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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88화 (88/212)

제88화

#88.

요정 숲의 내부, 두 세력이 무기를 겨누고서 대치 중이다.

로뮤와 엘프들은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아직 아군이 전부 집결하지 않았다. 포위 대형도, 놈들의 전력 분석도 완성되지 않았다.

파앗, 파앗, 파앗.

하지만 이렇게 대치를 하는 중에도 옥타나의 공간 이동 마법진은 계속해서 빛을 뿜었고, 질리도록 수인족과 제국군을 싸질렀다.

“공격!”

결국 보다 못한 로뮤가 쭉 당겼던 활시위를 놓으며 외쳤다.

파바바바밧.

화살과 마법, 투창이 옥타나와 제국군을 향해 쏘아졌다.

쏘아진 화살과 마법 중 3할은 유독 옥타나에게 집중되었다.

카가가강.

하지만 옥타나에게 가해진 공격들은 전부 그녀 옆에 있던 유난히 거대한 수인족 전사에게 막혔다.

“그래, 나도 네가 그리 반갑지는 않아. 같은 에이션트라고 해도 이상하게 정이 가진 않더라?”

로뮤와 엘프들의 공격이 유독 자신에게 집중되자, 옥타나는 풀었던 표정을 다시 무표정으로 거뒀다.

“어쩌면~ 무늬만 같아서 그럴지도?”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혼자야?”

“무슨 소리냐?”

옥타나의 물음에, 로뮤가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기며 반문했다.

혼자라니? 현재 그는 엘프 근위대와 함께 이곳에 왔다.

지금도 속속히 엘프 전사들이 이쪽으로 집결 중이다. 신호탄을 쏘았으니까.

“하긴~ 그 아이는 요정 숲 밖에 있겠구나? 세계수 가호 안에선 유독 사령술과 음영술을 쓰기 힘드니까.”

그림자핵으로 음영술을 펼치는 루나시르네를 말한 모양이다.

루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옥타나의 붉은 눈동자에 예기가 서렸다.

“좋아! 잘됐어. 좀 더 쉽게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겠어.”

“너는 절대 세계수에 갈 수 없다!”

옥타나가 말한 어머니는 바로 세계수. 그녀의 말을 해석한 로뮤가 단호히 외쳤다. 활시위에는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정령과 마나를 기 모으듯 집중했다.

“날 막겠다고? 그러면~ 일단 얘부터 막아 보렴?”

거짓의 대마녀는 작게 조소하면서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로뮤를 정확히 지목하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그러자 그녀 바로 옆에 있던 광폭화 상태의 가오이가 흑염의 갈퀴를 휘날리며 포효했다.

그 포효는 어찌나 강렬한지, 활시위를 당기던 엘프 레인저들의 조준을 빗나가게 만들었고, 정령 마법을 펼치던 엘리멘탈리스트들의 집중력을 깨트렸다. 방패와 검을 들고 근접전을 준비 중이던 엘븐나이트들의 다리에 힘을 빼기도 했다.

우우우웅-.

오직 로뮤 엘펜리트만이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을 뿐이다.

푸슛-!

로뮤가 쏜 화살이 정령의 힘을 받아 레이저처럼 쏘아졌다.

쿵, 쿵, 쿵, 쿵, 쿵- 퍼억!!

지진 일으키듯 그에게 달려들던 가오이의 미간을 명중했다.

“……!”

하지만 가오이는 딱밤을 맞은 정도의 반응만 보이고는 돌격을 재개했다.

요정 숲의 나무와 수풀이 흑염으로 변한 흑사자의 갈퀴에 닿아 오염되고 녹고 불탔다.

* * *

요정 숲 밖의 전장은 대강 정리가 되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지만 음영술과 사령술을 굳이 더 펼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루나시르네는 심한 어지러움과 강력한 탈진을 느끼며 펼쳤던 음영술과 사령술을 해제했다.

그녀는 어지러움이 다 가시지 않았음에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로뮤 오라버니……?”

하지만 로뮤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를 호위했던 엘프 근위대도 없었다.

“황녀 전하……!”

어리둥절해 하는 루나의 귀로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

노인은 귀족으로 보이는 자였는데 루나를 바라보는 푸른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종장……?”

루나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노귀족의 정체를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지만 용케도 기억났다.

“그렇습니다! 소신을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루나가 자신을 기억하자, 옛 황궁 시종장이었던 노귀족은 감격한 듯 고개를 떨었다.

“정말, 정말이지 훌륭하게 성장하셨습니다. 세계수와 천상신께서 황실을 버리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노귀족의 목소리가 눈동자와 함께 촉촉하다.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루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을 향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루나가 이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투 직전까지 한가하게 인사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여유가 생기자 1황녀 루나시르네 주위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마법사들이 유독 눈을 빛낸다.

“엘프들은? 로뮤 오라버니는 어디로 갔지요?”

하지만 루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간들에겐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다시 만난 옛 시종장 또한 그러려니 할 뿐이다.

“엘프들과 근위대장 로뮤는 요정 숲으로 급히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딱히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하께서 요정 숲으로 가려 하면 말리라고…….”

루나의 물음에 노귀족이 대신 대답했다.

“언제 갔지요?”

“좀 됐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갔으니까…….”

노귀족의 대답에 루나의 고개가 요정 숲을 향했다. 그녀가 음영술에 몰두하는 사이 시간도 많이 흘렀는지 하늘 또한 어둡다.

‘그러고 보니, 가오이나 암흑대공 같은 실력자는 보이지 않았어!’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

아마도 자신이 세계수 가호 안에서는 힘을 잘 못 쓰니까 말도 안 하고 사라진 것 같았다.

‘지켜 주겠다고 했는데!’

심장이 쿵쿵하고 뛰었다. 갑자기 몰려드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그녀를 조인다.

“요정 숲으로 가겠습니다.”

루나는 급히 빗자루를 소환하며 통보하듯 외쳤고.

“전하, 하지만……!”

그런 그녀를 옛 시종장을 비롯한 귀족들이 만류한다.

하지만 누구도 직접적으로 루나를 제지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그녀가 부린 마법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서, 1황자 전하를 모셔와라!”

“황녀 전하를 막을 분은 그분밖에 없어!”

그들은 어쩌면 유일하게 1황녀를 말릴 수 있는 1황자를 찾았다.

다행히도 1황자를 사칭 중인 미나스트림은 막 전투를 끝내고 루나가 있는 후방으로 오는 중이었다.

“루나, 요정 숲은 하이엘프 로뮤에게 맡기거라! 여기도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대강 얘기를 들은 미나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오른 루나를 향해 외쳤다.

“…….”

그런 미나스를 루나가 싸늘한 눈으로 노려본다. 표정 또한 매정함마저 느껴지는 무표정이다.

동생의 반응에 미나스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미나스뿐만 아니라 루나 주위에 있던 마법사들과 귀족들도 황녀가 뿜어내는 기운에 절로 숨을 참았다.

도움 하나 안 되는, 쓸모없는, 거슬리는 것들.

1황녀의 표정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루나시르네는 그들을 쑥 한번 훑어보고는 빗자루를 타고 그대로 요정 숲으로 사라졌다.

루나가 요정 숲으로 사라지자.

“후아…….”

사방에서 참았던 숨을 다시 내쉬는 광경이 연이어 연출됐다.

“황녀 전하는…….”

“이거, 난감하군.”

모두가 방금 루나가 보여 준 모습에 대한 말을 아꼈다. 하지만 다들 하는 생각들은 비슷했다.

위험한 여자다.

그들은 벌써 제국을 재건한 후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전투력도 좋고 혈통도 좋지만, 말을 절대 듣지 않을 것 같은 황족은 껄끄러웠다.

귀족들의 시선이 미나스에게 향했다.

‘심지어 1황자 전하도 1황녀를 막지 못했다.’

‘빛의 힘을 저 정도로 사용하는 걸 보면 진짜 솔라시우스 황자가 맞는 거 같은데…….’

‘그런데 어차피 이젠 적통은 의미 없잖아? 세계수의 인정만 받는다면 말이야.’

‘광휘의 기사로 이름 높다는 로안 샬루트는 어떨지 모르겠군.’

눈동자마다 각자의 계산식이 떠올랐다 지워지길 반복한다.

‘얕보이고 있군……. 빌어먹을.’

미나스트림은 귀족들의 눈빛을 바로 해석했다. 방금 루나 앞에서 멈칫했던 것으로 이번 전투에서 활약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이 동생에게 겁먹었다는 소문은 오늘 밤을 넘기기 전에 병사들과 유민들에게까지 퍼질 것이다.

부끄럽고 비탄스럽지만, 당장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자신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 루나를 미워할 순 없었다.

‘루나시르네가 저렇게 강할 줄이야…….’

이번 전투에서 루나가 보인 음영술과 사령술은 너무나 강력해서 미워할 수 있는 감정 자체가 거세됐기 때문이다.

미나스를 비롯한 이곳의 모두가 루나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은 오직 하나 ‘두려움’뿐이다.

‘이걸 어떻게 만회하지?’

그는 머리를 굴렸다. 전장 정리라도 잘해야 할까? 아니면 후퇴 중인 제국군을 쫓을까?

미나스의 금색 눈동자가 전장을 훑었다.

‘애초에…… 이걸로 세계수의 인정을 받을 수나 있을까?’

제국군을 무찔렀다. 하지만 자신이 순수하게 이룬 것이 아니다. 지금 이것만으론 그 소문만 무성한 로안 샬루트에게 비빌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로안 샬루트가 진짜 솔라시우스일지도 몰라.’

조심스레 아까부터 품었던 추측을 풀었다. 루나시르네의 마법과 로안의 의동생이라는 리나 샬루트의 마법이 매우 비슷하다. 머리 색과 눈 색은 다르지만, 그거야 변장 마법이 있으니까.

‘뭔가 더 해야 해! 세계수의 인정을 받게 되면 혈통은 중요치 않아!’

설령 로안 샬루트가 진짜 솔라시우스라고 해도 미나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때마침, 저 멀리 정리되고 있는 전장에서 후퇴 중인 제국군 방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

“뭐야?”

“이 힘은? 엄청나다!”

미나스뿐만 아니라 마나를 익힌 기사와 마법사들도 화들짝 놀라 전장을 응시했다.

퍼어엉, 퍼어엉, 콰아앙.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여기까지 파괴음이 들렸다.

눈에 마나를 투여해 보니, 아군 병사들과 기사들이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썰리고 있었다.

“암흑대공……!”

미나스는 저 존재감의 주인이, 저 새로운 파괴의 원흉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 * *

황금색 세계수 나무 아래, 한 여인과 한 어린 소녀가 서 있었다.

둘은 모녀, 또는 나이 차이 많이 아는 자매처럼 잎사귀를 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이엘프 리리아는 어린아이와 놀아 주는 것임에도 지루한 티를 내지 않았고, 쥴리아는 세계수 주변 잡초로 만드는 액세서리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쥴리아, 잠시 나무 뒤에 숨어 있으렴.”

그러다가 불현듯, 리리아가 무거워진 표정과 어조로 말했다. 방금까지 아이를 향해 보이던 장난스러운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네.”

쥴리아는 떼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세계수 뒤로 숨었다.

잠시 후, 세계수와 리리아 앞으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구나?”

여인은 리리아를 향해 반갑다는 듯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미소는 입만 호선을 그릴 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 길고 뾰족한 귀.

엘프답게 아름다웠고, 타락했기에 더욱 요염해진 미모.

과거 동족과 어머니, 반려로부터 버림받았던 하이엘프가 인사를 건넨다.

“로뮤는 어떻게 했지?”

그런 옥타나의 인사에 리리아의 반응은 매정할 뿐이다.

“서운해라~ 이래 봬도 내가 네 선배야. 예의는 좀 갖추렴.”

“로뮤는 어떻게 했냐고 물었어.”

“옥타나라고 불러.”

“…….”

“왜? 나에 대해선 아직도 금기시되나 보지?”

리리아가 침묵하자, 옥타나의 시선이 뒤쪽의 황금색 나무로 향했다.

“하지만 어머니, 아시잖아요? 당신이 제게 건 저주는 극복되었답니다. 이제~ 저와 당신은 다시 이어졌어요. 애써 외면한다고 해도 소용없을 텐데요?”

세계수를 향한 옥타나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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