하면 더 좋고.’

그의 양손이 간질간질했다.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자마자 시골 영지를 나왔던 그는 제국과 대륙의 여러 왕국을 돌아다니면서 무수한 전투를 겪었다.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었다. 때문에 로안 샬루트를 만나도 자신 있었다.

“로안은 지금 세계수가 시킨 임무를 하고 있소.”

미나스트림의 질문에 답한 것은 루나시르네가 아닌 그녀 뒤에 서 있던 엘프였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엘프는 무심한 눈으로 미나스와 인간들을 응시했다.

“누구시오?”

“로뮤 엘펜리트.”

“로뮤……? 설마?”

미나스는 로뮤의 이름을 듣고 그의 외모를 보고서 그가 누구인지 눈치챘다.

‘마지막 서약 엘프! 1황후 텔미노아의 정령술 스승이다!’

제국 황실과 황족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공부를 했던 미나스는 로뮤라는 엘프에 대해 잘 알았다.

막판에는 은둔하다시피 해서 많이 잊혔지만, 여전히 일부 제국 귀족과 황족들이 마지막 서약 엘프에 대해 추억하고 있었다.

“로뮤라면…… 1황후마마 텔미노아 님의 스승이야.”

“과거에 본 기억이 있어. 엘프는 역시 늙지 않는구나.”

나이 많은 몇몇 귀족들의 부러움과 한탄 어린 탄성도 들렸다.

“저 로사리오에 로뮤라는 하이엘프까지…… 눈앞의 소녀는 1황녀님이 확실한 것 같군.”

귀족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흘려넘기며 미나스는 가슴을 폈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위축된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로 보이는 그는 당당해 보였다. 만약 지구에서 태어났다면 대배우가 되어도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서약 엘프를 보게 되어 영광이오. 돌아가신 어마마마께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지.”

“…….”

미나스의 입에서 텔미노아가 언급되자, 로뮤의 안색이 굳어졌다.

로뮤는 눈앞의 뻔뻔한 사칭범을 한 대 패고 싶었다. 하지만 리리아의 당부 때문에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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