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여왕의 EX급 방랑기사-98화 (98/212)

제98화

#98.

솔라는 루한의 차기 국서가 되어 활약했다.

그중에는 볼카까지 내려가서 태양샘 반지를 구하는 일도 있었고, 루시푸르네의 최종 각성을 돕는 일도 있었다.

왕도 내에서 치료사로 이름 높던 마법사가 흑마법사로 밝혀진 사건도 있었다. 그 흑마법사는 음영술과 키메라를 접목시킨 힘으로 왕도에서 난동을 부렸고, 이를 솔라와 루시가 힘을 합쳐 토벌해야 했다.

솔라는 무수한 시련과 전투를 거치면서 성장했고, 자신의 혈통에 내재 된 빛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빛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게 된 솔라는 두 개의 태양샘 반지까지 사용해 암흑대공을 무찌를 수 있었고, 전리품으로 대공의 회색 마검 제노사이드를 얻었다.

설원의 가호와 솔라시우스로 무장한 루한을 제국은 감히 침공하지 못했다.

본래라면 요정 숲으로 제국군과 수인족을 보냈어야 할 흑태자와 악황후는 루한의 급격한 강세로 그럴 여력을 잃었다.

나라가 안정되자, 루시와 솔라는 약혼에 이어 결혼을 하기로 했다.

둘의 결혼이 결정되자, 국서 루카스는 사위에게 마검 윈테이라를 생전에 건넸다.

국서가 생전에 윈테이라를 넘기는 것은 전례에 없던 일.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예나체리나는 흔쾌히 찬성했다.

아내가 될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 솔라는 루시를 데리고 요정 숲을 방문했다. 둘은 그곳에서 루나와 로뮤, 텔미노아와 인사를 나눴고, 기다렸다는 듯 세계수의 계시가 두 사람에게 내려졌다.

바로 세계수 속으로 들어가 과거의 예나체리나를 구하라는 계시였다.

리리아의 안내에 따라 솔라는 망토와 후드를 깊게 쓰고 두 마검에 천을 덕지덕지 둘러야 했다.

루시는 세계수 밖에서 마검 윈테이라와 동기화해야 했다.

그렇게 둘은 세계수 속으로 들어가 과거의 예나체리나를 도왔다.

솔라와 루시가 요정 숲에서 귀환하자, 예나는 루시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리고 루카스와 함께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가 딸과 사위가 보는 앞에서 눈을 감았다.

텔미노아는 본래에도 명줄이 길지 않은 모양인지, 솔라가 결혼을 하고 2년 후 요정 숲의 풀덤불 아래서 숨을 거뒀다.

텔미노아를 보내고 슬픔에 잠긴 로뮤를 루나가 위로해 줬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유독 가까워진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솔라와 루시는 결혼 후 5년 만에 슬하에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대대로 딸 하나만 낳았던 루한 역사상 남매는 최초였고, 루한 전역이 새 역사의 탄생을 축복했다.

후계 문제가 사라지자, 루시푸르네는 요정 숲과 함께 군대를 일으켜 암흑 제국을 공격했다.

솔라와 루시가 직접 선두에 서서 제국군을 무찔렀고, 둘은 끝끝내 거짓의 대마녀 옥타나와 악황제 세피로스를 무찌른다.

대륙은 평화를 되찾았고 솔라는 제국의 옥좌를 되찾았으나, 실질적인 통치는 그의 배다른 동생 미나스트림을 섭정으로 삼아 위임했다.

솔라는 황제가 되었음에도 삶의 대부분을 루한의 순백궁에서 보냈다.

시간이 흘러 자식들이 장성하고, 솔라는 아들을 제국의 황태자로 임명했다. 딸은 루시푸르네의 뒤를 이었다.

섭정이었던 미나스트림은 대공령과 새로운 성을 하사받았고 스스로도 이에 만족했다.

로뮤와 루나는 요정 숲을 나와서 이자벨과 함께 마법을 연구하거나 종종 여행을 떠나는 삶을 살았다.

변경백 영애 유리아와 성자 시몬에 대한 얘기도 있다. 제국과 전쟁 중 둘은 전장에서 우연한 만남을 가졌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함께 대륙을 여행하면서 각자의 기사도와 신앙을 펼쳤다.

세상은 평화 속에서 크게 발전했고,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고 흘러, 루시와 솔라는 속세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요정 숲 근처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

* * *

“……이런 이야기가 펼쳐진 세계야. 참으로 아름답지?”

낭송을 마친 그녀는 문득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 많은 세계선이, 시간선들이 오직 이 묘목 하나를 얻기 위해 희생했던 걸까?’

그녀는 사그라진 차원에서의 자신과 세계수를 떠올렸다.

그 세계선에서, 세계수와 리리아는 무기력했다. 미래를 슬쩍 볼 수 있었기에 더더욱 무기력했다. 사실상 확정된 종말. 해결 방법이 없어서 그저 방치했다. 방관했다. 포기했다.

합쳐진 세계선뿐만 아니라 다른 무수한 세계선 또한 비슷한 최후를 맞았었지.

아무리 그래도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지 않았나?

아무리 그래도 하나의 세계를 책임지는 존재들인데.

리리아는 무기력했던 다른 차원의 세계수와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된 묘목을 품에 안고 있자니, 마침내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들은 참고 인내했던 것이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우우웅, 우우웅.

뒤에 있던 세계수가 그런 리리아의 눈물에 반응한다.

“…….”

솔라 또한 멍한 눈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는 리리아와 다른 이유로 침묵과 여운에 잠겼다.

‘배다른 동생? 미나스트림?’

생소한 이야기도 있었다.

‘왕도에서의 소동은 원작과 비슷하게 벌어지나 보군. 이자벨과 루나에게 갔어야 할 그림자핵이 거기로 간 건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사건도 있었다.

‘그나저나 유리아와 시몬이 그렇게 이어진다니.’

반가운 인물들의 행방도 짧게나마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루시와 함께 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나중에 전해 줘야겠군.’

한편으론 왕궁에 있을 루시푸르네가 떠올랐다. 어쩌면 누구보다 지금의 이야기를 궁금해했을 텐데.

‘하지만…… 이 세계선에서의 나는 지구로 돌아가야 할 텐데? 여기에서 나와 루시는 이어지지 못해.’

동시에 리리아가 낭송한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걸렸다. 바로 루시와 솔라의 결혼이다.

지구의 태광휘와 합쳐진 지금의 그는 묘목 속의 솔라와 다르다.

“그런데 나와 루시푸르네의 결말이 걸리는군. 나는 지구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세계수도 그걸 원하는 거로 아는데?”

그래서 솔라는 리리아, 정확히는 리리아의 뒤에 있는 황금색 나무를 향해 물었다.

스스스슷.

“묘목 속 세계와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는 이제 완전히 달라. 설원의 대마녀도, 그리고 태광휘 너도, 이 세계선에서만큼은 예외지.”

“……만약 내가 이 세계에 남겠다고 한다면?”

리리아의 대답에 솔라는 은근한 장난기를 품고서 물었다. 물론 그는 지구로 갈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고집을 부린다면? 저 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어……? 진짜? 그렇게 되면 많이 곤란한데…….”

스스스스.

그러자 리리아와 세계수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좋지 않아. 그대는 지구에서 마왕을 소멸시키면서 사실상 신과 비슷한 존재가 되었어. 그런 당신이 집을 오랫동안 비우면…… 속된 말로 빈집털이를 당할 수 있어! 지구가 말이야.”

“비유가 아주 이해하기 쉽군.”

“이 세계에도 좋지 못해. 균형이 어긋난달까?”

“알았어.”

마왕을 무찌르고 설원의 저주와 별의 저주만 풀고 가자. 그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자! 그럼 궁금한 것은 풀린 거지?”

대화가 대강 정리된 듯하자, 리리아가 손뼉을 짝! 치면서 물었다.

“뭐, 그럭저럭. 바깥은 지금 어떻지?”

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부터 그걸 말할 거야. 사실…… 바깥 상황이 좋지가 않아.”

어깨를 으쓱인 솔라를 리리아가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리리아로부터 바깥의 상황을 대강 들은 솔라는 급히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여기와 바깥의 시간이 달라서 다행이군.”

“그것도 슬슬 한계야.”

마치 일터로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는 것처럼 리리아는 솔라를 배웅했다.

“같이 가고 싶지만, 세계수를 지켜야 해서…….”

리리아가 세계수 정원을 나서려는 솔라에게 미안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흘린다.

옥타나와 악황제를 쫓아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적어도 이 세계수 묘목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리리아가 세계수 곁에 있어야 한다.

“…….”

리리아의 사과에 솔라는 개의치 않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보일 뿐.

“쥴리아는 괜찮은 건가?”

그는 괜찮다는 대답 대신, 세계수 나뭇가지 위에 잠든 쥴리아를 보며 물었다.

“응, 피곤해서 깊게 잠든 것일 뿐이야.”

“그러고 보니 묘목 안에서 쥴리아는 어떻게 되지?”

그는 불현듯 다른 세계선의 쥴리아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리리아의 낭송에서 쥴리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저 아이는 굉장히 특이한 아이야.”

솔라의 물음에 리리아가 쥴리아를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사그라진 세계에서도, 묘목 속 세계에서도, 저 아이는 보이지 않았어. 오직 지금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아이야.”

“지구와 연관이 있다는 건가?”

“그런 거 같아. 저 아이는 이 세계선의 특이점인 셈이지.”

“……?”

쥴리아를 보는 솔라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혹시 짐작되는 거 있어? 영혼의 냄새도 아주 비슷하고 이렇게 다른 차원까지 따라온 것을 보면, 전생에 보통 인연이 아닌 거 같은데?”

리리아가 호기심 깊은 어조로 물었다.

“…….”

그녀의 물음에 쥴리아를 보던 솔라의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마스터!

-내가 아니면 누가 마스터를 백업해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물론이에요, 마스터.

지구에서의 무수한 인연들 중 가장 이 아이와 근접한 존재, 그를 마스터라 부르며 변함없이 따르던 아이가 있었다.

태광휘 또한 그녀를 매우 아꼈었다. 대전쟁 초기 전장에서 만나, 자식 키우듯 늘 함께 지냈었다.

그 아이도 적발에 금안을 했었고 불과 빛의 이능을 사용했었지.

그러나 마지막까지 함께하진 못했었지.

솔직히 처음 쥴리아를 보았을 때, 그 아이가 제일 먼저 연상되긴 했었다.

“뭔가 있긴 하구나?”

옛 기억에 잠긴 솔라를 본 리리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두웠기에, 더 깊게 물어보진 않았다.

* * *

쿠웅, 쿠웅, 쿠웅!!

요정 숲의 수풀들이 짓밟힌다. 지진이 쉼 없이 일었다.

쿠오오오오!

고막을 찢는 듯한 괴성이 숲의 마지막 평화를 범한다.

숲속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옥타나가 생성한 공간 이동 마법진은 꺼진 지 오래였지만, 이미 그 안에서 무수한 수인족 전사와 제국군 정예가 나온 직후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기사보다 강한 존재들, 함께 등장한 마법사들 또한 높은 위계의 마법사들. 그들은 악황후로부터 무슨 비법을 전수받은 모양인지 세계수 가호 안에서도 사특한 주술을 쓸 수 있었다.

“버텨라!”

“놈들이 도시로 오지 못하게 막아라!”

요정 숲의 전사들이 총출동하여 그런 적의 기습에 대응 중이다.

엘븐나이트, 엘레멘탈리스트, 엘븐레인저 등 요정 숲의 정예들이 수인족 전사와 제국 암흑군단을 상대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졌다.

퍼어어억!

콰아앙!

얼마 안 가, 엘프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끄아아악!”

“무슨 저런 괴력이……!”

아무리 기습이라고 해도 이곳은 요정 숲 내부다. 엘프들 또한 하나하나가 실력자들이고 분명 압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밀리고 있었다.

적들의 병사 하나하나가 기이할 정도로 강했다.

“근위대장 로뮤는?!”

한 상급 엘프 전사가 근위대장 로뮤를 찾았다. 로뮤와 그의 근위대의 지원을 받기 위함이다.

“저 수인족 왕을 상대하느라 정신없어 보입니다.”

엘프 전사의 물음에 옆에 있던 엘프 파수꾼이 숲 저편의 어느 공터를 가리켰다. 엘프의 특출난 눈으로도 가늠하기 힘든 우거진 곳. 마나를 담아 집중하니 그 안의 장면이 얼핏 보였다.

“……일단 최대한 버텨본다.”

파수꾼이 가리킨 곳을 본 상급 전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쪽은 여기보다 더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피슝, 피슝.

로뮤 엘펜리트는 몇 번째인지 모를 활시위를 당겼다. 들고 있던 화살통의 화살은 다 쓴 지 오래. 지금은 공터를 뛰어다니면서 바닥에 박힌 화살을 그때그때 수거해서 쓰고 있었다.

‘강하다! 볼카에서 봤던 것보다 더!’

수인족을 제외한 제국군은 분명 볼카 요새에서 상대했던 암흑군단! 암흑대공을 제외하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고 봤던 적들이다. 심지어 여긴 세계수 가호가 짙은 요정 숲 내부이고, 세계수 가호에는 요정들의 능력을 크게 올려 주는 효능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상대하게 된 제국군은 그때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묵 빛 중갑을 입은 암흑군단의 투구 속에는 빨갛거나 검게 변해 버린 안광만이 빛났고, 요정들이 쏘는 정령 마법과 화살을 여러 번 맞아 쓰러져도 곧장 다시 일어서서 멀쩡히 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우우웅.

전투 시작부터 그의 목숨을 위협 중인 거대한 수인족 전사가 특히나 위협적이었다.

‘세계수 가호가 없었다면 진즉에 즉사했겠어…….’

로뮤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그는 숲속을 총총 뛰면서 화살을 수거하고 정령 마법을 펼치면서 녀석의 전투력을 가늠해 보았다.

‘볼카에서 상대한 암흑대공과 비슷하거나, 좀 더 위야.’

세계수의 가호가 없었다면 벌써 놈이 휘두르는 거대한 둔기에 즉사했을 것이다.

녀석의 첫 돌격에 튕겨 나가 죽을 뻔했던 것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법으로 긴급 치유했지만 여전히 속이 욱신거렸고 머릿속이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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