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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92화 (92/212)

제92화

#92.

기온이 다시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매서운 추위에 그녀가 흘린 식은땀은 이내 서리가 되어 흩어졌다.

함께 흘린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리다가 턱 아래서 고드름이 되었다.

10미터 위로 떠올랐던 예나와 루시의 몸이 천천히 지상으로 추락했다.

타다다닷.

솔라시우스가 급히 예나에게 달려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예나의 상체를 들어 안았다.

“어서…… 도망치세요!”

그의 품 안에 안기자, 예나는 계승식 이후 처음으로 안락함을 느꼈다. 영원의 그의 품 안에서 잠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루시를 데리고……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세요!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그녀는 복면과 후드를 깊게 눌러쓴 솔라를 애타는 눈으로 보며 말했다.

“이건……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못 막아요…….”

잠시 진정된 것일 뿐, 이미 폭주한 설원의 권능은 그녀의 손을 떠나 버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2차, 3차, 4차에 해당되는 설원의 폭풍이 몸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하지만 복면을 쓴 솔라시우스는 금색 눈으로 예나의 푸른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그녀 몸속에 있는 ‘녀석’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올 테면, 와 봐라!

화아아아악!

예나체리나를 안은 솔라가, 태광휘가 태양의 이능을 펼쳤다.

태양 이능을 펼치는 그의 손에는 태양샘 반지 2개가 끼워져 있었다.

솔라가 태양 이능을 펼치자.

고오오오오오.

예나의 몸속에 있던 응축된 설원의 에너지가 반응한다.

마치 너의 도전을 받아 주겠다는 듯 아까보다 더 맹렬히 폭주한다.

음과 양, 두 에너지가 좁은 공간 안에서 맞붙었고, 거대한 섬광을 뿜었다.

* * *

이번이 처음이다. 정면 대결로 설원의 권능과 싸우는 것은.

원작 플레이에서 솔라시우스는 막 제대로 사용하게 된 빛의 힘과 화염의 가호로 토템과 마법진을 파괴했었다.

그랬던 솔라도 예나체리나의 몸속에서 폭주하던 설원의 권능만큼은 결국 어떻게 하지 못했었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고 전부 실패했었다.

그 과정에서 솔라시우스의 생명이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보다 못한 예나체리나가 나섰다.

그녀는 스스로를 희생했었지. 오직 솔라시우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 대가로, 사랑하는 딸에게 저주를 안기는 대가로 설원의 분노를 잠재웠지.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애절한 눈으로 솔라에게 유언을 남기던 예나체리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루시, 루시를 부탁해요.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태광휘도 그리고 솔라시우스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끝까지 루시푸르네의 곁에 있어 준 것은.

짧은 회상을 마치고, 그는 모든 정신을 청은발의 여인에게 집중했다. 여인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주위를 살폈다.

‘악황제와 옥타나는 안 보여. 리리아와 세계수가 막아 주고 있는 건가?’

바깥의 소동을 감지하긴 했지만 옥타나에게 조종당하는 황족들의 난동에 불과했다.

아직까진 원작 플레이와 비슷하다.

가증스러운 재상 아리아 데스모가 왕궁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고, 악황후 또한 재상이나 사신으로 온 황족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지.

‘루카스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군.’

덤으로 저 멀리 루한의 국서 루카스가 멍한 얼굴을 하고 엎드려 있는 것도 보였다.

스으윽.

‘일단 루시부터.’

그는 일단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어린 루시부터 챙겼다.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손짓으로 바람을 만들어 어린 루시푸르네를 최대한 멀리 보냈다.

그리고 위험한 수술을 집도하게 된 의사처럼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품에 안은 여인을 보았다.

“허억…… 허억…… 헉, 쿨럭!”

그녀는 곧 죽을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영혼 또한 강풍을 만난 연처럼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여기까진 원작과 똑같다.

‘이번엔 달라.’

하지만 지금부턴 전혀 다른 전개가 될 것이다.

화아아아앗!

태광휘는 궁극기 ‘태양의 후예’를 있는 힘껏 뿜어냈다. 그의 몸이 빛의 갑옷에 잠겼다. 하늘마저 가린 공터에 유일한 태양이 되어 주위를 밝혔다.

2개의 태양샘 반지가 빛을 뿜었고, 지구에서 사용했던 오리지널 태양 이능보다 더 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별의 저주가 힘을 쓰지 못하는군. 하긴, 이렇게 추우니…….’

지금 솔라는 태양샘 반지를 2개나 꼈음에도 별의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오히려 더위는커녕 각성 이후 처음으로 추위마저 느꼈다.

‘기필코 구해 드릴게요! 어머니!’

그의 허리춤에 있는 루시 또한 필사적으로 마검 윈테이라를 조작했다.

그녀는 윈테이라의 푸른 마석을 개방해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냉기를 최대한 흡수했다.

우우우웅.

마검과 동기화 중인 루시의 세계수 팔찌가 푸르게 빛났다.

솔라와 루시, 두 사람은 예나체리나의 영혼을 좀 먹고 있는 설원의 힘을 흡수하고 소모시키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고오오오오.

그러자 예나체리나의 몸속에 있던 녀석도 크게 포효한다.

!!

겨우 이 정도냐고 외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재밌는 상대를 만나 즐겁다는 함성 같았다.

“…….”

이 둘을 보는 예나의 눈에 안타까움이 비쳤다.

설원을 품고 있는 그녀는 잘 알았다. 녀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발…… 이 힘을 화나게 하지 마세요.”

그래서 그녀는 눈앞의 그가 너무도 걱정이었다.

“저를 포기하고…… 루시에게…….”

흐릿한 예나의 목소리가 솔라의 귓등을 때렸다.

‘절대 포기 안 해!’

솔라는 그녀의 애원을 무시했다. 늘 경청해 줬던 그녀의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리.

2개의 태양샘 반지와 태광휘의 이능, 솔라시우스의 혈통, 별의 저주,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강하게 빛을 냈다. 열을 뿜었다.

‘어머니, 이번만큼은 제발 사세요! 그래서 제가 커 가는 모습을 봐 주세요!’

마검 윈테이라의 루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냉기를 흡수하기 위해 애썼다.

둘은 예나체리나의 설원에 대항했다.

두 힘의 대치가 흐르고 흘러, 폭주했던 설원의 권능은 눈앞의 상대를 인정하게 되었다.

-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인정했다고 해서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전력으로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아아……! 안 돼……!”

틀렸음을 느낀 예나가 눈을 질끈 감는다. 눈에서는 눈물이 작은 얼음이 되어 떨어진다.

결국 그녀 몸속에 있던 모든 저주스러운 힘이 튀어나왔다.

하늘색 마나 입자들이 거대하고 한 곳에 모였다.

!

소리 없는 포효와 함께 용의 형상을 했다. 크기는 족히 100미터는 됐다.

하늘색 에너지로 구성된 거대한 용, 그것이 바로 설원의 권능의 본신이었다.

“허억……!”

예나는 순간이지만 엄청난 해방감과 개운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가 걱정됐다.

쌰아아아아.

지금까지 대등하거나, 혹은 살짝 밀리는 수준이었던 그이는 이번에야말로 크게 밀렸다.

“……!!”

처음으로 예나를 안은 손에 힘이 빠졌고, 거대한 강풍에 몸이 뒤로 밀렸다.

‘……!’

몸이 뒤로 밀린 솔라는 지지 않겠다는 듯 다시 예나를 향해 전진했다.

“제발……!”

그런 솔라를 예나가 절규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한편으론 두 눈을 감고는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놨다. 절규와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졌던 그녀의 얼굴이 어느 순간 평온해졌다.

‘결국…… 어쩔 수 없구나.’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에는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를 살려야 한다. 이 힘을 만족할 만한 제물이 필요하다.

예나체리나는 눈을 감았다.

-뭘 원하니?

눈을 감고서 설원의 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설원의 힘이 답했다.

-너의 영혼, 네 딸의 몸.

그 말에 예나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깨가 잘게 떨렸다. 평온했던 얼굴이 굳었고 갈등이 서렸다.

-……거절하면?

-저 남자는 죽어. 더 나아가 이 왕국의 모든 생명체도.

역대 설원의 대마녀들은 과연 알았을까?

루한을 수호해 준다는 이 힘의 본성을.

마치 양날의 검 같아서 언제든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

예나는 말없이 눈앞의 남자를 보았다.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선택지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저 마검에는 미래의 루시가 있을 거야. 그렇다는 것은…….’

원래에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추측으로 끝났던 생각이 지금 이 순간, 확신으로 넘어갔다.

예나의 시선이 솔라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붕대로 감긴 마검을 눈에 담았다.

결혼식 전날. 저 검을 만지면서 얼핏 보았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랬기에 희망을 품어 본다.

“루시, 루시푸르네……!”

예나는 입을 열고서 허리춤의 마검을 불렀다.

현재의 딸은 의식을 없었기에, 그리고 잘 이겨 낼 것을 알았기에.

오히려 그녀는 홀로 설원의 저주를 견뎌 냈을 미래의 딸이 안쓰러웠다.

“미래의 내 딸, 루시야…….”

그래서 미어지는 마음으로 마검과 동기화 중인 루시푸르네를 불렀다.

“너에게 그런 시련을 줘서 미안해.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예나체리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루시에게 외쳤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그런 어머니의 외침을 들은 루시푸르네는 미칠 것만 같았다.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다고요! 포기하지 마세요! 제발…… 솔라시우스! 부탁이야! 어머니를 살려 줘!’

루시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윈테이라의 파란색 마석이 번쩍였다.

“아니야, 이게 내 운명이야. 이건 바꿀 수 없어. 동기화가 된 것이 맞구나.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했어.”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미래의 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설원의 저주를 혼자 감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혼자 남겨 두어 미안해. 사랑해, 내 딸, 사랑해.”

이어서 예나의 시선이 검에서 검의 주인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여전히 빛의 갑옷을 두르고 자신을 보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그 말을 끝으로 예나체리나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설원에게 바치려 했다.

고오오오오오.

다 끝났다! 설원이 포효하면서 솔라를 향해 조소했다.

‘봐라,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솔라는 이것을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어머니…… 흐으으으윽…….’

다 틀렸음을 깨달은 루시는 엉엉 목놓아 울 뿐이다.

그렇게, 예나체리아의 영혼이 설원에게 먹히기 직전.

“루시, 루시를 부탁해요.”

예나는 마지막 남은 의지로 솔라에게 유언하듯 말했다.

“……아직 아니야.”

이에, 솔라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

그 남자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목소리.

중저음에 높은 제국어와 요정어가 섞인 공용어는 삶을 포기한 예나마저도 놀라게 만들었다.

[……!]

이는 목 놓아 엉엉 울고 있던 루시푸르네도 마찬가지.

두 여인의 경악 어린 시선과 비슷하게 놀란 설원의 시선을 받으며.

화아아아아악!!

솔라시우스의 두 태양샘 반지가 어느 때보다 강렬히 빛났다.

그는 반지 낀 손으로 등에 차고 있던 회색 장검을 뽑았다. 회색 장검이 길쭉한 태양처럼 변했다.

‘지금!’

타아앗!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마침내 아가리를 벌린 설원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 찰나의 기회를, 그는 멱살 잡듯 꽉 잡고는 놓지 않았다.

역사는 바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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