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95화 (95/212)

제95화

#95.

기대하던 일이 계속 미뤄지는 기분, 고대하던 물건 배송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기분.

루시는 이런 기분을 유독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솔라는 나에게 가까이 올 수 있어! 태양샘 반지만 있으면 더욱 가까이도 가능해!’

세계수 속에서의 일 덕분에 이제는 추측에서 확신으로 완전히 돌아섰기 때문이다.

지금의 솔라시우는 회귀 전의 3미터보다 더 가까이 그녀의 곁에 올 수 있을 것이다.

‘리리아가 저주의 해주 방법을 끝내 알려 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어.’

태양샘 반지를 낀다면? 결혼반지처럼 그가 하나를 끼고 자신이 하나를 낀다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살을 맞대고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깊은 키스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부부처럼, 연인처럼.

솔라는 나를 만질 수 있다. 나는 솔라를 만질 수 있다.

‘설원의 저주를 앓고 있는 나를 안아 줄 남자는 솔라밖에 없어. 반대로 나 또한 그이가 안고 있는 별의 저주를 감당할 수 있지!’

솔라는 오직 루시의 전용이고, 루시 또한 오직 솔라의 전용인 것이다.

너무 로맨틱하다. 이건 운명 그 자체다. 시공간을 초월한 데스티니라니!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루시푸르네는 가슴이 콩닥 뛰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예나체리나와 솔라시우스의 관계는 이제 상관없었다.

그렇게 망상의 11차원을 누비던 루시는 문득 자신의 상황을 서서히 직시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정신 차리자!’

잔뜩 풀어진 얼굴로 솔라와 입맞춤하는 상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문라이트 후작령과 데스모 공작령부터 해결해야 해!’

그녀는 문라이트 후작령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온 것에 배덕감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회귀 전과 너무 달라져서 짐작조차 못 하겠어.’

그녀의 생각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주요 인물, 사건과 연관 있을까?’

수인족 침공과 파괴왕 가오이, 세계수와 리리아, 암흑대공 둠, 악황제 세피로스 등등, 굵직한 일들은 대부분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도 있긴 했다.

대표적으로.

“죽음의 대마녀 리나 리버스의 왕도 침략.”

그녀는 회귀 전,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녀를 속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왕도 윈테라와 관련된 일이야. 문라이트 후작령과 관련이 없어. 애초에 죽음의 대마녀는 이제 없고.”

죽음의 대마녀 리나 리버스는 지금 솔라시우스의 여동생이 되었다. 어쩌면 회귀 후에 가장 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것이 루나시르네일 것이다.

“그리고 성자 시몬도 있었지.”

회귀 전의 리나 리버스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성자 시몬 또한 연상되었다.

왕도를 침략한 죽음의 대마녀와 죽음의 군단을 당시 솔라시우스와 함께 무찔렀던 영웅.

‘하지만 그는 지금 교국에 있겠지. 성자 중에 시몬이라는 이름은 없지만…… 원래 교국은 요정 숲 못지않게 폐쇄적이니. 어쨌든 이 또한 문라이트 후작령과 딱히 연관은 없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사건과 인물을 떠올렸지만 변경백과의 연관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군대를 보낼 수도 없고.’

군주가 휘하 영주의 영지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정치적인 리스크가 굉장히 컸다.

평소 지크문트 후작의 충성심을 잘 알기에,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말이다.

‘역시 솔라를 직접 보낼 수밖에 없어.’

결국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파견한 기사도 마법사도 실종되었다지만 솔라시우스라면 다를 것이다. 그는 암흑대공도 무찌르는 강자니까.

‘유리아도 문라이트 후작도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문라이트 후작령과 변경백 식솔들에게 별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도를 올린 그녀는 이어서 데스모 공작령을 떠올렸다.

데스모 공작령으로 평소 그녀를 따르던 마녀와 마법사, 귀족이 집결 중이라는 소식.

‘데스모 공작령의 움직임은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야.’

솔라가 볼카에서 암흑군단과 암흑대공을 무찌르고 제국군 대다수가 요정 숲으로 이동했기에, 지금의 루한은 약간이지만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생겼다.

‘재상은 이미 자신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것을 알 거야. 즉, 이제 대놓고 움직이겠다는 거지.’

데스모 공작령의 불손한 움직임과 다르게 이를 받아들이는 루시와 루카스는 오히려 반갑게 여겼다.

‘어머니의 원수들! 더러운 배신자들!’

지금까지 적아를 구분하는 것이 성가셨는데, 이렇게 알아서 구분을 해 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루시푸르네와 섭정 루카스는 이들과 내전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만약 문라이트 후작에서의 일만 아니었다면 더욱 홀가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원의 가호 아래서 반란이라니…… 무슨 수작이지?’

한편으론 찝찝함도 강하게 느꼈다.

‘어쩌면 그림자 핵과 비슷한 걸 준비했을지도 몰라. 여차하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차라리 내가 직접 그녀를 죽이는 게 나을 거야.’

그러나 찝찝함과 별개로 다른 감정도 일었다. 마침내 회귀 전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기도 했다.

‘아리아 데스모! 그 뻔뻔한 얼굴과 미소로 나를 속이다니……!’

그녀는 그런 배신자를 진심을 믿고 의지했던 회귀 전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 * *

회귀 전, 설원의 저주와 재상 아리아 데스모의 수작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그런 때였지만 루시에게 평화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로안 샬루트, 재상과 더불어 여왕 루시푸르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남자.

설원의 저주 앞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기사.

심지어 로안은 여왕과 나이도 비슷했다.

늘 공무와 관련된 얘기만 하던 재상과 달리, 로안은 요정 숲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와 루한을 떠돌면서 겪었던 얘기를 루시에게 해 줬다.

그래서 루시는 세계수 묘목이 시들었음에도, 태양샘 반지가 효력이 없었음에도 크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기대되었다. 로안 샬루트를 향한 여왕의 의심과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졌고, 왕국의 대신들은 재상에 이은 차기 실권자로 이 망명 황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회귀 전의 루시푸르네가 누렸던 평화는 너무도 짧았다.

동부 초원에서 발호하여 요정 숲을 공격했던 군대, 제국의 수인족 군단, 야만군단이 루한을 침공한 것이다.

제국 야만군단이 변경백을 침공했다!

변경백에서의 다급한 통신은 잠시나마 평화를 누렸던 루시의 등짝을 때렸다.

“설원의 가호가 있지만…… 적의 숫자가 많다고 합니다. 놈들이 암흑군단과 합류한 것이 특히나 위력적이라 합니다. 이대로라면 변경백이 초토화될 것 같습니다.”

재상 아리아 데스모의 침통한 보고에 루시푸르네 또한 기분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왕국의 모든 자원을 변경백으로 보내라.”

루시는 짧지만 강하게 명했다.

“예, 폐하. 그리고…….”

“말하라, 재상.”

“변경백에서 로안 샬루트를 파견해 주길 요청했습니다.”

“로안을……?”

변경백에서의 뜻밖의 요청에 루시는 생각에 잠겼다. 매일매일, 하루 한 시간씩 그와 수다를 떠는 것이 요즘 그녀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 친구를 멀리 보낸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변경백은 오랫동안 루한을 위해 희생한 충신이야.’

하지만 보내 줘야 한다. 늘 변경백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지니고 있던 그녀였기에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로안 샬루트, 세 번째 시련을 내리겠다.”

루시는 재상 옆에 선 금발, 금안의 방랑 기사를 불렀다.

“예, 폐하.”

“변경백에 제국의 야만군단이 나타났다. 야만군단을 무찌르고 파괴왕 가오이를 죽여라!”

이렇게 루시는 솔라에게 세 번째 시련을 내렸다. 변경백과 함께 야만군단과 암흑군단을 저지하고 사천왕 중 하나인 파과왕 가오이를 척살하라는 임무.

“……무리라고 생각되면 거절해도 좋다.”

루시가 처음으로 명령하길 망설였던 임무, 사실상 부탁에 가까웠던 시련.

“받들겠습니다.”

하지만 로안은 고민도 없이 그녀가 내린 시련을 받아들였다.

“왕실 기사단장 하이마도 출진하라.”

그녀는 솔라에게 명령을 내린 것도 모자라 재상 뒤에 서 있던 기사에게도 명했다. 변경백이 위기에 처했다. 이왕 도움을 줄 거면 최대한 도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폐하의 경호가 빕니다.”

당연하지만 왕실 기사단장 하이마는 처음에 반대했다.

“이 설원의 저주를 뚫고?”

이에, 루시는 자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기사단장 하이마도 로안과 함께 출진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요정 숲에 은거하던 엘프들이 군대를 일으켜 변경백을 지원했다.

변경백을 침공했던 야만군단이 무너지고 암흑군단이 후퇴했다.

파괴왕 가오이가 망명 황족 로안 샬루트에게 죽었다는 소문이 루한 전역에 퍼졌을 때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국 그는 해내고 말았다.

로안 샬루트의 명성은 이제 루한을 넘어 대륙 전체로 퍼졌다.

“로안 샬루트, 그는 정말이지 훌륭한 기사입니다, 폐하.”

1년 먼저 왕궁으로 복귀한 하이마가 진심으로 이 망명 황족을 칭찬했다. 로안과 하이마는 변경백에서 함께 싸우면서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은 듯 보였다.

그렇게 왕국 전체의 축하를 받으며 로안 샬루트가 여왕을 알현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수고 많았다, 로안 샬루트. 그리고 시즈도 오랜만이구나. 못 본 사이에 많이도 컸어.”

그의 뒤에는 붉은색 드레이크 시즈가 보였는데,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듣기론 하늘도 날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저 시즈라는 드레이크를 타고 날아왔다지?

“대단하구나, 그대는……. 일단 고생했다. 다음 임무가 있을 때까지 휴가를 보내도 된다.”

루시는 애써 웃으면서 솔라를 반겼다.

“포상은…… 휴가를 즐기면서 기다리도록. 재상과 논의 후에 지급하겠다.”

그러나 솔라를 반기는 루시의 속은 마냥 좋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마찬가지로 승리를 보고하는 솔라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

그는 마치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한 눈을 했다.

-세계수 가호 밖에서는 확실히 힘이 딸리는군. 하하하, 요정 숲에서 상대했을 때와 전혀 달라…….

-쿨럭, 로안……! 이걸 가져가라. 지금까지 내가 조사한 것들이다. 이걸로 네 동생 루나시르네를 찾아……!

-노아…… 미안하구나……. 노아…….

알현실에 부복한 솔라의 머릿속으로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의형제의 목소리가 떠다닌다.

로뮤가 죽어 가면서 건네준 소중한 자료들이 솔라의 품속에 유품처럼 있었다.

“…….”

하지만 루시는 최근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 때문에 솔라의 공허한 눈을 보지 못했다.

‘전장의 상황처럼 설원의 저주도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루시의 마지막 희망이던 대마법진 이노센티아가 계속해서 실패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마법진 이노센티아, 루시푸르네의 마지막 희망.

솔라가 변경백에서 야만군단을 막고 있을 때, 루시 또한 논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대마법진 이노센티아를 만들었다.

망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태양샘 반지와 시들어 버린 세계수 묘목까지 재료로 아낌없이 투하한 유일무이한 마법진.

하지만 이마저도 여왕을 구속하던 설원의 저주를 끝내 풀지 못했다.

“어째서! 태양샘 반지도…… 세계수 묘목도 소용없단 말인가?!”

계속되는 실패.

머리를 싸매고 수식을 계산했다. 왕궁의 모든 서적을 읽었다.

설원의 저주로 그녀가 직접 못하는 부분은 그녀의 손발이기도 했던 재상이 대신했다.

“왜 저주가 더 강해지는 거지? 어째서 반대로 작용하는 거지?!”

그렇게 재상과 마녀회의 마녀들과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설원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왜 저주는 강해지고, 가호는 약해지냔 말이다!”

그러면서도 루한에 펼쳐진 설원의 가호를 약화시켰다.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루시푸르네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졌다.

“폐하, 실패 원인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로안 샬루트의 행적입니다.”

그런 여왕에게 재상은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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