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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90화 (90/212)

제90화

#90.

거짓의 대마녀가 사라지고, 전투가 끝나고, 세계수의 정원은 고요를 되찾았다.

“으읍……! 으읍!”

리리아의 다급한 소리만이 정원을 울린다.

그녀는 마법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다섯 기생체를 막고 있었다. 귀, 코, 입은 물론 하체의 구멍들 또한 철저히 막았다.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때마침, 상황이 변했음을 인지한 쥴리아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세계수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여……여왕님!”

그리고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리리아를 발견했다.

‘도……도와야 해!’

어린 소녀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 양손을 앞으로 펼쳤다.

화르르르릇!!

결코 허락 없이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건만, 지금은 예외였다.

쥴리아는 눈앞의 검은 덩어리들을 향해 힘을 집중했다.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아름답고 착한 여왕님도 다칠 수 있으니까.

!!

쥴리아는 온 힘을 다 집중하여 정화의 화염을 펼쳤다.

키아아아아아!!

아이가 펼친 화염에 다섯 기생체가 고통스레 반응한다.

놈들은 순식간에 리리아에서 쥴리아로 타깃을 바꿨다.

쏴아아아.

자신에게 놈들이 달려들자, 쥴리아는 눈에 부릅뜨곤 더욱 힘을 쏟았다. 이젠 리리아가 다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오오오, 번쩍!

더욱 강렬해진 화염. 화염은 한점으로 응축되었고, 작은 태양을 만들어 냈다.

화르륵.

이능을 발현함과 동시에 아이의 피부에서 불이 일었고, 그녀는 불의 정령과 하나가 되었다.

처음이었다. 늘 방화하듯 넓게 불태우던 힘을 이렇게 한 곳에 집중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능을 펼치는 쥴리아의 몸이 불의 정령과 하나가 되는 것도. 그래서 아이의 전신이 불로 변하는 것도.

‘!!’

그리고 소녀는 깨달았다. 늘 곁에서 지켜 주던 불의 정령과 자신의 관계를, 어렴풋이.

!!

작은 태양의 열기에 다섯 기생체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불’ 그 자체가 된 쥴리아는 작은 태양을 유지하면서 멍하니 그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 불이 된 소녀의 눈에 어떤 환상이 찾아왔다.

“?!”

그 작은 태양 안에서 매우 낯이 익은 희미한 기억을 보게 되었다.

무너진 빌딩 숲, 폐허가 된 도시의 철근과 콘크리트.

붉게 노을 진 하늘에는 11차원의 괴수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그 앞에 선 나, 그리고 내 옆에는…….

-마스터!

금발, 금안의 남자가 빛의 아우라에 휩싸여 있었다.

금발, 금안의 남자는 쥴리아가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던 분과 똑같이 생겼었다.

-가자, ****!

그는 쥴리아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뭐라 말했다. 아마 자신의 이름 같았는데 들리지 않았다.

-네, 마스터!

소녀는 남자를 ‘마스터’라고 불렀었다. 둘은 광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파앗.

이윽고 거대한 태양이 고공에서 터졌고, 쥴리아의 환상도 깨졌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전생이었을까?

찰나의 환상이 끝나고, 쥴리아는 다시 현실을 응시했다.

아이를 노리고 달려왔던 다섯 기생체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불로 변했던 소녀의 몸도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전생의 기억을 봐서 그런지, 아니면 처음으로 이토록 섬세하고 강한 힘을 써서 그런지, 쥴리아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새근새근, 평화로운 숨소리가 아이가 깊은 잠에 빠졌음을 알렸다.

스윽.

잠든 쥴리아의 얼굴 위로 한 여인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리리아의 그림자였다.

“그래, 맞아, 약한 척도 독해야 할 수 있어.”

그녀는 여유로운 얼굴로 쥴리아를 살폈다.

“독성이 강한 비료지만~ 우리 태광휘라면 잘해 주겠지? 나도 따라 들어가고 싶은데, 그랬다간 인원 초과라…….”

방금까지 필사적이고 다급했던 것이 모두 연기라도 되듯.

“그래도 기생체는 전부 쓰고 가게 해서 다행이야.”

리리아가 입술을 적시며 세계수를 응시했고, 천천히 검었던 머리 색과 붉었던 눈동자 색을 바꿨다.

샤르르르.

황금빛 세계수 또한 잎사귀를 흔들며 어느 세계선에도 존재치 않았던 묘목의 탄생을 고대했다.

* * *

“요즘 제국 내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예나체리나가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눈은 솔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멀리 있는 자신의 남편과 딸을 보고 있었다.

솔라 또한 저 멀리 루카스와 함께 놀고 있는 어린 시절의 루시를 보았다.

[…….]

윈테이라와 동기화 중인 루시푸르네도 마찬가지.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신기했다.

‘내가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구나…….’

특히 저 근심 하나 없는 밝은 미소는 지금의 자신과 너무도 달랐다.

정말이지 오랜 옛날의 모습이다. 회귀까지 했기 때문인지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설원의 계승을 좀 더 빨리하려고요.”

‘?!’

멍하니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던 루시는, 이어지는 예나의 말에 정신이 번뜩하니 돌아왔다.

“제 딸이지만 루시는 정말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어요. 어쩌면 첫 번째 설원의 대마녀인 베아트리체 님을 능가할지도 몰라요. 아직 세상이 평화로울 때, 서둘러 루시를 키워야 할 것 같아요.”

‘!!’

루시푸르네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

솔라도 ‘마침내 올 것이 왔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예나체리나의 말을 들었다.

“계승식은 반년 후에 진행할 예정이에요.”

‘안 돼요, 어머니!’

루시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죽어라 내려 했다. 하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일개 저주받은 여인이 풀 리가 만무했다.

“계승식 때를 맞춰서 제국에서 사신단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특이한 게 대부분이 황족들로 이뤄져 있더라고요?”

예나체리나는 어린 루시에게 향했던 시선을 솔라에게 돌렸다.

“명단을 보니, 대부분 1황후의 충성파 황족들이에요. 아마 2황후를 함께 견제하자는 메시지 같아요.”

이 장면, 이 대사, 태광휘는 분명 전에도 본 적 있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루한의 건국사에는 제국 황실이 깊게 연관되어 있거든요. 엘프들 못지않게.”

여러 변경점으로 진행이 크게 변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같았다.

“사신으로 오는 황족 중에 과거의 당신도 있을까요?”

-사신으로 오는 황족 중에 과거의 당신도 있을까요?

“기대되네요. 그렇게 찾아도 없었는데…… 루시와 비슷한 또래겠지요?”

-기대되네요. 그렇게 찾아도 없었는데…… 루시와 비슷한 또래겠지요?

스크립트로 보았던 대사와 눈앞에서 바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가 놀랍도록 겹친다.

“당신, 설마 1황자는 아니겠죠?”

문득 솔라를 바라보던 예나가 ‘설마?’ 하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비슷한 또래를 말하다가 문득 1황자 솔라시우스가 떠오른 모양.

“아니겠지? 차기 황제가 될 분이 어떻게 루한으로 장가를 오겠어? 제국 황제가 루한의 국서가 된다라……. 이야기책도 그렇게는 안 써…….”

하지만 이내 혼잣말로 부정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은 그녀라도 거기까진 계산 범주에 넣지 못했다.

“…….”

솔라는 그런 예나체리나를 말없이 응시할 뿐이다. 표정으로라도 고갯짓으로라도 뜻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하튼, 만약 황족 사신단에 과거의 당신이 있다고 하면…… 기대하세요! 아주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할 테니까요!”

예나가 어깨를 쫙 펴면서 당당히 말했다.

“재상이 직접이 루카스와 함께 계승식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데스모 공작은 마녀보단 행정가가 어울릴 정도로 행정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괜히 재상에 임명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솔라는 가슴이 아팠다.

함께 이를 보고 있는 루시푸르네도 마찬가지.

‘어머니 안 돼요! 그 황족들을 받지 마세요! 재상을 당장 죽이셔야 해요!’

루시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러나 어항 속의 붕어처럼 뻐끔거리기만 할 뿐이다.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간만에 회색 아공간으로 들어왔다.

마치 선수 대기실 같았다.

“루시.”

솔라는 말없이 서 있다가 불쑥 루시를 불렀다.

“반드시 막자.”

[……!]

어느 때보다 굳은 결심을 보이는 솔라의 모습.

루시푸르네는 절망의 착잡함 속에서 샛별을 본 것만 같았다.

“반드시 바꾸자.”

꽈악!

그는 목에 건 태양샘 반지를 세게 움켜쥐곤 말했다.

[응, 반드시!]

루시도 손목에 낀 어머니의 팔찌를 꼭 쥐었다.

얼마 후, 텅 빈 회색 세계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 * *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성대한 축제에 가까워야 할 설원의 계승식이 지옥으로 변했다.

루한의 국서이자, 화염의 마도사 루카스는 예기치 못한 혼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게, 이게 도대체……!”

주위를 둘러보았다.

꺄아아악!

아아악!

설원의 계승식을 축하하러 온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학살을 자행하는 이들은 상상도 못 했던 존재들.

“제국이 드디어 미쳤구나!”

바로 사신으로 온 제국 황족들이었다.

하나같이 금발에 금안을 한 존재들이 빛의 검과 빛의 열기로 루한의 왕궁을 파괴하고 있었다. 루한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막아라! 왕실 기사단은 뭐 하느냐!”

뒤늦게 정신 차린 루카스가 외쳤다.

“……설원의 가호가 거둬질 때를 노렸어!”

이가 갈렸다. 놈들은 설원의 계승식으로 설원의 가호가 잠시 거둬졌을 때를 노렸다.

“버텨야 한다! 설원의 계승식이 끝날 때까지!”

루카스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향해 외쳤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믿었다.

‘설원의 계승식이 끝나면 다시 설원의 가호가 펼쳐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루카스는 애타는 마음으로 설원의 계승식이 진행 중인 왕궁 중심부를 응시했다.

“……?!”

이윽고 눈동자를 떨었다.

진정한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앗!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가장 최악의 상황이 터졌다.

설원의 계승식이 진행 중인 왕궁 중심부에서 심상치 않은 균열이 일었다.

“오…… 안 돼!”

안 돼! 안 돼! 말도 안 돼! 제발…… 이럴 순 없어!

루카스는 미친 사람처럼 왕궁으로 달렸다.

‘1차 결계가 뚫렸어!’

왕궁 중심부로 달리는 그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중간중간 사신단으로 온 황족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들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됐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의문을 품으며 계승식장으로 달리는데, 저 앞에서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재상!”

루한의 재상이자, 함께 설원의 계승식을 준비했던 재의 마녀였다.

“국서!”

재의 마녀 아리아 데스모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루카스를 맞이했다.

“재상, 괜찮으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보다시피…… 황족들이 결계를 뚫고 계승식을 망쳤습니다. 우리가 만든 결계에 무슨 짓을 한 모양입니다.”

쿨럭…… 흐윽.

재상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각혈을 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끝없이 흐른다.

“모든 힘을 다해 막았으나…… 역부족……. 폐하를, 공주마마를 지켜야 합니다.”

주르륵.

아리아의 눈에서 통한의 눈물이 흘렀다.

“재상은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가 보겠습니다.”

루카스는 눈앞에서 소리 없이 통곡하고 있는 아리아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죄, 죄송……. 제가 못나서…….”

재상은 그렇게 의식을 잃었고. 루카스는 자신의 로브를 재상에게 덮어 주고서 급히 왕궁으로 달렸다.

결계 속으로 달려간 루카스는 거칠게 쉬던 숨을 급히 멈췄다.

‘이건……!’

설원의 계승식은 완전히 실패했다. 계승식 중심부에서 여태껏 본 적 없는 엄청난 냉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냉기는 어찌나 강렬한지 100미터 거리에 서 있음에도 온몸이 꽁꽁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숨을 잘못 들이쉬었다간 폐가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화염의 마도사인 그가 온 힘으로 불의 마법을 펼쳤음에도 말이다.

사방은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분간조차 못 할 정도로 어두웠다.

분명 하늘이 보이는 공터였거늘 계승식장의 하늘은 거대한 냉기 폭풍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고, 햇빛 하나 지상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마치 늦은 새벽의 눈보라 몰아치는 설원 같았다.

어둠 속의 설원은 어떤 존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파고드는 싸늘한 냉기와 매정한 강풍이 루카스에게 경고를 내리는 것 같았다.

가까이 오면 얼어 죽으리.

“…….”

루카스는 폭주 중인 설원의 권능에 압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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